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더 로드(The Lord)-138화 (138/250)

138. 4차 전직 준비 ― 1

* * *

갑자기 시작된 영상은 황급히 움직이는 한 사람의 시야에 따라 찍혔다.

그가 바라보는 주변은 한마디로 아비규환이었다.

이 모든 소란은 한 사람에게서 시작되고 있었다. 거대한 대검 한 자루를 들고 있는 남자. 그의 주변은 이미 초토화가 되어 있었다.

그리고 그런 그를 향해 공격하는 몇몇 유저와, 반대로 겁을 먹고 도망치는 유저가 한데 엉켜있었다.

남자가 움직일 때마다 몇 명의 유저가 나가떨어지며 빛 가루가 되어 사라졌다.

그가 들고 있는 대검에서 뿜어져 나온 검기. 정확히 말해서 검강은 몇 명의 유저를 동시에 게임 아웃시켜 버렸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그의 손에선 괴상한 마법? 술법? 하여튼 그런 비슷한 기술이 발현되었고 그걸 제대로 막는 유저는 거의 없었다.

그는 정말 양 떼 속에 뛰어든 한 마리의 무시무시한 야수였고 양 떼는 그 야수를 절대 막지 못했다.

그 누구도…… 제대로 대항하지 못했다.

베고, 날려버리고, 터뜨리고, 찢고, 꺾고, 넘기고…… 그는 마치 전투의 신(神)이라도 되는 것처럼 무수히 많은 전투 기술을 보여주었다.

전신(戰神) 출현.

그것으로밖에 설명이 불가능했다.

감히 누가 그의 앞을 막겠는가. 이건 전투 영상이 아닌, 학살의 영상이었다.

머리 위에 오로지 용문(龍門)이라는 글자만 적혀있는 정체 모를 남자. 묘한 피풍의를 걸치고 있던 그는 그렇게 PvP의 끝을 보여주었다.

영상은 중간에 촬영하던 유저가 죽음으로써 끝이 난다.

이 영상은 현재 각종 커뮤니티 사이트에서 엄청난 조회수를 보여주고 있는 동영상이었다.

[도대체 누구예요?]

[이거, 조작된 동영상이죠?]

[전투 기계? 아니, 이건 말 그대로 전투의 신이네, 신!]

[이 사람 이름 좀 알 수 있을까요?]

[이거 진짜 있었던 전투예요. 저도 이 자리에 있었어요.]

[에이∼ 아무래도 뻥 같은데? 한 사람이 저렇게 많은 기술을 사용한다는 건 현 시스템상 불가능합니다.]

[조작된 동영상이라는 거에 내가 가진 골드 모두와 내 손모가지를 건다.]

[조작되었다고 하시는 분들…… 직접 안 보셨으면 말을 하지 마세요.]

[조작이든 뭐든 내가 본 전투 동영상 중 거의 최고다! 제대로 학살하네.]

[…….]

끝없이 달리는 코멘트들.

사람들은 이 동영상의 진위를 의심하면서도 최고의 학살 동영상이라는 것에는 모두 동의했다.

200 vs 1이라는 이름으로 널리 퍼지기 시작한 이 전투 동영상은 수많은 증인이 나타나면서 점점 진실 쪽으로 무게를 더해갔다.

그쯤 되자 사람들은 도대체 동영상 속의 남자가 누구인지 그것을 궁금해했다.

어떤 사람은 버그 플레이어라고 신고를 해야 한다고 말할 정도였다.

뭐가 됐든 엄청난 이슈를 만들어낸 동영상.

물론 그 동영상의 주인공은 당연히 신이었다.

* * *

난 4개의 정보 길드 연합 유저들과 싸우며 굳이 힘을 숨기지 않았다. 폴리모프 망토로 인해 제한된 힘을 제외하면 난 모든 능력을 적절히 사용해 그들을 유린했다.

아마…… 어쩌면 동영상이 올라갈지도 몰랐다.

하지만 상관없었다. 어차피 난 용문의 무서움을 여실히 보여줄 생각이었기 때문에 아낌없이 능력을 개방했다.

마법과 술법이 난무하고 검술과 체술이 작렬했다.

당연히 200여 명의 사람은 제대로 대응하지도 못하고 우르르 쓰러졌다.

강함의 정도가 달랐다.

그들은 그저 평범하고 무난한 길을 따라 걷는 보통의 유저들이었고, 난 매우 특수하고 어려운 길을 따라 걷는 특별한 유저였다.

당연히 그들은 나의 상대가 될 수 없었다.

내 귀로 울려 퍼지는 시원한 락 음악처럼 그들도 시원하게 쓰러졌다.

철저하게 무너뜨렸다.

다시는 그 누구도 넘보지 못하게 만들기 위해 더욱 화려한 모습을 보여주었다.

오늘 이후로 ‘One’을 즐기는 유저들의 머릿속에는 용문이라는 이름이 또렷이 새겨질 것이다.

그게 바로 내가 원하는…… 그리고 내가 의도한 것이었다.

* * *

“51,304점이라…….”

난 내 PvP 포인트를 확인하며 슬쩍 웃었다.

이 정도 포인트라면 PvP 포인트 랭킹에서 10위권에 근접한 수준이었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많은 경험치는 아니었지만 PvP를 하면서 조금씩 얻은 경험치 덕분에 어느새 레벨이 499가 되어 있었다.

드디어 하이 마스터(화경)의 경지로 전직할 수 있는 레벨이 되었다.

모든 것이 순조롭게 해결됐다.

전투가 끝나고 4개의 정보 길드는 거의 완전히 무너져 버렸다.

이미 그림자 남매에게 무너진 3개의 길드까지 합쳐서 총 7개의 정보 길드가 무너졌다.

그들이 무너지면서 나머지 문제들은 자연스럽게 해결되었다. 오히려 정보 길드들이 한꺼번에 무너지면서 그 공백을 ‘무엇이든 물어보세요’ 길드가 차지했다.

남매는 덕분에 전보다 더 큰 규모의 시장을 장악했다.

물론 이러한 일들이 일어난 배경에는 각종 유명 커뮤니티에 마구 올라온 한 플레이 동영상의 역할이 매우 컸다.

나와 4개 정보 길드 연합 유저들과의 전투 동영상.

비록 중간부터 시작해 전투가 끝날 때까지 다 찍지도 못했고 화질과 시점도 너무 좋지 않아 완벽한 동영상은 아니었지만 그럼에도 최고의 다운로드 숫자를 기록하며 순식간에 베스트 동영상에 올라 버렸다.

그로부터 하이퍼넷에서는 그 동영상에 등장하는 유저의 정체와 소속을 묻는 질문이 쏟아졌고…… 나중에 용문이라는 길드와 ‘무엇이든 물어보세요’ 길드에 대한 내용. 그리고 그들과 엮인 다른 정보 길드들의 얘기가 돌기 시작했다.

그 소식을 전해 들은 수많은 유저는 기존 정보 길드들의 행태를 맹렬히 비난했고, 그 결과 그나마 힘겹게 길드를 유지하던 그 7개의 정보 길드는 모래성처럼 힘없이 무너져 내렸다.

반면에 용문과 연합한 ‘무엇이든 물어보세요’ 길드는 엄청난 숫자의 유저들이 너도나도 객원 정보원이 되어주겠다고 나서면서 날로 기세를 더욱 올렸다.

‘무엇이든 물어보세요’ 길드는 이는 서대륙에서 최고라고 해도 과언이 아닌 정보 길드가 되어버렸다.

물론 덕분에 난 아주 최고급 정보들을 실시간으로 얻게 되었고, 거기에 소득의 40%도 내 것이 되었다.

이제는 엄청나게 소득이 늘어버렸기 때문에 내 몫으로 40%를 챙겨도 남매에게도 30%의 이윤이 떨어졌다.

총 골드로 따져 보면 그 어떤 대형 길드들보다 더 높은 소득을 올리는 중이었다.

돈을 벌려고 투자한 것이 아니었는데 어찌어찌하다 보니 돈이 불어나고 있었다.

돈이 돈을 부른다는 말이 실감나는 순간이었다.

어쨌든 이런저런 호재 속에 난 깔끔하게 전직 퀘스트에 도전할 수 있게 되었다.

모든 문제가 해결되었기 때문에 이제부턴 오로지 전직에 대해서만 신경 쓰면 끝이었다.

하지만 늘 그렇듯 사람이 좋은 일만 있을 수는 없었다.

몇 개의 기분 좋은 호재와 함께 찾아온 악재.

그것은 바로 4차 전직 퀘스트의 내용이었다.

Quest [더 로드: 4차 전직 퀘스트]

그 누구도 걷지 못한 길을 묵묵히 걸어나가는 자네의 모습은 가히 절대적이라고 말할 수 있을 걸세. 하지만 아쉽게도 아직도 자네 앞에는 수많은 장애물이 남아 있다네. 특히…… 자네는 더 로드로서의 능력은 가졌지만 아직 진정한 더 로드의 모습을 보여주지 못했어. 확실한 증명이 필요해! 사람들에게 자네의 이름을 알리는 정도의 증명이 아닌, 사람들이 자네를 우러러볼 수 있을 정도의 증명이 필요해. 그것을 위해서는 아마 상상도 하지 못한 위험한 모험이 필요하겠지. 하지만 어쩌겠는가? 그것의 더 로드의 길인 것을…….

필요 조건: 위업 달성.

진행 상황: 위업 달성(진행 중).

기간: 무제한.

보기엔 무척 간단한 퀘스트였다.

위업 달성…….

그런데 이 위업이란 게 무엇인지 알면 절대 간단해지지 않는다.

위업은 말 그대로 위대한 업적이다.

그렇다면 무엇이 위대한 업적이 될 수 있을까?

뭐, 간단히 말해주자면, 각 분야에서 남들과는 확연히 비교되는, 대부분의 유저는 감히 상상도 할 수 없는 엄청난 일을 해내는 것이었다.

더 간단히 예를 들어 설명하면, PvP 쪽에선 대략 백만 명을 잡으면 얻을 수 있고 전문 기술 쪽에선 레전드급 이상의 아이템을 10개 이상 만들면 얻을 수 있었다.

그밖에도 여러 분야에서 위업을 쌓을 수 있는데, 이 위업은 스킬을 그랜드 마스터의 경지까지 올리거나 무슨 대회에서 우승하는 것과는 비교도 할 수 없는 엄청난 일이었다.

보통 위업은 억지로 하려고 해서 되는 것이 아니라 한 가지 분야에서 끊임없이 정진하다 보면 궁극적으로 이루게 되는 최종 목표와 비슷한 것이었다.

그런데 전직 퀘스트가 바로 그 위업을 달성하라고 하고 있었다.

세상에 이런 전직 퀘스트가 존재할 줄은 상상도 하지 못했다.

아마 다른 유저들이 이 전직 퀘스트를 본다면 당장에 더 이상의 전직을 포기하고 새로운 직업을 얻어 듀얼 클래스에 도전할 것이다.

하지만 난 그렇게 할 수 없었다.

난 이미 오로지 이 ‘더 로드’ 직업만으로 끝까지 전직할 생각이었고, 이미 거의 모든 스킬을 배운 나에게 듀얼 클래스는 아무런 의미가 없었다.

이 말은 곧 내가 꼭 위업을 달성해야 한다는 뜻이었다.

4차 전직…… 그것을 위해 나에겐 위업이 필요했다.

“젠장.”

욕이 절로 나왔지만 그렇다고 이렇게 넋을 놓고 있을 수는 없었다.

물론 위업은 유저가 할 수 있는 것이기에 무조건 불가능한 것만은 아니었다.

단지 매우…… 아주…… 대단히 어려울 뿐이었다.

우선 내가 어렴풋이 알고 있는 가능성이 가장 높은 위업들부터 생각해 보았다.

PvP 쪽 위업들은 모두 제외시켰다. 근래 PvP 포인트를 많이 올렸다지만 아직 위업을 달성할 수준까지는 까마득히 남은 상태였다.

전문 기술 쪽도 모두 제외시켰다. 애초에 전문 기술은 별로 신경 쓰지 않았기 때문에 당연히 위업과는 거리가 멀었다.

이제 남은 건 몇 개 없어 보였다.

스킬 숙련도에 관한 위업도 있었다. 정확한 건 아니었지만…… 대략 10개 정도의 스킬을 그랜드 마스터의 경지까지 올리면 위업을 달성할 수 있었던 것 같았다.

현재 내가 그랜드 마스터 경지까지 올린 스킬은 지존신공과 분심공 뿐이었다.

여기서 8개를 더 그랜드 마스터 경지까지 올리는 건…… 시간이 너무 많이 필요할 것 같았다.

뭔가 최대한 빨리 달성하면서 추가적으로 나에게 큰 도움이 되는 위업을 찾을 필요가 느껴졌다.

‘위업…… 위업…….’

난 고민에 고민을 거듭하며 그런 위업을 찾아보았다.

미래에 대한 기록을 적어놓은 노트까지 펼쳐 놓고 도움이 될 만한 정보가 있는지 살펴보았다.

확실히 위업에 관련된 정보들은 대부분 후반기에 기록되어 있었다.

위업이라는 것 자체가 대부분의 유저들이 마스터의 경지에 오르고 최상위권 유저들이 거의 그랜드 마스터 경지에 근접했을 때 속속 등장했던 것이다.

그러한 것을 아직 하이 마스터의 경지에도 오르지 못한 내가 하려는 중이었다.

어찌 보면 전직 퀘스트가 그 자체로 아주 큰 오류를 가지고 있는 것처럼 느껴질 정도였다.

하지만 어쩌겠는가.

이것이 나의 운명인 것을…….

“길드 관련은 안 되고…… 사냥…… 흐음…… 사냥이라…….”

이런저런 정보를 찾아보던 나는 사냥이란 단어에서 잠깐 생각을 멈추었다.

“사냥…… 그래, 어쩌면 지금의 나에겐 이게 가장 쉬울지도…….”

어차피 다른 위업들은 상당한 시간이 필요한 것들이 대부분이었다.

하지만 사냥에 관련된 위업은 단지 대상을 잡아내기만 하면 되는 것이었다.

물론 그 대상이라는 것이…… 좀 무시무시한 놈들이었겠지만 그래도 이게 제일 좋아 보였다.

“드래곤…… 그래, 천화신검이 말했던 그 망할 파충류 놈들을 잡자.”

어차피 힘든 도전할 것이라면 뭔가 좀 더 의미있는 것을 하는 게 좋았다.

천화신검은 분명 나에게 드래곤이나 용 종류의 몬스터들이 뭔가 비밀을 가지고 있다고 말해주었다.

그렇다면 놈들을 잡다 보면 진실에 가까워질 수도 있다는 얘기였다.

비록 드래곤이란 존재가 거의 최종 보스에 가까울 정도로 대단한 존재라지만…… 그래도 어차피 위업을 달성해야 한다면 이쪽이 좋을 것 같았다.

목표는 정해졌다.

드래곤, 그중에서도 가장 약한 종류이면서 훗날 최초로 유저들에게 잡힐 놈을 선정했다.

다행히도 내가 미리 미래를 적어놓은 노트에 놈에 대한 정보가 기록되어 있었기 때문에 사냥 계획을 짜는 건 크게 어려울 것 같지 않았다.

단지…… 난 사냥의 성공 확률을 높이기 위해 이런저런 꼼수를 사용할 생각이었다.

“그린 드래곤 베나인.”

이제 갓 천 살을 넘긴 웜 급의 드래곤인 놈은 드래곤 중에서도 가장 약하다는 그린 드래곤이었다.

물론 아무리 그래도 드래곤은 드래곤이었기 때문에 나중에 유저들이 마갑(魔鉀)과 자이언트라는 우라노스가 남긴 최후의 선물 두 가지를 받아야지만 잡을 엄두를 낼 수 있었다.

실제로 내가 적어놓은 기록에 따르면, 마갑과 자이언트로 무장한 28명의 유저가 최초로 놈을 잡으며 드래곤 슬레이어라는 위업을 달성했다고 했다.

지금 난 그러한 녀석을 마갑과 자이언트는 고사하고레벨도 하이 마스터의 경지에 오르지 못한 상태로 잡으려는 중이었다.

정말 무모하다고 생각될 수도 있는 도전.

하지만 난 이 무모한 도전을 단지 도전으로 끝내지 않고 반드시 성공시킬 작정이었다.

그러기 위해서는 정말 여러 가지 준비가 필요했다.

“바로 시작해야겠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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