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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로드(The Lord)-112화 (112/250)

112. 우승 ― 1

* * *

다시 게임에 들어갔을 때는 이미 내 결승전 상대가 결정되어 있었다.

예상대로 태권무적은 혈주작의 상대가 아니었다.

혈주작은 주작 투기장의 최강자답게 태권무적을 어렵지 않게 꺾었다.

혈주작이 결승에 올라오자 사람들은 마치 우승은 이미 결정되었다는 것처럼 떠들었다.

천년만년우주방어술사라 불리는 나의 우승을 점치는 이들은 한 명도 없었다.

혈주작은 서로 다른 길이의 일본도 두 자루를 사용하는 유저였다.

길이가 2m나 되는 주작도와 길이가 40cm밖에 되지 않는 혈도.

이 두 도를 이용해 펼치는 그의 도법은 상당히 강력했다.

두 도를 이용해 공격과 방어를 적절하게 조화시킬 줄 알았을 뿐만 아니라 거리가 떨어졌을 경우에는 혈도를 이용한 비도술(飛刀術)를 자유자재로 사용했다.

그의 이름은 이이다 쿄야.

이미 오래전부터 프로게이머 세계에서 탑 플레이어로 이름 날렸던 그는 전일본검도대회 4연속 우승자 출신이기도 했다.

경기장 여기저기에 일본의 국기나 일명 욱일기라고 불리는 깃발이 휘날리고 있었다.

이미 혈주작이 이이다 쿄야라는 사실은 알 만한 사람은 다 아는 사실이었기 때문에 관중 중 일본 출신 유저들은 노골적으로 이이다 쿄야를 응원하고 있었다.

난 그런 모습을 보며 살짝 눈살을 찌푸렸다.

한국인의 일본에 대한 반일 감정은 정말 아주 오랜 세월동안 계속되어온 것이었다. 비록 약 백여 년 전부터는 잦은 지진으로 인해 일본의 국력이 상당히 약해져 세계 4강 중 하나라 불리는 한국과 비교하기가 힘들어졌지만 아직도 한국인의 반일 감정은 옛날 그대로였다.

나도 대한민국의 국민 중 한 사람이라 그런 걸까?

특별히 애국심이 강한 사람은 아니었지만 관중석 곳곳에 보이는 일본기와 욱일기를 보니 기분이 별로 좋지 않다.

일본유저들의 요람이라 불리고 있는 호남성이라 그런지 유독 혈주작에 대한 응원이 많았다.

하지만 그런 응원은 왠지 나를 가볍게 자극해 준다.

스윽.

난 대기선으로 오르면 조용히 몸을 풀었다.

굳이 내가 스스로 설정해두었던 한계를 풀 생각은 없었지만 적어도 한계 안에서 최선을 다할 생각이었다.

띠이!! Start!!

경기가 시작되었다.

시작과 동시에 메인 경기장에 각종 건물들이 생겨났다. 번화한 시가지 지형이었다.

거점 기둥은 총 3개가 생겨났다. 아쉽게도 3개 모두 혈주작 쪽에 가까웠다.

거점 기둥의 위치까지 확인한 난 재빨리 바람의 정령 실프를 두 발에 빙의시킨 후 축지법과 패스트워크를 조합하여 사용했다. 일명 ‘고속전진’이라 불리는 조합스킬. 난 이것을 이용해 혈주작을 향해 빠르게 뛰쳐나갔다.

혈주작과 나 사이를 잇는 중앙의 대로.

난 이 대로를 이용해 최단 거리로 혈주작에게 달려갔다.

혈주작은 거점 기둥이 자신 쪽에 가까이 있는 것을 확인하자 먼저 거점 포인트를 만들려고 했다.

하지만 난 그걸 가만히 보고 있지 않았다.

‘거점 기둥은 포기한다.’

일단 전략이 결정되었으면 미련을 두면 안 된다.

스킬발동 하급주술 화염의 인(刃)

연계스킬발동 화염의 인, 화염의 인!!

화륵!

작은 화염의 칼날이 동시에 세 개가 허공을 갈랐다.

천만년우주방어술사에겐 어울리지 않는 선공(先攻). 본명을 되찾고…… 원래의 내 모습을 되찾은 난 이제 더 이상 과도하게 내 자신을 숨길 생각을 하지 않았다.

혈주작은 내가 이렇게 과감하게 선공을 펼칠 것이라 예상하지 못했는지 약간 당황하는 표정이었다.

하지만 그는 차분하게 주작도를 휘둘러 세 개의 화염을 가볍게 갈라버렸다.

주작도는 단순히 화염만을 가르지 않았다. 단 두 번의 움직임으로 3개의 화염을 모두 갈라버린 주작도는 다시 한번 나를 향해 휘둘러졌다.

그 순간 주작도에서 아주 날카로운 예기가 느껴졌다.

‘위험!’

난 재빨리 두 다리에 힘을 주며 허리를 뒤로 젖혔다.

철판교(鐵板橋)라 불리는 기본적이지만 상당히 난이도가 있는 경신법이었다.

촤악!

한 줄기의 강기가 허공을 갈랐다.

혈주작은 이미 3차 전직을 끝낸 마스터(초절정)급 유저였다. 마스터급 유저의 가장 큰 특징은 강기(오러블레이드)의 사용이 자유롭다는 것이었다.

꽈광! 쿠쿠쿵!

내 뒤에 있던 작은 건물 하나가 무너지며 땅이 울렸다. 난 급하게 허리를 뒤로 젖히는 바람에 그 작은 울림에도 중심이 흐트러질 수밖에 없었다.

아슬아슬하게 혈주작의 반격을 피했지만 덕분에 틈이 생기고 말았다.

혈주작은 이 틈을 놓치지 않았다.

치지직!

긴 주작도를 땅바닥을 긁으며 나를 향해 다시 한번 휘둘렀다.

쩌저적!

땅바닥을 가르며 세로로 쏘아진 강기.

이번엔 공격은 방금 반격보다 훨씬 강력하게 느껴졌다.

혈주작은 강기를 쏘아낸 후 또 한 번의 공격을 준비하는 것처럼 보였다.

이대로 계속 피할 수만은 없었다.

‘반격이다!’

난 땅바닥에 넘어진 상태에서 곧장 양손을 나에게 쏘아진 강기를 향해 뻗었다.

마수소환 철벽!!

취리릭!

마력이 일순간에 빠져나가며 딱정벌레 모양의 마수가 내 양손 앞에 소환되었다.

쩌저정!

주르륵!

충격과 함께 뒤로 몇 미터 밀려났다. 마수 철벽을 이용해 강력한 혈주작의 공격을 막아낼 수 있었다.

다소 급하게 소환했지만 철벽은 혈주작의 공격을 버텨냈다. 그리고 그 공격의 50% 정도를 다시 반사시켰다.

“헉!”

혈주작은 비록 절반으로 약해졌다지만 자신의 공격 그대로 다시 자신을 향해 반사되자 깜짝 놀랐다.

하지만 이 정도로 놀라면 곤란했다.

진짜는 지금부터였다.

아이템스킬 속보!

아이템스킬 질주!

스킬조합 환영보 + 쉐도우스텝(Shadow Step)

문워크(Moon Walk)!!

난 내 부츠에 내장된 마법을 모두 사용하며 동시에 최대 6개의 환영을 남길 수 있는 문워크를 사용했다.

속보로 인해 1분간 이동 속도가 2배가 되었기 때문에 난 무려 진짜 같은 환영 6개를 만들며 혈주작을 압박했다.

꽝!

주작도를 휘둘러 혈주작은 내가 반사한 자신의 공격을 흩어버렸지만 그 사이 이미 난 6개의 환영을 만들어 그를 혼란시켰다.

아무리 그가 마스터급의 유저라고 해도 순간적으로 날 놓쳤기 때문에 진짜 내가 어디에 있는지 정확하게 잡아낼 수 없었다.

“이놈!”

혈주작은 나를 찾아내길 포기했다.

대신 선택한 것이 6개의 환영과 진짜 나. 총 7명의 나를 모두 공격하는 것이었다.

챙!

그는 혈도마저 뽑았다. 양손에 하나씩 두 개의 도가 날카로운 기운을 뿜어내었다.

“잔재주는 여기까지다!”

츠리릿!

그는 두 개의 도를 모두 거꾸로 고쳐 잡곤 그대로 몸을 돌렸다.

그러자 그를 중심으로 사방으로 수십 개의 마나소드(검기)가 뿜어져 나왔다.

오러블레이드(강기)보단 위력이 약한 검기였지만 그 공격범위만은 상당했다.

순식간에 6개의 환영 중 5개가 사라졌다.

남은 건 재수가 좋게 검기가 모두 비껴간 한 개의 환영과 검기를 모두 피한 나뿐이었다.

하지만 혈주작은 이 한 번의 공격으로 정확하게 내 위치를 파악했다.

환영은 보법을 펼치지 못했고 난 펼칠 수 있었다.

혈주작은 그 차이를 놓칠 인물이 아니었다.

“죽어랏!”

나를 발견한 혈주작은 곧장 나를 향해 두 자루의 도를 교차시키며 휘둘렀다.

정확하고 위력적인 공격.

하지만 내가 멍하니 혈주작의 공격을 보고만 있었던 게 아니었다.

난 이미 관찰스킬을 최대로 사용하고 있는 두 눈을 통해 혈주작의 움직임을 머릿속에 그려놓았다.

관찰스킬로 그려진 그 움직임은 명상 스킬을 통해 또 한 번 가공되었다.

두 가지 스킬을 이용해 난 혈주작의 움직임을 미리 상상했었다.

그리고 그의 두 검이 나를 향해 움직이기 시작한 그 순간.

난 정확하게 그의 공격 타이밍과 괘도를 예측했다.

‘지금!’

스르륵. 스륵.

왼쪽으로 한 발자국을 걸었다.

사삭!

오른쪽 어깨를 살짝 스치고 지나가는 첫 번째 도강(刀罡).

오른쪽으로 한 발자국을 걸으며 몸 살짝 비틀었다.

치잉!

왼쪽 어깨와 귓불을 아슬아슬하게 비껴가는 두 번째 도강.

단 두 걸음이다.

유수행을 통해 걸은 그 두 발자국의 걸음으로 나를 향해 교차해 날아오는 두 개의 반월형 강기를 완벽하게 흘려보냈다.

꽈과광! 꽈광!

뒤쪽의 건물 하나가 또 박살이 났다.

엄밀히 따지면 이것은 스킬이 아니었다. 하지만 그 어떤 스킬보다 대단한 위력을 발휘했다.

관찰스킬과 명상스킬 그리고 유수행.

전혀 어울리지 않는 세 가지 스킬이 지금 상황에 가장 알맞은 두 번의 움직임을 만들어냈다.

물론 난 단지 피하는 것만으로 만족할 사람이 아니었다. 두 발을 이용해 혈주작의 공격을 피하고 있던 와중에도 내 양손은 각기 다른 수인을 계속 맺으며 한 가지 조합스킬을 준비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것을 사용할 타이밍은 바로 지금이었다.

스킬조합 천지조화(天地造化)의 술(術) 천라지망(天羅地網)! + 상급마법 페럴라이즈(Paralyze)

디텐션(detention)!!!!

촤아아아아아악!

다소 어려운 스킬들의 조합이라 시간이 좀 걸렸지만 일단 발동만 제대로 된다면 효과는 확실히 보장할 수 있었다.

그리고 마무리도 완벽하게 준비해놓았다.

연계발동 상급카드마법 마리오네트.

츠리리릿! 스스스스슥!

순식간에 혈주작을 감싸는 무형의 기운들.

디텐션과 마리오네트가 제대로 들어갔다. 이것들은 내가 알고 있는 대인 속박 기술 중 가장 강력한 것들이었다.

“컥!”

혈주작은 내가 자신을 순간적으로 묶어버릴 것이라곤 생각하지 못했는지 믿기지 않는 듯 나를 바라보았다.

그리곤 자신을 억누르고 있는 기운을 날려버리기 위해 안간힘을 썼다.

우드득!

절대 빠져나올 수 없다. 오히려 발악할수록 구속력만 더욱 강력해질 것이다.

하지만 그가 아무리 노력해도 이렇게 완벽하게 ‘디텐션’과 ‘마리오네트’ 스킬에 걸린 이상 무조건 10초 정도는 손가락 하나 움직일 수 없었다.

그리고 그 10초라는 시간은 나에게 찾아온 큰 기회였다.

“장비 9번.”

촤르르륵.

한 개의 마법책이 내 눈앞에 생성되었다. 마법총서란 이름을 지닌 아이템.

얼마 전 엘리트아이템으로 승격시킨 이 아이템은 내가 지금까지 아껴 두었던 전가의 보도(寶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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