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더 로드(The Lord)-91화 (91/250)

091. 각성(覺醒) ― 1

* * *

현실 시간으로 5일. 게임 시간으로 15일.

이것은 우리가 천마무총에 들어온 날짜였다. 천마무총은 정말 대단했다.

시간이 지날수록 망령은 더 강해졌고 더 교활해졌다. 그리고 각종 기관으로 이루어진 함정은 더욱 난해해졌다.

하지만 이 두 가지보다 더 결정적으로 사람들을 어렵게 한 건 시간이 지날수록 일월주를 찾기가 어려워졌다는 것이었다.

덕분에 대부분의 유저는 기본적으로 대략 -10% 정도의 능력치가 감소된 상태로 천마무총을 탐험했다.

덕분에 많은 사람들이 어둠 속으로 사라지거나 빛 가루가 되어 소멸되었다.

이쯤 되자 나 역시 굉장한 압박이었다.

다른 이들은 단순한 10% 능력치 감소였지만 난 폴리모프 망토로 인한 20% 감소에 또 10% 감소가 추가된 거라 골치가 아팠다.

물론 감소가 합 연산이 아닌 곱 연산이라 모든 능력치가 30% 감소되는 건 아니었지만 그래도 상당량의 능력치가 감소되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묵이 이 어둠의 기운에 영향을 받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아니, 오히려 어둠의 기운이 강해지면 강해질수록 묵은 제 세상이라도 만난 것처럼 즐거워했다.

얼마나 신나게 사냥을 한 건지 벌써 레벨이 10이나 오른 묵이었다.

아무리 단독 사냥을 했다고 해도 엄청 가장 레벨을 올리기 힘들다는 400~500구간에-소환수도 유저와 똑같은 법칙이 적용된다-엄청난 속도로 레벨을 올리고 있었다.

어쨌든 묵이란 특수한 놈을 제외한 천마무총에 모든 유저의 상황이 좋지 않았다.

오프라인에서 다른 사람들이 올린 글만 보아도 다른 무리들도 우리 무리와 별반 다르지 않은 상황이었다.

현재 우리 무리에서 제대로 일곱 명의 파티를 유지하고 있는 건 오로지 세 파티.

그나마 한 파티는 중간에 파티원을 심하게 잃은 두 개의 파티가 재구성한 파티였다.

그렇게 4개의 파티, 26명으로 이루어진 우리 무리.

다른 무리도 이런 우리와 비슷비슷한 상황이었다. 그나마 조금이나마 선전하고 있는 무리들은 천룡맹이나 신검가(神劍家), Musa 패밀리, LOP, FKL, 청랑대(靑狼隊) 같은 상위권의 대형 길드(연합)들이었다.

물론 그렇다고 엄청난 차이가 있는 건 아니었다. 그들 역시 고생하는 건 마찬가지…… 결국 천마무총은 정말로 거대한 함정처럼 변해 있었다.

“우리가 전부 죽을 때까지 그 일월신주인지 뭔지는 나오지 않을 것 같은데?”

붉은하늘의 말처럼 벌써 15일(게임 시간)이 지났건만 일월신주는 어디에 있는지 도통 감을 잡을 수 없었다.

분명 길은 계속 이어졌지만 이 길을 따라가는 것이 과연 맞는 것인지 그것조차 확신할 수 없었다.

이곳으로 들어온 이들이 거의 7만.

아무리 반수 이상이 당했다고 해도 3만에 가까운 유저가 남아 있을 것이라 예상되었다.

그런데…… 15일 동안 다른 어떤 무리와도 조우하지 않았다.

그나마 오프라인에서 확인해 본 결과 다른 팀들도 다 그렇다는 정보 때문에 아무런 의심 없이 길을 따라 안으로 들어가고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 이쯤 되자 더 이상 의심을 안 할 수가 없었다.

“어차피 이곳을 빠져나갈 방법이 없잖아. 유일하게 나가는 방법은 죽어서 나가는 건데…… 죽기 전까지는 한 번 찾아봐야겠지.”

꼰정 역시 투덜거리며 중얼거렸다.

“다른 팀이라고 해서 다를 게 없잖아? 일단 그냥 뚫고 나가보자.”

폴우는 묵묵히 양손 도끼를 휘두르며 파티원들을 독려했다.

15일(게임 시간) 동안 같이 지내며 느낀 것은 요요술사와 나를 제외한 나머지 다섯 명의 유대감이 상당하는 것이었다.

그리고 그와 동시에 타인에 대한 배려도 꽤 있는 이들이라 지금까지 플레이해 봤던 그 어떤 파티보다 편하게 느껴졌다.

“내가 여기저기 정보를 모아봤는데…… 아무래도 일월신주는 평범하게 천마무총 어딘가에 존재하는 것이 아닌 것 같아. 다른 사람들도 뭔가 숨겨진 비밀이 있을 거라는 의견을 내고 있어.”

좀처럼 말이 없는 페티였지만 그의 게임에 대한 이해도와 정보력은 상당했다.

나 역시 지금 그의 말에 동의했다.

이대로 천마무총을 헤맨다고 일월신주가 발견될 것 같지는 않았다.

뭔가 다른 방법이 분명 있을 것 같았다.

하지만 그 방법을 찾지는 못했다. 오프라인에서, 그리고 온라인에서도 모든 방법을 동원해 정보를 모아서 이리저리 껴 맞춰봤지만 해답이 나오지는 않았다.

“결국 숨겨진 비밀을 찾는 게 답이라고 해도…… 지금 당장은 답을 찾을 때까지 계속 생존하는 수밖에 없겠네.”

붉은하늘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얘기했다.

“뭐, 해답이 나올 때까지 레벨을 올린다고 생각해요.”

휘잉!

꼰정은 슬쩍 웃으며 손에 들고 있던 커다란 도를 휘둘렀다.

“하하, 그럴까?”

크게 웃는 붉은장미. 그의 웃음과 함께 다른 파티원들도 덩달아 미소 지을 수 있었다.

확실히 파티플레이가 뭔지 잘 아는 이들.

이런저런 이유 때문이라도 당분간은 이들과 함께 게임을 즐기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았다.

* * *

[이것은…… 마지막…… 간섭이다…….]

꿈?

이건 꿈이었다.

그런데…… 뭔가 이상하다.

모든 것이 희미해진다.

하지만 그와 함께 뭔가가 확실해진다.

마구 뒤섞였다가 다시 정렬되는 것 같은 느낌…… 점점 다시 편안해진다.

점점…….

근데…… 왠지 이 모든 과정은 내 기억 속에서 사라질 것 같다.

희미하게…….

점점 희미하게…….

* * *

“네? 뭐라고요?”

꼰정은 깜짝 놀란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그녀뿐만이 아니었다.

다른 파티원들 역시 똑같은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놀라시는 게 당연합니다. 하지만 분명히…… 이것은 일월신주를 찾을 수 있는 방법입니다.”

난 단호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이며 다시 말해주었다.

“신 님, 무슨 근거로 그렇게 확신 있게 말씀하시는 것이죠?”

놀란 표정을 지었던 폴우는 이내 다시 평정심을 회복하고 나를 향해 물었다.

“근거는…… 제가 모은 정보와 제 나름대로의 분석입니다.”

물론…… 거짓말이었다.

근거는 내 기억이었다. 난 오늘 아침에 그동안 잊고 있었던 기억이 하나 되살아났다.

뜬금없이 떠오른 기억이라 기억을 해낸 내 자신도 황당했지만 분명 내 기억 속에 천마무총에 대한 기억이 한 가지 남아 있었다.

다른 기억들은 안 나는데 왜 이 기억 하나만 나는 건지 알 수 없었지만 어쨌든 확실한 기억이었다.

“……신 님의 능력은 믿지만 이건 워낙 쉽지 않은 것이라…….”

폴우 역시 나와 오랜 기간 파티 플레이를 하며 나를 꽤 신뢰하는 눈치였다.

그렇기에 갑작스럽고 당황스러운 얘기였지만 무조건 무시할 수 없는 상황일 것이다.

“확실합니다. 일월주는 우리를 말려 죽이기 위해 천마가 만들어놓은 교묘한 눈속임입니다. 이곳은 원래 일월신교의 성지라 불렸던 곳입니다. 제가 예전에 우연히 읽었던 서적에는 일월신교의 성지에서 일월의 시험을 거친 자는 일월신교의 교도가 될 수 있다고 되어 있었습니다. 일월의 시험은 바로 이 몰려드는 어둠의 기운이었습니다. 이 어둠의 기운을 끝까지 버틴다면 분명 일월신주가 나타날 겁니다.”

난 적당히 내 기억 속의 정보를 가공해서 이들에게 알려주었다.

우선 내가 말한 것 중에 진실은 이곳이 일월신교의 성지라는 것과 이곳에 2시간마다 계속 깎이는 능력치를 계속 쌓아서 능력치가 -50%가 될 때까지 버텨내면 일월신주가 나타난다는 것이었다.

이 얼마나 교묘한 함정인가!

이곳은 정말 대단한 함정이었다. 생각해 봐라! 누가 능력치가 당장 깎여 나가는데 일월주를 사용하지 않겠는가?

물론 일월주를 사용한다고 해도 조금씩 능력치는 깎여 나간다.

능력치가 -50%가 되어야 일월신주가 나타난다.

그렇단 얘기는 지금처럼 일월주를 찾아가면서는 무려 50일(게임 시간)을 넘게 버텨야 한다는 얘기였다.

솔직히 그건 불가능했다.

아마 그전에 모두 죽을 것이다. 결국 이곳은 비밀을 알지 못하면 모두 사망할 수밖에 없는 함정이었다.

이 사실들을 제외한 나머지 것들은 대충 지어낸 말이었다. 책에서 읽었다는 것, 일월신교의 교도가 될 수 있다는 것, 천마의 함정이라는 것…… 대어를 낚기 위해 내가 뿌린 밑밥이었다.

이렇게 말을 지어내야지 그나마 이들을 꼬일 수 있었다. 솔직히 이번 퀘스트는 나 혼자 해결하기엔 무리가 있었다.

능력치가 -50%가 될 때까지 이곳에서 혼자 버티는 건 불가능했다.

그동안 내가 클리어한 2개의 메인 퀘스트는 몇 번의 기적 같은 행운과 정확한 정보를 바탕으로 한 치밀한 사전 준비 덕분이었다.

하지만 이번 메인 퀘스트는 정확한 정보도 없었고 사전 준비도 제대로 하지 못했다. 그렇다고 찾아오지도 않은 행운을 바라기에는 큰 무리가 이 있었다.

결국 남은 방법은 최대한 가능성이 높은 방향으로 나아가는 것이었다.

우연히 중요한 정보가 떠올랐지만 그 정보를 이용해 나 혼자 해결할 수 있는 일은 거의 없었다.

조금이라도 가능성을 높이려면 이들을 끌어들여야 했다.

물론 다소 황당한 얘기라 당장은 내 말을 들을 것 같지 않았지만 난 무조건 이들을 낚아서 같이 무리에서 떨어져야 했다.

“……솔직히 곰곰이 생각하면 신 님의 말이 완전히 허황된 것만은 아닙니다. 하지만…… 진짜 중요한 건 우리가 이 무리에서 떨어진다면 우리만으로 생존할 수가 있을까요? 이 망할 놈의 망령들은 우리를 우선적으로 노릴 테고…… 각종 기관들은 늘 우리를 위험에 빠지게 할 겁니다. 이런 상황에서 신 님의 분석만 믿고 무리를 이탈하기가…….”

조용히 있던 페티가 약간 부정적인 의견을 내놓았다. 그리고 다른 이들도 그 의견과 비슷한 생각을 가진 것 같았다.

하지만 내가 이 정도에서 물러날 순 없었다.

“네, 위험하겠죠. 특히 망령들에겐 정말 많은 공격을 받을 겁니다. 하지만…… 한 가지 잘못 알고 계신 게 있습니다. 망령은 몰라도 기관들은 전혀 위협이 되지 않을 겁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여기서 움직이지 않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거 아십니까? 천마무총은 미로입니다. 그것도 그냥 미로가 아닌 특수한 진법에 의해 만들어진 엄청난 규모의 미로…… 진법의 이름은 알 수 없지만 어떠한 진의 영향으로 거리가 1,000m 이상 떨어진 유저들은 자동적으로 서로 다른 미로에 빠지게 되는 그런 구조를 가진 곳입니다. 왜 그 많은 유저들이 서로 만나지 못한지 아시나요? 그건 모두 진법의 영향 때문입니다. 움직일 필요가 없습니다. 어차피 저 길을 따라 계속 들어간다고 나오는 건 없습니다. 그냥 미로의 반복일 뿐이죠.”

이건 사실이었다.

여기까지가 오늘 아침에 떠오른 전부였다.

더 이상의 정보는 없었다. 하지만 적어도 일월신주를 찾는 방법이 이것인 것만은 틀림없었다.

정말로 만약에…… 이들을 설득하지 못한다면 혼자라도 도전할 생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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