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더 로드(The Lord)-137화 (137/250)

137. 신비지문(神秘之門), 용문! ― 2

* * *

이미 그들은 서로 여러 가지를 합의해 놓은 상태였다.

특히 용문과 ‘무엇이든 물어보세요’ 길드에 관한 것은 모두가 함께 대응하기로 확실히 얘기를 끝낸 후였다.

그렇기에 진천염왕은 다시 한번 그 합의를 상기시켜 혹시라도 다른 길드들 중 하나가 허튼짓을 하는 것을 예방하려는 뜻이었다.

“당연히 기억하고 있습니다.”

“뒤통수 같은 건 안 칩니다. 진천염왕 님이나 잘 기억해 주시길 바랍니다.”

현자의 대답 길드의 대표인 고메즈는 조용히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고 제퓨로스의 길드장인 다크 퓨마는 좀 짜증난 것 같은 표정으로 대답했다.

“거참, 말하는 싸가지하고는…….”

원래 별로 사이가 좋지 않은 염왕문과 제퓨로스였다. 이번엔 어쩔 수 없이 더 큰 적을 앞에 두고 손을 잡은 것이었지만 이번 일이 끝나면 또다시 서로 으르렁거릴 사이였다.

“자자, 또 왜들 그러십니까. 일단 우리의 적은 용문입니다. 그들을 회유하든지 협박을 하든지 해서 지금의 위기를 벗어나는 게 먼저이니 제발 그때까지만이라도 좀 참으시죠.”

도요토미는 만나기만 하면 서로 싸우기 바쁜 다크 퓨마와 진천염왕을 말리며 공통의 적을 상기시켰다.

“흥.”

“쳇.”

다크 퓨마와 진천염왕은 별로 마음에 들지 않았지만 도요토미의 말이 틀리지 않은지라 일단 더 이상 분란을 만들지 않았다.

이래저래 위태위태한 연합.

하지만 그나마 이러한 연합이 있었기 때문에 용문을 회유하거나 협박할 생각을 한 것이었다.

그렇기에 4개의 길드는 절대 이 연합을 쉽게 깨지 못했다.

용문 문제를 해결하기 전까지는 무조건 이 연합을 유지할 필요가 있었다.

필요에 의해 만들어진 연합, 그리고 이러한 연합이 만들어지는데 지대한 공을 세운 한 남자.

그 남자가 200여 명의 유저들 사이로 당당히 걸어오고 있었다.

“왔다.”

“온다!”

여기저기에서 들리는 웅성거림.

두꺼운 위장옷을 뒤집어쓴 그의 모습은 매우 평범했다. 후드 망토를 뒤집어쓰고 있었기 때문에 얼굴이 잘 보이지는 않았지만 어렴풋이 보이는 얼굴은 정말 아무런 특징이 없었다.

물론 폴리모프 망토를 이용해 만든 인위적인 평범한 얼굴이었지만 이곳에 있는 그 누구도 그것을 눈치채지는 못했다.

“휴우∼ 많이들 모였네.”

여유로움이 철철 넘치는 목소리.

과연 광기의 살성이라 불릴 만한 담력이었다.

“용문의 대표이신가요?”

도요토미는 슬쩍 주변을 둘러보며 신을 향해 물었다. 그는 적어도 몇 명 정도는 올 것으로 예상했었는데 막상 이렇게 단 한 명만 나타나자 살짝 의심스러운 마음이 들었다.

“그렇다.”

신은 당당했다.

아니, 어떻게 보면 오만하다고 느껴질 정도였다.

“……용문은 참 대단히 오만한 길드였군요.”

도요토미는 그런 신의 모습을 보며 슬쩍 웃었다.

한 명 정도라면 혹시 모를 불상사 같은 건 없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오히려 반대로 협박할 수도 있을 것 같았다.

“이럴 땐 오만하다는 표현보단 자신 있다는 표현을 쓰는 게 맞는 거겠지.”

신은 주변을 천천히 둘러보며 또박또박 말했다.

“건방진…….”

평소에도 성격이 불같던 다크 퓨마는 너무나 자신감 넘치는 신의 모습에 살짝 폭발하려고 했다. 하지만 고메즈가 재빨리 그런 다크 퓨마를 저지했기 때문에 더 이상 일이 커지지는 않았다.

“진정하세요.”

고메즈는 굉장히 냉철한 사람이었다.

현자의 대답이라는 정보 길드 자체가 다른 정보 길드와는 조금 다르게 최고급 정보만 다루는 길드였던 것도 그런 고메즈의 성격과 일맥상통했다.

그런 고메즈가 보기엔 신이 이런 모습을 보여주는 게 약간은 고의적인 것이라고 생각했다.

“지금 이 자리는 용문과 저희들이 평화적이고 진취적인 협약을 맺기 위한 자리입니다. 용문을 대표해서 와주신…….”

도요토미는 분위기를 진정시키기 위해 입을 열었지만 정작 용문의 대표를 어떻게 부를지 몰라서 중간에 말을 살짝 끊으며 신을 바라보았다.

“암(暗).”

신은 아주 간단한 가명을 말해주고 입을 닫았다.

“……암 님과 저희들은 이제부터 그것에 관한 얘기를 해보도록 하죠.”

“길게 얘기할 필요가 있을까? 40만 골드라면 충분하다고 생각하는데…… 물론 우리에게 했던 그 짓을 ‘무엇이든 물어보세요’ 놈들에게도 해준다는 약속을 해야 건네줄 돈이겠지만.”

다크 퓨마는 마음속으로 용문을 비웃고 있었다.

이런 자리에 단 한 명의 길드원만 보낸 어리석은 길드. 그렇기에 충분히 협박성 발언도 통할 것이라 생각했다.

“……하긴 40만 골드가 적은 돈은 아니지.”

평소엔 원수처럼 지내는 진천염왕이었지만 이번 말만큼은 확실히 동의한다는 것처럼 크게 고개를 끄덕이며 중얼거렸다.

“돈이 전부는 아니겠지만 적어도 저희들이 그 남매들보단 더 대우해 드릴 수 있습니다.”

“이미 대의는 저희 쪽에 있습니다.”

도요토미와 고메즈 역시 이 정도의 조건이라면 충분히 용문이 넘어올 것이라고 생각했다.

어쩌면 이미 넘어왔기 때문에 다 한 명의 길드원만 보낸 것일지 모른다고 생각했다.

“……웃기고 있네.”

작은 중얼거림. 하지만 대부분의 사람이 들을 수 있는 신의 중얼거림이었다.

“음, 방금 뭐라고 했지?”

“웃기고 있네?”

다크 퓨마와 진천염왕는 금세 발끈하며 반응했다.

이미 그들은 여차하면 무력행사까지 이용해 협박할 생각이었기 때문에 언행에 거침이 없었다.

“웃기고 있다고 했다. 떡 줄 사람은 생각하지도 않고 있는데 김칫국부터 마시고 있는 너희들의 꼴이…… 너무 웃겨서 말이야.”

“이, 이놈이!”

“건방진 놈, 양보를 해주겠다고 하니 우리가 우습게 보이더냐!”

격하게 흥분하는 두 사람.

이번엔 도요토미와 고메즈도 살짝 안색을 굳히며 굳이 흥분하는 두 사람을 막지 않았다.

때론 약간의 협박도 필요한 법.

그들은 지금이야말로 그때라고 생각했다.

“주절주절…… 더 이상 귀찮게 말을 계속할 필요는 없겠지. 내가 여기에 온 이유는…….”

스윽.

신은 천천히 양팔을 들어 올렸다.

“너희들을 단죄하기 위해서일 뿐이니까.”

스릉! 챙!

음양도검이 신의 양손에 잡혔다.

“아! 그리고…… 참고로 그깟 껌값 정도밖에 되지 않는 40만 골드는 그냥 넣어둬라. 뭐, 무릎 꿇고 싹싹 빌면 내가 시원하게 너희들을 용서하고 거기에 한 100만 골드 정도는 빌려줄 수도 있는데…… 생각 있나?”

마지막 말은 도발이었다.

그리고 신의 의도대로 그 도발에 걸려든 이들이 있었다.

다크 퓨마와 진천염왕, 바로 그 두 명이었다.

“건방진 새끼!”

“죽어랏!”

파파팟!

신을 향해 쏟아지는 한 자루의 검영과 한 줄기의 화염.

다크 퓨마와 진천염왕이 자랑하는 흑표검술과 염화술법이었다.

스킬 융합, 환영보(幻影步)+쉐도우 스텝(Shadow Step)+일월건곤보(日月乾坤步).

고속회피(高速回避)!!

흐릿!

하지만 그들의 공격은 절대 신을 맞출 수 없었다.

이미 전투 준비를 끝낸 신은 간단한 동작을 통해 그들의 공격을 피해 버렸다.

그리고 그와 동시에 그 두 사람의 등 뒤를 선점했다.

“……이제 슬슬 시작해 볼까?”

신의 얼굴에 피어오르는 사악한 미소.

특수 스킬 발동, 천마군림!!

스으으으.

암흑의 기운이 사방으로 퍼져나가며 신을 제외한 다른 모든 유저의 능력 일부분을 동결시켜 버렸다.

그는 애초에 이곳에 모인 200여 명의 유저들을 모두 제거하러 온 것이었다.

200여 개의 사냥감.

그리고 그것을 사냥할 사냥꾼 신.

신을 제외한 다른 사람들은 그러한 신의 의도를 전혀 예측하지 못하고 있었다.

오히려 신이 어리석은 객기를 부린다고 생각할 뿐이었다.

하지만 누가 진짜 어리석은 것인지는 좀 더 지켜봐야 결정이 날 것 같았다.

‘타이틀 교체, 최초의 영웅!’

스킬 조합, 양손 검술 고급 기술, 참격(斬擊)+상급 검공, 뇌전검(雷電劍).

전광석화(電光石火)!!

번쩍!

허공에 한줄기의 뇌전이 형성되며 동시에 두 사람의 등짝에 적중했다.

파지직! 꽝!

“크억!!”

“으악!”

강력한 일격. 다크 퓨마와 진천염왕은 순식간에 생명력이 반 이상이 날아가는 걸 느끼며 충격을 입고 바닥에 내동댕이쳐졌다.

“이제 좀 빌고 싶어지나?”

먼저 시작한 건 신이 아니라 4개의 정보 길드 연합 쪽이었다.

신은 그들에게 천외천(天外天)의 존재를 각인시켜 줄 생각이었다.

“애초에 너희들은 건드려서는 안 될 대상을 건드린 것이다.”

스으으으.

신을 향해 몰려드는 강력한 마력의 기운.

200대 1.

수치상으로는 무조건 200이 유리했지만 지금의 상황은 절대 그렇지 않았다.

마치 200마리의 양들 사이에 한 마리의 흉포한 야수 한 마리가 뛰어든 것 같은 모습. 양들은 절대 상대할 수 없는 절대적인 기운을 내뿜는 그 야수는 조용히 주변을 둘러보고 있었다.

“자, 놀아보자.”

신의 귓가로 템포가 빠른 한 곡의 노래가 흘러들어 오기 시작하며 드디어 ‘One’의 PvP 역사에서 가장 큰 논란이 될 전투가 시작되었다.

훗날 ‘미라클 베틀’이라 불리게 될 이 전투는 일반적인 상식을 깨는 전투로 그 진위가 의심받을 만큼 큰 반향을 불러올 것이다.

하지만 그 진위와는 상관없이 한 가지 유명해지는 것이 있었다.

바로 신비지문 또는 신비일문이라 불리게 될 용문의 존재였다.

이미 바람의 계곡에서 어느 정도 그 정체를 드러냈던 용문은 이번 길드전을 통해 확실히 이름을 알리게 될 것이다.

모든 것이 신비에 싸여 있는 길드.

몇 명의 길드원이 있는지도…….

어디가 본거지인지도…….

어떤 유저들이 있는지도…….

어떻게 활동하고 있는지도 모르는 신비로운 길드.

많은 사람들은 그런 용문을 최고로 신비로운 길드라 손꼽았고 그와 함께 최고로 무서운 길드로 분류했다.

용문의 전설.

그것은 곧 신의 전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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