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더 로드(The Lord)-101화 (101/250)

101. 반복의 장(章)

* * *

지금 이 순간에도 샐 수 없는 많은 숫자가 생겨나고…… 또 그만큼의 숫자가 사라진다.

만들어지고 없어지고.

없어지고 만들어지고.

그렇게 무한히 반복된다.

누군가가 우리의 신(神)이듯……

우리도 누군가의 신(神)이 될 수 있다.

02. 투기장 ― 1

* * *

호남성은 동대륙에 있는 성 중에서도 손에 꼽히는 대형 성이었다. 특히 호남성은 여러 유저들 중에서도 일본 출신의 유저들이 많이 모여드는 곳이었다.

주작단 역시 일본 유저들이 만든 단체였고 그밖에도 여러 일본인들이 호남성에서 활동했다.

어쨌든 호남성은 그 크기가 큰 만큼 성 안에는 여러 시설들이 다양하게 존재했는데 호남성에 존재하는 객잔만 해도 크고 작은 걸 모두 합치면 6개가량 되었다.

그중 제일 유명한 객잔 두 개가 호남성제일루와 쌍봉객잔이었다.

호남성제일루는 NPC가 운영하는 곳이었고 쌍봉객잔은 유저가 운영하는 곳이었다.

원래는 쌍봉객잔도 NPC가 운영하는 곳이었지만 한 반년(게임시간) 전부터 대상(大商)으로 성공한 한 유저가 인수를 해 크게 번창시킨 곳이었다.

이 두 객잔은 호남쌍루로 불리며 많은 유저들의 사랑을 받았는데 그중 쌍봉객잔은 유저들 중에서 특별한 미모를 자랑하는 여성 유저들을 아르바이트생으로 고용해 많은 남성 유저들을 끌어들이고 있었다.

물론 자신의 기본 신체에서 최대 30%까지 변형이 가능해(30%를 모두 활용하면 추녀가 미인이 되는 건 우스웠다.) 이곳에서 일하는 여성 유저들이 현실에서도 진짜 미인인지는 확인할 수 없었지만 그래도 보기 좋은 음식이 먹기도 좋은 것처럼 기왕이면 미인들이 일하는 곳을 더 선호하는 건 어쩔 수 없는 남성 유저들의 본능이었다.

최근 들어서는 여성 유저들도 많이 늘어났다지만 그래도 기본적으로 여성 유저보다 남성 유저가 더 많은 건 사실이었고(7:3) 그렇기에 남성 유저를 겨냥한 쌍봉객잔의 전략은 성공적이었다.

동대륙의 객잔, 그리고 서대륙의 주점.

이 두 곳은 거의 같은 시설이었다. 이들의 용도는 꽤 다양했는데…… 공복도를 채우는 동시에 버프까지 줄 수 있는 고급 요리도 먹을 수 있었고 경매장과 연동해 간단한 몇 가지 경매기능도 가지고 있었다.

그뿐인가? 특별한 안전지대 설정을 하지 않아도 곧바로 로그아웃할 수 있게 해주는 것은 물론이고 이런 곳에 늘 죽치고 앉아 있는 NPC들은 수많은 고급 정보를 제공했다.

NPC도 유저와 똑같이 행동했다.

식사할 때가 되면 밥을 먹었고 할 일이 없을 땐 객잔(주점)에 앉아 술을 마시곤 했다.

지금 이곳 쌍봉객잔만 해도 1층부터 4층까지 유저가 70%라면 NPC가 30%였다.

유저들이 폭발적으로 늘어나면서 여기저기에서 NPC의 비중이 내려가고 있는 건 사실이었지만 그래도 여전히 NPC는 게임 속에서 굉장히 중요한 역할을 차지하고 있었다.

“야, 소문 들었냐?”

조용히 호남성 특제 돈육볶음밥을 먹으며 공복도를 채우던 나는 근처에서 들리는 말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무슨 소문?”

“천위강말이야. 그 녀석이 왜 갑자기 여기에 나타났는지 알아? 그것도 자신의 세력인 현무조(玄武組)와 가장 큰 라이벌이라 할 수 있는 주작단(朱雀團)의 근거지인 이 호남성에 말이야.”

“흐음…… 뭐 별일 있어서 온 거 같지는 않던데. 밑에 애들 데리고 온 것도 아니고 혼자 온 것으로 봐서는 혈주작(血朱雀)하고 할 얘기가 있어서 온 거 아니겠어? 서로 라이벌이라지만 둘이 원수 사이는 아니잖아. 오히려 둘이 원래부터 알고 지내던 사이라는 얘기가 있던데.”

“그래, 분명 둘은 약간의 친분이 있겠지. 하지만 동대륙 최고의 투기장이자 호북성의 자랑인 현무의 실질적인 지배자가 왜 동대륙에서 두 번째로 알아주는 투기장인 주작이 존재하는 호남성에 찾아왔느냐! 이게 중요한 거야.”

“무슨 정보라도 있어?”

“……사실 내 친구 중에 한 명이 최근에 주작단에 들어갔거든…….”

남자는 슬쩍 주변을 살피며 목소리를 낮췄다.

그는 옆에 앉아 있는 친구에게 속삭이듯 작게 말했다. 분명 평범한 다른 유저였다면 듣지 못했을 상황.

하지만 난 좀 달랐다.

오감증폭 스킬과 몇 가지 여러 스킬을 이용한 극한의 청력 상승.

비약적으로 증가한 청력은 작은 목소리였지만 또렷하게 남자의 목소리를 들려주었다.

“놀라지 마라. 대회 당일에 발표 예정이라는데…… 천위강이 이번 갑 조 리그 우승자랑 이벤트 대전을 한단다. 혈주작이 특별히 초빙했다나? 이번 갑 조 리그를 마지막으로 S급 라이센스를 획득하는 투기장 주작이 준비한 깜짝 이벤트란다.”

“진짜?”

“그래, 그리고 이 소문이 투기장 상위 랭커들에겐 이미 쫙 퍼져서 이번 주작투기장 갑 조 리그에 다른 투기장의 상위 랭커들도 대거 참여한다고 알려졌다. 아마…… 근래에 보기 드문 엄청난 혈전이 될 것 같다.”

“대박인데! 상대가 없다는 이유로 거의 반 년 동안 투기장 리그에 참여 안한 천위강과의 대전이라니! 캬아~ 이거 진짜 대박이다.”

“그냥 대박이냐? 완전 대박 중에 대박이지. 듣자 하니 천위강이 그동안 투기장 리그에 불참한 게 상대가 될 만한 유저가 없어서이기도 했지만 뭔가 굉장히 중요한 퀘스트를 해결하기 위해서 그랬다는 거 같던데…… 그럼 이제 퀘스트를 다 해결한 건가?”

“글쎄, 뭐 그런 건 다 소문이니까 정확한 확인이 불가능하지. 어쨌든 나 빨리 가서 좋은 자리로 전 경기 관람표 끊어 놔야겠다. 이런 대박 혈전을 놓칠 수 없지!”

“히히, 야야…… 그럴 필요 없다. 이 형님이 그럴 줄 알고 이미 두 장 구해 놨다.”

“오오오! 이 자쉭!”

“생일 선물 미리 주는 거니까~ 너무 고마워하지 마라.”

“어쨌든 고맙다. 근데 너 어제…….”

뒤로는 별로 중요하지 않은 신변잡담이 이어졌다.

조용히 음식을 먹으며 두 남자의 대화를 엿듣던 나는 살짝 인상을 구길 수밖에 없었다.

‘젠장…… 하필 이번 리그냐.’

이럴 줄 알았다면 던전 탐방을 먼저 하기 전에 투기장을 할 걸 그랬다.

하지만 후회하긴 이미 늦었다.

리그에 참가 신청도 했고…… 사설 도박장에 돈까지 걸었다. 무려 만 골드…….

‘더 피 터지게 수련해야겠네.’

방법이 없다.

경쟁이 심해졌다면…… 그 경쟁을 이겨낼 실력을 길러야 했다.

* * *

마법과 술법, 그리고 약간의 소환술과 진법.

이 네 가지가 투기장에서 내가 사용하려고 하는 힘이었다. 처음엔 이걸로 충분할 거라 생각했다.

하지만 의외의 소식을 듣고 이 네 가지에 몇 가지를 더 추가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일단 정령술을 추가했다.

눈에 확 보이는 정령소환술이 아닌 은밀히 사용이 가능한 정령빙의술을 이용할 생각이다.

또 추가로 카드마법 몇 개 정도도 사용할 생각이다.

사실 카드마법은 그 자체로도 상당히 방대한 스킬이었는데 솔직히 난 아직 제대로 된 카드마법 스킬을 가지고 있지 않았다.

내가 가지고 있는 것이라고 해봤자 얼마 전에 얻은 S급 카드 한 장과 간간이 사냥하면서 얻은 A급 카드 1장, B급 카드 5장, C급 카드 10장, D급 카드 16장이 전부였다.

제대로 된 카드마법사들이 기본적으로 100장이 넘는 카드를 가지고 있는 것에 비교하면 난 정말 부족해도 한참 부족했다.

그래서 이번엔 대략 5~6장의 카드만 사용할 생각이었다. 이것도 티 안 나게 사용하려면 피나는 연습이 필요했다.

난 내가 가진 카드 중 마법이나 술법과 연계가 쉽고 티가 최대한 안 나는 것들을 골라 놓았다.

잘만 사용하면 그 어떤 기술보다 강력하다는 카드마법.

카드마법사는 카드만 잘 조합하면 공격마법부터 방어마법, 보조마법 심지어 소환마법까지 모두 사용할 수 있었다.

물론 카드마법사의 특성상 미리 메모라이즈를 해 놓은 정해진 숫자의 카드만을 사용할 수 있었지만(레벨과 숙련도에 따라 메모라이즈할 수 있는 카드마법의 최대 개수가 달라졌다.)일단 등록만 해놓으면 특별한 캐스팅을 하지 않아도 자유자재로 사용할 수 있었기 때문에 매우 강력한 능력을 발휘할 수 있었다.

비록 아직 수련이 부족해 그렇게까지 자유자재로 카드마법을 사용 못 했지만 이번 기회에 카드마법을 제대로 익혀 볼 생각이었다.

준비는 끝났다.

난 마법과 술법, 소환술과 진법 그리고 정령술과 카드마법을 이용해 오로지 나만이 할 수 있는 전투방식을 만들어낼 생각이었다.

앞으로 남은 시간은 삼 일…… 72시간(게임시간).

쉴 생각은 전혀 없었다.

눈앞에 보이는 청해의 수적들…… 이들은 나에게 좋은 스파링 파트너가 되어줄 것이다.

화륵.

화염의 주술로 오른손에 강력한 불덩어리를 만들었다.

“자…… 이제 좀 놀아보자고.”

난 슬쩍 미소 지으며 수적들을 바라보았다.

삼 일이란 시간…… 그 시간을 통해 난 진정한 무명객으로 다시 태어날 것이다.

* * *

총 1,019명.

이번 주작 투기장 갑 조 리그 신청자의 숫자였다.

무분별한 투기장 참가를 막기 위해 존재하는 40골드라는 투기장 등록비용은 1차적으로 떨거지 유저들의 접근을 막았다.

그리고 아직까지는 A급 투기장인 주작 투기장의 갑 조 리그 레벨 제한은 300이었다.

S급 투기장이었던 현무 투기장의 갑 조 리그 레벨 제한이 350인 것을 감안하면 조금은 낮은 수치였지만 레벨 300을 넘는다는 건 나름 상위권 유저라는 뜻이었다.

그렇게 몇 가지 조건을 통과하고 모인 이들의 숫자가 1,019명이었다.

일단 이 1,019명은 모두 예선을 거치게 된다.

예외는 없었다. 모두가 무작위로 4명씩 선별된 그룹으로 나뉜 후 각 그룹에 한 명씩만 256강 토너먼트에 진출하게 되어 있었다.

예선전은 주작 투기장 지하에 있는 대규모 격투장에서 진행 되었다.

그나마 256강 토너먼트부터는 본 무대는 아니지만 을 조 리그와 병 조 리그가 열리는 10개의 보조 경기장에서 경기가 열렸기 때문에 관중들이 관람할 수 있었지만 예선전은 관람이 불가능했다.

4명이 리그전을 펼쳐 그중 오로지 한 명만 토너먼트에 진출할 수 있다는 점은 참가자들에겐 큰 압박이었다.

특히 재수라도 없어서 투기장 상위 랭커와 같은 조가 된다면 256강 토너먼트에도 못 나가고 그렇게 되면 등록비로 낸 40골드도 돌려받지 못하게 되었다.

그건 최악의 상황이었다.

32강의 본선 토너먼트는 꿈꾸지 않아도 256강은 가야 한다. 이게 리그에 참여한 유저들이 공통적으로 하는 생각이었다.

총 4일간 계속되는 리그.

첫날엔 예선전이 치러지고 둘째 날엔 256강 토너먼트가 치러졌다.

그리고 셋째 날에 32강, 16강, 8강 본선 토너먼트가 치러졌고 마지막 날에 4강과 결승이 열렸다.

뭐, 1:1 대회가 끝나도 2:2 대회와 3:3 대회 그리고 7:7 대회까지 열리겠지만 그건 나와 별로 상관도 없었고 인기도 1:1 대회에 비해 살짝 떨어졌다.

본 게임은 셋째 날 32강부터였다. 갑 조 리그의 무대라 할 수 있는 주작 투기장 메인 경기장에서 게임이 열리고 몇 개의 게임 방송국에서 중계까지 하는 대형 이벤트.

S급에서는 좀 빠지는 A급 투기장이라지만 이번 리그 대회만큼은 S급 투기장의 갑 조 리그를 능가하는 규모를 보여주고 있었다.

이 모든 것은 혈주작이라 불리는 유저의 계획이었는데 그는 이번 리그 대회를 기회로 주작 투기장을 현무 투기장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S급 투기장으로 만들 생각이었다.

덕분에 호남성을 기반으로 활동하는 유저들은 신이 났지만 나는 짜증이 잔뜩 났다.

왜 하필!

지금!!

하지만 어쩌겠는가? 이것이 운명인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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