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더 로드(The Lord)-100화 (100/250)

100. 3차 전직 퀘스트 ― 3

* * *

“쉿! 내가 그래서 조용히 끝내준다고 할 때 반항을 멈췄어야지.”

난 천천히 결계에 갇힌 칠미호를 향해 걸어갔다. 그리고 가방에서 빈 적혼지 하나를 꺼냈다.

“죽어서 사라져 가는 놈보다 제압된 놈을 여기에 담으면 효과가 훨씬 좋지. 물론 보스 몬스터는 힘들게 적혼지에 담아봤자 일반 몬스터로 바뀌기 때문에 널 별로 제압할 생각은 없었어.”

스윽.

“근데 네가 날 귀찮게 해서 이런 거니까…… 그리 알라고!”

번쩍!

간단한 수인과 함께 칠미호는 내가 꺼낸 적혼지 안으로 빨려 들어갔다.

띠링, B급 던전 여우골의 보스 칠미호를 쓰러뜨렸습니다.

띠링, 3차 전직 퀘스트 조건 중 하나인 솔로 던저 탐험 조건을 모두 만족시켰습니다.

…….

…….

“휴우~ 일단 하나를 끝냈군.”

생각보단 오래 걸리지 않았다. 애초에 예상을 30일(게임 시간)으로 잡았었는데, 하다 보니 상당히 익숙해져 20일(게임 시간) 만에 모든 걸 끝내 버렸다.

“다음은 투기장인가?”

하나를 끝냈으니 그다음 것을 할 차례였다.

“……투기장이…… 흠, 호남성(湖南城)이군.”

동대륙에 가장 큰 호수인 청호(靑湖) 아래 있는 성이라고 해서 붙은 이름이 호남성이었다.

현재 동대륙에서 최고로 발전한 성 중 하나인 호남성. 내가 찾아가는 투기장은 바로 그곳에 있었다.

* * *

“374레벨 공격형 검사가 파티 구해요~!”

“일등급 금창약 20개 세트로 싸게 팔아요!”

“재료 아이템 모두 삽니다. 언제라도 문의 주세요.”

“괜찮은 무공 서적 구해요~! 상급 술법서도 구합니다.”

…….

…….

사람들은 여기저기에서 각자가 원하는 것들을 외치고 있었다.

많은 사람들…… 역시 동대륙 5대 성 중 하나인 호남성은 어딜 가나 사람들이 북적거렸다.

나는 여우골에서의 마지막 던전 탐험을 끝내고 최대한 빠르게 호남성으로 달려왔다.

아쉽게도 호남성에 한 번도 와본 적이 없어서 순간이동진을 이용하지 못하는 바람에 이곳까지 오는데 꼬박 하루가 걸렸다.

“그러고 보니 이거 꼴이 말이 아니네.”

20일 동안 미친 듯이 던전만 탐험했더니 몰골이 영 좋지 않았다.

중간중간 마을에서 소모성 아이템만 보급하고 제대로 정비를 안 했기 때문에 여러 장비들과 옷에 먼지가 가득 쌓여 있었다.

“투기장 사무소를 찾기 전에 정비부터 해야겠군.”

뭐든지 첫인상이 중요한데 이 꼴로 투기장 사무소를 찾아갈 수는 없었다.

난 일단 가까운 객점에 들러 방을 잡고 장비를 손질하기 시작했다.

옷은 대충 세탁 스킬을 이용해 물로 가볍게 빨아서 방에 널어놓고 착용하고 있던 장비를 모두 벗어서 하나씩 손질했다.

스윽, 스윽.

가방에서 꺼낸 수리장비로 장비들을 손질하는 내 손길은 거의 전문가와 비슷했다.

사실 그동안 수많은 잡 스킬을 틈틈이 익히며 가장 신경 썼던 것 중 하나가 이 수리 스킬이었다.

물론 요리 스킬이나 지도 판독 스킬 문자 해독 스킬 등등 여러 가지 다른 잡 스킬도 열심히 익혔지만 가장 큰 성취도를 나타내는 건 역시 이 수리 스킬이었다.

내가 워낙 수많은 종류의 장비를 사용하다 보니 당연히 그 모든 장비를 수리할 수밖에 없었고 그 결과 수리 스킬은 꽤 잘 오르게 되었다.

끼릭.

가볍게 헐거워진 건틀릿의 이음새를 조인 나는 내가 방바닥에 펼쳐놓은 수많은 장비를 내려다보았다.

“거참 내 장비들이지만…… 정말 많네.”

언령설정마법이 아니었다면 아마 난 장비들에 치여 죽었을 것이다.

잠깐 장비들을 내려다보던 나는 투기장에서 어떤 식으로 활동할지 생각해보았다.

검술을 익힌 검법의 고수? 활을 이용한 치고 빠지기의 달인? 무림에선 다소 생소한 총을 이용한 전투가 특기인 유저?

머릿속에 많은 종류의 특징을 지닌 유저들이 스쳐 지나갔다. 하지만 마음에 드는 건 별로 없었다.

일단 고려해야 할 것이…… 폴리모프망토를 사용해 능력치가 80%로 제한될 것이라는 사실이었다.

그저 평범한 스타일의 유저로 활동하려다간 크게 낭패를 볼 수도 있었다.

‘뭔가 특별한 게 필요한데…….’

난 다시 한번 장비들을 내려다보았다. 분명 지금 나에겐 남들의 뒤통수를 칠 수 있는 획기적인 스타일이 필요했다.

그리고 그런 생각을 하고 있던 나의 눈에 ‘마법총서’가 들어왔다.

“마법이라…….”

마법을 함부로 사용할 수는 없었다. 그건 괜히 또 다른 의미에서 주목을 받을 수 있었다. 하지만…… 마법을 교묘하게 술법과 섞어 사용한다면?

마법을 별로 경험하지 못해본 동대륙 유저들이라면 크게 당황할 가능성이 높았다.

“거기에 적절히 소환수를 이용하고.”

절대 자주 사용해서는 안 된다. 적절하게…… 좋은 타이밍에…….

“결정타로 진법을 추가하면!”

이것 역시 적당히 사용해야 했다.

마법총서를 보며 생각했던 스타일이 진법을 생각해내면 완성되었다.

마법과 술법, 그리고 소환술과 진법을 살짝 가미한 스타일…… 딱 좋았다.

“결정되었군.”

난 고개를 끄덕이며 웃었다.

이왕 생각한 김에 가명까지 결정해 버렸다.

이제 큰 줄기는 모두 결정되었다. 남은 건 소소한 작은 줄기들. 그건 장비를 모두 정비하고 다음에 해도 충분했다.

“흐음…… 이름이…… 뭐라고 하셨죠?”

투기장 3급 사무관이자 신규 유저 등록을 담당하고 있던 NPC는 나를 향해 다시 한번 확인하듯 물었다.

“무명객(無名客)입니다.”

가명이라는 걸 뻔히 알려주는 내 이름. 난 일부러 이런 이름을 사용했다.

“무명객이라…… 네, 일단 등록은 됐습니다. 그런데 정말 갑조(최상급) 리그에 참가하실 겁니까?”

아마도 내가 등록한 레벨 때문에 의문을 갖는 것 같았다.

현재 내가 폴리모프 망토를 써서 만든 레벨 319는 대략 을조(상급) 리그에나 출전하는 레벨이었다.

이런 의문을 가지는 게 당연했다.

“네, 갑조 리그 확실히 맞습니다.”

“알겠습니다. 손바닥을 여기에 올려놓으세요.”

NPC는 작은 철판을 내밀며 얘기했다.

내가 그 철판 위에 손바닥을 올려놓자 철판이 살짝 파랗게 빛났다. 아마도 이게 사람들이 얘기하는 전사 등록절차인 것 같았다.

“레벨 319 무명객, 갑조 리그 참가 접수되었습니다. 경기는 삼 일 후부터 시작됩니다. 경기 편성표는 이틀 후에 투기장 게시판에 올라오니 그때 확인하세요.”

내가 한 번 더 확인해 주자 그제야 NPC는 알겠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등록을 끝낸 난 조용히 투기장 사무소를 빠져나왔다.

리그가 시작되려면 아직 3일이라는 시간이 남아 있었다. 그 시간을 헛되게 보낼 순 없었다.

일단 머릿속으로 스타일을 구상해 놓긴 했지만 좀 더 완벽하게 그 스타일로 전투를 하려면 연습이 필요했다.

그리고 그 연습은 실전에서 하는 게 제일 좋았다.

난 호남성 근처에 괜찮은 사냥터를 머릿속에 떠올려보았다.

“……청해의 수적 소굴 정도면 적당하겠네.”

수적 소굴은 레벨도 적당했고 거기에 인간형 몬스터였기 때문에 연습하기에 최적의 장소였다.

“일단 연습은 거기서 하는걸로 하고…….”

3일간의 연습장소도 결정했으니 이제 남은 건 하나뿐이었다.

그것은 바로 돈을 벌러 가는 것이었다.

난 호남성의 뒷골목 중에서도 가장 으슥한 곳에 찾아왔다.

스윽.

골목과 골목이 교차되어 통로가 거의 보이지 않는 곳. 난 그곳으로 조용히 들어갔다.

그 좁은 통로에는 한 NPC가 앉아 있었다.

‘큰 성이라서 그런가? 아직 유저가 뒷골목을 장악하지 않았을 리가 없는데…….’

“무슨 일로 찾아왔지?”

“검은 꽃을 좀 꺾으려고 왔다.”

이 말은 암호 같은 것이었다. 난 미리 정보 길드를 통해 구해놓은 이곳에 들어가는 방법을 알아두었다.

그르릉.

NPC는 말없이 자신이 앉아 있던 곳 뒤의 벽을 밀었다. 교묘하게 숨겨져 있던 입구가 드러나며 사람 한 명이 들어갈 만한 통로가 나타났다.

“고맙군.”

난 슬쩍 인사를 하고 안으로 들어갔다.

통로는 길지 않았다. 짧은 통로가 끝나고 내가 도착한 곳은 작은 창구가 하나 있는 방이었다.

똑똑.

난 그 창구로 걸어가 가볍게 두들겼다.

스륵.

그러자 창구가 열리며 한 사람이 고개를 내밀었다. 그리고 그 사람의 눈동자는 분명 검은색이었다.

‘어라? 유저? 그럼 앞에 문지기는 용병으로 고용된 NPC였군.’

확실히 이게 맞았다.

아무리 호남성이 크다 해도 아직까지 NPC들이 뒷골목을 차지하고 있을 리가 없었다.

“어디 리그지?”

다짜고짜 질문 먼저 하는 유저. 다른 건 별로 알 필요 없다는 것 같은 귀찮은 표정이었다.

“갑조 리그.”

“이름은?”

“무명객.”

“금액은?”

“10,000골드.”

“……!!!”

드디어 그 유저의 표정에 변화가 있었다.

“……골드를 확인해 줄 수 있습니까?”

스윽.

난 미리 대륙전장(大陸錢莊)에 골드를 맡기고 받아온 만 골드짜리 전표를 내밀었다.

“…….”

잠시 전표를 확인해 본 유저는 고개를 끄덕였다.

“맞네……요. 그런데…… 혹시 무명객 본인입니까?”

마지막 질문은 쓸데없는 질문이었다. 내가 본인이라고 해도 이들은 내 배팅을 막을 수 없었다.

괜히 정식으로 허가된 도박장에 안 가고 이곳에 온 게 아니었다.

정식 도박장은 투기장 리그에 참여한 본인은 배팅이 원천적으로 불가능했지만 이곳이라면 충분히 가능했다.

“거래 증명 문서.”

대답 대신 난 조용히 내가 받을 물건을 달라고 했다.

허름한 내 모습에 무시하듯 말하던 유저는 만 골드짜리 전표를 확인한 후로는 표정과 태도가 바뀌었다.

슬쩍 눈치를 보던 그는 조용히 나와의 거래를 증명하는 문서를 작성해 내밀었다.

“배당금은 리그가 다 끝나고 난 다음 날 받아 가면 됩니다.”

난 남자의 마지막 말을 대충 흘려들으며 호남성 뒷골목에서 가장 유명한 사설 도박장을 나왔다.

이것으로 모든 준비는 끝났다.

이제는 3일 동안 열심히 실전 같은 연습을 하며 기다리는 것밖에 남지 않았다.

뒷골목을 벗어난 난 당장 지금부터 연습을 시작하기 위해 호남성 밖을 향해 걸어 나갔다.

그런데…… 그 순간 갑자기 호남성 전체가 시끄러워지기 시작했다.

웅성웅성.

갑작스러운 소란.

호남성 밖으로 나가던 나는 잠시 걸음을 멈추고 이 소란의 원인이 뭔지 살펴보았다.

난 얼마 지나지 않아 그 원인을 찾았다.

조용히 호남성 안으로 들어와 걸어가고 있는 한 남자.

그 남자가 바로 소란의 원인이었다.

‘누구지?’

난 무척 낯익은 남자의 모습을 보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바로 그때 한 유저가 큰소리로 외쳤다.

“투신(鬪神) 천위강이다!!”

투신 천위강, 천무칠성의 일원이자 현재 동대륙 최강의 유저라 불리는 남자.

투기장의 전설이자 현 동대륙 최고의 투기장인 호북성의 S급 투기장 ‘현무’의 갑조 리그 51연속 우승자.

그 전설의 유저가 호남성에 갑자기 모습을 나타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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