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더 로드(The Lord)-114화 (114/250)

114. 포기

* * *

우승이 결정되자 그 뒤의 절차는 모든 게 빠르게 진행되었다. 아무래도 주작 투기장 측이 혈주작의 충격적인 패배를 빨리 잊기 위해 고의로 그렇게 하는 것 같았지만 난 이렇게 해주는 게 훨씬 좋았다.

우승 상금으로 천 골드를 받고 부상으로 상급의 술법이 담긴 스킬북 하나를 받았다.

이 두 가지는 생각지도 못한 보너스였다.

우승할 것만 생각했지 정작 우승을 하면 무엇을 받는지 아예 생각하고 있지 않았었다.

그런데…… 생각하고 있지 않았던 것은 또 있었다.

바로 우승자에게 주어지는 하나의 특권.

동대륙 최강자라고 소문난 천위강과의 투기장 대결이었다.

난 순간 고민을 할 수밖에 없었다.

천위강이었다.

천무칠성의 일원이자 투신이라 불리는 투기장의 전설.

그런 유저와 싸워볼 수 있는 건 큰 기회였다.

투기장을 좋아하는, 아니 투기장을 좋아하지 않는 유저라도 기회가 된다면 꼭 한번 싸워보고 싶은 사람이 바로 천위강이었다.

친선경기였기 때문에 단 한 경기만 치를 예정이었다.

그것도 바로 지금…… 난 얼떨결에 천위강과 마주 보는 대기선에 서게 되었다.

아마도 주작 투기장의 원래 계획대로 혈주작이 우승했다면 아마 이런저런 행사도 하면서 최대한 사람들의 관심을 끈 후 천위강과의 대결로 대미를 장식했을 것이다.

하지만 갑자기 생각하지도 못한 내가 우승하게 되자 주작 투기장을 조금이라도 빨리 이번 대회를 끝내기 위해 노력하고 있었다.

이것이 그들이 할 수 있는 최선의 선택이었다.

어쨌든 그런 사정으로 인해 난 갑작스럽게 천위강과 대결하게 되었다.

너무나 갑작스러워 제대로 준비도 하지 못했다.

물론 어차피 천위강에 대한 정보는 내 머릿속에 남아 있는 전 생애의 기억 약간뿐이었다. 그렇기에 준비할 수 있는 것도 별로 없었지만 그래도 왠지 이건 아닌 것 같았다.

‘천위강이라…… 천위강…… 천위강…….’

눈앞에 서 있는 진짜 천위강을 바라보자 왠지 모르게 몸이 달아올랐다.

천위강은 진정한 강자였다.

예전의 난 감히 대결을 해보지도 못한 그런 진짜 강자.

그런 사람과 대결한다고 생각하니 절로 몸이 뜨거워졌다.

관중들도 주작 투기장의 최강자인 혈주작을 일방적으로 찍어 누른 후 승리를 차지한 나와 동대륙 최강의 남자라 소문난 천위강의 대결에 뜨거운 관심을 보이며 집중하고 있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천위강의 우세를 점쳤지만 생각보다 많은 사람들이 나를 응원하고 있었다.

천만년우주방어술사가 아닌 동대륙 최고의 전투술사라고 부르짖는 관중들…… 결승전 전과 후는 완전히 달라져 있었다.

이벤트 전이었지만 기본 형식은 보통의 투기장 전투와 같았다.

띠이!

신호와 함께 대기선의 보호막은 사라졌고 관중석에는 보호막이 생겨났다.

지형은 광활한 들판…… 거점 기둥은 4개가 생성되었다.

천위강은 서두르지 않았다.

그는 거점 기둥은 신경 쓰지 않고 천천히 나를 향해 걸어왔다.

나 역시…… 그런 천위강을 향해 천천히 걸어갔다.

경기장 중앙.

천위강과 내가 마주 보고 섰다.

“……그동안의 경기는 잘 봤습니다.”

천위강은 나를 바라보며 먼저 입을 열었다.

“저도 당신의 소문은 귀가 닳도록 들었습니다.”

“과장된 소문들일 뿐이죠.”

가까이에서 본 천위강은 정말 평범해 보였다. 낡은 철검 한 자루에 가벼운 차림의 회색 경장.

보다 좋은 아이템으로 온몸을 도배하려고 하는 보통의 유저들과는 전혀 다른 모습이었다.

“그런데…… 무명객 님은 이번 대결에서도 역시 지금까지처럼 힘을 숨기고 하실 생각입니까?”

천위강은 마치 모든 걸 알고 있는 표정으로 나를 향해 물었다.

“알고 계셨습니까?”

난 별로 놀라지 않았다.

천위강 정도의 유저라면 충분히 예상할 수 있을 수 있다. 확실히 1억 명이 넘는 그 많은 유저들 중 탑(TOP)이 된다는 건 절대 평범할 수 없다는 뜻이었다.

“뭐…… 정확히 어떤 힘을 숨기고 계신지는 모르지만…… 분명 지금의 모습이 전력을 다하는 게 아니라는 것쯤은 예상 할 수 있었습니다.”

천위강은 조용히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개인적인 사정상 어쩔 수가 없었습니다. 하지만…… 적어도 아직까진 숨겨진 힘을 쓰고 싶은 마음이 생기게 하는 이도 없었습니다.”

난 슬쩍 웃으며 천위강의 두 눈을 쳐다보았다.

“……하하하, 그렇군요.”

다시 한번 고개를 끄덕이는 천위강.

“그런데…….”

고개를 끄덕이던 천위강이 움직임을 멈추고 나를 똑바로 바라보았다.

“제 앞에서도 그 마음이 계속 유지 될 것이라고 생각하십니까?”

고오오오오오!!

순식간에 늘어나는 천위강의 투기.

순간 평범하게만 보이던 천위강의 모습이 변하기 시작했다. 그의 존재감은 순식간에 투기장 전체를 가득 채웠다.

커졌다.

눈으로 보이는 그의 모습은 여전히 평범했지만 눈이 아닌 마음으로 느끼는 그의 모습은 너무나 거대해져있었다.

‘큭…… 이게 천무칠성의 진짜 힘인가?’

정말 대단했다.

난 지금 당장 폴리모프 망토를 벗어 던지고 천위강의 투기에 맞서 싸우고 싶었다.

확실히 그는 그의 말대로 힘의 제한 따위를 두고 상대할 인물이 아니었다.

내가 가진 모든 것을 이용해야 그와 상대가 가능할 것 같았다. 내 가슴 속에서도 투기가 마구 끓어올랐다.

빠득.

나는 어금니를 꽉 물었다.

진정 싸우길 원한다면 폴리모프 망토를 벗어 버리고 스스로 걸었던 스킬 제한도 풀어야 했다.

그래야 천위강과 시원한 일전을 펼칠 수 있었다.

하지만…… 이 단 한 번의 일전을 위해 지금까지 숨겨왔던 것들을 보여주는 선택을 하기란 쉽지 않았다.

사람들은 ‘더 로드’란 직업을 모른다.

그리고 나와 같은 방식으로 스킬을 익힐 수 있다는 것도 모른다. 이것이 알려진다면…… 난 이래저래 곤란한 일들을 많이 겪을 수 있었다.

특히 이곳은 수많은 사람의 관심이 집중된 투기장의 메인 경기장…… 본모습을 드러내고 전력을 다해 싸우긴 최악의 장소였다.

이러한 이유로 정체를 숨겼던 것이고 힘에 제한을 두었던 것이었다.

“……확실히 맞는 말이군요.”

어금니를 꽉 물고 있던 난 조용히 고개를 끄덕이며 천위강의 말에 동의했다.

천위강.

그는 강하다.

만약 그와 싸운다면 난 결국 내가 가진 모든 것을 보여주게 될 것이다.

내가 의도하지 않더라도…… 그의 강함에 이끌려 그렇게 될 게 분명했다.

지금 이 순간에도 계속 당장 망토를 던져버리고 내가 가진 온갖 스킬들을 이용해 투신이라고 불리는 천위강과 생사결을 겨루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힘은 힘에 이끌리는 법…… 마치 자석의 양극과 음극이 서로를 강하게 잡아당기는 것처럼…… 천위강은 내 안에 숨어있는 힘을 계속해서 끌어 당긴다.

이런 상황에서 적당히 싸운다는 건 절대 무리였다. 결국 이 상황을 피할 수 있는 길은 단 하나뿐이었다.

한동안 조용히 천위강의 두 눈동자를 바라보았다.

그리고 생각을 정리한 후 천천히 입을 열었다.

“그래서…….”

스윽.

한 발자국 뒤로 물러난다.

“저는…….”

그리고 모든 미련을 강제로 떨쳐버리며 몸을 돌린다.

“기권하겠습니다.”

뚜벅뚜벅.

난 천천히 경기장을 걸어 나왔다.

천위강에게 작별 인사 따윈 하지 않았다. 언젠간…… 그와 속 시원하게 한 번 싸워볼 생각이다.

하지만 적어도 지금은 아니다.

입을 굳게 다물고 몸 안에서 비명을 지르며 튀어나오려고 하는 투기를 억눌렀다.

지금은…… 일단 참아야 할 때다.

“뭐, 뭐야?”

“이게 무슨 일이야?”

“왜 안 싸워?”

“도대체 무슨 일이 일어난 거야?”

관중석은 갑작스러운 나의 돌발행동에 난리가 났지만 난 별로 신경 쓰지 않았다. 어차피 무명객은 당분간 나타나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결국 시간은 사람들의 기억에서 무명객을 지워줄 것이다.

그걸로 만족했다.

어차피 투기장 리그에 참여한 이유는 전직 퀘스트 때문이었다. 더 이상 내가 이곳에 있을 이유는 없었다.

난 약간은 씁쓸한 표정으로 호남성을 빠져나왔다.

원래는 사설 도박장에 들려 배당금을 가지고 나오려고 했지만 그건 어차피 어디로 도망갈 수 있는 돈이 아니었기 때문에 나중에 다시 들려서 가져가도 되었다.

호남성을 빠져나오는 내 머릿속에는 오로지 한 사람의 모습밖에 떠오르지 않았다.

투신 천위강.

그와 일전…… 아쉬움이 계속해서 나를 괴롭혔다.

정말 다음에 기회가 된다면 단둘이서 마음껏 싸워보고 싶었다. 지금의 내가 전력을 다한다면 과연 천위강을 이길 수 있을까?

그것이 상당히 궁금해졌다.

세븐스타 혹은 천무칠성.

소문으로는 늘 들었던 존재들. 난 그들의 강함을 직접 확인해보고 싶었다.

물론…… 그들을 꺾고 싶은 게 내 마음이었다.

일인군단을 꿈꾸는 나에게 그들은 일종의 지표였다. 그들을 모두 꺾는 그 순간이 바로 일인군단의 시작이었다.

오늘 천위강을 직접 만나보고 느낀 건 아직 많이 부족하다는 것이었다.

현재의 난 분명 강하다.

하지만 아직은 많이 부족했다. 더 강해져야 했다. 투신 천위강이라고 해도 가볍게 제압할 수 있을 정도의 힘을 가져야 했다.

이제 난 단순히 게임을 즐기기만 하는 사람이 아니었다.

난 게임 속에서 찾아야 할 것이 많았다.

특히…… 정체를 알 수 없는 그 남자에 대해 알기 위해서는 그가 원하는 대로 끝없이 강해질 필요가 있었다.

이런저런 소란을 피하기위해 빠르게 호남성을 벗어난 난 숲길로 걸음을 옮겼다.

“자~ 이제 그만 따라오시고 나오시죠?”

숲길로 접어든 난 슬쩍 뒤를 돌아보며 얘기했다.

스스슥.

그러자 뒤쪽 숲속에서 한 사람이 나타났다.

“역시 알고 계셨군요.”

특유의 넉넉한 피풍의를 입고 있던 검은 마녀가 상당히 어색한 모습으로 어둠 속에서 나타났다.

“당연히…… 일부러 그렇게 티를 내면서 따라오시는데 모를 수가 있나요.”

난 검은 마녀를 보며 웃었다.

그녀는 내가 투기장을 나오는 순간부터 내 뒤를 따라왔다. 전혀 은밀하지 않게…… 아니 아예 뒤따른다고 얘기라고 하는 것처럼 일부러 기척을 내며 따라왔다.

“우승…… 축하드립니다.”

그녀의 말투는 여전히 딱딱했다. 감정이 거의 느껴지지 않는…… 그런 말투였다. 하지만 그런 말투로도 최대한 예의를 차리려고 행동하는 그녀의 모습은 상당히 재미있게 느껴졌다.

“하하, 검은 마…….”

난 검은 마녀 님이 기권해주셔서 우승했다는 말을 하려다가 순간 말을 멈췄다. 이제 보니 난 그녀의 이름도 몰랐다.

하긴 나만 모르는 것이 아닐 것이다.

적어도 내가 알기론 그녀는 한 번도 자신의 본명을 말하고 다니지 않았었다.

“근데…… 혹시 이름을 물어봐도 될까요?”

그녀가 대답해 줄까? 대답할 가능성은 낮다고 생각했지만 그래도 일단 물어는 보았다.

“……린입니다.”

린, 외자에 세컨드 네임도 없었다. 아마도 그녀 역시 클로즈베타에 참여했던 유저인 것 같았다. 그런데 지금 그녀가 쑥스러워하는 건가?

난 처음으로 그녀의 말에서 약간의 감정을 느꼈다.

“아~ 린 님…… 우승은 린 님의 기권 덕분이었습니다.”

틀린 말은 아니었다.

그녀가 만약 죽기 살기로 덤볐다면 승패가 어떻게 되었을지는 몰랐다. 그녀는 천무칠성이…….

‘맞아! 천위강만 천무칠성인 것이 아니잖아!’

난 가까이에 천무칠성을 놔두고 멀리 있는 다른 천무칠성과 겨뤄보고 싶어 했었다.

검은 마녀라면 충분히 천위강과 비교가 될 만한 강자였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그녀와는 단둘이서 대결하는 것도 충분히 가능했다.

결정적으로 그녀가 원하는 것 역시 나와 대결 하는 것이었다.

“대련을 원하신다고 했죠?”

“네!”

내가 대련 얘기를 꺼내자 갑자기 그녀의 목소리가 밝아졌다. 이번에도 역시 약간의 감정이 느껴졌다. 왠지 대화하면서 조금씩 발전하는 것 같았다.

물론 아직도 피풍의에 달린 모자를 깊숙이 뒤집어쓰고 있어서 그녀의 얼굴이 보이지는 않았지만…… 아마도 지금 그녀의 눈동자는 초롱초롱 빛나고 있을 것 같았다.

“……그럼 일단 더 조용한 곳을 찾아보죠.”

난 조용히 고개를 끄덕이며 그녀와 함께 최대한 인적이 드문 곳을 향해 걸음을 옮겼다.

천무칠성과의 대결…… 천위강과는 하지 못한 그 대결을 할 수 있다고 생각하니 묘한 흥분이 내 몸을 살짝 훑고 지나갔다.

* * *

인적이 없는 곳을 찾다 보니 꽤 멀리 와버렸다.

이곳은 호남성 아래쪽에 있는 검산(劍山)이란 곳이었다. 검산은 그리 큰 산도 아니었고 특별히 몬스터들이 많이 등장하는 곳도 아니었다.

그래서 검산 깊숙한 곳에는 거의 유저가 올 가능성이 적었다.

난 검은 마녀와 함께 이곳으로 왔다.

여기라면…… 그녀와 얼마든지 대련을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대련이지만 특별한 제한 같은 건 없도록 하죠. 단…… 생명력이 500 이하로 내려가면 패한 걸로 하죠.”

대련하며 목숨을 걸 필요는 없었다.

특히 난 생명에 제한이 있는 직업을 지니고 있었기 때문에 혹시 모를 불상사를 조심해야 했다.

그녀는 말없이 고개를 끄덕이며 내 의견에 동의했다.

대략 반경 40m 정도 되는 공간에 긴장감이 맴돌았다. 그녀는 천천히 나와 어느 정도 거리를 벌린 후 몸 전체를 가리고 있던 피풍의를 벗었다.

이제야 완전히 드러나는 그녀의 얼굴.

검은 머리카락.

검은 눈동자.

그리고 이성을 마비시킬 것 같은 극한(極限)의 미(美).

난 잠시 아무 생각도 하지 않고 멍하니 그녀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쿵.

그녀가 입고 있던 피풍의는 도저히 옷이라고는 생각되지 않는 소리를 내며 땅바닥을 움푹 들어가 만들었다.

소리만 들어도 느껴지는 무게감.

그녀는 지금까지 저 무거운 망토를 입고 그렇게 움직였단 뜻이었다.

그런데 정작 난 그런 사실에 놀라지 않고 있다.

충분히 놀랄만한 일이었지만 지금의 난 다른 것에 모든 정신을 빼앗긴 상태였다.

난 게임 속에서 상대적으로 더 아름답다는 엘프족이나 다크엘프족을 선택한 많은 여인들을 봤었다.

그중에는 실제 연예인 출신의 미모를 자랑하는 이들도 있던 것으로 기억했다.

하지만 단연코!

지금 내 앞에 서 있는 이 여인만큼 아름다운 여인은 본 적이 없다.

난 감히 절대미(絶對美)라는 말을 사용하고 싶다.

자신의 모습에서 30%를 성형한다고 해서 저런 극한의 미가 완성될까?

아무리 완벽하게 성형을 성공시킨다고 해도 절대 이런 아름다움은 나올 수 없었다.

완벽한 조화와 완벽한 균형. 그리고 완벽한 곡선.

퍼펙트라는 말은 이럴 때 사용하라고 있는 말 같다.

“시작할까요?”

그녀가 말을 건네지 않았다면 아마도 난 한동안 계속 그녀를 멍하니 바라보고 있었을 것이다.

“네, 네? 아! 네. 시작하죠. 그런데…….”

그녀의 말 덕분에 현실로 돌아올 수 있었던 난 문득 그녀가 매우 낯이 익다는 느낌을 받았다.

“혹시 저랑 어디서 만난 적 있나요?”

난 살짝 고개를 갸웃거리며 물었다.

그러자 그녀의 표정이 살짝 어두워졌다.

“아니요, 아마도…… 없을 거예요.”

“그렇군요. 후우~ 자, 그럼 이제 시작할까요?”

낯이 익었지만 정확히 어디서 본지는 생각이 나지 않았다. 난 살짝 숨을 내쉬며 마음을 정리했다.

분명 그녀는 아름다웠지만 지금은 그녀와 대련을 하기 위해 서로 검을 겨눈 상황이었다.

전투 중 평정심을 유지하는 건 중요했다. 난 빠르게 평정심을 되찾으며 조용히 몸을 풀었다.

뚜둑.

조금씩 마음이 침착히 가라앉았다.

지금 내 앞에 있는 상대는 극한의 미를 지닌 아름다운 여인이 아니라 나와 한바탕 결전을 펼칠 천무칠성의 일인…… 검은 마녀였다.

그렇게 생각하자 완전히 그녀가 달라 보였다.

한 자루의 검.

그녀는 날카로운 벼려진 한 자루의 검과 같아 보였다.

내가 평정심을 되찾자 어두워졌던 그녀의 표정이 다시 밝아졌다.

그리곤 밝게 미소 지었다.

정말 아찔한 미소였다. 하지만 난 간신히 평정심을 유지 시킬 수 있었다. 정말 간신히…… 유지했다.

“……무명객 님은 다르네요.”

“하하, 뭐가 다른 거죠? 아! 그리고 제 이름은 무명객이 아닌 ‘신’입니다.”

검은 마녀도 본명을 말했으니 나도 본명을 말해주는 게 당연했다.

“신 님, 그럼 진짜 시작하겠습니다.”

스윽!

그녀는 검을 상단 자세로 잡으며 힘차게 소리쳤다.

지금까지와는 조금 다른 밝고 맑은 느낌이 드는 그녀의 목소리. 그렇게 나와 그녀의 대련이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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