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더 로드(The Lord)-107화 (107/250)

107. 계속되는 승리 ― 1

* * *

묘월과의 전투는 상당히 치열했다.

그리고 적어도 나에게는 무척 재미있었다. 내가 묘월의 방심을 틈타 거점 포인트 두 개를 확보하자 묘월은 깔끔하게 그 포인트를 포기해버렸다.

그리곤…… 다시 은신을 사용해 내 시야에서 사라졌다.

아마도 거점 포인트마저 뺏긴 상태에서 나와 정면 대결은 힘들 것이라 판단한 것 같았다.

하지만 놈이 모르는 것이 있었으니…… 바로 내가 두 개의 거점을 모두 보조능력으로 설정했다는 점이었다.

난 중앙에 있는 놈의 거점을 공격해 놈의 공격을 유도한 후 기회가 왔을 때마다 거점 스킬을 사용해 놈을 괴롭혔다.

거점 스킬을 잘만 사용하면 대단한 위력을 발휘했는데 특히 놈에겐 탐색 스킬이나 속박 스킬이 아주 큰 효율을 보여주었다.

묘월은 기회가 될 때마다 그림자 류 스킬을 사용해 나를 암습했지만 이미 그의 타이밍은 나에게 모두 읽히고 있었다.

난 늘 블링크 스킬을 염두에 두고 약간은 여유 있게 공격을 했기 때문에 묘월의 암습은 번번이 실패할 수밖에 없었다.

암습이 실패할 때마다 난 가볍게 하급술법이나 마법을 이용해 차근차근 묘월의 생명력을 깎았다.

그나마 묘월은 거점을 생명력 거점으로 만들어놨는지 꽤 오래 버티는 모습을 보여주었지만 이미 승부는 결정이 난 상태였다.

암습은 계속해서 실패하고 강하진 않지만 내 단순하지만 빠른 공격에 계속 적중당한 묘월은 결국 15분이 지나지 않아 게임을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다시 한번 256강과 128강에서 보여주었던 철저한 방어 위주의 플레이를 보여주었다. 이번에도 역시 관중들은 나에게 큰 야유를 보내주었다.

그런 내 방어를 뚫기 위해 사용할 수 있는 모든 스킬을 활용해 공격한 묘월이었지만 결국 계속 막히며 결국 항복을 선언했다.

처음 몇 번의 공방은 어느 정도 화려했지만 마지막 10분 정도의 공방은 전혀 특별하지 않은…… 오히려 지루하다고 할 수 있는 전투였다.

후반 들어서는 내가 약간은 의도적으로 그렇게 만들었다. 계속해서 강조하는 것이지만…… 난 절대 특별한 사람처럼 보이기가 싫었다.

결국 난 그렇게 64강 경기에서도 승리를 따냈다.

이제 남은 건 본선 토너먼트뿐이었다.

어느새 투기장 갑 조 리그 1:1 대회는 절반의 일정을 소화하고 있었다.

* * *

커다란 원탁이 놓여 있는 회의실.

그곳엔 총 5명의 사람이 앉아 있었다. 뭔가를 논의하는 것처럼 보이는 이들…… 이들은 바로 주작 투기장의 실세라고 할 수 있는 주작단의 단장과 간부들이었다.

“일단 모든 것이 예상대로 순조롭게 진행되고 있습니다.”

한 남자의 보고.

그들은 현재 진행되고 있는 갑 조 리그에 대해 얘기하는 중이었다.

“무황성의 출현은 정말 뜻밖의 악재였지만 그래도 이 정도라면 충분히 선방했다고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맞습니다. 그리고 어차피…… 하급 유저들보단 중급, 상급 유저들이 더 중요하지 않겠습니까? 현재 호남성의 상인들도 모두 만족하고 있으니…… 아마 약속한 배당을 모두 지켜줄 겁니다. 아직 확실히 계산이 나오지는 않았지만…… 생각보다 유저들의 소비가 좋아서 대략 7천 골드 정도의 수입이 예상됩니다.”

“호오~ 처음 생각했던 4천 골드보다 훨씬 많은데?”

“당연하지 그건 최소로 잡았던 골드였고 잘만하면 9천 골드까지도 받을 수 있을 것 같다.”

“캬캬, 그 돈이면 이번 대회를 위해 여기저기에 쓴 돈을 충분히 메울 수 있겠네.”

주작단의 간부들은 제각각 의견을 말하며 즐거워하고 있었다. 이번 대회는 큰 성공을 거두었다.

덕분에 하남성의 상인들과 대회기간 동안 거둔 수입의 일정 비율을 받기로 한 계약은 주작단에게 큰 수익을 가져다주었다.

“자자, 조용히 하고…… 대회는 아직 안 끝났으니까. 다들 들떠서 웃고 다니지 말고 각자 맡은 소임을 다 하도록. 참, 다향아 이번 리그에 변수가 될 만한 유저들은 다 파악해 놨니?”

주작단의 단주인 혈주작은 현실에서도 자신에 옆자리에 앉은…… 현실에서도 아주 친한 동생인 다향이를 돌아보며 물었다.

“네, 현재 다 파악해 놨어요. 지금 현재 현무 투기장의 갑 조 리그 유저들이 대거 참가하고 여기저기 투기장에서 좀 날린다는 유저들이 많이 참여해서 64강 경기가 다 끝나고 32강 경기가 결정된 현재 생각보다 많은 변화가 일어났어요.”

지금까지 조용히 앉아 있던 다향은 준비한 자료를 간부들에게 돌리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뭐, 일단 당연히 여기에 계신 단장님과 간부분들 그리고 주작단의 정예인 주작일단(朱雀一團)에 소속된 5명의 유저들은 모두 32강에 올랐습니다.”

다향의 말에 나머지 사람들은 모두 당연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현무 투기장 출신 유저가 총 9명이 있어요. 모두 갑 조 리그 출신이고 그 중 주의할 유저는 돌격전차, 천리검향, 태권무적 이렇게 세 명인데…… 돌격전차는 현무 투기장 갑 조 리그에서 두 번이나 우승했던 강자고 천리검향은 우승은 없지만 최근에 갑 조 리그에서 가장 주목받고 있는 유저에요. 그리고 태권무적은 원래 1:1 대회에는 참가하지 않았던 유저지만…… 2:2 대회에서 우승을 7번이나 했던 굉장한 강자이고요.”

다향은 자료를 넘기며 계속해서 설명을 이어갔다.

“다음은 기타 투기장 우승자 출신이…… 총 8명이에요. 그렇게 눈에 띄는 유저는 없지만 요코라는 여성 유저와 이에스타라는 유저가 상당한 강자라는 평가를 받고 있어요. 특히 요코라는 여성 유저는 상당한 능력의 인술(忍術)을 보여주며 몇몇 이름 있는 강자들을 잡았어요.”

“인술?”

혈주작은 특이하다는 표정으로 중얼거렸다.

“네, 아무래도 본국(일본)의 유저 같은데…… 전투방식이 독특하다고 하네요.”

“재미있군.”

혈주작은 고개를 끄덕이며 웃었다.

다향은 그런 혈주작을 보며 계속해서 말을 이어갔다.

“그리고 나머지 6명은 출신이 확실하지 않은 유저들이에요. 6명 중 4명은 투기장이 아닌 필드 PvP에서 어느 정도 이름을 날린 이들이라 대충 확인이 가능했지만 남은 두 명의 유저는 가명을 사용했는지…… 아무것도 확인할 수 없었어요.”

“가명?”

“네, 이름만 봐도 노골적으로 느껴져요. 이름이 무명객과 무명인이에요. 둘 다…… 가명이 확실해 보이죠?”

“흐음…… 실력은 어느 정도나 되는데?”

“무명인은 상당히 뛰어난 쾌검술을 보여주고 있어요. 조심스럽게 예상해보면…… 주작일단 이상의 전투력을 가진 것으로 보여요.”

“호오! 주작일단이라!”

간부들은 하나 같이 놀란 표정을 지었다.

하지만 정작 혈주작은 별로 놀란 표정을 짓지 않았다. 그는 그냥 담담한 표정으로 다시 입을 열었다.

“무명객은?”

“……그게 무명객은 좀 독특해요.”

“독특하다고?”

“네, 모든 경기를 보지는 못하고 마지막 64강 경기만 봤는데…… 사실은 그 경기를 본 이유가 무명객 때문이 아니라 그의 상대인 묘월 때문이었어요.”

“호오~ 설마 현무 투기장에 그 묘월인가? 무명객이 묘월을 이겼나?”

주작단의 간부 중 한 명은 묘월을 알고 있는지 흥미롭다는 표정을 지으며 물었다.

“네, 그 묘월 맞아요. 그리고 이겼어요. 그런데…… 뭐랄까…… 기습적인 전략을 통한 승리였는데…… 좋게 말하면 지능적으로 나쁘게 말하면 얍삽하게 이겼어요.”

“얍삽하게?”

“……기습적인 전략으로 거점 포인트를 2:1로 만든 후 단단히 방어만 하며 묘월을 천천히 말려 죽였어요.”

“음, 하지만 그건 결국 무명객이 경기 운영을 잘했다는 뜻 아닌가?”

“물론 운영을 잘한 건 맞는데…… 관객들은 모두 무명객의 그런 플레이를 비난하고 있어요. 이미 무명객에겐 ‘천만년방어술사’라는 별명이 붙었어요.”

다향이 무명객에게 새롭게 붙은 별명까지 이야기하자 간부는 살짝 눈살을 찌푸리며 더 이상 말을 하지 않았다.

“……그래도 결국 승자는 무명객이고 패자는 묘월이다.”

말없이 얘기를 듣던 혈주작은 작게 한 마디하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는 뭘 하고 있지?”

혈주작은 조용히 창밖을 바라보며 물었다.

이곳에 혈주작이 말하는 그가 누구인지 모르는 이는 없었다.

“저희 주작단 비밀 연무장에서 조용히 명상하고 있어요.”

다향이 대답했다.

“명상?”

“네, 식사하는 시간을 빼면 모든 시간을 명상으로 보낸다고 하네요. 전 솔직히 그가 왜 동대륙 최강이라 불리는지…….”

“그만, 어설픈 너의 안목으로 함부로 그를 재단하려고 하지마라.”

조용히 다향의 말을 끊는 혈주작. 혈주작의 표정은 딱딱하게 굳어 있었다.

“하지만…….”

다향은 뭔가를 말하려 했지만 이번에도 역시 혈주작에게 말이 끊겼다.

“분명 지금은 그가 동대륙 최강이다. 그걸 부정하는 건 어리석은 짓이야…… 하지만 언젠간 내가 그를 꺾는다. 이번에 그를 섭외하기 위해 우리 주작단이 겪었던 굴욕…… 무려 한 달(게임시간)이란 시간을 그가 부탁한 일을 하기 위해 우리 주작단이 전부 움직였다는 걸 잊지 마라. 아직은 그가 최강이고 우린 그를 뒤쫓는 도전자들이다. 이번에 겪은 이 굴욕은 언젠가 다시 갚아주면 되는 것이다.”

혈주작은 굳은 표정으로 간부들을 향해 얘기했다. 그리고 다시 조용히 입을 닫고 창밖을 바라보았다.

창밖으로 보이는 커다란 메인 경기장.

혈주작은 이 하남성에 자리를 잡자마자 당시 투기장을 장악하고 있던 NPC를 몰아내고 이곳을 자신의 투기장으로 만들었다.

동대륙 최초로 투기장을 소유했던 유저.

그 후 주작 투기장은 동대륙에서 제일가는 투기장으로 거듭났다.

승승장구.

사람들은 이대로라면 금방 S급 투기장이 될 것이라고 입을 모아 말했다.

하지만…… 한 사람의 등장으로 모든 것이 무너져 내렸다.

투신 천위강.

그가 호북성의 보잘것없는 투기장이었던 현무 투기장을 불과 몇 달 만에 최고의 투기장으로 만들었다.

마치 여러 가지 준비를 통해 차근차근 투기장의 등급을 올리던 혈주작을 비웃기라도 하는 것처럼…… 오로지 개인의 무력 하나만으로 이루어낸 결과였다.

혈주작은 그때 깨달았다.

투기장은 결국 힘이 지배하는 곳…… 아무리 혈주작의 수완이 뛰어나도 최강의 힘을 지니지 못한다면 절대 최고의 투기장을 만들 수 없다는 것을…….

그때부터 혈주작은 천위강을 따라잡기 위해 노력했고 그를 위해 모든 것을 투자했다.

현실?

현실에서는 이미 많은 것을 이뤄놓았던 그였다. 오히려 현실에서 이뤄놓은 것을 이용해 게임 속의 혈주작의 능력을 상승시켰다.

그렇게 지금까지 달려왔다.

이제 얼마 안 있으면 한 걸음 더 천위강과의 거리가 좁혀진다.

‘기다려라. 천위강…… 너에게 당했던 굴욕들은 영원히 잊지 않고 있다.’

다시 한번 다짐을 하는 혈주작.

그는 현실에서나 게임에서나 매우 집요한 인물이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