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더 로드(The Lord)-94화 (94/250)

094. 무황성(武皇城) ― 1

* * *

그때 기억이라면 지금도 잊을 수가 없지.

우리들은 그때 그 전투를 도화성전(刀花聖戰)이라 부른다네.

왜 도화성전이냐고?

후후후, 오로지 ‘도화’를 위한 전투였기 때문이었지. 때론 소중한 것을 지키기 위해 중요한 것을 포기해야 할 때도 있는 법이야. 너도 늘 그걸 잊지 않는 게 좋을 거야.

여하튼 우린 그때 미친 듯이 싸웠지.

정확히 말해서는 미친 듯이 날뛰었다고 해야 하나? 어쨌든 끊임없이 몰려오는 실혼인들을 전부 제압하겠다고 나섰지만 사실 좀 역부족이었어.

알겠지만 제압하는 건 그냥 죽이는 것보다 2배는 힘이 드는 일이야. 그런데 그냥 죽이기도 힘든 상대를 제압하려 했으니…… 우리가 얼마나 무모했는지 알겠지?

뭐라고?

그럼 실패했냐고?

하하하하, 실패했을 것 같아?

뭐 솔직히 말하자면 99% 실패를 예상하긴 했었지 하지만 미련은 없었어. 녀석을 위해서…… 그 정도는 충분히 감내할 수 있었지.

그런데 말이야, 세상일이 참 웃기더라고. 우린 그저 최선을 다해 녀석의 웃음을 되찾아주려 했던 것뿐이었는데, 기적이 찾아왔어.

그래, 기적.

그건 기적이었지.

불가능이 가능으로 바꾸어 버리는 대단한 기적. 난 그날 그렇게 기적을 경험했었어.

붉은색 활을 들고 있는 남자. 그는 환하게 웃으며 말을 이어갔다.

이것은 앞으로 언젠간 일어난 아주 소소한 이야기. 중요하지 않은 작고 평범한 그런 이야기일 뿐이다.

* * *

무려 40분간의 대 혈투. 44,000이라는 숫자는 엄청난 숫자였다.

산(山).

이것은 말 그대로 산이었다.

실혼인들로 쌓인 산.

44,000명의 가짜 유저들이 일월신주를 둥글게 둘러싸고 산을 이루며 쌓여 있었다.

“헉헉…… 헉헉…….”

일곱 명의 유저가 모두 쓰러지듯 바닥에 앉아 있었다.

“끝인가?”

폴우는 좌우를 둘러보며 힘겹게 중얼거렸다.

“기적이군…….”

붉은하늘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얘기했다.

진이 빠졌다고 해야 할까? 아니면 그냥 모든 기력을 다 썼다고 해야 할까? 어쨌든 여기에 있는 일곱 명의 유저는 모두 바닥에 주저앉을 정도로 기운이 없었다.

특히 나는…… 더욱 심했다.

‘무리했군.’

이렇게 원 없이 싸운 건 오랜만이었다. 물론 장비를 워낙 많이 제물로 없애 버려 완벽하게 모든 능력을 발휘할 수는 없었지만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은 다했다.

그리고 그 결과물이 바로 이 실혼인들의 산이었다.

“이게 가능한 일이었어?”

붉은장미는 슬쩍 나를 쳐다보며 말도 안 된다는 표정을 지었다.

“……불가능했던 일을 누군가가 가능하게 만들어주었네요.”

꼰정이었다.

그녀는 더 이상 울고 있지 않았다. 그녀의 입가에 살짝 맺혀 있는 미소.

그것은 분명 내가 바라던 보상이었다.

‘나쁘지 않아.’

아니, 나쁘지 않은 게 아니라 좋았다. 일월신교의 보물 따윈 상대도 되지 않는 대단한 보상이었다.

“고마워요, 오빠들. 그리고 요요술사 님…… 신 님!”

꼰정은 자신의 오빠들을 한 번 쳐다보고 요요술사를 거쳐 마지막으로 나를 쳐다보았다.

“정말로 고마워요.”

아마도 마지막 말은 나에게만 한 것 같았다.

“……진심으로 대답했었잖아요.”

난 슬쩍 웃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매우 훌륭한 보상을 받았으니 이제 더 이상 이곳에 남은 미련은 없었다.

“자, 나가죠. 칙칙한 동굴은 이제 지겹잖아요.”

“하하, 맞습니다. 지긋지긋하죠.”

“에휴~ 나이 먹어서 폐가 안 좋아. 얼른 밖에 나가서 좋은 공기를 쐬어야겠어.”

모두가 웃고 있었다. 아, 힘들고 허망한 표정을 짓고 있는 요요술사를 제외하고 모두가 웃고 있었다.

“잠깐! 근데 어떻게 나가죠?”

모두가 웃고 있을 그때 붉은하늘이 깜짝 놀란 표정으로 말을 했다.

“……뭐 이놈을 어떻게 하면 나갈 수 있지 않을까요?”

난 완성률 5% 정도에서 더 이상의 성장을 멈춘 일월신주를 향해 걸어가며 얘기했다.

그리고…… 난 손을 뻗어 일월신주를 만졌다.

바로 그 순간!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번쩍!

“헉!!”

갑작스러운 섬광. 그 섬광은 우리 모두를 집어삼켰다.

띠링, 대단합니다. 당신들은 실혼인 44,031명을 구출했습니다. 단순히 제거하는 것만으로도 벅찼을 상황에서 놀라운 능력을 보여주며 실혼인들을 제압한 당신들은 진정한 강호의 영웅입니다.

띠링, 무신공적(武神功績)치 44,031을 받으셨습니다. 무신공적치가 일정 수치를 넘기며 숨겨진 메인 퀘스트 [무황성(武皇城)의 무신(武神)]이 발동됩니다.

띠링, 무신의 안배에 따라 일월신교의 성지와 연결된 무신의 성지가 열립니다. 당신들 일곱 명은 무황성의 연자가 되어 무신의 유지를 이어받게 됩니다.

띠링, 레벨이 2 올랐습니다.

띠링, 보상을 나눌 수 있습니다. 나누는 방법은 파티원들이 직접 결정할 수 있습니다.

띠링, 이제부터 강호에 무황성이 나타납니다. 가히 무(武)의 신(神)이었다는 백무량이 만든 무황성…… 이는 강호에 큰 변화를 가져올 것입니다.

“……!!!”

모두가 놀란 표정을 지었다.

그럴 수밖에 없을 것이 일월신교의 보물을 찾으러 들어와서 갑자기 전설의 무황성을 찾다니, 이건 정말 뭐라 설명할 수 없는 큰 충격이었다.

어느새 우리가 주저앉아 있던 곳은 천장에 밝은 야명주가 수십 개가 빛을 내고 있는 요상한 석실로 바뀌어 있었다.

가운데 크게 음각되어 있는 무황성이라는 글씨가 대충 이곳이 어딘지 알려주고 있었다.

“……이런 걸 기연(奇緣)이라고 하는 건가?”

붉은하늘이 중얼거리며 얘기했지만 아무도 그에 대답하지 않았다.

띠링, 보상은 총 7개로 나뉩니다.

첫 번째, 무신의 권위[무신의 권능을 이어받습니다]

두 번째, 무신의 검[무신의 검과 검법을 이어받습니다]

세 번째, 무신의 도[무신의 도와 도법을 이어받습니다]

네 번째, 무신의 권[무신의 권갑과 권법을 이어받습니다]

다섯 번째, 무신의 내공[무신의 내공(마력)과 내공심법을 이어받습니다]

여섯 번째, 무신의 신법[무신의 보법과 신법을 이어받습니다]

일곱 번째, 무신의 재물[무신의 금력(金力)과 지법을 이어받습니다]

띠링, 한 명이 모든 것을 선택할 수도 있고 일곱 명이 각각 한 가지를 선택할 수도 있습니다. 모든 건 당신들의 선택에 달려 있습니다.

다시 한번 시스템 메시지가 뜨며 우리가 받을 수 있는 보상이 떠올랐다.

“대박이다!”

붉은하늘의 외침이 아니라도 지금 우리가 엄청난 기연을 맞이했다는 것쯤은 한눈에 알 수 있었다.

“무신…… 무황성…….”

모두가 잠깐 보상목록을 보며 조용히 앉아 있었다. 침묵을 깬 건 폴우였다.

“……어쨌든 결과가 이렇게 될 줄은 몰랐는데…… 다행이네요. 신 님과 요요술사 님한테 정말 미안했었는데…… 자~ 이제 기분 좋게 나눠보죠. 딱 7개의 보상이니 각자 하나씩 선택하면 될 것 같네요. 저희보다는 신 님과 요요술사 님 먼저 고르시는 게 맞는 것 같습니다.”

40분 전쯤 위험한 기세를 마구 뿜어내던 폴우와는 전혀 다른 예의 바른 폴우가 나와 요요술사를 바라보며 얘기했다.

다른 사람들도 폴우에 말에 아무런 이견을 내지 않았다. 마치 당연하다는 표정으로 웃으며 고개를 끄덕이는 파티원들. 확실히 좋아할 수밖에 없는 이들이었다.

“전 내공과 내공심법을 고르겠습니다.”

요요술사는 혹시라도 누가 먼저 고를까 봐 재빨리 말했다.

‘쯧, 멍청한 놈.’

난 그런 요요술사를 보며 마음속으로 살짝 비웃어줬다.

확실히 요요술사의 선택은 평범한 기준으로 본다면 나쁘지 않은 것이었다.

내공과 내공심법.

정확히 어떻게 준다는 건지는 몰라도…… 대략 마력 수치가 증가하고 S급의 내공심법을 하나 준다는 것 같았다.

분명 주술사 유저인 요요술사에겐 이것보다 좋은 보상은 없을 것이다.

하지만 사실 이 7가지 보상 중 제일 대단한 보상은 첫 번째 보상일 것이다.

메인 퀘스트를 클리어해 보지 않은 이들은 모른다, 저 권능이라는 것이 얼마나 대단한 것인지를.

단순히 눈에 보이는 것만으로는 최상급 무기와 최상급 무공을 주는 다른 보상들이 더 좋아 보일지 몰라도 내 눈에는 압도적으로 첫 번째 보상이 좋아 보였다.

이것이 바로, 계속 반복해서 말한 경험한 자와 경험하지 못한 자의 차이였다.

“전 무신의 권능을 선택하겠습니다.”

내가 미련 없이 첫 번째 보상을 선택하자 다른 사람들은 살짝 의외라는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음…… 두 분이 고르셨으니 이제 우리가 고르자.”

나와 요요술사를 제외한 다른 이들의 선택은 의외로 가볍게 결정되었다.

페티가 검과 검법을, 꼰정이 도와 도법을 그리고 붉은장미는 금력과 지법을 가져갔고 폴우가 권갑과 권법, 붉은하늘이 보법과 신법을 가져갔다.

“자, 다 결정됐으니 보상을 받…….”

폴우는 고개를 끄덕이며 이제 보상을 받으려고 했다. 그런데 바로 그때 또 한 번의 변화가 일어났다.

띠링, 요요술사 님이 ‘폴우와 친구들’ 파티에서 나가셨습니다.

츠리릿!

갑자기 땅속에서 치솟아 오르는 붉은색 쇠사슬.

촤륵!

“컥!!”

“크윽!”

그 붉은색 쇠사슬은 지쳐서 쉬고 있는 우리들의 몸을 가볍게 제압해 버렸다.

생각지도 못한 불의의 일격.

우리에게 불의의 일격을 날린 범인은 바로…… 요요술사였다.

띠링, 요요술사에게 공격을 받았습니다. 정당방위로 반격이 가능합니다. 프리전투지역이 아닌 곳에서 다른 플레이어를 공격한 요요술사는 30분간 범죄자가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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