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95. 무황성(武皇城) ― 2
* * *
“이게 뭐 하는 짓이야!”
쇠사슬에 제압당해 땅바닥에 결박당한 붉은하늘은 큰 소리로 외치며 요요술사를 노려보았다.
“흐흐흐흐, 뭐 하는 짓이긴~ 이 대단한 보상들을 혼자 먹겠다는 짓이지.”
요요술사는 기분 나쁘게 웃으며 즐거워했다.
“이 새끼!!”
철컹!
붉은하늘은 강하게 몸을 움직이며 결박을 풀어보려고 했지만 그의 몸을 감싸고 있는 붉은쇠사슬은 그러면 그럴수록 더 강하게 몸을 압박했다.
“워워~ 몸부림치지 말라고 이건…… 쇠사슬은 말이야……내 최종 비밀무기야. 어떤 비밀무기인지 궁금한가? 뭐~ 바로 눈앞에 있는 무신의 보물도 못 얻을 억울한 너희들의 마음을 풀어주기 위해 특별히 내 비밀을 아주 자세하게 얘기해 주지.”
요요술사는 마치 큰 선심을 쓰는 것처럼 얘기하며 말을 이어갔다.
“이 쇠사슬은 ‘고대의 비밀’이라는 특별한 분류에 속하는 아이템이야. 무려 B급!! ‘혈영쇄(血靈鎖)’라 불리는 이 녀석은 내 최대 생명력의 30%를 공급해야 나타나거든…… 한 번 불러내면 20분 동안은 내 의지대로 움직이는 아주 놀라운 녀석이야.”
요요술사는 아주 자랑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망할 놈들…… 내가 너희 놈들을 가만히 놔둘 줄 알았어? 너희가 실혼인을 제압하고 있을 때 난 틈틈이 계속 생명력을 이 녀석에게 공급하면서 때를 기다렸어. 나를 무시한 너희들에게 복수를 할 때를!! 그런데…… 생각지도 않은 행운이 복수를 잠시 보류하게 만들더군.”
요요술사는 흥분된 표정으로 무신의 보상목록을 바라보았다.
“이것들을 다 얻으면…… 난 동대륙 최강의 유저 중 한 명이 될 것이다! 크하하하하하!”
미친 듯이 웃는 요요술사.
그는 마치 자신이 보상을 전부 얻은 것처럼 행동하고 있었다.
“제대로 돌았군.”
난 슬쩍 웃으며 요요술사를 향해 말했다.
휙!
내 말을 들은 그는 고개를 돌려 나를 바라보았다.
“돌았다고? 크크크크, 네놈이 숨겨놓았던 힘은 놀라웠다! 정말 대단하더군. 그래서 네놈한테는 혈영쇄도 이중으로 둘렀다. 물론 힘이 전부 빠져서 감히 혈영쇄의 제압을 풀어낼 수는 없겠지만, 혹시 모르는 거잖아? 크크, 어때? 아까 보여준 그 놀라운 능력으로 나를 죽일 수 있겠나?”
“까분다.”
난 가볍게 놈을 도발해 주었다.
“푸하하하하, 허세가 대단하군. 착각하지 마라. 지금 제압당한 건 너고, 넌 내가 손에 조금만 힘을 주면…….”
요요술사는 손을 목에 가져간 후에 가볍게 그어주었다.
“끝이야!”
“그래? 한번 해보지?”
다시 한번의 도발.
“이 새끼가!!”
촤르륵!
요요술사는 크게 화를 내며 자신의 몸을 감싸고 있던 마지막 한 덩어리의 혈영쇄를 움직여 나에게 보냈다.
드드득!
강하게 조여 오는 혈영쇄.
놈은 정말로 나를 죽여 버릴 기세였다.
‘멍청한 놈.’
우득!
3겹의 혈영쇄가 주는 압력은 상당했다. 과연 고대의 비밀이라는 건가? 조금씩 깎여 나가는 생명력. 이대로 몇 분만 있으면 정말 죽을 수도 있을 것 같았다. 하지만…… 적어도 아직은 버틸 만했다.
비록 2분 정도밖에 남지 않았지만 아직 난 ‘영웅의 포효’ 효과를 받고 있었다.
무지막지하게 늘어난 힘은 혈영쇄의 압박을 버텨냈다. 그 결과 아직까지는 생명력이 거의 깎이지 않았다.
“후후, 겨우…… 이 정도야?”
결정적인 마지막 도발.
“이, 이 새끼!! 죽어!!!”
드드드드득!
요요술사는 잔뜩 흥분해 나를 향해 모든 힘을 쏟아부었다.
“크흠~ 묵직한데?”
우득, 우드득.
점점 심해지는 압박에 어깨뼈가 견디지 못하고 부서질 것 같았다.
“크하하하하, 병신새끼! 허세는 저승에 가서나 부려라!”
광기로 가득 찬 눈동자…… 요요술사는 미친 듯이 웃으며 즐거워했다.
하지만 그는 알까?
이로써 자신의 운명이 결정되었다는 것을…….
“……야…… 이제 됐다. 죽여.”
난 슬쩍 요요술사의 등 뒤를 향해 중얼거렸다.
“뭐라는 거야?”
“뭐긴 뭐야…… 넌 끝이라는 거지.”
스으으으.
[크허엉!]
“헉!!”
요요술사의 등 뒤 어둠에서 튀어나오는 한 마리의 거대한 마수. 반투명한 그림자 몸체를 지닌…… S급 고대의 비밀 묵이었다!
와드득!
“으아악!”
지친 건 우리만이 아니었다. 요요술사도 거의 바닥난 체력과 마력을 지니고 있었다.
거기에 흥분해 남은 힘을 모두 나에게 쏟아부었으니…… 절대 묵의 전력을 다한 공격을 막아낼 수 없었다.
“커억…… 이, 이럴 수…… 완벽…… 했는…….”
몸의 반이 날아가며 사방으로 빛 가루가 뿜어져 나왔다.
“후후후, 늘 뛰는 놈 위엔 나는 놈 있는 것이고…… 나는 놈 위엔 더 높이 나는 놈이 있다는 걸 잊지 마라.”
점점 희미해지며 사라지는 혈영쇄를 몸에서 걷어내며 힘을 잃고 바닥에 쓰러지고 있는 요요술사를 향해 말했다.
쿵.
띠링, 플레이어명 [요요술사]를 쓰러뜨렸습니다.
띠링, 한 명의 새로운 유저에게 승리했습니다. 총 플레이어 킬 수에 1이 추가되고 신규 유저 승리 횟수에 1이 추가됩니다.
띠링, 전투 중 고대의 비밀 두 가지가 모두 사용되었습니다. 고대의 절대법칙에 따라 고대의 비밀 ‘혈영쇄’를 고대의 비밀 묵이 흡수합니다.
띠링, 혈영쇄를 흡수한 묵은 더욱 성장하고 동화율도 크게 오릅니다.
띠링, 범죄자 요요술사는 상당수의 아이템을 떨어뜨립니다.
“처음부터 저승행 티켓을 예약한 건 내가 아니라 너였어.”
난 가방에서 각종 회복물약을 꺼내 마시며 요요술사의 어리석음을 비웃어주었다.
정리는 끝났다.
바닥에 떨어진 몇 권의 서적과 몇 개의 아이템만이 방금 무슨 일이 있었는지를 알려주고 있었다.
요요술사의 반란을 제압한 우리는 가볍게 상처를 치료하고 다시 보상목록 앞에 섰다.
원래는 일곱 명이 일곱 개의 보상을 각각 하나씩 나누려고 했는데 요요술사가 어리석은 짓을 하고 게임 아웃당해서 이제는 한 개가 남는 상황이 되었다.
“안 됩니다. 무조건 신 님이 가져가야 합니다.”
“오빠 말이 맞아요. 이건 무조건 신 님 것이에요.”
“때려죽여도 전 저거 안 가져갈 겁니다~!”
폴우, 꼰정, 붉은하늘, 붉은장미, 페티…… 모두가 똑같은 말을 했다.
솔직히 난 첫 번째 보상만 가져도 충분했다.
그런데 이들은 요요술사에게 갈 보상도 내가 가져가야 한다고 얘기하고 있었다.
“신 님, 정말 마음 같아서는 저희 보상을 다 드려도 상관없습니다. 자꾸 그렇게 거절하시면…… 제 보상도 신 님에게 넘기겠습니다.”
폴우의 마지막 협박 아닌 협박은 결국 날 굴복하게 만들었다.
“알았어요! 받을게요!”
난 결국 백기를 들었다.
“그럼 이제 다 결정된 거죠? 모두 예를 눌러주세요.”
띠링, 분배를 결정했습니다. 확인 후 이대로 결정하실 것이면 ‘예’ 바꾸실 것이면 ‘아니오’를 눌러주세요.
분배를 결정하자 시스템 메시지로 다시 한번 확인을 물었다. 당연히 모든 사람이 ‘예’를 눌렀고 이걸로 분배가 확정되었다.
띠링, 분배를 확정했습니다. 오랜 세월을 기다려 온 무신의 영혼(靈魂)이 당신들과의 대화를 원합니다. 응하시겠습니까?(예/아니오)
다른 사람들은 무신의 영혼과 대화를 한다고 하니 꽤 놀란 눈치였지만 난 아무렇지도 않게 ‘예’를 눌렀다.
[……반갑다. 난 백무량이라고 한다.]
스르르.
바닥에 음각되어있는 무황성이라는 글씨에서 하얀 아지랑이가 피어오르며 전설로만 듣던 무신이 그 모습을 드러냈다.
“안녕하십니까.”
어떻게 된 상황인지 아직 제대로 인지하지 못하고 있는 다른 이들을 대신해 난 가볍게 무신과의 대화를 시작했다. 처음에 성화를 만났을 때 나도 약간 얼떨떨했던 걸 기억해 보면 이런 반응은 당연한 것일지 몰랐다.
[대단하군. 정말로 너희들이 일월의 성지에 숨겨놓은 내 안배를 풀어낸 것인가?]
“네, 확실히 저희가 풀어냈습니다.”
[그렇군, 대단한 일을 했다. 강렬한 일월의 유혹을 뿌리치고 끝까지 정기(正氣)를 잃지 않는 너희들은 분명 내 제자가 될 자격이 있다.]
“저희가 백무량 님의 제자가 되는 것입니까?”
[그렇다. 이제부터 너희들은 나의 제자가 되는 것이다. 나를 향해 아홉 번 절하라! 그러면 너희는 나의 유지를 이을 수 있을 것이다.]
“아! 그전에…… 잠깐 여쭤볼 게 있습니다.”
백무량의 말을 듣고 절을 하려던 파티원들은 나를 바라보며 움직임을 멈췄다.
보통의 유저들이라면 아홉 번 절을 하고 재빨리 보상을 받으려고 정신이 없었겠지만…… 난 다르다.
보상도 보상이지만 정보를 좀 얻을 필요가 있었다.
[뭐지?]
“백무량 님은 어떻게 일월의 성지에 당신의 안배를 남기신 겁니까?”
[……이것은 아주 오래된 이야기이다. 언제인지 기억도 나지 않는 과거에…… 우리가 강호(江湖)라고 말했던 세상은 아주 번창했었다. 강호가 곧 법이었고 강호가 곧 국가였다. 우리는 그때를 무의 시대라고 불렀다.]
무신은 천천히 말을 이어나갔다.
[그때 강호엔 여덟 명의 절대자가 만든 8개의 큰 세력이 있었다. 내가 만든 무황성도 그 절대 세력 중 한 개였다. 여덟 명의 절대자는 말 그대로 절대자였다. 여덟 명 모두 그 공부가 극을 넘어 하늘에 닿아 반신의 경지에 올랐었다. 그래서 모두 조용히 강호의 그림자 속에 깊은 은거를 하고 있었지. 여덟 명의 은거는 감히 헤아릴 수도 없을 정도로 아주 오랫동안 이어졌다. 그런데 어느 날…… 강호에 큰 위기가 찾아왔다.]
하얀 연기로 만들어진 무신의 몸이 살짝 떨렸다.
[그 위기는 감히 평범한 존재들이 감당할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그래서 억겁의 세월 동안 은거를 하고 있던 여덟 명의 절대자가 다시 만났다. 그런데…… 놀랍게도 우리들의 힘으로도 그 위기를 막을 수 없었다. 이미 그것은…… 였다.]
무신의 말이 희미해지며 중요한 말이 들리지 않았다. 아마도 그 부분에 정보공개 잠금이 걸려 있는 것 같았다.
‘아깝군.’
들을 수만 있었다면 좋은 정보였을 텐데 좀 아까운 생각이 들었다.
[우리는 선택할 수밖에 없었다. 우리의 힘으로 할 수 있는 건 오로지…… 후일을 도모하는 것뿐이었고…… 그래서 우리는 결국 세월을 초월하는 안배를 만들 수밖에 없었다.]
여기서도 안배가 등장했다.
결국 동대륙이나 서대륙이나 비슷한 구조로 이루어진 것이 분명했다.
[그런데 안배를 만들다 보니…… 은근히 나와 상극이었던 일월신교의 교주 천마의 행보가 신경 쓰였다. 그 녀석이라면…… 분명 평범한 안배를 만들지 않을 터. 난 유심히 녀석을 지켜봤다. 그리고 녀석이…… 만든 그 무시무시한 함정을 발견할 수 있었다. 과연 녀석다운 안배였다. 하지만 난 그것을 보고 그냥 넘어갈 수가 없었다. 그래서 녀석의 함정에 교묘하게 내 안배와의 연결 고리를 만들었다. 비록…… 천마의 눈을 피하기 위해 매우 희미하게 만들어놓을 수밖에 없는 연결고리였지만 그래도 난 아무것도 안 할 수는 없었다.]
이제야 이해가 되었다.
우리가 왜 천마무총에 들어 무신의 안배를 발견하게 되었는지…….
“그럼, 천마의 계획이 실패했으니…… 일월신교의 안배는 영원히 사라지는 것입니까?”
[허허, 아니다. 넌 여덟 명의 절대자가 얼마나 대단한 경지를 쌓았는지 잘 모르는구나. 천마가 만들어놓은 안배는 천마무총뿐이 아니었다. 나 역시 그랬고, 천마도 그랬다. 그리고 나머지 여섯 명의 절대자도 마찬가지였다. 어떻게 해서라도 이어질 인연이라면…… 언젠간 이어진다. 그것이 우리 절대자들이 만들어놓은 안배의 절대법칙이다.]
“그렇군요.”
이제야 대충 이해가 되었다.
메인 퀘스트는 절대 사라지지 않았다. 단지 누군가 실패를 한다면 다른 퀘스트로 변환이 될 뿐이었다.
[시간이 없다. 어서 나에게 구배지례(九拜之禮)를 올리고 나의 유지를 받아라.]
더 이상 무신에게서 얻어낼 정보는 없어 보였다.
난 눈짓으로 파티원들에게 신호를 주었다. 그리고 시작된 아홉 번의 절.
일 배, 이 배, 삼 배…… 구 배.
우리 여섯 명은 모두 아홉 번의 절을 끝냈다.
그러자 강한 빛과 함께 우리가 선택한 보상이 우리의 눈앞에 나타났다.
[너희들은 나 백무량의 자랑스러운 제자들이다. 잊지 마라! 무신은 어디서나 당당했다!]
무신 백무량의 마지막 말.
그 말과 함께 난 또 하나의 메인 퀘스트를 클리어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