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0. 탐색 ― 1
* * *
호남성에서 일주일(게임시간)을 보냈다.
일주일 동안 내가 한 일은 확실히 정비하는 것이었다.
첫날 30,000골드 정도를 쓴 것으로 시작해. 일주일 동안 대략 16만 골드 정도를 소비했다.
대단한 과소비.
하지만 내가 산 아이템들은 하나같이 알짜배기 같은 것들이었다.
당연히 소모성 아이템은 최상급의 것들로만 가방을 꽉꽉 채웠고 혹시 몰라 가상 가방이 아닌 외부에 착용하는 가방들에도 물건들을 가득 채워놓았다.
그뿐인가?
동대륙 최고의 장인이라 불리는 철노인(鐵老人)이 정확히 40개만 만들었다고 소문난 흑룡갑(黑龍鉀)을 구입해 입었다.
흑룡갑이란 흑룡흉갑, 흑룡견갑, 흑룡완갑 이렇게 세 개로 이루어진 한 세트의 갑옷을 말했다. 상체를 완벽하게 보호해 주는 흑룡갑은 뛰어난 방어력과 함께 마치 갑옷을 입지 않은 것처럼 느껴지게 하는 대단한 편의성까지 갖추고 있어서 제작 방어구류 중에서는 최고로 손꼽히는 물건이었다.
난 또한 철노인이 만든 최고의 걸작 중 하나로 손꼽히는 만병천의(萬兵天衣)도 구할 수 있었다.
만병천의는 정확하게 말하면 철노인 혼자만의 작품이 아니었다. 그것의 제작에는 철노인과 상당히 친한 또 한 명의 전설적인 제작 유저인 천잠노인이 참여했었다.
신의 손을 가진 두 노인네라는 뜻으로 신수쌍노(神手雙老)라 불리는 철노인과 천잠노인이 힘을 합쳐 만든 만병천의.
그것은 오로지 단 한 벌만 만들어졌기 때문에 그 가치가 더욱 높았다.
정확히 말하자면 능력치가 달려있는 장비 아이템이 아니었다. 그저 장비를 입고 걸치는 피풍의 같은 겉옷이었다.
하지만 당연히 두 전설적인 제작 유저가 만든 물건답게 평범하지 않았다.
나중엔 ‘만 개의 병기를 담을 수 있는 특별한 옷’이라고 더 잘 알려질 만병천의.
그 옷 곳곳에는 철노인과 천잠노인의 획기적인 기술들이 들어가 있었다.
난 이 만병천의을 4만 골드에 내 것으로 만들었다.
이것은 사실 나중에 가면 그 값어치가 수십만 골드를 호가하는 물건이었다.
철노인과 천잠노인은 이후로 절대 이 만병천의를 다시 만들지 않았기 때문에 이 물건의 희귀성은 당연히 시간이 지날수록 더 높아질 것이다. 또한 이 물건의 진정한 성능이 밝혀지기 시작하면 너도나도 이것을 소유하려 할 것이다.
한마디로 시간이 지나면 대단한 기물이 될 물건이었다.
하지만 적어도 지금은 그저 철노인과 천잠노인이 만든 희귀한 겉옷 정도로만 인식되었다.
이 옷을 내가 구할 수 있었던 이유는 오로지 철노인과 천잠노인이 설정해놓은 이 물건의 초기 가격 덕분이었다.
무려 4만 골드.
이 전설적인 두 제작유저는 자신들이 힘을 합쳐 만든 만병천의가 헐값에 팔리는 건 도저히 용납 못 했는지 경매 시작가격을 4만 골드로 해놓았다.
결국 만병천의는 그렇게 무려 두 달 가까이 계속 유찰이 되며 경매장 구석에서 먼지만 쌓여갔다.
하마터면 나도 발견하지 못할 뻔했다.
난 정말 우연히 만병천의를 발견하고 주먹을 불끈 쥐었다. 그만큼 만병천의는 대단한 물건이었다.
생각지도 못하게 만병천의란 기물을 얻었다.
덕분에 지출은 큰 폭으로 증가했지만 이런 물건은 돈이 있다고 구할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난 그밖에도 몇 가지 최상급 아이템을 더 구했다.
그렇게 해서 쓴 돈이 총 16만 3,500골드.
아마 동대륙의 경매꾼들은 갑작스러운 큰 손의 등장에 깜짝 놀랐을 것이다.
지금쯤 그들은 큰 손의 정체를 알기 위해 동분서주하고 있겠지만…… 아쉽게도 그 큰 손은 이제 그만 경매장에서 퇴장할 생각이었다.
일주일간의 다소 긴…… 하지만 확실한 재정비를 끝낸 난 일단 잠시 게임 밖으로 나왔다.
난 일주일 동안 단순히 재정비만 하지 않았다.
재정비와 함께 정보를 모았다.
게임 속에서도…… 그리고 게임 밖에서도!
내가 구하는 정보는 다양했지만 그 중에서도 난 일월신교와 관련된 모든 자세한 정보를 구했다.
게임 속에서는 각종 정보 길드에 골드를 아낌없이 풀었다. 좋은 정보만 얻을 수 있다면 골드는 아깝지 않다.
그리고 현실에서는 SO의 정보를 바탕으로 구할 수 있는 사설 정보지는 모두 구해보았다.
약간은 마구잡이식 정보수집이었지만 자금력이 충분히 받쳐준다면 그 어떤 정보수집방식보다 이 방식이 좋았다.
일단 모조리 정보를 끌어모으고…… 그다음 분류한다.
애초에 선별해서 정보를 모으는 것과 비교하면 단점이 많은 방식이겠지만 적어도 나에겐 그 단점이 별로 단점처럼 느껴지지 않았다.
* * *
게임 안에서 모은 정보와 게임 밖에서 모은 정보를 한곳에 모았다.
그리고 그 정보들을 컴퓨터의 도움으로 종류별로 다 나누고 하나하나 내가 모두 살펴보기 시작했다.
‘One’을 시작하고 처음으로 이틀 동안 한 번도 게임에 접속하지 않았다. 그 시간동안 난 게임 밖에서 모은 정보를 모조리 살펴보았다.
그리고 그 정보들을 정리해 머릿속에 정확히 기억한 후 다시 게임에 접속했다.
게임 안의 정보는 밖의 정보보다 좀 더 다양했다.
난 정확히 5일(게임시간) 동안 객잔의 방에 앉아 정보들을 정리했다.
틈틈이 수면을 취하며 꼬박 5일을 모두 정보 분석에 사용했다.
그리고 그 정보들을 일일이 문서로 정리해보았다.
게임 밖이었다면 단지 명령 한 번 내리는 것만으로 정리가 끝났겠지만 게임 속에서는 그렇게 할 수 없었다.
그래서 일일이 손으로 기록해 문서로 정리하는 수밖에 없었다.
게임 밖에서 정리한 정보들. 그리고 안에서 정리한 정보들.
난 이 두 가지를 서로 비교해가며 내가 원하는 정보들을 추려내기 시작했다.
현실에서 2일.
가상현실에서 5일.
그리고 마지막 총정리에 하루.
꼬박 12일(게임시간)을 정보를 분석하는데 써버렸다.
어느새 내가 장기 임대한 객잔 방은 종이 문서들이 산처럼 쌓여 있다.
“이거 차라리 혼자 보스 몬스터를 잡았으면 잡았지…… 다시는 할 짓이 아니네.”
난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중얼거렸다.
매번 정보를 이렇게 모으는 건 아니었지만 제대로 한 번 해보려고 하고 했더니…… 생각보다 대단히 힘들고 지겨운 작업이었다.
“……나중에 내 전용 정보 길드를 하나 만들까?”
문득 난 이런 귀찮은 일을 대신 해주는 길드가 하나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렇다면 지금처럼 고생하지 않아도 고급 정보들을 마음껏 얻을 수 있을 것 같았다.
물론 그건 그냥 단지 생각일 뿐이다.
사실상 난 길드를 관리할 여유도 의지도 없었기 때문에 길드를 만들거나 할 생각은 하지도 못했다.
여하튼 어렵고 지겨운 작업이었지만 이번만큼은 확실하게 정보를 뽑아냈다.
내 손에 들린 몇 장의 문서.
이것이 내가 12일 동안 분석한 정보의 핵심이다.
“낮에는 인간이고 밤에는 늑대가 되는 일월인랑(日月人狼)이라는 몬스터…… 이것부터 시작해야 하나?”
일단 가능성 80%라고 써놓은 일월인랑부터 시작하는 게 좋을 것 같다.
마음 같아서는 내 기억 속에 있는 일월신교에 대한 기억을 이용하고 싶었지만…… 사실 얼마 전 내 이름을 찾고부터 미래에 대한 기억이 점점 희미해지고 있었다.
그나마 내가 미리 적어놓은 몇 가지 사실들 때문에 아직 미래에 대한 큰 줄기는 대략 알고 있었지만 예전엔 아주 잘 기억이 나던 미래에 대한 소소한 기억들이 이젠 거의 떠오르지 않았다.
이것 역시 내가 요즘 겪고 있는 변화 중 하나였다.
요즘은 내가 미래에서 과거로 회귀했다는 사실도 마치 환상처럼 느껴진다.
이런 것들 때문이라도 난 한시라도 빨리 ‘One’에 숨겨져 있는 비밀들을 알아내야 했다.
“일월인랑…… 인휘성(人輝城)인가?”
인휘성이라면 호남성에서 대략 10일(게임시간) 거리에 있는 중형 성이었다. 아마도 내가 등록해놓은 포탈들을 이용하면 이틀 정도면 갈 수 있을 것 같았다.
“가자.”
난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방을 가득 채우고 있던 문서들은 모두 간단하게 폐기시켜 버렸다.
어차피 손에 들고 있는 이 몇 장의 문서와.
미리 만들어놓은 한 권의 책이 핵심이었다. 나머지는 그저 버려도 되는 쓰레기일 뿐이었다.
이틀을 달려 인휘성에 도착했다.
인휘성에 도착한 난 곧장 일월인랑들이 등장한다는 일월곡을 향해 달려갔다.
일월곡은 레벨 300~500의 유저들이 주로 출입하는 상급의 사냥터였다.
그래서일까?
그곳엔 꽤 많은 유저들이 있었다.
하지만 일월곡은 상당히 넓었기 때문에 난 다른 유저들을 무시하고 계속 일월곡의 안쪽으로 들어갔다.
대부분의 유저들은 기껏해야 일월곡 외곽에서 일월인랑들 중 하급에 속하는 일인(日人)이나 월랑(月狼)들을 잡고 있었다.
그리고 몇 명의 상급 유저들(레벨 300~400 사이의 유저들)이 일월곡 중간쯤에 자리를 잡고 일월랑을 잡고 있었다.
일월랑은 레벨이 400에 이르는 강력한 몬스터였다. 특히 무리를 지어 다녔기 때문에 상급 유저들도 파티를 맺고 상당히 조심스럽게 사냥을 하고 있었다.
하지만 내 목적은 일월랑 따위가 아니었다.
난 조심스럽게 점점 다른 유저들과 떨어져 점점 일월곡 내부로 조금씩 들어갔다.
3차 전직을 하고 상당한 깨달음까지 얻어 강력해진 나였지만 일월곡은 방심할 곳이 아니었다.
무리는 하지 않았다.
천천히, 하지만 확실하게 일월인랑들을 제압하며 일월곡 내부로 계속 들어갔다.
시간이 그리 아깝진 않았다. 어차피 경험치도 꽤 괜찮게 주는 일월인랑들이라 사냥을 한다고 생각하면 되었다.
촤아아악!
양손에 들려 있던 음양도검이 서로 교차하고 지나가자 그 부근에 강력한 폭발이 일어났다.
꽈광!
조합스킬 블레이드 익스플로젼의 발현!
그런데 이건 평범한 블레이드 익스플로젼이 아니었다.
‘영웅의 포효’를 활성화시킨 상태에서 양손을 용마수로 변형시키고 천무신공의 효과가 더해진…… 거기에 그랜드마스터 등급의 지존신공이 개입한 격이 다른 블레이드 익스플로젼이었다.
“크아아악!”
크게 울부짖는 일월신수(日月神獸).
하지만 미안하게도 이건 단지 시작에 불과했다.
[크어어엉!]
묵이 어둠에서 튀어나와 일월신수의 오른쪽 옆구리를 물었다. 그와 동시에 난 로스트팬텀 보법을 이용해 일월신수의 왼쪽 옆구리로 파고들었다.
“장비 4번.”
철컥! 촤르릉!
내 손에 들려있던 음양도검이 엘레멘탈 블레이드로 바뀌었다.
그리고 린과의 대련을 통해 새롭게 만들어내었던 획기적인 기술이 발동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