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더 로드(The Lord)-108화 (108/250)

108. 계속되는 승리 ― 2

* * *

“와아아아!”

함성 소리가 울려 퍼졌다.

주작 투기장 갑 조 리그 1:1대회 32강전이 열리는 주작 투기장의 메인 경기장에 수만 명의 관중들이 가득 들어차 있었다.

환호하는 관중들…… 그들의 모습은 메인 경기장 상공에 떠있는 대형 홀로그램 모니터에 출력되었다.

현존하는 대부분의 게임방송은 각각 투기장에 해박한 지식을 지닌 해설자와 캐스터까지 동원해 이 뜨거운 열기를 직접 방송으로 내보내고 있었다.

비록 직접 이 경기장에 찾아오지는 못했지만 많은 수의 유저들이 이 방송을 보며 제각각 의견을 쏟아내었다.

혈주작이 얼마나 정성을 쏟았는지 한눈에 보이는 광경.

그렇게 대회 3일째 일정이 시작되었다.

첫 번째 대결은 현무 투기장에서 나름 이름을 날리던 한 북유럽 유저와 요코라는 이름을 지닌 일본 유저와의 대결이었다.

경기는 무척 치열했다.

첫 경기부터 화려하게 공방을 주고받는 두 유저의 모습에 관중들 그리고 게임방송의 중계진도 크게 흥분했다.

보는 이들을 즐겁게 하는 경기.

메인 경기장 곳곳에 설치되어 있는 카메라들은 그들의 모습을 예술처럼 잡아내었고…… 그 모습을 본 유저들은 그저 감탄할 수밖에 없었다.

승리는 요코가 따냈지만 관중들은 두 사람 모두에게 아낌없이 박수를 보내주었다.

그리고 계속해서 이어진 경기들…… 한 경기, 한 경기가 다 재미있는 경기였다.

경기 수준이 동대륙 최고의 투기장이라는 현무 투기장의 갑 조 리그 수준보다 높았으니…… 그 재미는 당연히 보장된 것이었다.

박빙의 경기가 계속되고 해설자와 캐스터들은 명경기라는 말을 거듭했다.

그렇게 열다섯 경기가 끝났다.

이제 남은 건 마지막 한 경기.

이번 대회에서 최악의 참가자라는 오명을 얻고 있는 천만년방어술사 무명객과 현무와 주작 투기장의 뒤를 잇는 동대륙 투기장 서열 3번째 열혈 투기장의 에이스 후야오의 대결.

사람들은 당연히 후야오의 승리를 예상했다.

아니 그냥 후야오를 응원했다. 정말 몇몇 취향이 특이한 사람을 제외하곤 전부 후야오의 승리를 기원했다.

늘 방어만 계속하다가 상대방을 천천히 말려 죽이는 무명객의 전투 스타일은 정말 인기가 없었다.

반면 후야오는 쌍검을 쓰는 화끈한 근접전이 특기인 검사 유저였다.

한마디로 창과 방패의 대결이었다.

관중들이 창이라 할 수 있는 후야오를 응원하는 건 당연한 일이었다.

누가 지루한 경기를 보고 싶겠는가? 무명객의 천만년 방어스타일은 승률은 높을지라도 인기는 거의 얻지 못하는 그런 스타일이었다.

어쨌든 그렇게 일방적인 응원이 후야오에게 쏟아지는 상태에서 경기가 시작되었다.

일단 지형은 폐허가 된 마을이었다. 그리고 거점은 4개…… 위치는 적당히 퍼져 있어서 딱히 누구에게 좋다고 말할 수 없었다.

경기가 시작되고 거점을 2개씩 사이좋게 나눠 가진 후야오와 무명객은 중앙 부근에서 전투를 시작했다.

역시나…… 관중들의 예상대로 무명객은 철저히 방어 위주로 플레이를 했고 후야오는 그런 무명객을 잡기 위해 공격에 집중했다.

이번에도 관중들은 야유를 쏟아 냈지만 어차피 무명객에는 들리지도 않았다.

설사 들렸다고 해도 그런 걸 신경 쓸 무명객이 아니었다.

그는 철저히 방어만 하며 간단한 반격만 계속했고 후야오는 잡힐 듯 잡힐 듯 안 잡히는 무명객의 모습에 더욱 미친 듯이 공격에 집중했다.

그리고…… 20분 정도가 지난 후 결과가 나왔다.

무명객 승.

후야오는 결국 무명객의 방어를 뚫지 못했고 오히려 무명객의 지속된 반격에 생명력을 거의 잃고 게임을 포기했다.

가랑비에 옷 젖는지 모른다는 말처럼…… 후야오는 무명객의 반격을 너무 무시했었다.

당연히 관중들은 크게 야유를 보내며 무명객을 비웃었다.

하지만 그들이 알까?

무명객이 고의로 후야오에게 약간의 빈틈을 계속 보여주었고 그걸 본 후야오는 어쩔 수 없이 공격 일변도로 전투를 끌고 갈 수밖에 없었다는 것을…… 그리고 언제나 칼 같은 타이밍으로 완벽한 반격을 했다는 것을…… 아마도 그들은 평생을 가도 그 사실을 모를 것이다.

이건 후야오도 마찬가지였다.

그 역시 무명객이 고의라 자신을 유인했다고 전혀 생각하지 못했다.

그렇기에 2차전에서도 처음엔 조금 조심하다가 결국 또 조금씩 공격에 집중하게 되고…… 그 결과 30분이 조금 안 되는 시간 만에 다시 패하게 되었다.

완벽한 방패의 승리.

인기가 없다고 게임에서 지는 건 아니라는 사실을 무명객이 직접 보여주었다.

보통은 승률과 인기는 비례하건만…… 이 무명객은 승률과 인기가 반비례하는 것 같은 모습을 보여주었다.

그런 것을 보면 무명객은 정말 특이한 유저였다.

* * *

32강의 상대 후야오는 묘월보다 두 수는 떨어지는 상대였다. 그리고 방금 끝난 16강 상대 역시 후야오와 거의 비슷한…… 묘월보다는 두 단계 정도 아래인 유저였다.

난 16강도 지금까지와 마찬가지로 방어 위주의 플레이를 통해 가볍게 승리를 따냈다. 사람들은 내가 참 치사하고 손쉽게 방어만 해서 승리를 따낸 것이라고 생각하겠지만 사실 내 입장에선 이렇게 플레이하는 게 더 어려웠다.

차라리 그냥 원래 내 방식대로 플레이하면 난 더 쉽게 이길 수 있었다.

그런데도 내가 굳이 이렇게 어렵게 플레이하는 건…… 두 가지 이유 때문이었다.

첫째, 사람들의 주목을 받아 귀찮아지는 게 싫어서.

그리고 둘째, 조금이라도 더 연습하기 위해서.

이 두 가지 이유 때문에 난 방어 위주로 플레이하며 게임 시간을 최대한 활용했다.

아무래도 투기장 플레이가 처음인 나였기 때문에 이런 식으로라도 연습을 계속할 필요가 있었다.

난 그렇게 16강 상대마저 30분에 걸쳐 천천히 말려 죽였다. 그것도 두 번이나…….

16강 경기가 끝나자 내 별명은 더 이상 천만년방어술사가 아니었다.

천만년우주방어술사.

별명이 이렇게 바뀌었다.

우주라는 단어가 추가되었다. 사람들의 야유는 여전했지만…… 재미있게도 그 야유 속에서 간간이 날 응원하는 사람을 발견할 수 있었다.

전에는 볼 수 없던 광경.

아무래도 특이한 취향을 지닌 이들이 좀 있는 것 같았다.

이제 오늘 마지막으로 남은 경기는 8강 경기 하나였다. 난 대기실로 돌아와 조용히 명상 수련을 하며 8강 경기를 기다렸다.

그 와중에 몇몇 게임방송에서 나를 인터뷰하겠다고 찾아왔지만 당연히 모두 거절했다.

전직 퀘스트만 아니었다면 대회에도 참여하지 않았을 나였다. 그런 나에게 인터뷰라니…… 투기장을 즐기는 유저 중 대부분이 인기를 얻어 방송에 데뷔하고 전문 프로게이머의 삶을 사는 것이라지만 나는 아니었다.

물론 막상 투기장 콘텐츠를 즐겨보니 상당히 재미있는 건 사실이었다. 나중에 기회가 된다면 좀 조용한 대회에 나가 다시 한번 즐겨보고 싶은 마음도 생길 정도였다.

하지만 프로게이머로 활동하는 건 사양이었다.

8강에 오르자 대우가 확 달라졌다. 그동안은 다른 유저들과 같이 대기실을 썼지만 지금은 나 혼자 대기실을 독차지하고 있었다.

가뜩이나 다른 유저들이 힐끔힐끔 쳐다보거나 노골적으로 무시하는 것 같은 눈빛을 보내는 게 귀찮았는데 잘된 일이었다.

명상 수련은 실전 수련만큼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꽤 큰 도움이 되었다. 특히 명상 스킬을 통한 수련이었기에 효과가 아주 좋았다.

내 머릿속에 적이 만들어진다. 그리고 그 적과 싸울 전장이 만들어진다.

지형은 밀림…… 거점 포인트가 3개 생성되었다.

만들어진 적은…… 지금까지 내가 싸웠던 이들의 장점을 모두 합친 괴물.

당연히 이곳만큼은 나도 전력을 다해야 했다.

가상의 공간에서 만난 가상의 적.

하지만 그 적의 기세는 무시무시했다.

치명적인 공격이 계속되었고 난 그 공격을 피하며 전력을 다해 반격했다.

계속된 치열한 공방.

이것은 혈투였다. 비록 정말로 현실에서 일어난 전투는 아니었지만 오히려 현실이 아니었기 때문에 더 치열하게 싸울 수 있었다.

“휴우~~.”

난 길게 한숨을 쉬며 감고 있던 눈을 떴다.

“확실히 아직 거점 포인트를 활용하는 능력이 부족한 거 같아.”

다른 건 다 자신 있었다.

하지만 투기장 거점 포인트 활용은 좀 자신이 없었다. 전생에서도 투기장은 그다지 활동해본 적이 없는 곳이라 오로지 이번 생에서의 경험만으로 풀어가야 했다.

결국 답은 하나였다.

열심히 노력하고 연구하는 것…… 그것뿐이었다.

난 다시 눈을 감고 명상 스킬을 활성화시켰다. 시간은 아직 많이 남아 있었고 명상 수련은 생각보다 재미있었다.

* * *

“안녕하세요~ GTV ‘오늘의 핫이슈!’ 진행을 맞고 있는 귀염둥이 이슬입니다.”

한 가상의 공간에 만들어진 스튜디오.

그곳에서 이슬은 밝게 웃으며 방송을 진행하고 있었다.

“오늘은 어제 예고해드렸죠? 요즘 큰 화제가 되고 있는 동대륙 주작 투기장 갑 조 리그의 본선 분석을 해드리겠습니다.”

이곳은 GTV에서 만든 ‘The One’ 전용 인터뷰 가상룸이었다. 가상현실 서비스는 ‘The One’ 출시 후 많은 발전을 거듭해 각종 분야에서 다양하게 쓰이고 있었다.

물론 아무리 그래도 ‘The One’처럼 완벽한 가상현실 공간을 제현하지는 못했기 때문에 가상현실이 현실의 모든 것을 대체하지는 못했지만 그래도 쓰임새가 많아진 건 사실이었다.

많은 전문가들은 ‘The One’을 돌연변이라 불렀다.

현대기술로는 뭔가 설명이 불가능한 돌연변이…… DH 그룹에서도 그 부분에 대해서는 그 어떤 대0답도 하지 않았다. 또한 ‘The One’을 만들었음에도 그 뒤에 그 기술력을 뛰어넘는 모습을 전혀 보여주지 못했다.

그저 다른 가상현실 기술팀과 비슷한 수준의 능력을 보여줄 뿐이었다.

덕분에 ‘The One’은 더욱 특별해졌다.

어쨌든 GTV의 가상룸은 그런 것을 감안해 보면 나름 잘 꾸며진 작은 공간이었다.

그 공간에는 몇 명의 사람들이 있었는데…… 진행자 이슬공주를 제외하면 모두 투기장 리그와 관련이 있는 사람들이었다.

실력 있는 투기장 해설자부터 현재 리그에 참여하고 있는 선수가 소속되어 있는 프로게임단 직원까지…… 다양한 사람들이 있었다.

“자~ 그럼 일단 투기장 해설가이자 전문 게임 평론가이신 김태형 해설위원님의 얘기부터 들어볼까요?”

이슬은 옆에 있는 남자를 바라보며 얘기했다.

“흠흠, 안녕하십니까. 김태형입니다. 이렇게 GTV 방송에 나온 건 참 오랜만이네요.”

천천히 얘기를 시작하는 김태형.

그는 현 대회의 전반적인 흐름과 본선 진출자들에 대한 간단한 자신의 의견을 얘기하며 방송을 시작했다.

그가 얘기하는 도중에도 그들의 뒤쪽에 설치된 대형 홀로그램 TV에서는 현재 방금 끝난 16강 전 하이라이트가 계속 나오고 있었다.

이슬의 진행에 따라 각자의 의견을 말하는 사람들…… 모두 하는 말은 제각각 달랐지만 딱 하나, 같은 것이 있었다.

바로 마지막 끝맺음으로 우승 예상후보를 말하는 것이었다.

몇 번의 얘기가 오가고 40분 정도 생방송으로 진행되었던 ‘오늘의 핫이슈!’가 끝날 시간이 거의 다 되었다.

“음~ 이제 거의 시간이 다 되었네요. 이제 조금만 더 있으면 8강전이 시작될 텐데요…… 어떠세요? 지금까지는 우승 후보를 말해봤는데…… 마지막으로 방송을 끝내며 이번 대회에서 가장 여러분을 놀라게 했던 유저가 누구인지 한번 말해볼까요?”

이슬은 환하게 웃으며 주변을 둘러보았다.

“음, 당연히 전 천만년우주방어술사라는 다소 긴 별명을 얻은 무명객입니다.”

“저도요.”

“저도 당연히 무명객입니다.”

순식간에 대부분의 사람들이 동의를 표시했다.

“아~ 전 좀 달라요. 전 무명인으로 하겠습니다. 아까도 말했지만…… 무명인은 분명 이번 대회에서 엄청난 이변을 만들어 낼 겁니다.”

게임 해설가 김태형만 무명인을 지목했고 다른 사람들은 모두 무명객을 뽑았다.

“호호호, 이거~ 여러분의 말을 들으니 8강전이 더욱 기대가 되네요. 자, 그럼 시청자 여러분 저희 GTV에서는 계속해서 이어지는 주작 투기장 갑 조 리그 8강전을 방송해 드리겠습니다. 채널 고정! 잊지 마세요~!”

이슬은 살짝 윙크하며 방송을 마무리 지었다.

16강전과 8강전 사이에 남는 시간동안 시청자들의 이탈을 막기 위해 기획했던 특별 ‘핫이슈’ 생방송은 이렇게 끝났다.

여기서도 무명객은 속된말로 좀 씹혔다.

오로지 한 명 김태형 해설위원만 그의 그런 플레이는 이기기 위해 최선을 다하는 모습이라고 말했을 뿐이었다.

천만년우주방어술사라는 별명을 얻은 무명객.

8강전에서 그가 만날 상대는…… 주작 투기장의 간부 중 한 명이자 혈주작의 심복인 다향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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