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89. 묵 ―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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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룡성검과 천룡맹의 유저들을 시작으로 모든 사람이 천마무총으로 들어왔다.
처음엔 천룡맹을 이어 누가 두 번째, 세 번째로 들어갈 것인지 옥신각신했지만 결국 모든 건 힘의 논리대로…… 힘이 있는 길드(연합)들이 차례대로 들어가고 그 뒤를 이어 일반 유저들이 대충 차례를 지켜 들어갔다.
사람들은 조금이라도 먼저 들어가기 위해 노력했다. 하지만 정작 안에 들어와서는 그런 노력이 얼마나 어리석었던 건지 깨달았다.
분명 똑같은 길로 7만여 명의 유저가 들어왔지만 놀랍게도 천마무총 안에 들어와서는 수천의 무리로 나누어져 있었다.
그나마 다행인 건 같은 파티(연합) 소속들은 갈리지 않았다는 것이었다.
어쨌든 7만의 거대했던 무리가 수백 개의 유저 무리로 나눠진 현 상황에선 누가 먼저 들어갔는지가 전혀 중요해지지 않았다.
그리고 그렇게 나눠진 것만으로 끝나지 않았다.
약간은 어두운 동부(洞府) 안. 야명주를 꺼내 장착한 유저들이 어떻게 된 건지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있을 때 갑작스럽게 한 개의 시스템 메시지가 들려왔다.
띠링, 일월대지(日月大地) 천마무총에 들어오셨습니다. 본 던전은 특수한 던전으로서 던전에 입장한 71,237분에게 똑같은 퀘스트가 주어집니다.
띠링, 특별 퀘스트 ‘일월의 생존자’가 시작됩니다. 이곳은 보물이 숨겨져 있는 단순한 던전이 아닙니다. 아주 먼 옛날 일월신교의 초대 교주이자 천고의 대악마 천마(天魔)가 정파무림인들의 씨를 말리기 위해 만들어낸 거대한 함정!! 지금부터 그 거대한 함정이 발동됩니다.
띠링, 살아남는 게 중요합니다. 하지만 그와 함께 일월공적(日月功績)을 쌓으십시오. 일월신주가 나타나고 일월의 비밀이 밝혀지면 쌓으신 일월공적에 따라 큰 보상이 주어집니다.
띠링, 천마무총은 어둠의 기운이 극도로 집중된 곳입니다. 지금 이 순간에도 어둠의 기운은 천마무총을 향해 몰려듭니다. [몰려드는 어둠의 기운의 영향으로 2시간마다 한 번씩 천마무총에 들어온 모든 유저의 능력치가 –1% 됩니다. 단, 천마무총 곳곳에 존재하는 일월주(日月珠)를 활성화시키면 반경 100m 안에 모든 유저의 감소된 능력치를 +5%로 회복시켜 줍니다]
띠링, 천마무총 깊숙한 곳에 숨겨진 일월신주(日月神珠)를 찾아 활성화시키면 마기의 영향이 사라지고 천마무총 안에 들어온 모든 유저의 능력치가 본래대로 회복됩니다. 일월신주를 찾는 이들에겐 상당한 일월공적치가 주어집니다.
띠링, 본 퀘스트는 포기할 수 없으면 사망 시 자동으로 포기됩니다(사망할 경우 쌓아놓은 공적치는 모두 사라집니다)
띠링, 이곳에 존재하는 악령들은 매우 교활하고 치밀합니다. 파티를 해제하지 마십시오. 파티를 해제할 경우 악령들의 1순위 목표물이 될 수 있습니다.
“뭐, 뭐야?”
“특별 퀘스트?”
사람들은 크게 동요하며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아마도 무척 당황했을 것이다. 경험이라면 과거(미래)에 이미 질릴 정도로 겪은 나 역시 살짝 당황했을 정도니 다른 사람들의 상황은 안 봐도 뻔했다.
“이게 뭐죠? 이런 퀘스트는 처음 받아보는데…….”
꼰정 역시 얼떨떨한 표정으로 파티원들에게 말했다.
“흐음…… 살아남으라는 게 무슨 뜻이지?”
“말 그대로 살아남으라는…….”
폴우가 말을 이을 때 갑자기 일이 터졌다.
“으아악!”
“헉!”
“뭐야?”
갑자기 들려온 비명.
그 비명과 함께 한 유저가 어둠 속으로 사라졌다.
“저, 적이다!”
갑자기 나타난 몬스터.
유저들은 황급히 주변을 경계하며 자신들의 파티들끼리 뭉쳤다.
우리 파티도 마찬가지였다.
재미있는 건 꼰정과 그 일행들이 나와 술법사를 자연스럽게 감싸며 완벽한 진형을 갖췄다는 사실이었다.
대단히 빠르고 정확한 반응.
난 새삼 이들의 실력이 생각했던 것보다 더 뛰어나다고 느꼈다.
“무슨 종류의 몬스터인 거지?”
폴우는 거대한 양손 도끼를 가슴 앞에 똑바로 세우며 붉은하늘에게 물었다.
“흐음…… 아직까진 확인 불가능. 지금 찾고 있다.”
붉은하늘은 빠르게 주변을 둘러보며 무리를 습격한 몬스터를 찾았다. 아마도 그는 궁사이면서 동시에 팀의 정찰을 책임지고 있는 것 같았다.
“페티야 혹시 모르니까 숨어서 암습에 대비해.”
폴우의 명령이 떨어지자 페티는 살짝 고개를 끄덕이며 조용히 어둠 속으로 몸을 숨겼다.
다른 파티도 우리와 거의 비슷했다.
나름대로 습격에 대비해 진형을 갖추고 주변을 경계했다.
하지만 2차 습격은 없었다.
고요한 동부…… 더 이상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도대체 뭐지?”
“진짜…… 이곳은 함정인 건가?”
단순한 던전이 아니라고 했다.
거대한 함정이라고 했다.
이쯤 되자 난 문득 이상한 생각이 들었다. 왜 난 이곳이 이런 곳이란 걸 몰랐던 거지?
분명 기억 속에 천마무총은 존재했다.
그런데 기억 속에 천마무총은 단순한 던전이었다. 이런 이벤트가 존재한다는 건 정말 몰랐었다.
‘이 정도 규모의 이벤트라면 기억이 날만도 할 텐데.’
이것보다 훨씬 사소한 것도 기억했던 나였다. 그런데 정작 이건 기억하지 못했다.
요즘 들어 계속 미래의 기억이 희미해지는 느낌을 받았다. 이유는 알지 못하겠지만…… 어쨌든 뭔가 좀 이상했다.
‘혼란스럽군.’
난 약간 혼란스러운 감정을 느끼며 고개를 흔들었다. 지금은 이런 걸 고민할 때가 아니었다. 지금 중요한 건 이번 퀘스트에 대해 정확하게 파악하는 것이었다.
“확인은 하지 못했지만…… 내 생각엔 악령 같은 종류의 몬스터가 아닐까? 아까 시스템 메시지에도 그런 말이 있었잖아.”
붉은하늘은 조심스럽게 의견을 냈다.
확실히 그의 말은 일리가 있었다. 악령…… 그런 종류의 몬스터라면 충분히 지금 상황이 설명된다.
“젠장! 그 계열은 물리 데미지 저항이 상당한데…….”
꼰정은 벌써부터 인상을 잔뜩 구기며 중얼거렸다. 물론 방법이 아예 없는 건 아니었다.
악령이나 유령 같은 계열의 몬스터들은 물리 데미지엔 상당한 저항력을 지녔지만 화염속성이나 성(聖)속성 또는 빛속성의 공격엔 무척 약했다.
꼰정이라면 적어도 몇 가지 속성공격 기술을 가지고 있을 터. 그것을 이용한다면 물리 공격력에서 입은 손해를 메울 수 있었다.
“꼰정인 염화도(炎火刀)를 사용하고 페티는 공격보단 견제 위주로 해야겠다.”
폴우는 악령계열 몬스터에 대비해 몇 가지 지시를 내렸다.
“그리고 아무래도 요요 님이 활약을 해주셔야 할 것 같습니다. 참, 신 님, 혹시 버프스킬 같은 거 가지고 계시나요?”
“네, 몇 개 있습니다.”
보통 진법가들은 몇 가지 간단한 버프스킬을 가지고 있었다. 그리고 당연히 난 그것들을 어렵지 않게 흉내 낼 수 있었다.
“좋군요. 그럼 신 님은 주기적으로 버프스킬을 사용해 주시면 됩니다.”
“네.”
간단히 역할 분담을 끝낸 폴우는 다른 파티들과 마찬가지로 천천히 동부 안쪽을 향해 움직였다.
어차피 이곳에 계속 있을 수는 없었기 때문에 누가 나서서 뭐라 말하기 전에 이미 모든 사람이 천천히 안쪽으로 이동하고 있었다.
“젠장…… 무슨 던전이 이래?”
천마무총은 정말 괴상했다.
물론 던전이 아닌 함정이라지만 아무리 그대로 다른 평범한 던전들과는 판이하게 달랐다.
“헉, 잠깐 멈추세요!!”
가장 선두에 섰던 그룹에서 다급한 외침이 튀어나왔다.
그리고 그 외침과 함께 벽에서 거대한 톱니형태 칼날이 튀어나왔다.
“엎드려요!”
난 짧고 빠르게 파티원들에게 말을 전했다.
휘이잉!
퍼퍼퍼퍽!
“으아아악!”
“커억!”
순식간에 몇 명의 유저가 두 동강 나버렸다.
빛의 가루로 흩날리는 유저들. 간단하지만 위력적인 기관은 그렇게 여러 명의 유저를 게임 아웃시켜 버렸다.
“……장난이 아니네.”
붉은장미는 고개를 절래 흔들며 중얼거렸다. 하지만 위기는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키에엑!
“허억!”
어둠 속에서 갑자기 나타난 습격자들.
“으아악!”
“크악!”
순식간에 어둠으로 끌려가는 유저들. 습격자들은 반투명한 검은색 몸체에게 마치 낫처럼 생긴 양손을 지닌 유령들이었다.
“스펙터(Specter)!!”
아니, 여긴 동대륙이니까 망령(亡靈)이라 불러야 할까? 어쨌든 상대하기가 매우 까다로운 상급의 몬스터가 사방에서 등장했다.
“젠장! 저 녀석들이었군.”
붉은하늘은 인상을 찡그리며 재빨리 활시위를 튕겼다.
파파팟!
가벼운 공격으로 망령들에게 위협사격을 날린 그는 어느새 내 앞에 자리를 잡고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또 숨었군.”
망령(스펙터)들의 무서운 점은 바로 이러한 것이었다. 다른 무식한 몬스터들처럼 유저들에게 무조건 덤벼들지 않았다.
상당한 인공지능을 지닌 망령들은 교묘하게 틈을 파고들어 가장 약해 보이거나 빈틈이 생긴 유저를 공략했다.
그렇기에 그들을 상대할 땐 늘 긴장을 유지해야 했다.
통로엔 무시무시한 기관이 존재하고 어둠 속엔 호시탐탐 유저를 노리고 있는 망령이 존재하는 이곳…… 과연 이곳은 던전이 아닌 함정이라 말할 만한 곳이었다.
한 번의 기관 작동과 망령의 두 번째 습격이 있었던 그 후론 거리를 유지하던 파티들이 전부 모종의 합의를 끝내고 서로 힘을 합치기 시작했다.
비록 연합을 구성한 건 아니었지만 서로 위험을 예방하며 조심스럽게 던전 안쪽으로 움직였다.
그렇게 힘을 합치자 확실히 무리가 안정이 되었다.
물론 그래도 종종 기관이나 망령들에게 피해자가 나오긴 했지만 더 이상 큰 피해는 입지 않았다. 또한 재수가 좋게도 얼마 지나지 않아 일월주를 하나 발견해 깎였던 능력치를 모두 회복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