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1. 탐색 ― 2
* * *
스킬조합 폭풍난무(暴風亂舞) + 염화난무(炎火亂舞) + 검기난무(劍氣亂舞)
연계발동 극(極) 유수행(流水行)!!
완성! 파멸난무(破滅亂舞)!!
빙검이나 화검, 풍검과는 또 다른 완성형 비기!
특히나 영웅의 포효, 천무신공, 지존신공 같은 각종 증폭스킬이 활성화된 상태에서 발현된 이 기술은 내가 알고 있는 최고의 근접 마무리 기술이었다.
검은 마녀 린의 표현을 빌리자면…… ‘미친 칼춤’이 시작되었다.
스스스스!
극한으로 발휘된 유수행은 마치 내 주변의 시간이 멈춘 것처럼 느끼게 해주었다.
챙!
먼저 윈드가 뽑혔다.
촤좌좌좌좌좌작!
내 손안에 들려 있는 윈드가 조화를 부리며 일월신수의 몸에 수백 번 난도질했다.
챙!
다음엔 플레임이 뽑혔다.
파파파파파파팟!!
플레임마저 조화를 부리며 수백 개의 타오르는 검영(劍影)을 만들었다.
마지막으로 윈드와 플레임이 뽑혀나가고 남은 엘레멘탈 블레이드가 춤을 췄다.
츠츠츠츠츠츠츳!!!
검기가…… 아주 작은 검기의 조각들 수백 개가 폭풍처럼 사방을 휩쓸었다.
전후사방.
내 신형은 길게 잔영을 남기며 일월신수의 몸을 이곳저곳을 훑고 지나갔다.
대략 10초?
별로 길지 않은…… 그 시간동안 나라는 존재가 마치 유령처럼 일월신수의 주변을 빠르게 맴돌았다.
그리고…… 어느 순간 난 갑자기 멈춰 섰다.
푹. 푹.
땅바닥에 떨어져 꽂히는 두 자루의 검.
스으으으~
내가 들고 있는 남아 있는 엘레멘탈 블레이드에서는 하얀 연기가 피어올랐다.
“크르르르륵.”
피가 끓는 소리가 났다.
그리곤…… 5m가 넘는 일월신수의 커다란 몸 이곳저곳에서 하얀빛이 동시에 터져 나왔다.
족히 천 개는 되어 보이는 작은 상처들! 그 상처 하나하나가 모두 모여 결국 일월신수에게 치명적인 일격이 되었다.
콰과광!
그대로 쓰러진 일월신수.
드디어…… 무려 한 시간 동안 계속되었던 일월곡의 보스 몬스터 일월신수의 일인 레이드가 끝났다.
띠링, 일월곡의 보스몬스터 일월신수를 해치웠습니다.
띠링, 레벨이 올랐습니다.
띠링, 타이틀 ‘최초의 일월신수 사냥꾼’을 얻으셨습니다.
……
……
“후우~.”
난 길게 한숨을 내쉬며 땅바닥에 주저앉았다.
조금만 더 시간이 지체되었으면 영웅의 포효와 천무신공 효과가 모두 사라졌을 것이다.
적절한 때 적절하게 끝냈다.
확실히 레벨 450의 보스몬스터는 강력했다.
그러나…… 아쉽게도(?) 각종 사기성 버프를 집중시킨 내가 조금 더 강했다.
스르르.
보는 것만으로도 배가 불러오는 아름다운(?) 아이템들을 남기며 일월신수가 연기가 되어 사라지기 시작했다.
난 재빨리 일월신수가 떨어트린 아이템들을 확인해 보았다.
벌써 일월곡에 들어온 지 20일(게임시간)이 지났지만 정작 난 일월신교와 관련된 그 어떤 것도 찾지 못했다.
일월신수가 남긴 아이템들은 상당히 훌륭했다.
하지만 아쉽게도…… 일월신교와 관련된 아이템은 전혀 없었다.
확률 80%가 0%로 바뀌는 순간이었다.
“쳇!”
아쉬웠지만 어쩔 수 없었다.
이렇게 된 이상 깔끔하게 빨리 포기하고 다음으로 가능성이 높아 보였던 일월산(日月山)을 찾아가야 했다.
난 일월신수가 남긴 아이템들을 가방에 챙겨 넣고 미련 없이 일월곡을 떠났다.
내가 정리한 문서에 적힌 목록은 아직도 많이 남아 있었다. 다소 시간이 걸리더라도 난 이것들을 모두 확인할 생각이었다.
일월신교를 찾아야 했다. 천마를 찾아야 했다.
분명 그는 뭔가를 알고 있었다. 그를 찾을 수만 있다면…… 혼란스러운 내 머릿속을 조금이나마 정리할 수 있을 것 같았다.
* * *
세 달(게임시간)이 조금 넘는 시간이 지났다.
세 달 정도의 시간 동안 난 일곱 군데의 지역을 살펴보았다. 물론 성과는…… 전혀 없었다.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일월신교의 흔적은 쉽게 발견되지 않았다.
이렇게 늘 허탕만 치다 보니 조금은 힘이 빠졌지만 그래도 포기하지는 않았다.
쉽게 발견할 것이라곤 생각하지 않기 때문에 난 끈기를 가지고 계속해서 목록을 작성한 순서대로 움직이고 있었다.
며칠 전 도착한 이곳은 확률 40%로 구분해 놓은 만년독림(萬年毒林)이란 곳이었다.
정보에 의하면 이곳에 존재하는 고대 원시부족 중 하나가 해와 달의 신을 믿는다고 했다.
고대 원시부족이라고 해봤자 어차피 산적들과 같은 NPC형 몬스터일 뿐이었다.
이곳은 동대륙 남부에 존재하는 열대우림지역 중에서도 상당히 깊숙한 오지에 존재한다고 알려진 곳이었기 때문에 난 이곳으로 오기까지 무려 일주일(게임시간)을 소비했다.
특히 생각했던 것보다 열대우림지역에 등장하는 몬스터들이 레벨이 높은 것이 내 이동속도를 늦췄다.
열대우림 초입의 몬스터들의 평균 350 정도의 레벨을 지니고 있었다. 그리고 조금씩 안으로 들어가면서 점점 레벨이 높아졌다.
만년독림에 들어서고부터 만나는 몬스터들의 레벨은 대략 400~450수준이었다.
또한 생각보다 높은 몬스터의 레벨도 문제였지만 그만큼 문제가 되는 것이 바로 몬스터들의 출현빈도였다.
각종 위험한 파충류형 몬스터들부터 야수형, 식물형, 곤충형 몬스터들이 시도 때도 없이 나타났다.
그뿐인가?
간간이 보이는 고대 원시 부족은 떼로 몰려다니며 위험한 상황을 연출하곤 했다.
왜 대부분의 다른 유저들이 열대우림의 바깥쪽에서만 사냥하는지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하지만 내 목적은 만년독림이었기 때문에 난 꿋꿋이 그런 걸림돌들을 처리하며 만년독림을 찾아 더 깊숙한 곳으로 계속 이동했다.
그리고 바로 어제…… 드디어 만년독림에 찾을 수 있었다. 그런데 만년독림은 지금까지의 밀림과 또 다른 곳이라 할 수 있었다.
마치 지금까지의 밀림들을 한데 모아 꽉꽉 압축이라도 해놓은 것 같은…… 밀림 중의 밀림이라고 말해도 될 것 같은 그런 느낌이었다.
내가 만년독림의 영역에 들어서자 가장 먼저 나를 반겨준 건 독사지왕(毒蛇之王)이라고도 불리곤 하는 칠점홍사(七點紅蛇)였다.
크기는 30cm 정보밖에 되지 않지만 치명적인 독을 지닌 그 뱀은 작지만 강력한 몬스터였다.
레벨도 무려 400이나 되었다.
난 놈이 반갑게(?) 뿌려주는 독액(毒液)을 이리저리 피하며 시간을 두고 천천히 놈을 제압했다.
이런 놈은 죽이는 것보다 제압하는 게 좋았다. 당연히 제압하는 쪽이 죽이는 쪽보다 더 어려웠지만 제압만 할 수 있다면 놈에게서 치명적인 독을 뽑아낼 수 있었다.
이런 독은 여러 가지 용도로 사용할 수 있었는데…… 일단 그 값어치가 대단히 높았다.
열대우림지역에 들어와 난 종종 각종 독물들에게서 여러 가지 독을 채취했다.
나중에 난 이것들을 포이즌 마스터리(독연구)스킬을 사용해 가공해볼 생각이었다.
어쨌든 그렇게 날 반겨주었던 칠점홍사는 엄지손가락만한 작은 병에 자신의 독을 가득 채워주고 죽었다.
물론 가죽도 잘 벗겨 가방에 넣어두었다. 나중에 이런 건 다 제값을 하게 되어 있다.
그런데 칠점홍사는 시작일 뿐이었다.
만년독림은 감히 독물들의 천국이라 말할 수 있었다. 내가 전혀 알지도 못하는 온갖 종류의 독물들이 나를 괴롭혔다.
작게는 내 손가락만 한 곤충부터 크게는 몇 미터는 되어 보이는 대형 야수(野獸)까지…… 그리고 그것들은 모두 강력한 독을 몸에 품고 있었다.
내가 조금이라도 방심하는 것 같으면 여지없이 달려드는…….
바로 이런 놈들!!
쯔팟!
난 손에 감아놓았던 묵혼사를 허공에 뿌리며 몸을 가볍게 회전시켰다.
쯔걱!
정확히 머리가 잘려나가며 바닥에 떨어지는 한 마리의 뱀.
레벨은 상당히 낮은 놈들이었지만 꾸준히 나를 괴롭히는 비공사(飛空蛇)였다.
“쳇, 끝이 없군.”
만년독림은 그 자체로 던전이었다.
실제로 만년독림에 들어왔을 때 던전에 들어왔을 때와 마찬가지로 던전 발견 메시지와 함께 추가 경험치를 준다는 알림 메시지가 떴었다.
덕분에 경험치는 아주 쑥쑥 잘 오르고 있었다.
요 몇 달 일월신교의 흔적을 쫓는다며 고급 사냥터들을 미친 듯이 뒤지고 다녔더니 레벨은 아주 훌륭하게 올라 있었다.
남들은 파티하고 잡는 몬스터를 혼자 잡고 다녔기 때문인지 쑥쑥 잘 오르고 있었다. 아쉬운 것은 직업 특성상 경험치 페널티가 있었기 때문에 더 큰 이득을 보지 못한다는 사실이었다.
현재 내 레벨은 427이다.
절망의 구간이라는 400~500레벨 구간인 것을 감안한다면 난 정말 놀라운 속도로 레벨을 올리고 있었다.
확실히 본격적으로 ‘더 로드’라는 직업의 큰 틀이 확립되자 내 사냥의 효율성은 그 어떤 직업도 따라올 수 없게 되었다.
파티플레이를 뛰어넘는 위대한 솔로플레이!
난 이제야 진정한 ‘더 로드’가 된 느낌이 들었다.
만년독림은 정말 지독했다.
밀림 특유의 지형들은 한 걸음 한 걸음을 조심하게 만들었고 끊임없이 달려드는 독물들은 한순간도 방심하지 못하게 했다.
지천에 널린 게 독천(毒泉)과 늪이었다.
독천은 살짝만 몸에 닿아도 곧장 몸이 마비될 정도로 강렬한 독을 지니고 있었고 늪은 한 번 빠지면 계속해서 몸을 끌어당겨 쉽게 빠져나올 수 없었다.
이래저래 최악의 지형.
난 이 만년독림에서 4일(게임시간)을 보내며 이곳이 내가 경험해 본 던전들 중 최악의 던전 3개를 꼽으면 당당히 한 자리를 차지할 수 있을 곳이라고 느꼈다.
그나마 내가 이곳에서 견딜 수 있었던 이유는 아이템은 거의 구할 수 없지만 경험치가 매우 훌륭하다는 것과 만년독림 안으로 들어갈수록 이상한 친밀감이 느껴지기 때문이었다.
천마의 권능을 얻고 나서 난 묘하게 일월신교라는 말이 친숙해졌었다.
지금이 딱 그 느낌이다.
정확히 설명은 불가능한…… 그런 친숙한 느낌.
그 친숙한 느낌은 아주 미세하게나마 날 만년독림 안쪽으로 잡아끄는 것 같다.
느낌이 아주 좋았다.
그리고 그 좋은 느낌은 곧 현실로 나타났다.
2m가 넘는 덩치에 검게 그을린 피부.
얼굴은 마치 오크처럼 흉측했고 손은 무척 길어 무릎 아래로 내려왔다.
인간이라기보다는 유인원에 가까운 것 같은 모습.
근데 재미있는 건 이들의 이마에 새겨져 있는 문양이었다.
일월신교에 대한 여러 정보를 모으며 찾았던 일월신교의 문양.
초승달과 둥근 해가 겹쳐져 있는 것 같은 모습의 문양!
그 문양이 이들 이마에 새겨져 있다.
‘찾았다!’
해와 달을 숭배하는 고대 원시부족을 찾아낸 바로 그 순간 드디어 막연한 느낌이 확신으로 바뀌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