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더 로드(The Lord)-102화 (102/250)

102. 투기장 ― 2

* * *

“어우 젠장!!”

“오오오!! 좋아!”

“아나…… 이게 뭐야?”

예선전 시작 한 시간 전.

리그에 참가 신청을 한 유저들은 모두 주작 투기장 지하 대기실에 모여 자신이 속한 조를 확인하는 중이었다.

여기저기에서 들려오는 탄식과 환호.

자신이 속한 조에 유명 랭커가 속해 있으면 큰 탄식을…… 랭커가 없이 이름 없는 무명 선수가 속해 있으면 환호를 내지르는 유저들.

갑 조 리그쯤 되는 곳에 참가한 유저들이라면 어느 정도 투기장에 전념하는 이들이었기 때문에 서로의 이름을 잘 알고 있었다.

그렇기에 단순히 각 조의 명단만 보고도 벌써부터 누가 256강에 올라갈지 결정된 것처럼 얘기하는 유저들이 많았다.

예를 들면…… 지금 바로 내 앞에서 크게 탄식을 하며 옆에 있는 다른 유저에게 중얼거리는 남자처럼…….

“아, 짜증 난다.”

“왜 그래? 우리 조는 괜찮던데…… 너희 조는 별로야?”

“아…… 을 조 리그 때부터 내 밥이었던 겐이치에 이름도 들어보지 못한 무명객이란 놈까진 좋았는데…… 마지막 이름에서 좌절 먹었다.”

“누군데?”

“도끼살인마.”

“헉! 광부(狂斧) 바더넬! 이런…… 놈은 현재 현무 투기장 갑 조 리그 랭킹 9위의 유저잖아.”

“그래…… 그 미친 중남미의 마초맨이 우리 조다.”

“……그냥 포기해라. 소문엔 아예 몸을 토막 내 버려서 게임을 끝낸다고 하더라. 아무리 고통이 제한된 게임 속이라고 해도 경험해 본 사람들 말로는 장난 아니라고 하더라…… 워낙 처참하게 져서 나중에 동영상 확인하면 충격이라는데…….”

“지금 포기하면 내 돈 40골드는 어디 가서 돌려받는데…… 그리고 주작 투기장 갑 조 리그 유저의 자존심이 있는데…… 현무 투기장 출신한테 기권할 수는 없잖아. 비록 랭킹 22위지만 나도 랭커는 랭커라고!”

“하긴 너도 여기선 꽤 끗발 날렸으니까…… 그래도 조심해라. 광부한테 한 번 찍히면…… 후환이 두렵다고 하더라.”

“쳇, 길고 짧은 건 대봐야 아는 거고…… 나도 이대로 곱게 물러날 순 없다고.”

남자는 등 뒤에 차고 있는 검을 툭툭 치면서 중얼거렸다. 이미 그의 머릿속은 그 ‘광부 바더넬’이라는 유저의 생각으로 가득 찼을 것이다.

‘당연히 무명객 따윈 안중에도 없겠지.’

난 그와 같은 조였다.

전진일검이라는 이름을 가진 유저.

그리고 중남이 유저로 보이는 바더넬과 일본 유저로 보이는 겐이치.

이렇게 3명이 나와 같은 104조였다.

전진일검의 말대로라면 최악의 조 중 하나일 가능성이 컸다.

“뭐…… 나쁘지는 않아.”

어차피 내 목표는 우승.

언젠가 만나야 할 상대들을 좀 일찍 만난다고 해서 크게 문제 될 것은 없었다.

투기장 전투는 단순히 사각의 링에서 싸우는 것이 아니었다.

투기장의 경기장에는 절대마법 또는 절대진법이라 불리는 힘이 적용되어 있었는데…… 이것들의 효과는 바로 경기장을 랜덤하게 각 대륙에 존재하는 어느 한 곳의 지형으로 바꿔주는 것이었다.

경기가 시작을 알리는 카운트다운이 시작되면 투기장 경기장은 각 규모에 맞게 곧장 지형이 바뀌었다.

때론 동대륙 남부에 존재하는 밀림지형으로 또 때론 북부에 존재하는 바위산 지형으로…… 혹은 동부에 존재하는 평원 지형으로…… 동대륙에 존재하는 지형이라면 그 어떤 곳도 가능성이 있었다.

심지어 호남성의 도시 지형으로 바뀔 수도 있었다.

경기가 시작할 때마다 늘 랜덤하게 바뀌었기 때문에 미리 어느 곳이 나올 것이라고 예상할 수도 없었다.

이 힘은 투기장 전체에 적용이 되었다.

신기한 투기장 경기장의 효능. 하지만 정말 신기하고 특이한 건 지형변화 시스템이 아니었다.

투기장 전투가 필드 전투와 구분되는 제일 큰 차이를 만드는 거점 포인트. 이 포인트야말로 투기장 전투에만 존재하는 재미있는 장치였다.

랜덤하게 계속해서 지형이 바뀌면 역시 마찬가지로 랜덤하게 그 지형에 최소 1개에서 최대 5개까지의 특수한 회색 기둥이 생겨났다.

이것이 바로 거점 포인트라 불리는 것이었는데 가로세로 1m의 공간에 높이가 4m 정도는 되는 특수한 기둥이 생성되어 있었다.

유저는 이 기둥에 일정 데미지(자기 자신의 최대 체력의 30% + 최대 마력의 60% 수치)주면 그 기둥을 자신의 거점 포인트로 바꿀 수 있었다. 그리고 그렇게 자신의 거점 포인트는 미리 선택한 자신의 색으로 변하게 되었다. 그렇게 되면 유저는 5가지 설정 중 하나를 결정해 그 기둥을 자신의 전투에 도움이 되게 만들 수 있었다. 재설정은 불가능했기 때문에 최초 설정을 할 때 신중하게 결정을 해서 설정을 해야 했다.

‘마력, 생명력, 공격력, 방어력, 보조능력.’

유저가 선택할 수 있는 설정 다섯 가지는 이러했다.

거점 포인트를 마력으로 설정할 경우 그 기둥은 마력 포인트가 되며 최대 마력을 +10% 시켜주고 30초마다 최대 마력의 0.5% 마력을 주기적으로 회복시켜주었다.

이게 마력 포인트 하나를 가지고 있을 때의 효과였다.

당연히 2개가 되면 그 효과는 두 배가 되었다.

생명력은 최대 체력을 +10% 1분마다 최대 체력의 2%를 회복.

공격력은 최대 공격력을 +5% 시켜주고 치명타가 터질 경우 데미지의 10%를 추가 데미지로 주는 효과를 지니고 있었다.

방어력은 최대 방어력 +10%와 공격회피확률을 +5% 올려주었다.

보조능력은 몇 가지 특수한 스킬을 사용할 수 있었는데……

속박 [10초 동안 대상의 이동을 묶음]

강타 [한 개의 커다란 돌덩어리가 대상을 공격한다.]

방해 [4초 동안 대상의 주문을 방해한다. 시전 중인 주문은 취소된다.]

약화 [10초 동안 대상의 방어력을 크게 낮춘다.]

강화 [10초 동안 대상의 공격력을 크게 올린다.]

기절 [2초 동안 아무런 행동도 하지 못하는 기절상태에 빠진다.]

봉인 [대상이 20초 동안 이상한 힘에 둘러싸여 어떤 공격도 받지 않는 무적상태가 된다. 하지만 그 상태에서는 아무런 행동도 할 수 없게 된다.]

탐색 [기둥으로부터 반경 50m 안을 탐색해 은신하고 있는 적대적인 대상을 찾아낸다. 만약 은신하고 있는 적대적인 대상이 있을 경우 그 대상의 은신이 풀리며 30초 동안 다시 은신을 할 수 없는 징표가 찍힌다.]

이렇게 8가지의 스킬을 2분마다 한 번씩 자신이 지정한 대상에게 사용할 수 있었다.

게임에 큰 영향을 끼치는 이 거점 포인트야말로 투기장의 가장 특징적인 존재였다.

상대방의 거점 포인트도 뺏을 수 있었다. 상대방의 거점 포인트에 동일한 데미지(최대 체력 30% + 최대 마력 60%)를 주면 포인트를 내 것으로 뺏어 올 수 있었다.

방어력은 존재하지 않는 기둥이었기 때문에 조금만 노력하면 금방 자신의 것으로 만들 수 있었지만 중요한 건 상대가 그렇게 기둥만 치고 있게 놔두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또한 소환수가 준 데미지가 아닌 오로지 자기 자신이 직접 데미지를 주어야 한다든지 은신 상태에서는 공격이 불가능하던지 여러 가지 복잡한 규칙이 있었지만 일단 중요한 규칙은 위에 말한 것이 전부였다.

어떤 식으로 플레이할지는 유저 자신이 선택하는 것이었다. 어떤 유저들은 내 거점을 하나도 안 만드는 대신 상대방도 거점을 못 만들게 하는 경기를 좋아했고 또 어떤 유저들은 서로 적당히 거점을 나누어 가지고 남은 거점 하나를 놓고 치열하게 싸우는 경기를 좋아했다.

또한 어떤 유저들은 매우 특이한 경기진행으로 상대방에게 거점을 다 내주는 대신 그 와중에 여러 이득을 챙기면 승리를 따내기도 했다.

무엇을 선택할지는 모두 유저 자신에게 달려 있었다.

또 매 경기마다 전략은 바뀌고 또 바뀌었다. 심지어 경기 중에도 바뀌는 경우가 다반사였다.

그래서 더 재미있었다.

하이퍼넷에서 투기장 거점 포인트라는 이름으로 검색을 하면 수백만 건의 게시물이 검색될 정도였다.

어쨌든 이 거점 포인트는 투기장을 다른 곳과 구별해주는 존재였다. 이 포인트가 없었다면 투기장은 단순히 여러 지형에서 싸우는 필드 전투가 되었을 것이다.

본선 토너먼트가 열리는 메인 경기장은 무려 가로세로 300m의 대규모 경기장이었고 256강 토너먼트가 열리는 보조 경기장은 가로세로 100m의 규모였다. 이 두 경기장에는 당연히 거점 포인트 시스템이 적용되었다.

물론 지하에 존재하는 이곳 대규모 격투장에는 지형변화도 그리고 거점 포인트도 모두 적용되지 않았다.

이곳에는 단순한 사각의 링 같은 경기장이 150개가 설치되어 있었다.

가로세로 50m의 간단한 사각의 링.

확실히 예선전은 예선전일 뿐이었다.

한 시간의 대기시간이 끝나고 드디어 예선전이 시작되었다. 비록 지형이 바뀌는 그런 경기장은 아니라지만 그래도 나름 인공지능이 들어가 있는 예선 경기장이었기 때문에 굳이 심판이 필요 없이 자연스럽게 천 명이 넘는 유저가 순서대로 경기를 시작했다.

관람객도 없었다. 예선전은 오로지 살아남아야 하는 게 전부인 곳.

그러다 보니 유저들은 보여주는 경기보다는 빨리 이기는 실속 있는 경기 방식을 선택했다.

지금 내 앞에서 나를 향해 검을 뻗은 전진일검이라는 이 유저처럼 말이다.

쉬이익!

전진일검은 전투가 시작되자마자 빠르게 나에게 붙으며 쾌검을 쏟아냈다.

뻔히 보이는 속전속결의 전투방식.

아마도 내가 투기장 초보라고 생각하고 처음부터 몰아붙여서 쉽게 끝낼 생각인 것 같았다.

하지만 아쉽게도 내가 투기장 초보인 것은 맞았지만 PvP에서까지 초보는 아니었다.

스슥!

난 절정의 보법을 밟으며 슬쩍 쾌검의 공격권에서 벗어났다.

전진일검은 날 너무 우습게 봤다.

덕분에(?) 난 너무나 손쉽게 반격의 기회를 잡았다. 그것도 아주 정확한 타이밍에!

전진일검은 자신의 쾌검이 허공을 가르자 크게 놀라며 다시 재차 공격을 하려 했다.

하지만 이미 그때는 내가 술법 하나를 완성 시킨 후였다.

정확히 말해서는 마법과 술법이 조화를 이룬 조합기술이었지만 어쨌든 겉보기엔 술법처럼 보였다.

스킬조합 보조마법 바인딩(Binding) + 중급술법 석화결(石化結)

부동신(不動身)!!

멈칫!

내 기술에 의해 그의 움직임이 잠시 멈추었다. 단 몇 초간의 움직임 제한.

하지만 PvP에서…… 이 정도 거리에서의 그 몇 초는 매우 치명적이었다.

꽝!

전진일검의 움직임을 제한하는 조합스킬을 사용하는 동시에 이미 더블 캐스팅에 들어갔던 한 가지 스킬이 전진일검의 복부를 강타했다.

요요술사에게서 헌납받은 상급화염술법이었던 화룡포(火龍砲).

그 기술이 제대로 작열하며 전진일검의 체력을 반 이상 깎아 버렸다.

“커억!”

큰 타격을 입고 뒤로 밀려 날아가는 전진일검.

하지만 아쉽게도 내 공격은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아이템 스킬 질주!!

번쩍!

난 화룡포를 꽂아놓는 동시에 내 부츠에 내장된 마법 중 하나인 질주 스킬을 사용했다.

순식간에 앞과 뒤가 뒤바뀌며 난 전진일검의 등 뒤를 선점했다.

츠릿!

질주는 아이템 스킬이었기 때문에 스킬을 사용하면 동시에 또 하나의 스킬을 캐스팅할 수 있었다. 이미 내 오른손에는 바람의 정령의 빙의되어 있었다. 이런 경기에서 많은 것을 보여줄 필요는 없었다. 기회가 왔을 때 빠르게 정리해 버리는 것이 올바른 선택이었다.

스킬발동 상급주술 삭풍(朔風)!!

휘이잉! 꽈광!

그대로 노출된 전진일검의 등에 내 오른손에서 뿜어져 나온 매우 음산한 바람의 기운이 적중되었다.

그냥 바람의 기운이 아닌 정령의 기운까지 합쳐진 강력한 기운이었다.

“크아아악!”

순식간에 일어난 두 번의 치명적인 공격.

하지만 아직도 완전히 끝나지는 않았다.

마무리가 필요했다. 그리고 그 마무리는…… 이미 준비해놓았다.

마수소환 폭(爆)!!(마수[魔獸] 도리안 : 주먹만 한 작은 소환수. 특별한 공격기술은 없지만 적에게 달라붙어 자폭공격을 하는 특수한 중급의 마수이다.)

파팟!!

경기가 시작할 때 미리 소환해두었던 작은 소환수를 전진일검에게 던졌다.

치릿!

곧장 전진일검에게 달라붙는 마수 폭.

소환수 스킬 폭파(爆破)!!

그리고 곧장 폭발시켜버렸다.

꽈과광!

마수 스킬을 사용하는 동시에 또 한 번 내 오른손이 움직이며 붉은 화룡을 토해냈다.

퍼퍼펑!

마수의 폭발에 이어 곧장 가슴에 동시에 적중되는 화룡포!

완벽한 더블 크리티컬 히트다.

더 이상 전진일검이 버틸 가능성은 제로(0)였다.

쿵!

전진일검이 쓰러졌다.

투기장에서 또 하나의 절대마법(절대진법)의 힘으로 죽지는 않는다. 단지 체력이 1이 되며 기절할 뿐이었다.

“일단 1승.”

검게 그을려 쓰러진 전진일검을 보며 난 고개를 끄덕였다. 우승을 향한 첫걸음…… 아직은 먼 그 여정이 이렇게 시작되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