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더 로드(The Lord)-96화 (96/250)

096. 천마의 전언 ― 1

* * *

우리들은 모두 무신의 안배를 받았다.

난 무신의 호칭과 권능, 그리고 내공과 내공심법서를 받았다. 내공심법서를 받아 슬쩍 꼰정이한테 주려고 했는데 동시에 나에게 날아오는 검법서와 도법서, 권법서, 신법서 등등 덕분에 난 재빨리 내공심법서를 가방에 넣었다.

“이제 끝났네요.”

꼰정은 밝은 표정으로 웃으며 얘기했다.

그녀의 말대로 모든 게 끝났다. 이제 무신이 열어놓은 고대의 순간이동진을 이용해 밖으로 나가면 끝이었다.

“고마웠습니다.”

폴우는 나에게 정중하게 고개를 숙이며 말을 했다.

“아닙니다. 제가 원해서 파티에 들어온 것이었고…… 오히려 제가 여러분을 속였던 것이 죄송하네요.”

솔직한 마음을 얘기했다.

결과가 어떻게 되었든 내가 이들을 속인 건 사실이었다.

“크하하, 그러니까 그냥 퉁 치면 되겠네.”

붉은하늘은 크게 웃으며 내 어깨를 가볍게 두들겼다.

“근데 신 님, 나이가 어떻게 됩니까?”

내 나이를 묻는 붉은 하늘.

“27입니다.”

“오오오! 이런 우연이! 저도 27인데…… 우리 친구 할까요?”

붉은하늘은 자연스럽게 나에게 손을 내밀며 웃었다.

“하하, 좋습니다. 친구하죠.”

나도 미련 없이 그의 손을 잡았다.

“이거 졸지에 동생 한 명이 생겼네?”

페티가 반갑게 웃으며 얘기했다.

내가 알기로 이 파티의 최고령은 폴우였다. 그리고 폴우의 친구 붉은장미. 그다음 한 살이 어린 페티. 그리고 세 살이 어린 붉은하늘이었다. 꼰정은 붉은하늘보다 네 살이 어렸다.

즉, 난 붉은하늘과 친구가 되며 세 명의 형과 한 명의 예쁜 여동생을 얻었다.

“오빠라고 부를게요!”

“반갑다.”

모두가 웃었다. 얼마 만에 이렇게 웃어보는 건가? 정말 오랜만에 이렇게 웃어보는 것 같았다.

“자, 가자! 오늘 동생이 생긴 기념으로 내가 한 턱 크게 쏘마!”

폴우는 나와 붉은하늘의 어깨를 잡고 크게 미소 지었다.

“좋아~ 한 번 제대로 뜯어먹어 보자!”

친구가 생겼고 형들이 생겼다. 거기에 예쁜 여동생도 생겼다. 어떤 보상이 이보다 더 좋단 말인가!

난 기분 좋게 웃으며 이들과 함께 순간이동진 위에 올라갔다. 그리고 강한 빛과 함께 천마무총을 빠져나왔다.

아니…… 빠져나왔다고 생각했다.

띠링, 당신은 순간이동진에 숨겨져 있던 은마진(隱魔陣)의 영향으로 알 수 없는 곳으로 이동됩니다.

띠링, 36545점의 일월공적치를 얻어 천마무총에 들어온 모든 유저 중 가장 많은 공적치를 기록했습니다.

띠링, 몇 가지 특수 조건을 만족하여 ‘천마의 전언’ 퀘스트가 진행됩니다.

‘뭐지?’

꼰정 일행과 마을로 이동하는 진 위에 올라간 순간 갑자기 시스템 메시지가 떠오르며 나만 홀로 이상한 곳으로 이동되었다.

그리고 시작된 갑작스러운 퀘스트. 갑자기 일어난 일이라 조금 놀랐지만 난 침착하게 평정심을 되찾았다.

어두운 공간.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그런 공간이었다. 난 가방에서 야명주를 꺼내 들었다.

하지만 분명 야명주는 빛났지만 그 빛은 퍼져 나가지 못하고 야명주에서만 머물렀다.

‘뭐야?’

이상한 현상.

바로 그때 어둠 속에 한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소용없다. 이곳은 오로지 어둠만이 존재할 수 있다.]

흠칫.

난 주변을 둘러보며 조용히 입을 열었다.

“누구죠?”

[……내가 누굴 것 같은가?]

오히려 목소리가 나한테 반문했다.

“흐음, 혹시…… 천마?”

[호오, 훌륭하군.]

역시 천마가 맞았다.

“전 분명 무신의 안배에 따라 일월의 성지에서 탈출했는데…… 왜 다시 당신을 만나고 있는 거죠?”

[크크크, 망할 놈의 백무량…… 너는 내가 설마 백무량의 수작을 몰랐을 것이라고 생각하느냐? 백무량이 초월적인 존재라면 나도 초월적인 존재다. 당연히 난 백무량의 수작을 알고 있었다. 하지만! 신경 쓰지 않았다. 절대…… 놈의 수작이 성공할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았기 때문이지.]

“……하지만 성공했죠.”

[그래, 그래서 이렇게 너와 내가 만난 것이다. 난 비록 놈의 수작이 성공할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았지만…… 혹시 모르는 생각이 들어 나 역시 놈의 수작에 몇 가지 수작을 부려놓았다.]

“그래서, 제가 이곳에 오게 되었군요.”

[나 역시 상당히 복잡한 조건을 걸어놨기 때문에 아무리 니가 무신의 안배를 받았다고 해도 이곳에 올 가능성은 높지 않았다. 그런데…… 넌 그 가능성을 다 뚫고 이곳에 왔다.]

“제가 좀…… 행운이 넘칩니다.”

능력이 좋다고 말하려다가 괜히 중요한 NPC에게 안 좋은 모습을 보일까 봐 살짝 말을 바꿨다.

[행운이라…… 하긴 그것도 행운이라면 행운이겠지…….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어…… 제길…… 이럴 줄 알았으면 이 안배에 힘을 좀 더 사용할 걸 그랬군. 세상이 아무리 혼돈의 법칙 속에 돌아간다지만 난 설마 이 안배가 발동될 줄은 몰랐다. 그런데 이거 간섭과 간섭 속에 억지로 숨겨놓은 안배여서 그런가? 놈의 방해가 상당히 약해…… 덕분에 꽤 등급이 높은 얘기도 할 수 있다는 게 불행 중 다행이겠군.]

천마는 뭔가 알 수 없는 얘기를 중얼거리고 있었다.

“근데 절 왜 이곳으로 이동시키신 거죠?”

[시간이 없으니 간단히 설명하겠다. 혼돈이 선택한 너, 지금에 와서 보니 어쩌면 그의 선택이 옳았다는 생각이 자꾸 드는구나. 마음 같아서는 너에게 일월신교의 모든 것을 전해주고 싶지만 망할 일월신주가 완성이 되지 않았기 때문에 전부를 전해주지는 못한다. 단, 너에게 천마의 권능을 전해주마. 나중에 네가 능력이 된다면…… 다른 곳에 남겨진 일월신교의 안배를 찾아 내가 남긴 모든 것을 거둬라.]

“으음!”

갑자기 천마의 권능이라니…… 이건 메인 퀘스트의 보상 중 하나가 아닌가!

[명심해라. 시간이 흐를수록 놈은 강해진다. 건곤일척(乾坤一擲)의 승부는 곧 시작된다. 시간이 없다…… 이제는 정말…… 모든 건…… 뜻대로…….]

띠링, 천마의 권능을 이어받았습니다.

띠링, 레벨이 2 올랐습니다.

띠링, ‘일월신교의 부활’ 퀘스트를 받으셨습니다.

번쩍!

천마의 마지막 말이 희미해지며 몇 개의 시스템 메시지와 함께 난 어둠 밖으로 튕겨 나갔다.

쿵!

“크윽.”

어둠에서 튕겨나 도착한 곳은 원래 순간이동진을 타고 넘어 오게 되어 있던 장소였다.

“뭐야~ 왜 갑자기 넘어져?”

붉은하늘이었다. 그가 내 옆에 서서 웃으며 얘기했다.

“그게 아니라 방금…….”

난 뭔가를 얘기하려다 입을 다물었다. 분명 나는 혼자 다른 어딘가를 갔다 왔다.

그런데 이들과 아무런 시간의 차이가 없었다.

대략 30초 정도의 시간이…… 사라졌다.

‘뭐가 어떻게 된 거지?’

황당했지만…… 이걸 설명할 길은 없었다.

“뭐 해요~ 어서 가요.”

당황한 표정으로 서 있는 내 팔을 꼰정이 잡아당겼다.

이상한 만남. 그리고 이상한 현상.

레벨이 오르고 대단한 보상을 받고 특별한 퀘스트를 받은 것조차 잊게 만드는 황당한 경험.

‘천마라…….’

짧은 시간이었지만 천마가 해준 말은 모두 또렷이 기억이 났다. 특히 그가 마지막에 한 말은 이해가 좀 안 갔지만 뭔가 굉장히 중요한 말인 것 같았다.

‘언젠간 알게 되겠지.’

난 슬며시 고개를 끄덕이며 복잡한 머릿속을 정리했다. 지금 고민한다고 해결될 일이 아니었기에 당장은 조용히 기억만 하는 게 현명한 선택이었다.

* * *

“이걸로 정말 마지막이군…….”

허공에 울리는 목소리.

“……그 녀석 마지막에 재미있는 짓을 해놨을 줄은 몰랐군.”

그의 몸이 흐려지고 동시에 그가 존재하는 공간도 흐려진다.

“……이제 모든 건 당신의 뜻대로.”

그가 미소를 지으며 중얼거리자 그의 몸이 그 공간에서 완전히 사라졌다.

번쩍.

빛의 폭발과 함께 하얀 공간이 무너진다.

그렇게 모든 것이 사라져 간다.

이걸로 나의 역할은 끝났다.

이제부턴…… 너의 몫이다.

* * *

“크으~”

머리가 띵했다.

게임 속이라고 해도 술을 많이 마시면 취했고 한동안 숙취로 고생을 해야 했다. 현실과 별반 다르지 않은 법칙…… ‘One’은 이런 소소한 것들에서부터 사람들을 만족시켰다.

“후우~~!”

난 길게 숨을 내쉬고 침대에서 일어났다. 숙취를 빨리 없애는 방법은 이렇게 침대에 누워 가수면을 취하는 것이었다.

이렇게 하면 보다 빨리 숙취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어제의 과음 때문에 충분히 가수면을 취했지만 아직 살짝 숙취가 남아 있었다.

하지만 이 정도는 버틸 만했다.

언제까지 놀고 있을 수 없었기 때문에 난 대충 정리를 하고 밖으로 나왔다.

천마무총에서 워낙 많은 일이 있었기 때문에 잃은 것도 그리고 얻은 것도 많았다.

그것들을 모두 정리할 필요가 있었다.

일단 잃은 것들은 굳이 생각할 필요가 없었다. 묵을 계속 유지시킨다고 수많은 아이템, 특히 내가 장비하고 있던 아이템들마저 다 없애 버렸기 때문에 그 빈자리를 채워 넣을 필요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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