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더 로드(The Lord)-141화 (141/250)

141. 요리 준비 ― 2

* * *

촐싹거리는 말투로 자기 몸보다 훨씬 큰 쇠파이프를 두 발로 들고 날아온 라르엘.

예전 화룡 앞에 나타났던 피닉스의 모습은 아니었지만 전보단 약간 커진, 어지간한 독수리만 한 붉은 새의 모습을 하고 있는 녀석은 적어도 성격과 말투만큼은 예전과 별로 차이가 없었다.

다만 여기서 피닉스 형태로 변화할 경우 성격이 확 바뀌었지만 그 형태는 하루에 단 한 시간만 변할 수 있는 최종 진화 형태였다.

즉, 그 형태가 되기 전까지는 예전의 라르엘과 별반 차이가 없다는 뜻이었다.

[…….]

묵은 슬쩍 라르엘을 노려봤지만 특별히 반응하지는 않았다. 이미 라르엘의 성격을 파악한 묵은 최선의 대응책으로 무반응을 선택한 후였다.

“라르엘…… 너, 내가 가져오라고 한 마정석은 어디 있냐?”

[물론 마정석도…… 아! 놓고 왔네…….]

“까불지 말고 후딱 마정석이나 가져와!”

녀석은 마정석을 가져오려다가 묵이 실수를 하는 걸 보고 묵을 놀리기 위해 쇠파이프를 가져온 것이 분명했다.

원래 이런 성격이었다.

난 진화를 했다고 해서 큰 기대를 했는데…… 결국 제대로 써먹을 수 있는 건 하루에 한 시간뿐이었다.

뭐, 이런 식으로 부려먹는 것도 써먹는 건 써먹는 것이었지만 어쨌든 기대에 못 미치는 진화였던 건 사실이다.

“놀 시간 없다. 후딱 일하자.”

진짜 시간이 없었다.

일주일 후에는 슬슬 미끼를 제대로 문 손님들이 이곳으로 모여들 것이다.

그전에 모든 작업을 끝내야 했다.

그것도 누군가의 도움 없이 오로지 나 혼자서 끝내야만 했다.

일하고∼ 또 일하고!

난 그렇게 조금씩 드래곤 레어 주변을 내가 원하는 대로 만들어가고 있었다.

* * *

[퍼스트 헌터 이나가 드디어 입을 열었다.]

그는 자신이 한 말을 지키기라도 하는 듯 일정한 대가 이상을 지불한 모든 유저에게 드래곤 레어의 위치를 알려주었다.

현재 서대륙에서 가장 바쁜 사람은 퍼스트 헌터 이나와 암흑의 업그레이더 버그 스톤이다.

두 사람은 굉장한 소득을 올리며 이번 드래곤 레이드 열풍의 최대 수혜자가 되었다.

물론 무물 길드 역시 대단한 수익을 올린 건 사실이었지만 그들은 원래 요즘 들어 가장 잘나가던 정보 길드였기에 두 사람보단 덜 부각되어 보였다

이로써 수많은 유저의 관심이 집중되고 있는 드래곤 레이드는 본격적으로…….

……(하략)…….

각종 커뮤니티에 이번 드래곤 레이드에 관련된 글이 동시다발적으로 올라오기 시작했다.

드디어 이나가 내 계획대로 소문을 풀어내기 시작했고, 버그 스톤도 수많은 무기를 드래곤 킬러용으로 업그레이드시켜 주었다.

이것들은 본격적인 드래곤 레이드의 시작을 알리는 신호가 되었다.

이나는 모든 유저에게 드래곤 레어의 위치를 공개하지는 않았다.

적당한 대가를 받고 그 대가 이상을 지불한 이들에게만 공개했다.

보통 이렇게 되면 어찌어찌 소문이 새어나가 대부분의 유저들이 알아야 정상이었다.

그런데 워낙 중요한 일이어서 입단속을 잘한 것일까.

아니면 이나가 위치를 공개한 팀이나 길드가 생각보다 적어서일까.

어쨌든 소문은 더 이상 퍼져나가지 않았다.

내 입장에선 나쁘지 않은 소식이었다.

난 혹시라도 소문이 퍼져 어중이떠중이들까지 모두 드래곤 레어로 찾아오면 내가 할 일이 쓸데없이 많아져 매우 귀찮아질 것을 우려했다.

그런데 다행스럽게도 그런 일은 발생하지 않았다.

이나의 말에 따르면, 대략 40개 정도의 팀과 길드에게 이번 정보를 전했다고 했다.

정보를 받아 공유할 이들도 있었기 때문에 찾아오는 이들은 더 늘어나겠지만 어쨌든 그 정도라면 이미 충분한 숫자였다.

이나가 정보를 풀고 버그 스톤이 드래곤 킬러 아이템을 만들었다는 소식을 듣자마자 난 손님 맞을 준비를 했다.

곧장 달려올 손님은 없을 것 같았지만 그래도 혹시 모를 성질 급한 손님들을 위해 미리 몇 가지 준비할 필요가 있었다.

성질 급한 손님은 없었다.

하지만 성질 급한 불청객은 있었다. 누군지 모르는 한 유저가 어떻게 정보를 입수했는지 혼자 드래곤 레어 쪽으로 접근했었다.

애초에 이쪽은 몬스터도 없는 불모지 같은 곳이었고 이곳으로 들어오는 미로를 통과했다는 건 그가 이곳에 드래곤 레어가 있다는 걸 안다는 뜻이었다.

하지만 그 불청객은 미로를 통과하자마자 곧장 다시 들어왔던 길을 되돌아 나갈 수밖에 없었다.

미로는 통과했을지 몰라도 내가 펼쳐 놓은 대규모 환영미로진(幻影迷路陣)은 통과하지 못했다.

난 이 환영미로진을 통해 기본적인 자격도 안 되는 이들은 모두 걸러낼 생각이었다.

특히 지금처럼 아무 생각 없이 일단 드래곤이나 구경해 보자고 찾아오는 불청객들을 막을 예정이었다.

환영미로진은 생각보단 복잡한 진이 아니었기 때문에 제대로 준비를 해서 오는 레이드 팀들은 큰 어려움 없이 지나갈 것이다.

특히 환영미로진은 다수에 위력을 발휘하는 진이 아니라 소수에 큰 위력을 발휘하는 진이었기 때문에 떼로 몰려오는 레이드 팀이나 길드 단위 유저들에겐 아무런 걸림돌이 되지 않았다.

그래서 그들을 위해 준비한 건 따로 있었다.

어차피 그들의 능력을 시험하는 건 드래곤 레어가 알아서 할 것이다.

많은 이들이 크게 잘못 알고 있는 것 중 하나가…… 드래곤 레어가 단순한 보물 창고일 것이라는 생각이었다.

그건 정말 엄청난 착각이었다.

드래곤 레어는 말 그대로 드래곤의 둥지다.

드래곤이 수면기에 들어서면 와서 잠에 빠지는 둥지. 물론 그곳엔 드래곤이 평생을 모은 보물이 가득 차 있는 것도 사실이었다.

하지만 그와 동시에 그 보물과 잠을 자고있는 자신을 지키기 위해 드래곤이 만든 각종 함정과 가디언들이 넘치는 곳이기도 했다.

왜 녹색 바다에는…… 특히 중심으로 들어갈수록 몬스터가 없는 것인지 아는가. 그 몬스터들이 모두 가디언이 되어 이 레어 안에 갇혀 있기 때문이었다.

이 레어는 그 자체로 거대한 던전이었다.

당연히 이곳을 통과해야 그린 드래곤 베나인과 만날 수 있었다.

아마도 대부분의 길드가 여기서 자신들의 능력을 시험받을 것이다.

그래서 난 레어 외곽에 굳이 그들의 힘을 시험하는 진이나 함정을 설치하지는 않았다.

단지…… 난 아주 특별하고 매우 기괴한 것을 설치했다.

경매장에서 아주 큰 돈을 주고 구한 기기묘묘(奇奇妙妙) 진법총서(AA급)라는 책의 맨 마지막 장에 나와 있던 초대형 기관 진식, 일명 ‘시간과 환영의 상관관계’라 불리는 ‘환계회회(幻界回回)’였다.

이 기관진식은 진법도, 그렇다고 기관도 아닌 기묘한 것이었는데…… 그 효과 또한 매우 재미있었다.

난 환영미로진과 교묘하게 연계해 놔 자연스럽게 이것에 걸릴 수밖에 없는 환경을 조성해 놓았다.

어차피 레어로 가려면 통과해야 하는 길이었고, 그 길에 은밀하게 설치해 놨기 때문에 이걸 피해갈 수 있는 유저는 절대 없었다.

이 재미있는 기관진식의 특징은 한마디로 선착순이었다.

제일 먼저 이곳에 들어간 이들은 몇 개의 작은 환영이 나오지만 정말 별문제 없이 어렵지 않게 통과한다.

하지만 두 번째로 들어간 이들은 첫 번째로 통과한 이들이 기관진식에 관여하면서 만들어진 각종 환영 때문에 몇 배는 늦게 통과하게 된다.

세 번째로 들어간 이들은 첫 번째로 통과한 이들이 만든 환영에 두 번째로 들어간 이들이 또 관여하면서 더 많이 변형되어 버린 각종 환영들을 만나게 된다.

그럼 이들은 앞에 통과한 이들보다 또 몇 배나 더 늦게 통과하게 된다.

이런 식으로 계속 환영이 증가한다.

유효 숫자는 108.

총 108개의 무리를 통과시키면 진은 자연스럽게 위력을 다해 사라진다.

내가 일주일 중 무려 삼 일을 소비하면서 고생고생하며 설치한 진이 바로 이것이었다. 재수가 좋았는지 지존신공과 분심공의 관여로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더 좋은 위력의 환계회회가 탄생했다.

덕분에 난 내가 의도했던 대로 수많은 레이드 팀과 길드를 차례대로 레어에 입장시킬 수 있게 되었다.

레어에 입장해서부터는 길이 여러 갈래였기 때문에 어차피 서로 만나지 않을 가능성이 높았다.

내가 궁극적으로 원하는 건 그들이 차례대로 그린 드래곤 베나인과 싸우는 것이었다.

물론 어차피 베나인은 한 그룹과의 전투가 끝나면 생명력과 마력이 100% 회복되는 일루젼의 축복을 받겠지만 그것과는 별개로 내가 노리는 것이 있었다.

그걸 위해서라도 그들은 한꺼번에 베나인에게 몰려들어서는 안 됐다.

하루 정도가 지나자 드디어 손님들이 찾아오기 시작했다. 제일 처음 찾아온 건 중국 유저들이 만든 홍문(紅門)의 문도들이었다.

홍문의 유저들을 시작으로 속속 많은 유저들이 도착했다. 그들은 내 예상대로 환영미로진을 간단히 통과한 후 당당히(?) 환계회회로 걸어 들어갔다.

난 그렇게 수많은 유저가 환계회회에 걸려드는 것을 확인한 후 조용히 레어 안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이제 요리에 양념은 적당하게 모두 넣었다.

남은 것은 조용히 바라보면서 요리가 완성되기까지 기다리는 것뿐이었다.

물론 그러기 위해서는 나 자신도 드래곤 레어를 통과해야 했지만…… 적어도 이곳에 온 그 어떤 팀보다 더 빨리…… 그리고 더 간단히 통과할 자신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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