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더 로드(The Lord)-139화 (139/250)

139. 4차 전직 준비 ― 2

* * *

우물쭈물할 시간은 없었다.

워낙 준비할 것이 많았기 때문에 지금 당장 시작할 필요가 있었다.

특히…… 몇 가지 준비는 어느 정도의 시간이 필요한 것들이었기 때문에 한시라도 빨리 실행해야 했다.

“자∼ 기대하라고.”

자연스럽게 웃음이 나왔다.

그린 드래곤을 잡으려는 건 나 혼자였지만 아마도 이번 일에는 수많은 이가 연관될 것이다.

그게 자의든 타의든 그건 별로 상관없었다.

중요한 건…… 분명 그들은 내 의도대로 움직일 것이라는 사실이었다.

* * *

소문이 돌기 시작했다.

처음엔 대부분의 유저들이 허황된 헛소문이라고 무시했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소문은 점점 구체화되어 갔다.

이쯤 되자 소문을 아예 무시할 수 없는 수준까지 되어버렸다.

특히 신뢰성 있는 한 정보 길드에서 그 소문의 일부분이 틀림없는 진실이라고 확인까지 해줬으니 이젠 소문을 안 믿는 사람보다 믿는 사람이 더 많아졌다.

재미있는 건 이 소문이 일반 유저들보다 몇몇 최상위권의 길드들에게 더 상세하게 전해졌다는 것이었다.

물론 그들이 소문의 진위를 파악하기 위해 나름의 정보망을 이용해 이런저런 정보를 모았기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어쩌면 누군가 고의로 그들에게 정보를 더 많이 누설했을지도 모르는 상황이었다.

하지만 정작 그들은 이것을 눈치채지 못했다.

워낙 은밀하게 진행된, 그리고 그 가운데 현재 서대륙에서 가장 믿을 수 있는 정보 길드라는 ‘무엇이든 물어보세요’ 길드가 버티고 있었기 때문에 그 누구도 이 소문의 배경에 누군가 있을 것이라는 상상을 하지는 못했다.

오히려 소문이 전부 다 진실이라면 너무나 대단한 사실이었기 때문에 최상급 길드들은 이 소문에 대해 좀 더 많은 정보를 얻기 위해 백방으로 수소문을 하는 중이었다.

퍼스트 헌터 이나가 우연히 드래곤의 레어를 발견했다.

그 레어에는 아직 수면기를 끝내지 못한 드래곤 한 마리가 깊은 잠에 빠져있다.

그 레어는 드래곤 중에서도 가장 약하다고 소문난 그린 드래곤…… 그것도 이제 갓 웜 급에 오른 드래곤의 레어다.

버그 스톤이라는 장인이 여러 종류의 아이템들을 드래곤 킬러(Dragon Killer)용 아이템으로 업그레이드 해줄 수 있다고 한다.

무물(무엇이든 물어보세요) 길드에서 고대 문서를 해독해 그린 드래곤의 약점 몇 개를 찾아냈다.

수면기의 드래곤은 전력의 100%를 내지 못한다.

그린 드래곤의 에시드 브레스(산성 숨결)만 대비하면 충분히 싸워볼 만하다!

약간의 시차를 두고 연속해서 퍼진 이러한 소문들.

모든 소문이 확실한 근거가 있는 것들이었기 때문에 믿지 않기가 더 힘든 것들이었다.

특히 ‘퍼스트 헌터 이나’나 ‘암흑의 업그레이더 버그 스톤’, 그리고 서대륙 최고의 정보 길드인 ‘무물 길드’가 관련된 소문이라 그 신뢰성은 거의 최고 수준이었다.

드래곤의 레어, 그리고 드래곤.

그뿐만이 아니었다. 소문에 의하면, 드래곤을 잡는 게 아예 불가능한 일이 아니었다.

드래곤이 어떤 존재인가?

잡을 수만 있다면 당장에 엄청난 전리품을 얻을 수 있는 최고의 몬스터!

거기에 그냥 드래곤만 잡는 게 아니었다. 드래곤을 잡으면 드래곤 레어도 차지할 수 있는 상황이었다.

드래곤과 드래곤 레어.

이 엄청나게 커다란 두 개의 먹잇감은 모든 유저를 들뜨게 만들었다.

그중에서도 가장 가능성이 높은 최상위권 길드들은 단지 소문을 듣는 것만으로도 잔뜩 흥분할 수밖에 없었다.

소문의 여파가 얼마나 컸는지 동대륙에 있는 최상급 길드들마저 죽음의 산맥을 뚫고 서대륙으로 진출할 방법을 모색할 정도였다.

지금까지 ‘One’의 세상에선 그동안 수많은 레이드가 있었지만 드래곤 정도의 네임드 몬스터를 레이드한 적은 한 번도 없었다.

당연히 많은 유저들이 관심을 가졌고 많은 길드와 레이드 팀들이 현실적으로 가능한 것인지를 따져 보기 시작했다.

갑자기 시작된 레이드 열풍.

시간이 흐르면서 그것은 열풍을 넘어 광풍이 되어가고 있었다.

“형, 드디어 에볼루션도 결단을 했어요.”

골디는 방금 들어온 따끈따끈한 정보를 프로이드에게 전했다.

“……아마도 참여하는 쪽이겠지?”

프로이드는 이미 예상을 하고 있다는 표정으로 물었다.

“맞아요. 이제 우리도 결정해야 하지 않을까요? 이미 대부분의 상위권 레이드 팀과 길드들은 모두 참여하는 쪽으로 결정을 내렸어요. 제가 봐도…… 이번 기회는 정말 다시 찾아오기 힘든 기회예요.”

골디는 헬 레이드 팀의 부팀장 중 한 명으로서 이미 이번 일에 대한 정보 분석을 모두 끝낸 후였다.

그런 그의 생각은 무조건 참여였다.

“……그렇겠지. 분명 아주 큰 기회겠지…….”

프로이드는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그의 표정은 말과 다르게 매우 어두웠다.

“형, 왜 망설이는 거예요?”

“흐음, 망설이는 게 아니다.”

“그럼요? 우리도 참여를 결정하고 빨리 준비를 해야죠. 다른 팀에게 선수를 빼앗길 순 없잖아요.”

“난…… 망설이고 있는 게 아니라…… 이번 사냥에 불참하는 이유를 어떻게 하면 팀원들에게 잘 설명할까를 고민하는 중이다.”

프로이드는 조용하지만 단호하게 자신의 뜻을 골디에게 전달했다.

“네, 네? 지금 무슨 말을 하는 거예요! 형도 제가 드린 분석 자료를 읽어보셨잖아요. 그런데 어떻게 불참을 하실 생각을 했어요!”

골디는 잔뜩 흥분한 표정으로 말했다.

“흥분하지 마라. 다 이유가 있어서 그렇게 결정했다. 이미 피카 형하고는 얘기를 끝냈고…… 너도 알고 있어야 할 거 같아 이렇게 부른 거다.”

“휴우∼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거죠? 혹시 제가 모르는 무슨 정보라도 있는 건가요?”

골디는 앞뒤가 꽉 막힌 그런 사람이 아니었다.

그는 본능적으로 프로이드와 스피카가 이렇게 결정한 것은 분명 자신이 모르는 어떤 이유가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얼마 전에 은밀히 연락이 하나 왔다. 발신인은…… 놀랍게도 ‘이미르’였다.”

“이미르? 설마…… 대미궁의 유령, 이미르?”

골디가 깜짝 놀란 표정으로 되묻자 프로이드는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흐음, 그가 왜 갑자기 연락한 거죠?”

“사실 연락이라고 하기도 힘든 아주 간단한 메시지였다.”

“메시지?”

“……경고 메시지라고 해야 정확한 건가? 어쨌든 그는 나에게 경고를 해주었다.”

“뭘 경고한 거죠?”

[프로이드 님, 진실 속에 숨은 거짓을 놓치면 안 됩니다. 기회가 위기가 될 수 있으니 마음속에 참을 인(忍) 자를 세 번 새겨 넣으세요. 이걸로 일부분이나마 제 목숨값을 갚겠습니다.

헬 레이드 팀의 친구, 이미르]

“이게 그가 보낸 메시지의 내용이다.”

프로이드는 이미르가 보낸 메시지 전부를 있는 그대로 골디에게 알려주었다.

“으음…….”

골디는 메시지를 읽는 순간 이미르가 말하는 기회가 바로 이번 소동이라는 것을 알아차렸다.

“그가…… 이번 일에 관련되어 있는 걸까요?”

“글쎄, 그럴 가능성이 크겠지. 난 그렇기에 더욱 이번 일에서 빠져야 한다고 생각했다.”

프로이드는 슬며시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도대체 이미르의 정체를 뭘까요?”

“나도 궁금하다. 다만 한 가지 확실한 건…… 그가 매우 특별하다는 사실이다.”

대미궁 때부터 프로이드와 그밖에 헬 레이드 팀의 팀원들은 이미르가 얼마나 특별한 사람인지 잘 알고 있었다.

“휴우∼ 기회인 줄 알았는데…… 아니었나 보네요. 이젠 앞으로 어떤 일이 일어날지 그게 궁금해지네요.”

“너무 쉽게 찾아온 기회였다. 기회란 결국 자기 자신이 만들어야 진정한 기회인 법이다. 우린 원래 계획대로 암흑 계곡 토벌을 끝내도록 하자.”

“네, 형!”

골디도 더 이상 고집을 부리지 않았다

프로이드의 설명을 들은 이상 그가 고집을 부릴 이유는 없어 보였다.

일진광풍이 되어 ‘One’의 세상에 휘몰아치고 있는 드래곤 레이드 열풍. 하지만 레이드 팀 중 가장 유명한 팀인 헬 레이드 팀은 그 광풍에 동참하지 않았다.

최상위권의 레이드 팀 중 이번 일에 동참하지 않은 건 헬이 유일했다.

아니, 그 범위를 전체로 확대해도 능력이 되지 않아 동참하지 않은 이들은 존재해도 능력이 되는데 포기한 것은 헬 레이드 팀뿐이었다.

헬 레이드 팀은 공식적으로는 아직 암흑 계곡의 공략이 끝나지 않아 참여하기가 힘들다는 입장이었지만 그걸 곧이곧대로 믿는 사람은 별로 없었다.

어차피 헬이 참여하지 않는다고 해도 이미 넘칠 만큼 많은 유저들이 이번 일에 참여했기 때문에 오히려 다른 유저들은 헬의 결정을 내심 반겼다.

원래 맛있는 음식일수록 나누어 먹는 걸 싫어하는 게 사람의 기본적인 습성이었다.

이미 전력을 다해 이번 레이드를 준비하는 팀도 있었다.

몇몇 팀들은 자신들만의 힘으론 부족할 것이라고 생각했는지 다른 팀들과 연합을 하기도 했다.

어차피 드래곤 레이드는 최상위권 레이드로서 최대 84명까지 레이드에 참여할 수 있었다.

물론 더 많은 숫자도 레이드에 참여할 수는 있었지만 그렇게 되면 연합 숫자 초과 페널티와 함께 보스 몬스터들이 공통적으로 가지고 있는 생존의 권능이 발현되며 드래곤의 기본 능력치도 올라가게 되었다.

생존의 권능이란 자신을 공격하는 적의 숫자가 일정 수준을 넘어서면 몸 안에 숨어있는 광기의 본능이 눈을 뜨며 기본 능력치가 상승하는 능력이었다.

보통 보스 몬스터들은 두 가지 절대 원칙을 가지고 있었는데, 하나가 바로 이 생존의 권능이고, 또 하나가 방심의 틈이었다.

방심의 틈이란 보스 몬스터를 공략하는 적의 숫자가 일정 수준 아래일 경우 보스 몬스터의 방심을 불러와 기본 능력치를 하락시키는 일종의 셀프(?) 디버프였다.

레이드 참여 인원의 최대 수치가 84라면 그 인원의 3분의 1인 28명만으로 레이드할 경우 보스 몬스터가 시스템적으로 방심을 하게 되어 기본 능력치가 하락되었다.

이것이 바로 방심의 틈이었다.

그래서 보통 유저들이 레이드할 경우 두 가지 중 하나를 선택했다.

최대 인원을 모두 채워서(예상하지 못한 난입을 방지하기 위해 보통은 2∼3명은 빼고 진행한다) 그냥 평범하게 도전하거나 아니면 최대 인원의 3분에 1 수준의 인원으로 보스 몬스터의 능력치를 하락시킨 후 도전했다.

무엇이 더 좋은지는 이래저래 말들이 많아 정확한 판단을 하기가 힘들었다.

호흡만 잘 맞는다면 84명이 도전하는 게 더 좋았지만 84명이 호흡을 맞춘다는 게 보통 힘든 일이 아니었기 때문에 호흡 면에선 아무래도 28명이 훨씬 좋았다.

물론 이래저래 선택은 유저의 몫이었다.

단, 주의할 것은 절대 생존의 권능이 발휘되게 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었다.

가뜩이나 강력한 보스 몬스터인데 생존의 권능까지 발현되면 일반적인 방법으로 잡는 건 포기해야 했다.

그렇기에 대부분의 유저는 보스 몬스터 레이드를 은밀하게 진행시켰다.

그뿐이 아니었다. 아예 레이드를 감행하는 본진과 그 본진을 지키는 예비 팀까지 운영했다.

난입은 최악의 사태를 만들 수 있었기 때문에 모든 유저가 최대한 피하는 것이었다.

그렇기에 난입한 것으로 소문난 레이드 팀은 그들 사이에서 공적(公敵) 취급까지 받을 정도였다.

어쨌건 이번 드래곤 레이드는 모두에게 공개된 것이었기 때문에 비밀스럽게 진행하는 건 불가능했다.

그래서일까? 대부분의 레이드 팀과 길드들은 서로의 눈치를 보며 조심스럽게 이번 레이드에 접근했다.

특히 이번 레이드의 시작에 대한 열쇠를 지닌 이나에 관해서는 대부분 지대한 관심을 보였다.

어떤 길드들은 아예 이나를 포섭해 이번 레이드를 혼자 독차지하려는 움직임까지 보여주었다.

하지만 이나는 처음부터 적당한 대가를 치르는 모든 유저에게 드래곤 레어의 위치를 공개하겠다고 말했기 때문에 포섭은 불가능해 보였다.

결국 모두가 경쟁해야 하는 레이드가 되어버렸다.

덕분에 긴장감은 몇 배가 되었다. 누가 언제 어떻게 공략할지는 아무도 몰랐다.

모두에게 대박의 꿈을 꾸게 해준 드래곤 레이드.

하지만 정작 대박을 가질 사람이 누구인지는 그 누구도 알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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