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3. 드래곤의 역린(逆鱗) ― 2
* * *
움직일 때가 된 것을 안 나는 미리 드래곤 레어 쪽으로 움직여 하나의 긴 통로를 확보했다.
아마도 한 시간 동안은 아무런 방해가 없는 통로가 될 것이다. 그렇게 마지막으로 통로까지 확보한 난 이제부터 본격적으로 베나인과의 전투를 시작하려고 마음먹었다.
난 베나인에 대한 모든 정보를 알아냈고, 그리고 결정적으로 베나인이 앞으로 며칠간은 더 이상 ‘그것’을 사용하지 못한다는 것도 알아냈다.
내가 적어놓은 기록에 아주 잠깐 언급되었던 내용. 난 그 내용을 토대로 한 가지 가설을 세웠다.
만약 이 가설이 맞는다면 드래곤 레이드는 절대 불가능한 게 아니었다.
이곳에서 보름을 보내며 베나인을 관찰한 난 그 가설이 틀리지 않았다는 걸 분명히 확인할 수 있었다.
베나인의 가장 무서운 공격 무기.
에시드 브레스(산성 숨결)!!
놈은 적어도 앞으로 하루 동안은 그것을 사용할 수 없었다.
생명력과 마력은 일루젼의 축복에 늘 100%로 유지되었지만 몸 안에 쌓아놓은 강력한 산성액은 생명력과 마력처럼 계속 100%로 유지되지 못했다.
내 분석이 정확하다면 베나인이 사용할 수 있는 에시드 브레스는 42번이었다.
42번이란 수치는 베나인이 몸속에 산성액을 100% 쌓아놓고 있을 때의 얘기였다.
그것을 다 사용하면 베나인도 며칠 동안은 더 이상 브레스를 사용하지 않았다. 겨우 사흘 정도가 지나야 그제야 대략 브레스를 사용하기 시작했는데…… 그때는 대략 20번 정도를 사용하는 게 끝이었다.
관찰 스킬을 극대화시켜 분석해 본 결과, 그 산성액 자체를 몸속에서 만들어내는 데 대략 삼 일이 걸리는 것 같았다. 물론 사흘 동안 만들어낼 수 있는 양도 100%가 아닌 50% 정도였다.
즉, 베나인은 만들어놓은 산성액을 다 사용하면 며칠 동안은 꼼짝없이 브레스를 사용하지 못한다는 뜻이었다.
난 그 베나인의 브레스 사용량을 하나하나 모두 체크했다. 그 결과 바로 어제…… 마지막으로 달려든 자살 특공대에게 사용한 에시드 브레스가 베나인이 사용할 수 있었던 마지막 브레스라는 걸 알아냈다.
베나인은 이제 적어도 이틀은 더 지나야 브레스를 사용할 수 있을 것이다.
가장 무서운 에시드 브레스를 이렇게 묶었다.
난 이번 드래곤 레이드 정보 조작을 통해 두 가지 성과를 얻었다.
첫 번째가 그린 드래곤 베나인의 모든 정보고, 두 번째는 베나인의 가장 강력한 무기인 에시드 브레스를 봉쇄한 것이었다.
이 두 가지를 얻어냄으로써 나의 드래곤 레이드 성공 확률은 더 올라갔다.
모든 준비가 끝났다.
요리는 거의 완성되었고 이제 남은 건 마무리 작업뿐이었다. 물론 이 마무리 작업에 요리의 성공과 실패가 결정될 것이다.
죽느냐, 죽이느냐…… 지금부터는 베나인과 생사(生死)의 대격전을 펼칠 시간이었다.
“뮤직 온(Music On). 실행 데이터 이름, 광란(狂亂)!”
찰칵!
오랜만에 음악을 틀었다.
죽음의 광시곡이라 불리는 노래가 귓속에 울려 퍼지기 시작하자 온몸에 기운이 샘솟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오늘은 정말 이 리듬에 몸을 맡겨볼 생각이었다.
승패의 향방은 어차피 내가 결정하는 것이 아니었다. 난 그저 최선을 다할 뿐. 그리고 나서 결과를 기다리면 끝이었다.
“장비 5번.”
철컥! 치잉!
천마신궁이 내 손에 잡혔다.
스윽.
난 조용히 모든 것을 점검했다. 각종 장비들, 그리고 여러 아이템들, 마지막으로 내가 움직일 통로까지…… 준비는 완벽했다.
확인을 끝낸 난 잠을 자고 있는 베나인을 향해 천천히 걸어갔다.
뚜벅뚜벅.
지금까지 해왔던 그 어떤 전투보다 어려운 전투가 나를 기다리고 있었지만 생각만큼 긴장되지는 않았다.
늘 그렇듯 즐긴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특히, 지금 눈앞에 있는 이 베나인은 적어도 나에겐 그냥 몬스터가 아니었다.
이 파충류들은 알 수 없는 어떤 존재, 나와 큰 연관이 있으면서 별로 좋지 않은 존재, 그 존재의 수족이라고 했다.
그렇다면 이들은 진정한 나의 적이라는 뜻이었다.
내가 잡아야 할 몬스터를 넘어선 진짜 적.
그렇기에 난 오늘 이 녀석의 목을 꼭 따버릴 생각이었다.
“후후, 자, 재미있게 놀아보자.”
난 가볍게 미소 지으며 천천히 천마신궁을 들어 올렸다.
미리 준비한 폭시(爆矢)를 천마신궁에 걸었다. 안티 매직 실드는 이 폭시를 막지 못한다.
이것은 특별히 제작된 강력한 폭탄형 화살이었다.
당연히 마법 계열이 아닌, 물리 계열의 힘을 지닌 물건이었다.
지이익!
폭시를 건 활시위를 뒤로 힘껏 잡아당겼다.
이것을 놓으면 전투가 시작될 것이다.
일인(一人) 레이드, 정확히 일인 드래곤 레이드의 시작.
벌써 몇 번째 일인 레이드였지만 이만큼 거대한 스케일의 일인 레이드는 한 번도 한 적이 없었다.
괜히 위업이 아니다.
드래곤은 절대무력을 지닌 이 세계의 최강자였고 난 지금 그 최강자를 혼자 잡으려는 중이었다.
과연 이길 수 있을까?
파앗!
난 활시위를 놓으며 잠깐 그런 생각을 했다.
하지만 지금은 그것에 대한 답을 말해줄 순 없을 것 같다.
꽈과광!
[크어어어어엉!]
갑작스러운 충격에 놀라며 잠에서 깨어난 베나인.
크게 울부짖는 거대한 덩치의 드래곤 한 마리를 보고 있자니…… 왠지 내가 정말 대형 사고를 쳤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역시…… 승패에 관한 얘기는 나중에 하는 것이 좋을 것 같다.
* * *
“특별한 건 없습니다. 다만…… 시작 지점이 동대륙이었는데 불과 1년(현실 시간) 정도 만에 서대륙에서 최초로 시작된 메인 퀘스트에 크게 관련된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동혁은 부하 직원인 종우의 보고를 들으며 고개를 끄덕이고 있었다.
“저희의 예상과는 다르게 플레이어명 ‘신’에 대한 데이터는 생각보다 깔끔했습니다. 그 어떤 버그도 발견되지 않았고, 시스템 오류도 없었습니다.”
“흐음∼ 그래? 그렇단 말이지? 그런데 난 아무리 생각해도 이해가 안 되는 게…… 어떻게 단 한 명의 유저가 이백 명이 넘는 유저를 완전히 쓸어버릴 수 있는 거지? 그리고 나름대로 게임 속에서 알아준다는 유저들이 대거 모인 팀에서도 아직 제대로 접근조차 하지 못한 것이 바로 메인 퀘스트야. 그런데 저 녀석을 벌써 세 개 정도의 메인 퀘스트에 크게 관련이 되어 있는 것으로 나타났어. 이게 가능한 거야?”
동혁은 고개를 가로저으며 얘기했다.
일루젼으로부터 통제권을 되찾았지만 아직도 ‘One’의 방대한 데이터 분석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고 있었다.
그렇기에 ‘신’이라는 한 유저에 대한 조사도 완벽하게 이루어지지 않았다.
그런데 완벽하게 이루어지지 않은 조사만으로도 신은 상식을 벗어난 유저였다.
동혁은 그게 이해가 되지 않았다.
“그, 그건…… 그저 관련이 있을 뿐, 클리어한 것은 아닐 것으로 예상하는 중입니다.”
“아니야, 그게 아니지. 그건 예상일 뿐이고, 실제로 그렇다는 게 아니잖아? 그리고 백번 양보해서 설사 그렇다고 해도 이 ‘신’이라는 유저는 너무 이해가 안 되는 점이 많아.”
동혁은 손가락을 흔들며 종우의 말을 부정했다.
“더 알아내. 비록 모든 게 깨끗하다고 해도…… 그는 분명 이 게임에 큰 영향을 끼치는 존재야. 그러니까 최대한 조사할 필요가 있어.”
“하지만 팀장님도 아시다시피 게임의 통제권은 저희가 가지고 있지만 아직도 전반적인 데이터의 관리는 일루젼이 하고 있습니다. 일루젼은 유저들의 데이터 유출을 최소화하고 운영진이 유저들을 추적, 관리하는 걸 철저히 막고 있습니다.”
종우는 거의 울 것 같은 표정으로 현실적인 어려움을 토로했다.
“망할 일루젼 얘긴 그만하고…… 알아서 잘 찾아보란 말이야. 게임 데이터에서 정보를 얻기 힘들면 게임 밖에서라도 찾아봐. 일단 노력이라도 해보고 안 된다고 말해.”
“……네, 알겠습니다.”
종우는 더 이상 말하다간 정말 동혁에게 제대로 까일 것 같다는 생각이 들자 조용히 고개를 숙이며 대답할 수밖에 없었다.
동혁의 말도 아예 불가능한 건 아니었다.
이래저래 알아보다 보면 분명 지금보단 더 많은 정보를 얻을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래 봤자 중요한 핵심은 모두 일루젼이 쥐고 있었다.
종우는 그게 답답했다.
“힘들더라도 어쩔 수 없어. 지금 여러 팀에서 일루젼의 권한을 최대한 축소시키기 위해 노력하고 있으니까 조그만 참고 기다려 봐.”
동혁도 그런 종우의 마음을 이해 못 하는 건 아니었다.
문제의 핵심은 모두 일루젼이 가지고 있었다.
그나마 전보단 많이 나아졌다지만 여전히 일루젼은 운영진이 적극적으로 게임에 관여하는 걸 막고 있었다.
위잉.
보고를 끝낸 종우가 팀장실 밖으로 나가자 동혁은 조용히 고개를 흔들었다.
“휴우∼ 망할…….”
가뜩이나 병일에게 매일매일 쪼이는 현 상황에서 괴상한 유저마저 출현해 그의 머리를 복잡하게 만들었다.
“분명 이놈에 대해 물을 텐데…….”
병일이라면 이미 이 괴상한 유저에 대한 소식을 알고 있을 것 같았다.
만약을 위해 답변을 생각해 둘 필요가 있었다.
병일이 제일 싫어하는 게 어리바리하게 제대로 답변을 하지 못하는 것이었다.
동혁은 열심히 뭐라고 대답할지에 대해 생각해 보았다.
어차피 현재로서는 제대로 확인할 수 있는 게 거의 없었으니 대충 얼버무려서 대답하면 될 것 같았다.
나날이 계속되는 과중한 업무.
생각 같아서는 당장에 회사를 때려치우고 싶은 동혁이었으나 어딜 가도 이만한 연봉의 직장을 구하는 건 쉽지 않았기 때문에 참고 또 참는 중이었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그 역시 ‘The One’을 사랑하는 한 명의 유저였기에 이 직장만큼 애착이 가는 직장이 없었다.
“에이∼ 게임에나 살짝 들어가 봐야겠다.”
업무 시간에 사적인 게임 플레이를 해서는 안 됐다. 하지만 어차피 이곳 개발팀 안에서는 동혁을 터치할 사람이 없었다.
동혁은 잠시 팀장실의 입구에 중요한 회의 중이라는 표시를 해놓고 팀장실 구석에 마련되어 있던 접속 기기로 다가갔다.
그는 개발팀의 팀장이면서 또 한편으로 이렇게 게임을 굉장히 좋아하는 플레이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