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더 로드(The Lord)-92화 (92/250)

092. 각성(覺醒) ― 2

* * *

“흐음…….”

내 눈빛에서 강렬한 의지를 읽은 것인가? 폴우는 가만히 나를 바라보다가 조용히 앞을 바라보았다.

“오빠들, 그냥 믿어보죠. 비록 긴 시간은 아니었지만 지금까지 제가 겪어본 신 님이라면 허튼소리를 할 분은 아닌 것 같아요. 그리고…… 적어도 신 님이 저와 같은 파티에 속해 있으신 이상 의견을 존중하고 싶어요.”

꼰정은 나를 바라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의 눈빛에선 강한 믿음이 흘러나왔다.

‘고맙군.’

그녀의 이런 믿음이 고마웠다.

“에이~ 그래. 파티 플레이에서 믿음보다 중요한 건 없지. 좋아, 나도 찬성이다!”

붉은하늘이 슬쩍 웃으며 손을 들었다.

“후후, 우리 공주님이 찬성했는데 반대하면 안 되겠지?”

의외로 페티 역시 순순히 고개를 끄덕이며 찬성했다.

“반대하면 이 녀석들한테 내가 맞아 죽겠군.”

붉은장미 역시 웃으며 찬성 쪽에 한 표를 던졌다.

“음, 요요 님은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조용히 상황을 지켜보던 폴우는 아직까지 아무런 말을 하지 않던 요요술사를 향해 물었다.

“저는 솔직히 좀 회의적인 입장인데…….”

요요술사는 슬쩍 다른 파티원들의 눈치를 보며 중얼거렸다. 꼰정이나 다른 이들과 다르게 이 녀석은 계속 좀 신경 쓰였다.

특별히 크게 문제가 있는 건 아니지만 묘한 위화감이 녀석에게서 풍겼다.

그 위화감의 원인을 찾지 못했고 개인적인 능력은 뛰어난 놈이었기에 가만히 있었지만 그냥 좀 신경이 쓰이는 존재였다.

“……뭐 여기서 혼자만 빠지기도 좀 그러니 대세에 따르겠습니다.”

녀석은 눈치가 빨랐다.

어차피 여기서 우리와 헤어진다면 놈이 할 수 있는 건 별로 없었다. 기껏해야 다른 파티를 찾아가는 건데 파티가 전멸한 것도 아닌데 갑자기 파티에서 나와 다른 파티를 찾아가면 다른 파티들이 쉽게 받아줄 리가 없었다.

거기에 지금 이 파티의 능력이 상당히 뛰어났고 내 말도 아예 허황된 얘기 같지가 않으니까 이쪽을 선택하는 건 당연했다.

“그럼 결정 났군요.”

요요술사마저 결정을 내리자 폴우는 고개를 끄덕이며 입을 열었다.

“신 님의 의견에 따르겠습니다.”

모두가 내 의견에 찬성했다.

“고맙습니다. 절대 후회하지 않을 겁니다.”

이들은 알까?

지금 내가 자신들에게 엄청난 행운을 선물했다는 것을…….

* * *

“위험해!”

꼰정의 외침.

난 재빨리 몸을 피하며 파티의 진형을 다른 것으로 바꿨다.

스킬조합 칠성진(七星陣)[D급]+철벽진(鐵壁陣)[D급]

칠성철벽진(七星鐵壁陣)[C급] 발동!!

내 손짓과 함께 일곱 명의 위치가 미묘하게 변했다. 그리고 지금까지 유지되던 오행검진(五行劍陣)이 해제되며 새롭게 칠성철벽진이 발동되었다.

오행검진은 간단한 공격형 진법으로서 공격력+5%의 효과를 지니고 있었는데 내가 그걸 황급히 칠성철벽진(재사용 대기 시간: 30분)으로 바꾸며 10초 동안 파티원들이 받은 모든 데미지를 50%로 줄여주는 효과로 전환시켰다.

꽝!

내 옆의 땅을 강타하는 망령의 공격.

“버텨!!”

폴우는 ‘불굴의 외침(파티스킬: 30초 동안 모든 파티원 방어력+10%)’이 섞인 목소리로 외치며 양손 도끼를 크게 휘둘렀다.

쩌저정!

망령들을 밀어내는 그의 양손 도끼.

폴우의 몸 곳곳에는 작은 상처가 생겨 반짝이는 빛 가루가 흩날렸지만 그는 개의치 않고 온몸으로 망령을 막았다.

“으랏챠!”

둥둥둥둥둥!!

붉은장미는 끊임없이 손에 들고 있는 작은북을 치며 회복계열 스킬을 사용했다.

그의 직업은 치료계열 직업 중에는 좀 특이하다고 알려진 음파치료사였다.

순간적인 치유력은 다른 치료계열 직업보다 떨어졌지만 각종 버프스킬과 지속적인 치유력은 상당히 뛰어난 직업이 바로 음파치료사였다.

음파치료사도 어떤 악기를 사용하냐에 따라 상당히 다른 성향을 보여주었는데 북을 사용하는 붉은장미는 공격형 버프스킬과 HOT(Heal of Time)스킬(계속해서 주기적으로 회복을 시키는 스킬)이 매우 뛰어났다.

‘젠장…… 덕분에 위태위태하게 계속 버티는 중이지.’

힐러의 순간 치유력이 떨어지다 보니 파티는 끈질기지만 매우 위태롭게 계속 버틸 수밖에 없었다.

아슬아슬한 버티기 승부.

벌써 3일(게임 시간)이 넘는 시간 동안 망령의 집중 공격에 버티는 중이었다.

어쩌면 붉은장미가 북을 이용한 음파치료사가 아니었다면 3일 동안 버티지 못했을지도 모른다.

비록 회복량은 작지만 끈질기고 지속적인 그의 스킬 난사 덕분에 힘들지만 그래도 지금까지 버틸 수 있었다.

[화룡포(火龍砲)!!]

화르륵! 꽝!

역시 마무리는 요요술사의 한 방 주술이었다. 그의 손에서 뻗어나간 한 마리의 붉은 용이 망령들을 정리해 버렸다.

퍼퍼펑!

매우 위험한 상황에서 내가 적절하게 진법을 바꾼 덕분에 가까스로 위험한 상황을 넘겼다.

“휘유~ 역시 신 님 최고~!”

꼰정은 나를 바라보며 살짝 윙크를 해주었다. 사실 모두가 잘해준 게 맞았지만 결정적인 위기를 넘긴 건 내 진법 덕분인 게 맞았다.

“재수가 좋았습니다.”

이제는 정말 진법의 사용이 자유자재로 잘 되었다.

솔로 플레이를 할 때는 진법을 거의 사용하지 않아 몰랐는데 진법이란 게 어떻게 사용하냐에 따라 아주 훌륭한 스킬이 되었다.

“흠흠, 빨리 재정비하죠.”

요요술사는 괜히 심술이 나는지 헛기침을 하며 얘기했다.

“또 금방 달려들 거다. 준비해라.”

폴우는 재빨리 금창약과 붕대로 작은 상처들을 치료하며 생명력을 회복시키며 말했다.

하지만 폴우나 요요술사가 얘기하기 전부터 모든 파티원들은 자연스럽게 재정비를 하고 있었다.

파티원들 모두가 굳이 누가 말하지 않아도 자신이 해야 할 일이 무엇인지는 알고 있었다.

“그나저나…… 지금 능력치가 얼마나 깎였지?”

“음…… 지금 -48%네.”

페티와 붉은하늘은 능력치가 깎인 수치를 확인하며 50%까지 얼마나 남았는지 확인하고 있었다.

그사이 나는 주변에 설치한 몇 가지 간단한 진(陣)을 손보는 척하며 재빨리 소환 시간이 얼마 남지 않은 묵을 위해 마법 아이템 하나를 제물로 써버렸다.

묵은 지금 이 순간에도 내 주변에서 망령을 사냥하고 있었다. 사실 묵이 없었다면 아마…… 우리는 버티지 못했을 것이다.

내가 폴리모프 망토를 벗고 숨겼던 능력을 발휘하지 않는 이상 버티기가 힘들었을 것이 분명했다.

그나마 능력치가 50%에 가깝게 깎인 상태에서 이렇게 버틸 수 있었던 건 묵 때문이다.

물론 파티원들은 그 사실을 전혀 몰랐지만 현재 그들은 모두 묵의 비호를 받고 있는 상태였다.

‘젠장, 아깝군.’

묵이 없으면 버티지 못한다.

이것 때문이라도 난 묵의 소환을 유지해야 했다. 덕분에 난 가방에 들어 던 각종 매직 아이템뿐만 아니라…… 내가 장비로 사용하던 아이템들도 모두 제물로 사용하고 있었다.

트윈문소드(레어 세트), 명사수의 트윈건(유니크 세트), 화염창(레어), 마수의 손톱(레어), 문블레이드(레어), 포이즌대거(레어) 등등.

수많은 내 장비가 제물로 사용되었다.

방금 제물로 바친 건 무려 유니크 아이템인 명사수의 트윈 건 두 자루였다. 비록 저레벨에서 얻은 유니크 아이템이라 성능이 조금 떨어지는 건 사실이었지만 그래도 무려 유니크!! 경매장에 팔면 상당히 비싸게 팔릴 것이었기 때문에 무척 아까웠다.

골드라면 이미 많이 벌어둔 나였지만 그래도 아까운 것은 아까운 법.

하지만 묵이 없으면 아예 여기서 버틸 수가 없었기 때문에 투자라고 생각하고 과감히 제물로 바쳤다.

띠링, 명사수의 트윈건이 사라집니다. 소환수 묵의 활동 시간이 4시간 31분 44초로 늘어납니다.

띠링, 동화율이 000.10 올랐습니다.

‘휴~ 제발 마지막 제물이 되길.’

현재 우리의 능력치 제한은 -48% 이제 4시간이 조금 안 되는 시간만 더 버티면 -50%를 채우고 일월신주를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적어도 그때까지…… 그때까지는 묵이 버텨줘야 했다.

묵에게 제물을 공급하고 살짝 망가진 5초마다 생명력 50을 회복시켜 주는 자연치유진(自然治癒陣)[D급]을 빠르게 손보고 혹시 몰라서 마력을 5초마다 20씩 회복시켜 주는 마력회복진(魔力回復陣)[D급]도 이상이 없는지 점검해 보았다.

두 진 모두 기본적인 진법이라 큰 도움이 되는 것은 아니었지만 당연히 없는 것보다 있는 것이 좋았다.

생각 같아서는 그 유명한 천살명왕진(天殺冥王陣)[반경 20m 안의 파티원들의 공격력 30% 증가 4분 동안 유지 5초마다 마력 0.2% 회복 재사용 대기시간 30분]이라도 깔아놓고 싶었지만 아직은 미약한 진법스킬 숙련도와 천살명왕진 같은 S급 진법은 쉽게 구할 수 있는 것이 아니었기 때문에 죽어라 D급, C급의 진법들만 사용하며 버텨내고 있었다.

진법가가 한 번에 사용할 수 있는 진법의 한계 개수는 4개 현재 우리 파티원들을 이용해 진형을 짜며 한 개를 사용했고 2개는 자연치유진과 마력회복진이었다.

그리고 마지막 1개는 파티원들이 자리 잡은 중앙에 설치해 놓은 광명진(光明陣)[D급: 어둠에 대한 저항력을 10% 상승시켜 준다]이었다.

천마무총에 들어와서 지금까지 미친 듯이 진법을 연구한 결과 이제는 어디 가도 빠지지 않을 정도의 진법가가 되었다.

‘성과라면 성과겠지.’

새삼 ‘One’에 존재하는 다양한 스킬들이 얼마나 대단한 것들인지 깨닫는 계기도 되었다.

누군가 ‘존재하는 스킬 중에 쓸모없는 스킬은 없다’라고 말했었는데 그 말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그동안 주로 전투 스킬을 위주로 성장시켰던 내가 얼마나 어리석었는지 대충 깨달았다.

전투 스킬만 중요한 게 아니었다.

모든 스킬이 중요했다.

내 장점이 무엇인가? 배울 수 있는 스킬의 제약이 없다는 것 아닌가?

난 멍청하게도 스스로 반쪽짜리 캐릭터를 키우고 있었다.

이제부턴 다를 것이다.

그 어떤 스킬도 소홀하게 생각하지 않고 무조건 전투 계열 스킬만 올리지도 않을 것이다.

이것은 일종의 각성(覺醒)이었다.

어쩌면 진정한 ‘더 로드’의 시작은 지금부터일 것 같았다.

“자, 오는 것 같다. 대비하자.”

사방을 둘러보며 정찰을 하던 붉은하늘이 슬쩍 목을 돌리며 얘기했다.

너무나 자연스럽게 진형을 구축하는 파티원들.

난 재빨리 진형의 중앙에 자리 잡고 머릿속으로 몇 가지 진법을 생각했다.

‘일단…… 한 타임은 막고 가야겠지?’

처음엔 망령들이 무척 거세게 공격할 것이 분명했기 때문에 방어 위주의 진형을 짜는 게 좋았다.

‘사방방어진(四方防禦陣)[D급: 파티원들의 방어력을 7%, 생명력을 5% 상승시킨다]으로 가자.’

사방방어진은 비록 급수는 낮았지만 방어용으로 쓰이면 상당히 좋은 효과를 발휘하는 진법이었다.

‘이제 두 시간만 더 버티면 된다!’

일월신주를 취하고 무엇이 우리를 기다리는지 나도 몰랐다.

단지 중요한 건 일월신주를 얻을 경우 이 지긋지긋한 천마무총의 미로에선 빠져나갈 수 있을 것 같다는 사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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