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99. 3차 전직 퀘스트 ― 2
* * *
“여어~ 내가 여기저기 찾아보니까. 3차 전직 때문에 아주 난리더라. 넌 능력 좋으니까~ 후딱 해치우고 얼른 다시 보자고.”
그동안 친구로서의 정이 제법 쌓인 붉은하늘은 아쉬운 표정을 짓고 있었다.
“걱정 말아라. 그 누구보다 빠른 속도로 클리어해 주마.”
“너무 무리는 하지 마라. 들어보니 그냥 단순한 퀘스트가 아니라고 하지만…… 네 방식대로 풀어가다 보면 금방 해결할 수 있을 거다.”
폴우는 날 믿는다는 눈빛으로 고개를 끄덕이며 얘기했다.
“네, 당연히 제 방식대로…… 확실히 풀어갈 겁니다.”
“오빠, 파이팅!”
꼰정은 두 주먹을 불끈 쥐며 환하게 웃어주었다.
“하하하, 힘이 불끈 솟는구나.”
난 그렇게 이들과 헤어졌다.
40일(게임 시간)이 조금 넘는 기간의 동행.
길다면 길 수도 있고 짧다면 짧을 수도 있는 시간 동안의 동행이었지만 나에겐 매우 즐겁고 소중한 시간이었다.
좋은 인연을 만든다는 것…… 그건 생각보다 무척 즐거운 일이었다.
* * *
Quest [더 로드: 3차 전직 퀘스트]
: 자네는 확실히 군림의 길을 걷고 있어. 하지만 말이야…… 세상엔 아직 자네의 독보천하를 믿지 않는 이들이 더 많지. 이제는 사람들이 좀 알 필요가 있을 것 같아, 이 세상에 진정한 독보천하를 꿈꾸는 한 존재가 있다는 것을.
필요조건: 총 명성 점수 오천 이상 올리기. / 솔로 던전 클리어 [A급: 2개, B급: 4개, C급: 8개] / 장비 아이템 중 엘리트 아이템 1개 이상 착용하기. / A급 이상의 정식투기장에서 개최되는 최상급 리그전에서 우승하기. / 숙련도가 그랜드마스터 등급인 스킬을 하나 이상 만들 것.
진행상황: 총 명성점수 오천 이상 올리기<완료> / 솔로 던전 클리어 [A급: 0/2개, B급: 0/4개, C급: 0/8개] / 장비 아이템 중 엘리트 아이템 1개 이상 착용하기<완료> / A급 이상의 정식투기장에서 개최되는 최상급 리그전에서 우승하기<진행 중> / 숙련도가 그랜드마스터 등급인 스킬을 하나 이상 만들 것<진행 중>
기간: 무제한.
이것이 바로 내가 받은 전직 퀘스트 내용이었다.
일단 좋은 소식은 5개의 퀘스트 조건에서 2개는 이미 충족시키고 있다는 점이었다.
명성점수와 엘리트 아이템은 내가 이미 클리어한 메인 퀘스트들 덕분에 일찌감치 해결되었다.
하지만 좋은 소식과 함께 안 좋은 소식도 있다.
일단 가벼운 안 좋은 소식 하나.
솔로 플레이로 던전 클리어하기…… 솔직히 어렵지는 않다. 지금의 나라면 A급 던전도 5일(게임 시간)이면 충분히 클리어가 가능했다.
정작 문제는 난이도가 아닌 시간이었다.
3등급의 던전들을 모두 클리어하려면 최소한 25일(게임 시간)이 필요했다. 이건 왔다 갔다 이동 시간을 다 제외하고 순수하게 클리어 시간만 따진 것이었다.
아무리 이동 시간을 짧게 잡는다고 해도 이 조건만 충족시키는데 30일(게임 시간)이 걸릴 것 같았다.
뭐 하지만 이것도…… 시간만 들이면 된다는 점에서 아주 나쁜 소식은 아니었다.
이것 말고 또 나쁜 소식 하나 더, 이건 방금 것보다 살짝 더 나쁜 소식이었다.
A급 정식투기장에서 열리는 최상급 리그에 참여해서 우승하기.
동대륙과 서대륙을 통틀어 현재 운영되는 투기장이라고 해봤자 열 개뿐이었다.
그중 현재 내가 있는 동대륙에서 운영되는 투기장은 총 5개.
C급이 2개 있었고 B급이 한 개, A급이 한 개, 그리고 마지막으로 S급이 하나 있었다.
들리는 소문엔 요즘 내가 목표로 할 A등급의 정식투기장이 인기를 많이 얻어서 곧 S등급으로 승급될 것 같다고 했다.
즉, 난 말이 A등급이지 거의 S등급과 마찬가지인 투기장에서 우승해야 한다는 뜻이었다. 이건 그나마 클리어 조건이 S등급의 투기장이 아니라는 걸 위안으로 삼아야 하는 것일까?
물론 그렇다고 해서 내가 우승하지 못할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좀 힘들겠지만 충분히 가능할 것 같았다. 하지만…… 문제는 아직 내가 많은 사람들에게 관심을 받기 싫다는 것이었다.
결국 관심을 피하려면 폴리모프 망토를 사용해야 하는데…… 그렇게 되면 우승을 확신하기가 힘들어졌다.
하지만 뭐…… 솔직히 여기까지는 내가 어찌어찌 감당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정작 나에게 닥친 가장 큰 문제이자 정말로 나쁜 소식 하나는 바로 마지막 조건이었다.
‘숙련도가 그랜드마스터 등급이 스킬을 하나 이상 만들 것’. 이게 내 머리를 아프게 했다.
그랜드마스터 등급이란, 즉 스킬 숙련도가 200이 되어야 한다는 얘기였다.
그런데…… 말이 그냥 200이지, 이건 정말 너무나도 큰 시련이었다.
내가 언젠가 말했지만 레벨이 700을 넘고 스킬 숙련도가 150을 넘으면 그때부턴 지옥이 시작된다.
그래서 더블 헬이라고 부른다고도 했었다.
그나마 난 타이틀 ‘더 로드’ 덕분에 사기적인 속도로 숙련도를 올려놓았다.
하지만 그런 나인데도 현재 가장 높은 스킬 숙련도가 ‘188.441’이었다.
그 스킬의 이름은 지존신공, 내가 가장 많이 사용하는 무공(스킬)이었기에 숙련도가 가장 높았다.
하지만 이 숙련도는 무려 3년(게임 시간)이 넘는 시간에 걸쳐 만들어진 것이다. 그것도 150의 하이 마스터의 경지를 찍고는 188.441이 될 때까지 걸린 시간은 게임 시간으로 2년이었다.
2년 동안 그렇게 사용해서 올린 수치가 38.441
아무리 숙련도를 위주로 한 수련을 하지 않았다고 해도…… 상상을 초월하는 속도였다.
“11.559라…….”
언뜻 보기엔 적은 수치 같았지만 잊지 말아야 할 것은 200이 되기 직전이라는 내 숙련도 상황이었다.
이 상황에서는 결국 믿을 건 타이틀 ‘더 로드’와 예전에 죽어라 했던 스킬 숙련도 수련뿐이었다.
어차피 방법이 없었다.
전직하려면 그랜드마스터 스킬을 하나 만들어야 하는 법. 어차피 지존신공을 제외하고 가장 많이 올린 스킬 숙련도라고 해봤자 분심공의 ‘172.119’과 언령설정마법의 ‘169.827’이었다.
믿을 건 지존신공뿐이었다.
“일단 쉬운 것부터 해결하자.”
어려운 건 마지막에 해결하는 것이 당연한 수순이었다. 난 일단 가볍게 솔로 플레이로 던전들을 클리어하는 조건부터 해결할 생각이었다.
촤악!!
난 미리 상당히 비싼 돈을 주고 구해온 동대륙 던전 지도를 바닥에 펼쳤다.
“……음…… 여기랑…… 여기…… 그리고 여기.”
난 대도시를 기준으로 가장 이동 경로가 짧은 범위 안에서 내가 갈 수 있을 만한 던전들을 모조리 표시하기 시작했다.
어차피 신규 던전을 발견할 필요는 없었다. 그저 등급에 맞는 던전만 클리어하면 끝이었다.
슥슥.
난 지도에 선을 그어가며 최선의 동선을 구상했다.
내가 가야 할 던전은 무려 열네 개. 조금이라도 동선이 꼬이면 시간낭비가 상당해질 수밖에 없었다.
‘크으~ 벌서부터 머리가 아프구나.’
난 슬쩍 고개를 흔들며 인상을 찡그렸다.
3차 전직 퀘스트…… 정말 자연스럽게 입에서 욕이 절로 나오는 징그러운 퀘스트였다.
* * *
광속 던전 탐험이 무엇인지 아는가?
인정사정 볼 것 없다. 그저 미친 듯이 전진해 마지막 보스만 잡아 버린다.
그것이 바로 광속 던전 탐험이었다.
던전을 연속해서 한 네 군데쯤 돌았을 때부터 슬슬 익숙해지기 시작해서 여덟 군데를 돌았을 때는 거의 완성되어가고 열 군데를 넘어서는 완벽해졌다.
이젠 그 누구보다 던전을 빠르게 클리어할 자신이 생겼다.
마수소환 섬전(閃電)!!
번쩍!
내 손에서 뻗어 나간 최상급 마수 섬전은 곧장 이 던전의 최종 보스인 칠미호(七尾狐)의 옆구리에 박혔다.
케겡! 콰과광!
덩치가 거의 나만 한 커다란 여우 칠미호는 큰 타격을 입고 바닥에 내동댕이쳐졌다.
“어디서 은신 주술을 쓰고 있어.”
이미 사방에 부적술법을 이용해 천안부(千眼符)를 붙여놓았다.
당연히 이 근처에서는 은신 주술이 먹힐 수가 없었다.
키잉!
칠미호는 다급해졌는지 빠르게 네 발을 구르며 나에게서 도망가려고 했다.
이 녀석 정도 되는 보스 몬스터들은 인공지능이 뛰어나 무조건 싸우기보다는 도망가는 걸 선택하는 경우도 종종 있었다.
특히 이 칠미호는 천성이 영악하기로 소문난 몬스터였기 때문에 당연히 도주를 선택할 줄 알고 있었다.
꽝!
깨개갱!
“도망가려고? 이미 내가 환요금진(幻妖禁陣)[B급]으로 사방을 둘러놨거든~ 그냥 조용히 일루 와라.”
이곳은 꽤 유명한 B급 던전인 여우골이었다.
각종 여우들이 많이 등장하는 이곳은 내 던전 탐험의 열네 번째 마지막 던전이 된 곳이기도 했다.
“형이 오늘 기분이 좋아서…… 깔끔하게 보내줄게.”
난 조용히 웃으며 칠미호에게 다가갔다.
캬옹!
하지만 놈은 역시 그냥 깔끔하게 저승으로 가긴 싫은 것 같았다.
순식간에 칠미호가 일곱 마리로 늘어나며 사방으로 흩어졌다.
환영 계열의 술법이라도 쓴 것 같았다.
“거참…… 깔끔하고 조용하게 보내준다니까.”
스윽.
난 품속에서 적혼지 한 장을 꺼냈다. 빈 적혼지가 아니었다.
스킬발동 봉인개방(封印開放)!!
화륵!
적혼지 안에 갇혀 있던 마귀 하나를 풀었다.
추영괴(追影怪)라 불리는 마귀…… 주로 그림자에 몰래 숨어들어 공격하는 몬스터로서 레벨은 그리 높지 않지만 워낙 은밀히 기습 공격을 잘하기에 여행자에게 큰 위험을 주곤 했다.
파파팟!
적혼지에서 빠져나온 추영괴의 혼백은 본능대로 적이라 판단된 칠미호를 공격했다.
칠미호의 그림자 속으로 빠르게 숨어드는 추영괴.
캬앙!
칠미호는 재빨리 그 추영괴를 입으로 물어서 소멸시켜 버렸지만 내가 추영괴를 푼 목적은 칠미호게에 타격을 주기 위해서가 아니었다.
“거기 있었군.”
스윽.
스킬조합 백마금쇄진(百魔禁鎖陣)[B급]+상급 주술 요마제압술(妖魔制壓術)
만마금진(萬魔禁陣)!!
파파팟!
칠미호가 있는 바닥에 세 개, 그리고 머리 위 허공에 한 개. 이렇게 네 개의 하얀빛으로 이루어진 점이 만들어졌다. 그리고 순식간에 그 점들은 서로를 잇는 빛의 선을 만들었고 그 선은 다시 서로를 잇는 투명한 막을 만들었다.
이 모든 게 잠깐 눈을 깜박일 정도의 시간에 일어난 변화였다.
순식간에 생겨난 삼각형 모양의 커다란 결계.
크아아앙!
칠미호는 황급히 그 결계를 빠져나가려고 몸부림쳤지만 이미 늦은 후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