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더 로드(The Lord)-90화 (90/250)

090. 묵 ― 2

* * *

문제는 의외의 곳에서 생겼다.

천마무총에 들어온 지 12시간 정도가 흘렀을 때…… 몇몇 유저들이 로그아웃을 해야 한다며 진행을 멈추자는 의견을 냈다.

하지만 그들 몇몇을 위해 다른 사람들도 모두 로그아웃을 할 수는 없었다. 일월주를 찾아 능력치를 회복하고 나가지 않으면 다음에 들어왔을 때 어떤 손해를 입을지 상상할 수 없었다.

결국 몇 번의 논의 끝에 이곳에서 로그아웃을 할 사람들은 따로 무리를 만들어 갈라졌다.

그게 시작이었다.

계속된 전진.

그리고 또 몇 번의 대규모 로그아웃.

천마무총에 들어온 지 이틀(게임 시간) 정도 됐을 땐 갈라지고 또 갈라져 이젠 여섯 개의 파티(45명)만 남았다.

우리 파티는 끝까지 남았다.

이쯤 되자 이제 남은 여섯 개의 파티도 로그아웃을 해야 할 시기가 되었다.

마지막으로 일월주를 발견한 후 여섯 개의 파티는 모두 로그아웃에 동의하고 정확히 다음 접속시간을 맞췄다.

어설프게 흩어지면 안 된다는 것을 누구보다 잘 아는 이들이었기에 모두 동의했다.

천마무총에 들어온 첫날(실제 시간)은 그렇게 끝이 났다.

* * *

“일월공적이라…….”

로그아웃을 하고 곧장 잠을 잔 후 일어난 나는 아직 접속 약속시간까지 20분 정도가 남았기 때문에 조용히 자료를 검색하며 이번 천마무총에 대해 생각해 보았다.

아쉽게도 내 기억 속에도 이번 천마무총 퀘스트를 도울 만한 정보가 전혀 없었다.

그렇기에 이번 퀘스트는 순수하게 내 능력만으로 해결해야 했다.

“파티사냥을 하면서 평범하게 공적치를 올리면 남들과의 차이를 벌릴 수 없다.”

남들과 똑같이 행동해서는 절대 앞서 나갈 수가 없었다. 비록 생각보다 파티원들의 실력이 좋아 상당한 공적치를 쌓았을 것으로 예상이 되었지만 그래도 결국 상위권의 유저들 중 한 명일 뿐이었다.

뭔가 획기적인…… 수법이 필요했다.

“그렇다고 따로 사냥할 수는 없고.”

아무리 나라고 해도 아무런 사전 정보도 없는 곳에서 단독행동을 하다간 곧장 게임 아웃 될 수 있었다.

망령들은 약점이 보이면 미친 듯이 달려들었기 때문에 아직 단독행동은 무리가 있었다.

“……방법이 없을까…….”

난 조용히 홀로그램 모니터에 있는 정보들을 확인하며 생각에 빠졌다.

“……단독…… 단독…… 단!!!”

벌떡.

난 자리에서 갑자기 일어나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어쩌면 가능하지도…….”

확인한 건 아니지만 충분히 가능해 보였다.

“일단 조금 위험하겠지만 먼저 접속을 해봐야겠군.”

안전지대가 설정되어 있겠지만 그래도 혼자 접속하는 건 약간 위험했다.

하지만 지금 떠오른 그것을 실행하려면 먼저 들어가 확인해볼 필요가 있었다.

“크윽, 아깝군.”

난 손에 든 검 한 자루를 내려다보며 안타까운 표정을 지웠다.

처음엔 별거 아니라고 생각했는데…… 막상 실행하려고 하니 이게 얼마나 사치스러운 기술인지 알게 되었다.

“어쩔 수 없다. 일보 전진을 위한 투자라고 생각하자.”

스킬발동 고대의 비밀 묵(墨)! 제물은…… 미스릴소드(레어)!!

츠릿!

스킬을 사용하자 손에 들고 있던 미스릴소드가 묘한 검은 기류에 휩싸이며 점점 변형을 일으켰다.

스르르.

그리고 등장하는 반투명한 몸체를 지닌 한 마리의 거대한 마수.

띠링, 고대의 소환수 묵을 소환합니다. 제물로 받쳐진 미스릴소드는 힘을 잃고 사라집니다. 묵의 활동 시간은 정확히 2시간 22분 12초 남았습니다.

띠링, 동화율이 000.04 올랐습니다.

‘생각보다 짧군.’

아직 동화율이 낮아서일까? 소환 시간이 생각보다 길지는 않았다. 하지만 큰 문제는 없었다. 현재 가방엔 팔다가 남은 마법 아이템이 꽤 많이 남아 있었다.

이것들로 모자라면 내가 장비하고 있는 몇몇 장비들까지 사용할 작정이었다.

[……여기가 어디지?]

묵은 나를 바라보며 얘기했다.

“약속했잖아. 더 넓은 세상을 보여주겠다고. 여긴 그 넓은 세상이다.”

[그런가? 흐음…… 나쁘지 않군.]

묵은 슬쩍 주변을 둘러보며 중얼거렸다.

“몇 가지 궁금한 게 있는데…… 일단 소환되고 나랑 거리가 어느 정도나 멀어질 수 있는 거야?”

[정확히는 모르지만 100m 정도 안쪽에는 있어야 할 것 같다.]

“흠, 그럼 혹시 이곳에서 어둠 동화스킬이 사용 가능해? 그리고 그 스킬을 사용하면 얼마나 숨을 수 있지?”

[이곳…… 아주 특이하군. 어둠의 기운이 마계 그 이상이야. 이 정도라면 내 능력은 최고로 발휘된다. 아마 특별히 조심만 하면 그 누구도 날 찾기는 힘들 것 같다.]

묵은 주변의 공기를 한 번 크기 들이마시며 말했다.

“아주 좋군. 그럼 마지막으로…… 이곳에 존재하는 어둠의 기운을 지닌 존재들을 사냥할 수 있겠어?”

스윽.

내 말이 끝나지 묵은 여기저기를 슬쩍 살펴보았다.

[후후후, 다른 곳도 아니고 이곳이라면 충분하다. 어떤 녀석들이 존재하는지는 모르지만…… 어둠 속에서의 사냥이라면 자신있다.]

“위험하지 않겠어?”

[이 정도의 어둠이라면 적어도 당하지는 않는다.]

자신있는 묵의 목소리. 확실히 보스몬스터 출신 소환수는 뭐가 달라도 달랐다.

묵의 레벨은 400.

나보다 높았다.

그리고 이곳은 어둠의 기운이 가득 차 있는 곳.

묵이 활동하기 최고로 좋은 장소였다. 아무리 스펙터들이 영악한 몬스터라고 해도 어둠에서의 사냥이라면 묵을 따라올 수 없었다.

칠흑의 마수는 어둠 속에서 마주치면 안 되는 1순위 몬스터이다.

아마도 묵은 조금씩 하지만 확실하게 스펙터들을 사냥할 것이다.

내가 노린 것은 바로 이것이었다.

파티에서 먹는 공적치로만은 만족할 수 없었다. 딴 주머니를 만들어야 했다.

그게 바로 묵이었다.

난 이렇게 2중으로 공적치를 먹어치울 생각이었다.

묵이 얼마나 활약해 줄 지 모르지만…… 적어도 난 남들의 1.5배 이상의 효율을 가질 수 있을 것이다.

“좋아! 그럼 묵, 부탁한다. 소환 에너지는 내가 중간 중간 공급해 줄게.”

소환 시간이 끝나기 전에 계속해서 제물을 공급해 줘야 하지만 그건 대충 이런저런 핑계를 대고 몰래 해줄 수 있었다.

결국 묵은 나와 함께 계속해서 사냥할 수 있다는 뜻이었다.

물론 경험치는 묵이 가져갈 것이다.

하지만 경험치 따위는 중요하지 않았다. 나에겐 공적치! 이것이 더 중요했다.

다른 이들보다 조금 일찍 들어왔지만 또 누가 조금이라도 일찍 들어올지 몰랐기 때문에 난 재빨리 묵에게 어둠 동화를 사용해 숨게 하였다.

묵을 숨긴 후 묵과 얘기를 하며 묵에 대해 좀 더 알아보았다. 고대의 비밀이라는 묵.

내 기억 속에는 존재하지 않는 특별한 존재였기에 난 이 기회에 묵에 대해 알아볼 생각이었다.

그렇게 약 30분(게임 시간)을 보냈을까?

그때부터 한 명 두 명 다른 유저들이 안전 지역으로 접속하기 시작했다.

이렇게 천마무총 두 번째 날이 시작되려 하고 있었다.

* * *

[열양화벽(熱陽火壁)!!]

화르르륵!

요요술사가 일으킨 커다란 화염의 벽은 우리를 습격한 두 마리 망령을 집어삼켜 버렸다.

키에에엑!

가뜩이나 붉은하늘과 꼰정의 공격에 타격을 입었던 망령들은 이 한 방을 견디지 못했다.

천마무총의 두 번째 날. 우리 파티의 호흡은 나날이 발전하고 있었다.

특히 요요술사와 꼰정, 그리고 붉은하늘이 크게 활약했다.

폴우가 파티 전체를 보호하고 페티가 혹시라도 모르는 빈틈을 방어했다. 그리고 꼰정과 붉은하늘은 끈질기게 망령들을 공격했고 붉은장미는 파티원들의 체력과 각종 버프를 시전해 주었다.

마무리는 요요술사였다.

그는 고레벨 술법사답게 위력적인 술법들로 망령들을 소멸시켜 버렸다.

물론 나 역시 놀고 있지는 않았다.

지금 우리 파티가 유지하고 있는 칠성진(七星陣)도 내가 발동시키고 계속 유지시키고 있는 것이었다.

진법가라고 해서 무조건 전투에 도움이 안 되는 건 절대 아니었다. 뛰어난 진법가는 전투에도 크게 도움이 되었다. 처음엔 나도 살짝 적응하지 못해 완벽하게 실력을 발휘하지 못했지만 이제는 아주 능숙하게 진법을 바꿔가며 전투에 큰 도움을 주고 있었다.

그뿐인가, 난 손에 데스보우를 들고 있었다.

처음에 데스보우를 본 파티원들은 갑자기 무슨 활이냐고 놀랐지만 난 대충 보조스킬로 궁법스킬을 배웠다고 둘러댔다.

그렇게 둘러대고 그저 지원 사격이나 해주겠다고 하니 파티원들도 별로 신경 쓰지 않았다.

하지만 내가 활을 꺼내 든 진짜 이유는 단순한 지원 사격이 아니었다.

난 진법가로 파티에 도움을 주면서 사실 여유가 좀 있었다. 그리고 이 여유를 그냥 즐기기에는 공적치가 너무 아까웠다.

그래서 선택한 것이…… 바로 저격이었다.

난 아주 은밀하게 내가 가진 훌륭한 저격스킬들을 이용해 다른 파티가 잡고있는 망령을 공격했다.

아주 은밀하고 확실하게 다른 파티가 흘리거나 신경 쓰지 못하는 놈들을 저격해서 확실히 공적치를 뺏어왔다.

진법가인 나에게서 뻗어 나가는 공격을 신경 쓰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당하는 이들도 약간 이상함을 느끼겠지만 그렇다고 공적치를 빼앗기고 있다고는 느끼지 못할 정도로 은밀한 타이밍에 저격스킬을 사용했다.

물론 그 와중에도 묵은 아주 열심히 사냥하고 있었다.

물 만난 고기라는 표현이 어울릴까?

묵은 신나게 망령들을 사냥하고 또 사냥했다.

중간중간 진법으로 버프를 리필한다고 거짓말을 하고 몰래 묵의 소환 시간을 늘려줄 제물을 공급했기에 묵은 계속해서 내 주위에 머물며 사냥을 했다.

녀석이 얼마나 많은 망령을 잡고 있는 건지는 몰랐다.

단지 녀석이 아주 만족하고 있고, 망령들의 습격이 매우 줄어들고 있는 것으로 봐서는 생각보다 많은 숫자의 망령을 잡고 있는 것 같았다.

정말로 내 손으로 부숴 버리는 각종 레어나 매직 아이템이 하나도 아깝지 않은 상황이었다.

가뜩이나 능력도 좋고 손발이 잘 맞아 다른 파티들보다 훨씬 뛰어난 효율을 보여주는 우리 파티였다.

거기에 내 보이지 않는 스틸, 그리고 묵의 활약. 이 두 가지가 합쳐졌다.

아직 확인은 불가능했지만 분명 내 공적치는 상당히 상위권을 차지하고 있을 것이다.

‘천마무총, 기필코 내가 접수해 주마.’

이미 두 번의 메인퀘스트를 통해 그것들이 얼마나 대단한지 그 누구보다 절실히 알게 된 나였다.

난 이미 극상의 진미를 먹어본 놈이었다.

단순히 극상의 진미가 있다는 소문만 들어본 놈들하고는 가지고 있는 열망의 차원이 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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