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더 로드(The Lord)-124화 (124/250)

124. 일월신전

* * *

“헉…… 헉…….”

목이 탄다.

방금 마나물약을 한 번에 들이켰건만 이놈의 갈증은 그대로였다.

쉬익! 촤아아아악!

“크……르아…….”

오른팔이 기계적으로 휘둘러지며 또 한 마리의 고대종족이 바닥에 쓰러졌다.

몇 마리째지?

한 백 마리 정도까지 셌었는데…….

손에 들고 있는 음양도검이 너무 무겁다. 몸 이곳저곳에 쇳덩이라도 달린 느낌이다.

딱 한 사람 정도만 들어갈 수 있는 것 같은 좁은 통로. 어둡고 작은 아주 긴 이 통로 안에 내가 있다.

난 내가 목표로 했던 그 건축물에 들어올 수 있었다.

개미 떼처럼 많던 고대종족을 뿌리치고 원했던 바를 이뤘다. 그런데…… 문제는…….

건축물에 들어왔음에도 고대종족은 끊임없이 나를 공격했다.

그나마 이 작은 통로를 이용해 점점 건물 안쪽으로 뒷걸음질 치며 고대종족을 한 마리씩 상대했기에 지금까지 버틸 수 있었다.

이 비좁은 통로로 물밀 듯이 밀려 들어오는 고대종족.

난 계속해서 뒤로 물러나며 놈들을 잡았다.

이곳에 들어온 지 벌써 열 시간이 지났다. 처음엔 통로를 따라 도망가 놈들의 추격을 뿌리치면 될 것이라 생각했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그건 그냥 희망 사항일 뿐이었다.

통로가…… 통로가 막혀있었다.

비스듬히 지하 쪽으로 기울어져 있던 통로는 대략 400m 정도까지만 유지되었고 그 뒤엔 그냥 벽으로 막혀있었다.

뭔가…… 기관장치가 있을 것 같았다. 하지만 정작 난 그것을 확인할 틈이 없었다.

계속해서 밀려드는 놈들! 이놈들을 상대하기 위해 난 벽을 등지고 미친 듯이 싸웠다.

그동안 내가 쓰러트린 놈들의 숫자는 측정 불가였다.

그리고 아직도 끝이 안 보이게 통로를 가득 메우고 있는 놈들…… 이젠 그만 손에서 검을 놓고 싶은 심정이었다.

생명력과 마력이 얼마나 남았는지 보는 것조차 귀찮아졌다. 아마…… 거의 바닥났을 것이다.

“큭큭…….”

문득 웃음이 나왔다.

천무칠성을 능가하는 무력도…… 보스 몬스터를 혼자 처리하는 능력도…… 일인군단이라 생각했던 내 모든 힘이 부질없게 느껴진다.

힘의 차이를 완전히 무시하는 물량.

쓰러트려도, 쓰러트려도 계속해서 밀려오는 놈들의 모습을 보고 있자면…… 이젠 더 이상 이를 갈 기운도 없다.

“쿨라라! 울라!”

방금 한 놈을 쓰러트렸건만 또 한 놈이 달려든다.

스륵.

본능적으로 광검과 암도가 움직인다.

파팟! 꽝!

유수행을 이용해 놈의 공격을 흘려보낸 후 곧장 급소에 검과 도를 꽂아 넣었다.

이 좁은 통로에서 최고의 보법은 유수행이었다.

유수행이 있었기에 지금까지 버틸 수 있었다.

“키……울라!”

큰 타격을 입은 놈이 마구 날뛰며 다시 공격한다. 내 눈에 놈의 공격이 슬로우 비디오처럼 확연하게 보인다.

고대종족과의 전투를 통해 난 관찰스킬과 명상스킬을 또 다른 경지로 발전시켰다.

살짝 과장해서 정말 이젠 눈을 감아도 놈들의 공격을 피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스윽.

살짝 몸을 비트는 것만으로 놈의 공격을 피했다. 그리고 다시 아까와 같은 급소에 검과 도를 또다시 찔렀다.

퍼퍽!

“키……에르…….”

쿠쿵!

스스스스스스~

또다시 한 마리의 고대종족이 빛의 가루가 되며 사라진다. 하지만 그만큼 난 또 지쳐간다.

이해가 되는가?

난 놈들의 공격에 맞아 생명력을 잃고 있지 않았다. 오로지…… 바닥까지 떨어진 기력과 공복도 때문에 조금씩 생명력을 잃어 가는 중이었다.

처음엔 힐링마법과 몇 가지 회복류 스킬을 사용해 버텼는데 이젠 그것을 쓸 마력마저 부족한 상태였다.

한두 시간 전부터는 마력이 부족해 무공(스킬)도 가장 마력이 적게 드는 것들만 계속 사용하는 중이었다.

무신의 내단을 먹으며 얻은 무신의 내공까지 전부 쓴 상태니 더 이상 무슨 말이 필요하겠는가.

난 다시 한 발자국 뒤로 물러나며 다음 놈을 맞이할 준비를 했다. 어차피 무한 반복이었다.

내가 완전히 지쳐 쓰러질 때까지…… 놈들은 계속해서 달려들 것이다.

“아무것도 못 찾았냐?”

난 내 등 뒤에서 열심히 파닥거리며 날고 있는 볼품없는 작은 새에게 물었다.

대략 한 시간 전쯤 이대로는 도저히 방법이 안 나올 것 같아 마계에서의 기억을 살려 혹시 모를 기대감을 안고 소환한 라르엘이었다.

[……아까랑 똑같아요. 아무런 문자도 없고…… 아무런 장치도 못 찾았어요.]

하지만 돌아오는 대답은 날 더욱 절망적으로 만들었다.

많은 기대는 안 했다지만…… 그래도 한때 최상급화염의 정령이었던 라르엘이라면 작은 힌트라도 찾을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었다.

“……절망적이군.”

고개를 흔들 수밖에 없었다.

라르엘이 한 시간 동안 열심히 찾았는데도 아무것도 발견하지 못했다

[…….]

평소에 소환하면 장난스럽게 말을 많이 하던 라르엘도 지금 상황을 본능적으로 느꼈는지 아무런 말을 하지 않고 계속해서 벽 주변을 날아다니며 작은 흔적이라도 찾기 위해 노력했다.

난 다시 음양도검을 휘둘렀다.

어차피 이렇게 된 이상 내가 선택할 수 있는 길은 한 가지뿐이었다.

어차피 무슨 짓을 해도 결국 좀 더 시간을 끄는 수단밖에 되지 않을 것이다.

그렇다면…….

화려하게 마무리를 짓고 끝내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다.

400미터가량의 통로에 가득 찬 고대종족.

이 정도의 놈들이라면 내 화려한 마무리를 충분히 도와줄 수 있을 것 같았다.

“자…… 그럼 화려한 파티를 시작해볼까?”

특수능력 용마수(龍魔手)!

특수능력 용마안(龍魔眼)!

특수스킬 영웅의 포효!!

특수스킬 천무신공(天武神功)!!

특별한 네 가지 능력이 동시에 발현되었다.

드드드드드!

지칠 때로 지쳤던 몸에서 갑자기 엄청난 활력이 느껴졌다. 근육이 부풀어 오르고 심장이 빠르게 뛰기 시작했다.

또렷해지는 정신.

통로는 더 이상 어둡지 않았고 고대종족 놈들은 마치 내 먹잇감처럼 느껴졌다.

한정된 시간이었지만 난 분명 유저의 한계를 넘어섰다.

“으아아아아아아아!!”

난 괴성을 내질렀다.

혹시 드래곤 피어(Fear)가 이런 것일까? 난 그저 크게 소리쳤을 뿐인데…… 고대종족 놈들이 갑자기 움직임을 멈췄다.

두려움에 물드는 그들의 눈빛.

난 갑자기 웃음이 나왔다.

내가 갑자기 강력한 마왕이라도 된 것 같았다.

그럼 이 고대종족 놈들은 선량한 인간쯤 되려나?

상황이 반전되었다.

지금까지 놈들이 나를 괴롭혔다면 이젠 내가 놈들을 괴롭힐 차례였다.

퍼퍽!

우드득!

오른팔로 앞에 있던 고대종족의 목을 감싼 후 그대로 꺾어버렸다.

“키륵…….”

힘없이 쳐지는 고대종족의 몸.

치이익!

꽝!

단순히 오른발을 내질렀을 뿐인데 뒤에 서 있던 고대종족 한 놈이 뒤로 튕겨 나간다.

주륵!

그놈에 의해 순간 고대종족 놈들이 뒤로 밀려났다.

“장비4번.”

스릉! 철컥!

그 순간 난 재빨리 엘레멘탈 블레이드를 꺼내 들었다.

스으으으으~!

내 몸을 향해 몰려드는 정령의 기운들.

그냥 정령의 기운들이 아니었다. 유저의 한계를 뛰어넘어 마치 파괴의 신이라도 된 것 같은 내가 만들어낸 특별한 정령의 기운들이었다.

겁화, 태풍, 해일, 지진.

모든 세상을 태워버리고, 날려버리고, 덮어버리고, 쪼개버릴 것 같은 무시무시한 기운들이 내 몸 안에서 뒤엉켰다.

스킬조합 정령빙의 셀리스트(Salist) + 정령빙의 운다인(Undain).

연계발동, 스킬조합 정령빙의 노임(Noim) + 정령빙의 실라페(Silafe)

“자…….”

그그그그그!

난 슬쩍 웃으며 내 앞에 개떼처럼 몰려 있는 고대종족 놈들을 바라보았다.

“신나는…….”

기이잉!

엘레멘탈 블레이드가 이상한 소리를 내며 부르르 떨렸다.

그리고…… 그것은 나의 뜻에 따라 땅바닥에 깊숙이 꽂혔다.

“불꽃놀이 시간이닷!!!!”

치잉!

엘레멘탈 블레이드의 검극에 맺혀 있던 중급 정령들의 기운이 강하게 폭발했다.

특수스킬조합 엘레멘탈 버스터(Elemental Buster) 데몰리션(demolition)!!!!

연습은 많이 했지만 실전에선 처음으로 사용하는 엘레멘탈 버스터 데몰리션.

이 기술은 현재 내가 알고 있는 최강의 광역 공격 기술이었다.

쩌저저저저적! 콰과과과과과광!!

통로가 사방으로 갈라지며 강력한 폭발이 일어났다. 비좁은 통로에 몰아치는 강력한 마력의 폭풍.

그 폭풍은 통로에 꽉꽉 들어차 있던 고대종족들을 모조리 집어삼켰다.

그뿐이 아니다.

통로 안의 고대종족들을 쓸어버린 것으로 모자라 통로 가까이에 서 있던 녀석들까지 모두 먹어버렸다.

쿠쿠쿠쿵!

강력한 폭발은 아예 통로 자체를 무너트리고 있었다.

시스템상 일정 시간이 지나면 복구되겠지만 일단 지금은 완벽하게 무너져 내리고 있었다.

‘……끝인가?’

화려한 불꽃놀이 한 방.

이 한 방으로 모든 걸 마무리 지었다.

통로가 무너지면 나도 그 여파로 사망할 것이다.

여지가 없었다.

불사의 반지가 있다고 해도 완벽하게 통로가 무너진 이상 결국엔 죽는다.

‘……나쁘진 않아.’

예상하지 못한 죽음이었지만 아주 나쁘다고 생각은 들지 않는다.

지금 이 순간에도 계속해서 울려 퍼지는 킬 메시지. 도대체 얼마나 많은 고대종족들을 죽였는지 모르겠지만…… 상상을 초월하는 경험치를 얻은 것 같다.

콰과광!

조각난 돌덩어리들이 나를 덮친다.

쿵!

등에 얹히는 한 개의 돌덩어리…… 그리고 그 위에 계속해서 돌덩어리들이 쌓이기 시작한다.

우득.

통로가 완전히 무너져 내린 것 같다.

결과적으로 내가 서 있는 곳도 무사하지 못했다.

이젠 정말 끝이다.

쩌저적! 쩌저저적!

그런데 바로 그때 이상한 일이 일어났다.

마구 갈라지기 시작하는 바닥.

무너져 내린 건 천장과 벽인데 바닥이 마구 갈라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갑자기 천둥처럼 울리는 한 줄의 시스템 알림 메시지.

띠링, 일월신전(日月神殿)의 모든 기관을 힘으로 파괴했습니다. 비밀통로가 개방되며 일월대전(日月大殿)으로 이동합니다.

“헉!”

이게 무슨 소리인가?

그런데 난 그 메시지를 제대로 확인할 수 없었다.

바닥이…… 바닥이 사라졌다!

콰광! 쿠쿠쿠쿠쿠쿵!

바닥이 사라지며 난 그 아래로 떨어졌다. 나를 삼켜버리는 어둠. 난 그렇게 그 어둠을 따라 마구 굴러떨어졌다.

콰과과광!

몇 분간의 고생 끝에 난 드디어 바닥(?)에 떨어졌다.

“크으…….”

몸 이곳저곳이 쑤셨다.

일월신전의 비밀통로는 매우 불친절했다.

한 무더기의 돌덩어리들과 함께 그 비밀통로를 구르는 느낌이란…… 마치 연속해서 누군가에게 강펀치를 계속 맞는 느낌과 비슷했다.

덕분에 생명력이 상당히 깎여 이젠 20% 정도밖에 남지 않았다.

하지만 적어도 죽지는 않았다.

재수가 좋은 건지…… 아니면 능력이 좋은 건지…… 어쨌든 중요한 건 내가 살아있다는 사실이었다.

[켁켁…… 아우 죽는 줄 알았네.]

나와 같이 비밀통로로 빨려든 라르엘은 먼지 묻은 날개를 펄럭거리며 고개를 흔들었다. 어차피 날아다니며 돌덩어리들은 다 피했으면서 엄살이 엄청났다.

부스스스.

몸에 묻은 돌가루를 털어내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이곳은…… 무척 큰 광장 같은 곳이었다. 사방에 박혀 있는 야명주는 이곳을 상당히 밝게 비춰주고 있었다.

난 주변을 살펴보았다.

이곳은 상당히 큰 동공(洞空)이었다. 특별한 건 별로 없었다. 단지 좌우 양쪽에 일월신교가 숭배하는 신으로 추정되는 조각상이 서 있다는 것과 천장에 일월대전이라는 큰 한자가 음각되어있다는 것 정도가 전부였다.

“일월대전이라…….”

[오~호.]

라르엘은 지하에 이런 곳이 있다는 것이 신기한 듯 대전 이곳저곳을 날아다니며 쫑알거렸다.

이곳의 정확한 정체를 알 순 없었지만 적어도 일월신교와 관련된 중요한 곳이라는 분명했다.

내가 무려 몇 분 동안 비밀통로를 구르며 떨어진 것을 보면…… 아마도 이곳으로 오는 제대로 된 길은 상당히 길고 험했을 것이다.

대미궁이나 천마무총만 생각해 보아도 대충 견적이 나왔다.

어쩌면 난 상당히 큰 행운을 얻은 것일지 몰랐다.

“흔적을 찾아야겠군.”

난 관찰스킬을 활성화 시키며 다시 한번 자세히 주변을 둘러보았다.

왼쪽과 오른쪽에 각각 생김새가 다른 조각상들이 하나씩 존재했다.

총 2개.

아마도 일월신교와 관련이 있는 조각상들일 것이다.

그리고 전방은 그냥 평범한 벽이었다.

아무것도 존재하지 않는…… 특별한 점도 보이지 않는 그런 벽이었다.

관찰스킬을 이용해 주변을 살펴봤는데도 특별한 점은 보이지 않았다.

특별한 통로도 없는 일월대전.

난 살짝 고개를 갸웃거리며 다시 한번 주변을 더 자세히 살펴보려고 마음먹었다.

바로 그때.

라르엘이 괴성을 내질렀다.

[키에에! 움직여요!!]

“음?!”

움직인다니 갑자기 그게 무슨 소리인가?

하지만 난 이내 그게 무슨 소리인지 확실히 알 수 있었다.

쿠쿠쿵! 쾅!

크기는 대략 10m 정도?

그 커다란 조각상이 움직인다.

그것도 2개 모두!!

앞으로 나오기 시작한 2개의 조각상. 그와 동시에 갑자기 아무것도 존재하지 않는 벽에 요상한 무늬가 새겨지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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