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더 로드(The Lord)-104화 (104/250)

104. 본선 리그 시작 ― 2

* * *

예선 경기가 모두 끝났다.

256개의 조에선 모두 각각 1명의 선수를 256강 토너먼트에 진출시켰다.

당연히 나도 그 256명 중 한 명이 되었다.

많은 이들이 꼽는 예선전 이변 5명 중 한 명이 나였다.

광부 바더넬의 패배는 많은 이들에게 충격이었는데…… 특히 현무 투기장의 팬들은 뭔가 바더넬의 큰 실수가 있을 것이라 예상했다.

난 누가 어떻게 생각하건 별로 상관없었다. 난 그저 시간이 날 때마다 좀 더 나은 스킬 콤보나 연환을 생각할 뿐이었다.

어차피 사냥을 가기엔 무리가 있는 시간.

난 호남성 근처에 있는 조용한 숲속 공터에서 조용히 투기장 플레이를 복기하며 이런저런 스킬조합 연습을 하고 있었다.

‘그때 백스텝에 이은 땅울림 주술이라면…… 충분히 균형을 무너트릴 수 있지 않을까?’

경기가 없을 때 다른 유명한 선수의 예선전을 구경하며 그들의 패턴을 눈에 익히고 그런 그들과 머릿속으로 시뮬레이션 대결을 해보는 중이었다.

예선전에서 완벽하게 모든 것을 드러낸 이들은 거의 없었겠지만 그래도 이런 시뮬레이션 대결은 실력 향상에 크게 도움이 되었다.

‘아니야 땅울림 주술보단 그리스 마법과 하급카드마법 무기력(無氣力)을 사용하는 게 더 좋을 거 같아.’

사용할 수 있는 스킬이 워낙 많으니 적재적소에 가장 알맞은 스킬을 찾아내는 것도 쉽지 않은 일이었다.

비슷한 효과의 스킬이라고 해도 무엇을 사용하는지에 따라 결과가 완전히 달라질 수 있었다.

이럴 땐 그저 계속 연구하면서 연습하는 게 제일 좋았다.

연습 또 연습.

날 때부터 강한 사람은 없었다. 누가 그랬던가? 호수 위에는 우아하게 떠 있는 백조지만 호수 안에서는 열심히 발을 젓고 있는 것이라고…….

결국 스스로 노력하는 사람만이 원하는 것을 얻을 수 있는 법이었다.

그렇게 열심히 연습하고 있던 와중 갑자기 낮선 시스템 메시지가 떠올랐다

띠링, 아이디 [바더넬]의 유저가 천상의 속삭임 스크롤을 사용해 당신과 1:1 대화를 하길 원합니다. 응하시겠습니까?(Y/N)

천상의 속삭임?

내가 알기론 그것은 상당히 비싼 특수한 마법 스크롤이었다.

원하는 대상과 10분 동안 1:1 대화를 할 수 있는 특수한 아이템. 무려 한 개에 200골드나 하는 물건이었다.

귓속말은 한계 거리가 10km이고 나 같이 평상시에 귓속말 거부 설정을 해놓는 사람들에게는 아예 말을 걸 수 없는 것에 반해 이것은 무려 1,000km의 한계 거리와 귓속말 거부 설정을 해놓은 사람들에게도 말을 걸 수 있는 기능을 지니고 있었다.

물론 내가 원하지 않는다면 200골드가 순식간에 허공으로 날아가게 되겠지만…… 원래의 나였다면 당연히 거절해야 옳았다.

그런데 ‘N’자를 향해 가던 손이 잠시 멈추었다.

이유를 알 수 없는 약간의 망설임. 아주 찰나의 망설이었지만 그것이 내 마음을 변하게 만들었다.

난 바더넬과의 대화를 승낙했다.

이상하게 들릴지 모르지만…… 요즘 내 스스로 내가 조금씩 변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주 조금씩…….

“무슨 일이시죠?”

난 그런 이상한 기분을 애써 떨쳐내고 바더넬에게 말을 걸었다.

[혹시, 이번 주작 투기장 갑 조 리그에 참여하신 무명객 님 맞으신가요?]

“네, 맞습니다.”

[휴~ 다행이군요. 이번이 마지막 스크롤이었는데 만약 아니었으면…… 어디 가서 골드라도 빌려야 할 뻔했습니다.]

지금 난 가명으로 되어 있었기 때문에 정확히 나에게 귓속말 같은 것을 하기가 힘들었다.

이럴 땐 그저 무명객이란 가명을 쓰는 이들에게 하나씩 다 말을 걸어보는 수밖에 없었다.

아마도 덕분에 바더넬은 상당한 고생을 했을 것이다.

“그런데…… 무슨 일이시죠?”

[아! 저 기억하시죠? 몇 시간 전에 예선전에서 대결했던…….]

“네, 기억합니다.”

[예, 사실은…… 몇 가지 여쭤보고 싶은 것도 있고…… 사과드리고 싶은 것도 있어서 이렇게 무명객 님을 찾게 되었습니다.]

“사과요?”

궁금한 점이 있는 건 이해했는데 사과를 해야 한다는 말은 좀 이해가 되지 않았다.

[네, 의도하지 않았는데 지금 소문이 이상하게 나서…… 마치 무명객 님이 운이 좋아 절 이겼다는 얘기가 여기저기에서 들려서요. 제가 적극적으로 아니라고 얘기하고 다니는 중이지만 소문이란 게 참 무섭네요.]

“아~ 별로 신경 쓰지 않으셔도 됩니다. 그냥 제가 운으로 이겼다고 쳐도 상관없고요.”

[아니요. 그럴 수 없습니다. 제가 완벽하게 실력 차이로 진 건데…… 솔직히 현무 투기장에서 리그를 뛰면서도 이렇게 지고서 감탄한 경우는 별로 없었습니다. 정말…… 대단한 경기였습니다.]

“그저 재수가 좋았을 뿐입니다.”

이건 그냥 겸손을 떠는 게 아니라…… 굳이 튀고 싶은 마음이 없었기 때문에 그러는 것이었다.

[무명객 님의 치밀한 스킬의 연환은…… 제가 본 어떤 유저보다 대단했습니다. 그런데…… 솔직히 제가 주술사 유저에게 근접전에서 완패당했다는 게 믿기지 않습니다. 중간중간 무명객 님이 보여주신 몸놀림도 술사의 움직임이라고 믿긴 힘들기도 했고요. 혹시 듀얼 클래스이십니까?]

듀얼 클래스.

간단히 말해 주 직업과 보조직업 이렇게 두 개의 직업을 설정하고 게임을 플레이하는 이들을 의미했다.

비슷한 말로 더블 클래스도 있었는데…… 더블 클래스는 두 개의 직업을 골고루 키우는 것이었고 듀얼 클래스는 두 개의 직업을 퍼스트 클래스와 세컨드 클래스로 구분해 키우는 것이었다.

더 간단히 예를 들어 설명해주자면…… 마법사이면서 동시에 연금술사인 사람이 둘 있다.

그중 한 명은 듀얼클래스, 다른 한 명은 더블클래스였다.

둘의 차이는 듀얼클래스의 유저는 처음부터 마법사와 연금술사를 같이 키워 두 직업이 합쳐진 특별한 직업으로 전직해온 것이고 더블클래스의 유저는 마법사로 키워서 전직한 후 계속 마법계열을 키운 게 아니라 연금계열을 같이 키워서 새로운 직업 연금술사를 전직시킨 것이다.

더블클래스의 경우엔 스킬궁합이 맞지 않는 직업을 두 개 고르는 건 불가능한 일이었고 듀얼클래스의 경우는 보통 최근에 얻은 직업이 주 직업이 되고 먼저 얻었던 직업은 보조직업이 된다.

주 직업과 보조직업의 스킬궁합은 완전히 무시할 수는 없었지만 그래도 더블클래스보단 좀 더 융통성이 있을 수 있었다. 보조직업과 주 직업이 나뉘는 순간 보조직업의 상승률은 주 직업의 30%가 되는 대신 하락률도 주 직업의 30%가 되기 때문이었다.

내가 알고 있는 유저 중 더블클래스로 가장 유명한 이는 불사마군 한림이었다. 대단한 술법사이면서 동시에 암기술의 달인이었던 그는 최고의 더블클래스라 불렸었다.

그리고 듀얼클래스로 가장 유명한 유저는 바로 프로이드였다.

3차 전직을 할 때까지도 ‘마스터가드(Master Guard)’라는 직업을 가지고 있던 그는 꾸준히 노력해 결국 4차 전직을 하며 ‘전능자(全能者)’란 직업을 얻었다.

그 뒤로는 계속 그는 전능자 쪽으로만 전직했다.

더블클래스와 듀얼클래스는 이런 식이었다.

뭐, 이것들의 확장 개념인 멀티 클래스도 있었지만 보통 유저들에겐 현실적으로 거의 불가능했기에 더블, 듀얼 클래스를 제외한 다른 클래스는 거의 없다고 보는 게 옳았다.

어차피 한 유저가 할 수 있는 총 전직 횟수는 6번.

그걸 어떻게 사용할지는 유저의 마음이었다.

“네, 맞습니다.”

괜히 귀찮게 아니라고 우겨봤자 괜히 의심만 늘어갈 수 있어 그냥 듀얼클래스라고 믿게 만드는 게 더 편했다.

[역시, 예상대로군요. 보법이 정말 대단하시던데 보조 직업이 권법가 같은…… 아, 죄송합니다. 이런 걸 질문하는 건 예의가 아닌데 제가 흥분을 해서 실수를 했네요.]

“뭐 더 궁금하신 게 있습니까?”

대충 바더넬이 궁금해하는 건 거의 다 답해준 것 같아 난 마지막으로 물었다.

[아! 중요한 질문이 하나 남았습니다.]

“뭐죠?”

[혹시 무명객 님은 소속된 길드나 모임이 있으십니까? 만약 없으시다면 제가 소속된 곳에 오실 생각은 없으신지 궁금합니다. 저는 현재 ‘현무조’라는 곳에 소속되어 있고…… 현무조가 어떤 곳인지는 알고 계시죠?]

“네, 어떤 곳인지는 알지만…… 별로 생각은 없네요. 죄송합니다.”

난 별로 생각하지도 않고 가볍게 거절했다.

현무조는 현무 투기장을 대표하는 이들이 모여 만든 강력한 연합이었다. 정식 조장은 아니었지만 투신 천위강이 명예 조장으로 살짝 소속되어 있는 곳.

동대륙에선 좀 알아주는 모임 중 하나였다.

하지만 나에겐 별로 흥미가 생기지 않는 그런저런 모임 중 하나일 뿐이었다.

[아쉽군요…… 혹시라도 생각이 바뀌신다면 저에게 꼭 연락해주세요. 기다리겠습니다. 이번 리그 꼭 우승하시길 기원하겠습니다. 참! 방금 256강 토너먼트 대진표가 나와서 확인해봤는데…… 아마도 64강 즈음에 만나는 상대가 좀 까다로우실 겁니다. 특히 등 뒤를 조심하세요.]

바더넬은 상당히 아쉬운 목소리로 말했다.

“흠, 감사합니다. 그럼 이만…….”

난 정중하게 마지막 인사를 하고 1:1 대화를 종료했다.

“64강이라…….”

대진표가 나왔으면 가서 확인한 후 내 상대가 될 유저들의 정보를 얻어 볼 필요가 있었다.

256강 토너먼트까지 남은 시간은 12시간.

정보를 얻을 시간은 충분했다.

‘묘월…… 바더넬이 말한 유저는 이 사람이겠군.’

난 SO에서 찾아낸 정보를 바탕으로 내가 상대해야 할 유저들을 쭉 살펴본 결과 바더넬이 64강에서 조심하란 상대는 묘월이라는 유저일 가능성이 매우 높았다.

‘현무 투기장 갑 조 리그 랭킹 4위.’

직업은 정확히 확인되지 않았지만 도적계열 직업을 주 직업으로 가지는 듀얼 클래스 또는 더블 클래스.

직업 중 하나는 일반 클래스가 아닌 스페셜 클래스일 가능성이 높았다.

뭐, 스페셜 클래스라고 해서 일반 클래스보다 월등히 좋은 건 아니었지만…… 그만큼 특징이 있었기 때문에 잘만 이용하면 상당히 강력해질 수 있었다.

아쉽게도 묘월의 전투동영상을 구해서 볼 수는 없었다. 아무래도 동영상을 찍어서 오프라인에서 유명세를 타는 그런 유저는 아닌 것 같았다.

난 대충 오프라인에서 묘월을 포함한 요주의 인물들의 정보를 모두 살펴본 후 곧장 다시 게임 속으로 들어갔다.

이제 몇 시간 후면 256강 토너먼트가 시작되었기 때문에 미리 들어가서 몸을 풀어놓을 필요가 있었다.

앞으로 8번.

딱 8명의 유저만 이기면 우승이었다.

‘자~ 해보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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