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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로드(The Lord)-144화 (144/250)

144. 혈투(血鬪) ― 1

* * *

폭시 한 방으로 전투 시작을 알린 나는 재빨리 두 발의 마나 에로우를 더 날린 후 곧장 뒤를 돌아 뛰기 시작했다.

이곳은 내가 원하는 전투 장소가 아니었다.

난 내가 원하는 시간에, 내가 원하는 장소에서 전투할 생각이었다.

일단 시간은 내가 골랐다. 이제 남은 건 장소를 고르는 것뿐이었다.

사실 장소도 이미 골라놓았다.

문제는 그 장소로 이 녀석을 끌고 가는 것이었다.

[크어어엉!]

휘이잉!

예상한 대로 놈은 전형적인 패턴을 보여주며 꼬리를 이용해 강력한 공격을 시도했다.

하지만 이미 수많은 놈의 전투를 직접 관찰한 나에겐 절대 통하지 않는 식상한 패턴 공격일 뿐이었다.

꽈과광!

난 가볍게 백 스텝을 밟으며 놈의 공격을 피했다. 그리고 다시 마나 에로우 몇 방을 날리며 놈을 도발했다.

베나인은 나를 잡기 위해 그 육중한 몸을 움직이기 시작했다. 하지만 난 철저히 베나인과의 거리를 재며 절대 일정 거리 안으로 들어가지 않았다.

자칫 거리가 좁혀질 경우 베나인의 화려한 마법과 현란한 꼬리의 연속 공격에 그 자리에서 빠져나올 수 없을지도 몰랐기 때문에 최대한 거리를 신경 쓰며 마나 에로우를 통해 베나인의 신경을 계속 건드렸다.

베나인이 다가오면 그만큼 뒤로 물러나고…… 또 다가오면 또 그만큼 물러나고…… 난 그렇게 본격적으로 베나인을 유도하기 시작했다.

내가 움직일 통로는 이미 확보해 놓았다.

난 그 통로를 통해…… 이 녀석을 레어 밖으로 유도할 생각이었다.

드래곤 레어 밖.

정확히 내가 환영미로진과 환계회회를 펼쳐 놓은 그곳이 바로 내가 이놈과 싸우려는 장소였다.

난 그곳에 그 두 가지만 설치해 놓은 게 아니었다.

그곳은 거대한 함정이었다.

바로 이 녀석, 그린 드래곤 베나인을 위한 함정!

환계회회와 환영미로진이 외곽 쪽에 있다면 레어 입구 바로 앞 지역에는 내가 며칠을 투자해 만든 각종 진법, 함정, 마법진 등이 베나인을 기다리고 있었다.

난 그곳으로 베나인을 유도하기 위해 직접 미끼가 되었다.

지금까지 수많은 유저를 낚았다면 이제는 베나인을 낚을 차례였다.

[감……히!]

베나인은 크게 분노하며 나를 계속 추격해 왔다.

이 녀석은 절대 침착한 성격이 아니었다. 약간은 표독스럽고 날카로운…… 특히 요즘 들어서는 수면기를 방해하는 유저들 때문에 신경이 날카로워질 대로 날카로워진 상태였다.

덕분에 놈은 나의 간단한 도발에도 아주 제대로 걸려들었다. 앞뒤를 가리지 않고 나를 밟아 죽이기 위해 돌진하는 베나인.

이미 ‘방심의 틈’이라는 절대원칙 덕분에 베나인의 각종 능력치가 깎여 내려가 있었다.

물론 24명일 때나 1명일 때나 모두 똑같은 수치가 적용되는 게 조금 아쉬웠지만 그래도 이렇게 스스로 디버프를 걸어주는 걸 고맙게 생각해야 했다.

그런데 베나인은 워낙 인공지능이 뛰어나서 그런지 몰라도 그 ‘방심의 틈’ 말고도 또 한 번 방심하고 있었다.

적이 단 한 명뿐이라는 사실.

그 사실 때문에 베나인은 한시라도 빨리 나를 가볍게 죽이고 다시 잠을 자려는 것 같았다.

덕분에 난 좀 더 손쉽게 베나인을 유인할 수 있었다.

도발하는 족족 반응하는 베나인.

아마도 잡힐 듯 잡힐 듯 잡히지 않는 내가 굉장히 신경에 거슬릴 것이다.

[크어어엉! 벌레 같은 놈이!!]

독이 오를 대로 오른 베나인. 이럴수록 조심해야 했다. 까딱 잘못하면 내가 뚫어놓은 통로가 아닌, 다른 곳으로 진로가 바뀔 수도 있었다.

그렇게 되면 베나인 유인 작전은 실패로 끝나고 난 내가 원했던 장소에서 싸울 수 없게 된다.

휘잉!

꽈과과광!

베나인의 공격을 더욱 사나워졌다.

‘남은 거리는 대략 500m.’

이제 목적지까지 얼마 남지 않은 상황이었다. 난 결단을 내렸다. 이 정도 거리라면…… 베나인을 한 방에 유도하는 게 좋을 것 같았다.

“장비 9번.”

촤아아악!

천마신궁이 사라지며 마법총서가 나타났다. 한 방이라면…… 역시 마법만 한 게 없었다.

스킬 발동, 상급 화염 마법, 플레임 스트라이크(Flame Strike)!!

화르르륵! 꽈광!

베나인의 발밑에 커다란 화염이 치솟아 올랐다.

그 화염은 비록 드래곤의 질긴 가죽을 뚫지는 못했지만 충분히 베나인을 화나게 할 만한 강력한 열기는 지니고 있었다.

[이노오오옴!]

아쉽게도 마법총서의 보너스 마법이 터지지는 않았지만 분명 이 한 방만으로도 베나인의 인내심을 완전히 태워 버린 것 같았다.

촤륵!

지금까지 한 번도 펼치지 않았던 날개를 펼치는 베나인. 팀 에볼루션과 싸울 때 유일하게 보여주었던 비행할 생각인 것 같았다.

‘됐다!’

난 한 방에 제대로 베나인을 엮었다는 걸 알았다. 이제 남은 것은 그저 달리는 것뿐이었다.

그것도 아주 빨리!

스킬 융합, 축지법(縮地法)+패스트 워크+정령 빙의, 실프.

고속전진(高速前進)!

파파파팟!

난 최대한 빨리 앞으로 달려나갔다.

드래곤의 비행 속도는 상상 이상이다. 어설프게 반응하려고 했다간 제대로 안드로메다 구경할 수 있었다.

파앗!

순식간에 거리를 좁히며 나에게 날아오는 베나인.

하지만 난 이미 고속전진을 이용해 빠르게 드래곤 레어를 벗어나는 중이었다.

날아오는 베나인.

달려가는 나.

속도로는 베나인이 좀 더 빨랐지만 그동안 내가 벌려놓았던 거리와 좀 더 먼저 반응한 덕분에 쉽사리 따라잡히지는 않았다.

이제 남은 거리는 불과 50m!!

그리고 베나인과의 거리도 약 50m!!!

이대로 따라잡히면 큰 충격을 입을 수도 있었다.

절체절명의 순간!

난 바로 그 순간 미리 생각해 두었던 조합 스킬을 발현시켰다.

스킬 조합, 상급 보조 마법, 블링크(Blink)+중급 주술, 은월몽(隱月影).

문 블링크(Moon Blink)!

흐릿!

문 블링크를 발현시키는 순간 내 신형이 흐려지며 드래곤 레어 밖으로 튕겨 나갔다.

콰과광! 주르르륵!

제대로 중심을 잡지 못하고 문 블링크를 시전했기 때문에 난 곧장 드래곤 레어 밖의 바닥에 크게 뒹굴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적어도 베나인의 추격에서는 빠져나왔다.

그리고…… 드디어 의도했던 대로 베나인을 이곳까지 유인해 왔다.

[이…… 이…….]

드래곤 레어 밖으로까지 나를 추격해 나온 베나인은 일그러진 표정으로 나를 노려보았다.

지금까지 수많은 유저가 달려들었지만 나와 같은 이는 없었다. 그렇기에 베나인은 더욱 분노하는 중이었다.

그는 단 한 명뿐이라 손쉽게 처리하고 금방 다시 잠을 잘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하지만 아쉽게도 난 그렇게 손쉽게 처리당해 줄 생각이 전혀 없었다.

“뭘 그리 똥 씹은 표정을 하고 그래.”

탁탁.

난 천천히 바닥에서 일어나며 여유 있게 몸에 묻은 먼지를 털었다.

이제 모든 계획이 완성되었다.

베나인에 대한 정보를 120% 이상 얻었고, 에시드 브레스도 봉쇄했으며, 내가 원했던 장소에서도 싸울 수 있게 되었다.

이제 남은 건 시원하게 한바탕 싸워보는 것이었다.

쿠쿵!

베나인이 땅에 내려왔다.

내가 관찰한 결과, 드래곤은 그 육중한 몸을 띄워서 나는 걸 별로 좋아하지 않았다.

아마도…… 워낙 덩치가 크다 보니 마법을 이용해서 나는 게 아니라면 별로 반기지 않는 것 같았다.

어쨌든 땅에 내려온 베나인은 여전히 일그러진 얼굴이었다. 단단히 화가 난, 아마도 이젠 나를 그냥 단순히 죽이는 게 아니라 아주 조각이라도 낼 것 같은 기세였다.

[내 잠을 깨운 걸 평생 후회하도록 해주겠다.]

스으으으∼

베나인의 몸 근처의 마력이 요동치기 시작했다. 이건…… 그가 마법을 사용할 때의 느낌이었다.

그것도 그냥 마법이 아닌 용언 마법(龍言魔法)이었다.

“장비 2번.”

철컹!

용언 마법은 빠르고 강력하다.

피하려고 하는 게 더 어리석을 정도였다. 그렇기에 최대한 버텨야 했다.

번쩍!

베나인의 몸이 빛나며 한 줄기의 뇌전이 나를 향해 뻗어 나왔다.

아마도 체인 라이트닝 종류의 강력한 전격 계열 마법일 것이다.

난 재빨리 양손에 들고 있는 두 개의 방패를 가슴으로 끌어당기며 충격에 대비했다.

스킬 조합, 실드 디펜스(Shield Defense)+방패 강화.

방패의 벽!!

방패의 벽을 활성화시키자 내 몸 주변에 강력한 마력의 방어막이 형성되었다.

그리고 그 방어막에 곧장 뇌전이 작렬했다.

꽝! 꽈과광!

주르르륵!

“크윽.”

충분히 대비했건만 과연 용언 마법의 위력은 대단했다.

직접적인 생명력의 타격은 별로 없었지만 충격으로 인해 몇 미터나 뒤로 밀려났다.

드래곤들은 이런 수준의 마법을 시도 때도 없이 날릴 수 있었다.

나에게 드래곤이 강할 수밖에 없는 이유를 꼽으라면 첫 번째가 그들의 가장 강력한 무기인 브레스를 꼽을 것이고, 두 번째로 이 용언 마법을 꼽을 것이다.

하지만 이것에 대한 대비는 이미 충분히 한 상태였다.

특히 수많은 실험 대상이 베나인의 각종 용언 마법을 끌어내 준 덕분에 그에 따른 대처법도 모두 연구를 끝낸 상태였다.

이것이 바로 관찰의 힘이었다.

어쨌든 이 한 방의 용언 마법으로 서로의 화끈한 인사는 끝났다. 이제부터는 진짜 본격적인 전투가 시작될 차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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