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더 로드(The Lord)-128화 (128/250)

128. 쟁탈전 ― 1

* * *

바람의 계곡.

그곳은 현재 동대륙에서 가장 큰 규모로 PvP가 일어나고 있는 대규모 필드 사냥터였다.

특히 바람의 계곡 안쪽에 존재하는 청풍곡(靑風谷) 던전은 무려 200∼600레벨까지의 다양한 유저들이 입장할 수 있는 대규모 던전이었는데, 이 던전은 동대륙에서도 손꼽히는 최고의 사냥터였다.

청풍곡뿐만이 아니었다.

범용성 면에서는 청풍곡보다 조금 떨어질지 몰라도…… 상위권 유저들에겐 더 큰 사랑을 받는 흑풍곡(黑風谷)도 바람의 계곡에서 대단한 인기를 끌고 있는 던전이었다.

레벨 400∼700까지의 유저들이 입장하는 흑풍곡. 물론 제대로 구성을 맞춘 파티라면 300대 후반의 유저들도 던전의 초입 정도는 충분히 즐길 수 있는 곳이었기 때문에 상위권 유저들은 오히려 청풍곡보다 이곳을 더 선호했다.

그밖에도 바람의 계곡에는 크고 작은 던전들이 수없이 많이 존재했다.

거기에 이곳은 가뜩이나 완벽한 프리 PvP 지역이라 서로 던전을 차지하기 위해 수많은 유저가 매일같이 치열하게 싸우고 또 싸웠다.

크게는 초대형 길드나 세력들 간의 대규모 전쟁부터 작게는 파티 단위 유저들끼리의 소규모 대결까지…… 다양한 다툼이 공존하는 곳.

그것이 바로 바람의 계곡이었다.

그나마 한 번 던전을 차지하면 9일(게임 시간)간 던전 입구에 강력한 보호진이 펼쳐지며 다른 적대 세력의 접근을 막았기 때문에 적어도 한 번만 차지하면 며칠간은 마음 놓고 사냥할 수 있다는 게 다행이었다.

물론 완전히 마음 놓을 수는 없었다.

던전을 차지하지 못한 이들이 늘 바람의 계곡을 순회하며 던전을 차지한 이들을 죽이고 다녔기 때문에 늘 조심을 해야 했다.

현재 바람의 계곡에 발을 들여놓는다는 건…… 살벌한 PvP 전투를 감내하겠다는 암묵적 동의와 마찬가지였다.

그만큼 그곳은 함부로 들어가면 안 되는 곳이라는 뜻이었다. 당연히 평화를 사랑하는 부류의 유저들에겐 완벽한 금지(禁地)였다.

“무려 풍속성 저항력을 10이나 올려주는 부적입니다. 바람의 계곡에선 이 보호 부적이 필수입니다! 몇 개 안 남았어요!!”

“최고급 금창약 팝니다! 현존하는 어떤 금창약보다 효과가 좋아요∼! 내상약도 같이 팔아요!”

“장비 수리해 드립니다. 바람의 계곡에 들어가기 전에 장비를 수리하지 않는 건 병사가 전쟁터에 무기를 안 가지고 들어가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이곳을 마을이라 불러야 하는 건가?

하지만 이곳은 아무런 건물도 없는…… 심지어 NPC도 존재하지 않는 필드였다.

그런데 수많은 사람이 북적거리고 있었다.

왜 그런 것일까?

의외로 이유는 단순했다. 이곳이 바로 바람의 계곡으로 들어가는 입구이기 때문이다.

여기서 몇 발자국만 안쪽으로 들어가면 그때부턴 전면 PvP가 가능한 바람의 계곡 지역이 시작된다.

동대륙에서 가장 치열하기로 유명한 지역에 들어가기에 앞서 혹시라도 부족한 게 있는지 한 번쯤 점검하는 건 제대로 된 유저라면 당연한 일이었다.

몇몇 사람이 그런 유저들의 심리를 꿰뚫어 보았다.

그래서 그들은 이곳에 전쟁터로 향하는 유저들의 마음을 끌 만한 물건을 가져다 놓고 장사를 하기 시작했다.

그것이 바로 일명 ‘풍상(風商)’이라 불리는 이곳의 유래였다.

어느새 동대륙의 명물 중 하나가 되어 있는 이곳은 어지간한 마을의 규모를 넘어서 있었다.

물론 정식 마을은 아니었기 때문에 가끔은 필드를 돌아다니는 몬스터들이 난입을 하기도 했다.

하지만 그래 봤자 그 몬스터들은 이곳에 모여 있는 이들의 장난감밖에 되지 않았다.

며칠을 쉬지 않고 달려온 끝에 난 바람의 계곡을 가기 위해서는 꼭 들렀다 가야 하는 곳으로 알려진 이곳 풍상에 도착했다.

내가 써놓은 기록에 의한다면…… 앞으로 보름(게임시간) 정도 후에 신수와 신병이 등장할 것이다.

보름이라면 그다지 짧지는 않은 시간…… 그동안 특별히 할 일이 있는 게 아니었기 때문에 난 이곳으로 향하면서도 계속 무엇을 할지 고민했다.

하지만 의외로 결론은 쉽게 났다.

어차피 남는 시간이라면 사냥이라도 해서 레벨을 올리는 게 좋았다.

만년독림에서 괴상한 고대 종족을 잡고 엄청난 수치의 레벨을 올린 난 이제…… 거의 최상위권 유저들과 레벨 차이가 그다지 나지 않을 것 같았다.

오히려…… 역전했을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현재 내 레벨은 459였다.

만년독림에서 보낸 열흘이 조금 넘는 시간 동안 레벨을 32나 올렸다.

특히나 그 좁은 통로에서 놈들과 같이 죽을 각오로 날렸던 엘레멘탈 부스터 데몰리션…… 그 단 한 방의 기술로 내가 얻은 레벨이 무려 15가 조금 넘었다.

절망의 구간에서 한 방에 15레벨을 올린다는 건 내가 알고 있는 어떤 방법으로도 불가능했다.

그런데 난 해냈다.

불가능한 일을 현실로 만들자 말도 안 되는 보상이 주어진 느낌이었다.

어쨌든 만년독림에서의 모험 덕분에 내 레벨이 아주 급성장했다.

그동안 레벨 부분에서는 최상급 유저들에게 많이 뒤처진다고 생각했는데…… 이걸로 가볍게 해결했다.

하지만 아직도 난 부족함을 느꼈다.

분명 앞으로 내가 만나게 될 여러 존재는 상상을 초월하는 강함을 지니고 있을 것이다.

이번에 만나려고 하는 신수라는 존재만 해도 수많은 대형 길드를 박살 낸 괴물이다.

그런 괴물을 나 혼자 상대하려면 더 강한 힘이 필요했다. 그리고 레벨은 그 힘을 올릴 수 있는 아주 훌륭한 수단이었다.

사냥하기로 마음먹었으니 최고의 사냥터를 구해야 했다. 이 근처에서 최고의 사냥터는 두 곳이었다.

청풍곡과 흑풍곡.

난 두 곳 중 흑풍곡을 선택했다.

현재 흑풍곡의 소유권을 지닌 이들은 오래전부터 최근까지 여러 악연과 인연으로 얽혀 있는 세력이었다.

천룡맹.

현재 무려 6개월 동안 흑풍곡을 점령하고 있는 대형 길드가 바로 그들이었다.

천마무총에서 제대로 헛물을 켠 천룡성검과 그 일행들은 곧장 이곳으로 이동해 흑풍곡을 독점하기 시작했다.

그들은 그렇게 6개월 동안 다른 세력들의 계속된 공격을 막아내며 꿋꿋이 흑풍곡을 소유하고 있었다.

던전을 차지하기 위해서는 던전 내부에 존재하는 보호석을 차지해야 했다. 보호진의 핵심이라 할 수 있는 보호석. 이것은 9일(게임 시간)에 한 번씩, 약 4시간 동안 주변의 마나를 흡수하기 위해 진의 효과를 모두 풀게 되는데…… 이때가 바로 보호석을 차지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였다.

보호석을 차지하는 방법은 간단했다.

보호석 자체에 걸려 있는 강력한 방어막을 깨고 보호석에 자신의 마력을 불어넣으면 끝이었다.

마력을 불어넣을 수 있는 자격을 지닌 이는 오로지 각 세력의 대표들뿐이었다.

길드 마스터, 맹주, 단주, 군주 등으로 다양하게 불리는 마스터들…… 오로지 그들만이 보호석에 마력을 불어넣을 자격을 지니고 있었다.

보호석은 보통 던전의 가장 중앙에 위치하는 게 일반적이었다.

흑풍곡도 예외는 아니었다.

어차피 보호진이 힘을 잃는 2시간을 전후로 1시간씩, 총 4시간 동안은 흑풍곡의 몬스터들이 모두 사라지게 되어 있었다.

신경 쓸 것은 오로지 유저들뿐이었다.

물론 던전의 구조상 입구가 많지 않고 좁았기 때문에 지형적으로는 방어하는 쪽이 조금 더 유리한 것은 사실이었다.

하지만 결정적인 건…… 방어하는 쪽보다 공격하는 쪽의 숫자가 더 많다는 것이었다.

그건 당연한 것이다.

어떤 대단한 물건이 있다고 치자. 그렇다면 그것을 소유한 자는 한 명이지만 소유하고 싶어하는 사람은 수없이 많아질 수밖에 없다.

머릿수에서 차이가 나는 건 방어하는 쪽이 늘 감당해야 하는 부분이었다.

그나마 천룡맹은 동대륙에서도 알아주는 대형 길드이고 거기에 동맹을 맺은 몇몇 길드들이 밖에서도 그들을 도왔기 때문에 무려 6개월이란 시간 동안 흑풍곡을 독점할 수 있었다.

6개월(게임 시간) 동안의 독점은 바람의 계곡을 유저들이 점령하기 시작한 2년(게임 시간) 전부터 지금까지 최고로 긴 독점 기간이었다.

그만큼 그들은 잘 버티고 있었다.

그런데 난 이러한 흑풍곡을 점령할 생각이었다.

물론 당연히 나에게 세력 같은 건 없었다.

길드? 길드는 있었다.

서대륙에 있을 때 이미 여러 가지 이유로 간단하게 일인(一人) 길드를 만들어놨었다.

길드 이름은 용문(龍門).

그 누구도 길드에 받을 생각이 없었기 때문에 모든 설정은 비공개로 해놓았다.

난 용문의 길드 마스터 자격으로 이번 흑풍곡 쟁탈전에 참여할 생각이었다.

어차피 정보에 의하면, 30개 이상의 세력이 공격할 예정이라고 했다. 거기에 나 한 명이 추가된다고 크게 티가 날 것 같지는 않았다.

삼 일 후에 시작된다는 흑풍곡 쟁탈전.

이미 풍상은 흑풍곡을 빼앗기 위해 동대륙 각지에서 모여든 여러 세력들로 인해 북새통을 이루고 있었다.

이들은 아마 삼 일 후 흑풍곡을 노려보고 안 되면 팔 일 후에 다시 청풍곡을 노릴 것이다.

비록 쟁탈 전쟁은 사흘(게임 시간)에 한 번만 참여할 수 있다는 제한이 있었지만 시간만 잘 조절하면 4일에 한 번씩 꼬박꼬박 쟁탈전에 참여할 수도 있는 곳이 바로 이곳, 바람의 계곡이었다.

당연히 쟁(爭)에 미친 유저들에게 이곳은 천국과도 같은 곳이었다.

난 느긋하게 여유를 즐기며 삼 일 후의 쟁탈전을 기다렸다.

굳이 벌써부터 바람의 계곡에 들어가 쓸데없이 킬 포인트를 모을 생각은 없었다.

그저…… 조용한 곳에서 명상 수련을 하는 게 훨씬 좋았다.

목표는 흑풍곡.

시간은 삼 일 후.

확률은…… 굉장히 높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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