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88. 천마무총 ―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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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룡맹이 천마무총의 입구를 정확히 발표하지 이유는 이것이었다.
1차 관문. 바로 정보력을 시험하는 단계였다.
어차피 알 만한 사람은 다 알게 된다. 이 정도의 정보도 얻지 못하는 유저라면 아예 들어갈 엄두를 내지 않는 게 좋았다.
“하지만 그렇다고 이곳에 있는 모든 분이 천마무총에 입장하실 수는 있는 것은 아닙니다. 미리 언급을 했었지만 천마무총은 단순한 던전이 아닙니다. 얼마 전에 서대륙에 나타나 큰 파장을 불러왔던 대미궁만큼이나 위험 곳이 분명합니다.”
굳이 대미궁의 위험성은 자세하게 설명할 필요가 없었다. 이미 이곳에 모인 사람들이라면 대미궁이 얼마나 지옥 같은 곳인지는 여러 곳을 통해 익히 알고 있을 것이다.
“그렇기에 부득이하게 레벨이 300이 되시지 않는 분들에겐 입장 기회를 드릴 수가 없습니다. 또한 최소 일곱 명, 그리고 최대 35명까지의 파티 또는 연합에게만 입장 기회를 드리겠습니다. 너무 많은 인원이 한꺼번에 들어갈 경우 혼란이 커질 수 있으니 최정예로 뽑아서 들어가겠습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이번 천마무총 탐험의 제일 선두는 저희 천룡맹에게 양보해 주십시오.”
천룡성검은 세 가지 조건을 얘기했다.
첫 번째 조건은 이미 말했던 조건이라 크게 문제가 될 것 같지는 않았다. 물론 몇몇 사람은 이미 그 조건에 불만을 표시했었지만 적어도 이곳에 모여 있는 사람들 중에 그런 불만을 가진 이들의 숫자는 무시해도 될 정도로 적었다.
두 번째 조건도 첫 번째 조건과 마찬가지로 무난한 조건이었다. 이미 대부분의 파티들이 일곱 명의 한계 인원을 채운 상태였고 그러지 못한 파티들은 지금 황급히 파티를 구하는 이들을 받으면 되었다. 그리고 35명의 인원 제한 역시 어차피 대부분의 길드(연합)들은 최정예만 뽑아서 이곳에 왔기 때문에 크게 문제 될 것 같지는 않았다.
이리저리 따져 보아도 두 번째 조건 역시 첫 번째 조건과 마찬가지로 무난히 받아들일 수 있는 수준이었다.
정작 문제는 세 번째였다.
선두 양보.
이건 결국 천룡맹에서 자신들의 기득권을 인정해 달라는 얘기였다. 확실히 천룡맹 입장에서는 이번 일로 꽤 큰돈을 썼을 텐데 아무런 이득도 취하지 못한다면 큰 타격을 입을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무조건 자신들의 이득을 챙길 수는 없었다.
나름대로 정도(正道)를 걷고 있던 천룡맹이었기에 사람들의 눈을 의식할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그들이 생각해 낸 최소한의 기득권이 바로 선두에 서겠다는 것이었다. 천룡맹은 이미 최정예로 보이는 34명의 길드원을 데리고 와 있었다. 천룡성검을 포함해 총 35명의 천룡맹 유저, 그들은 이번 천마무총 탐험에 선두에 설 준비를 모두 끝내고 온 것처럼 보였다.
천마무총이 어떤 구조로 되어 있는지 아직 확인되지는 않았지만 그들의 조건은 뭐라고 정확히 정의하기 힘든 미묘한 조건이었다.
어떻게 보면 그다지 커 보이지 않는 조건일 수도 있었다. 솔직히 먼저 입장해서 오히려 손해를 볼 수도 있었다.
이런 최상급의 던전은 정확한 정보를 가지고 있지 않으면 크게 낭패당할 가능성이 높았다.
특히 가장 선두에 섰다가 어떤 예기치 않은 일을 당할지 몰랐다.
물론 그렇다고 아예 좋지 않은 것만은 아니었다. 특히…… 혹시라도 사전에 천마무총에 대한 정보를 어느 정도 확보했다면 필시 선두에 서는 게 제일 좋았다.
천룡맹이 정보를 확보했는지 안 했는지 확인할 방법은 없었다. 그저 추측하는 것이 전부였다.
‘사실 이 정도는 인정해 주는 게 좋지.’
다른 사람의 생각은 잘 몰랐지만 적어도 내 생각엔 이 정도의 기득권은 인정해 주는 게 좋았다. 아무리 천룡맹이 정보를 지녔다고 해도 선두란 늘 기회와 위험이 공존하는 곳이기에 이 정도는 충분히 양보할 수 있었다.
하지만 사람들이 다 나와 같은 생각을 가질 수는 없었다. 어떤 사람들은 자신의 손해는 조금도 인정하지 못하곤 했다. 특히나 다른 이가 잘되는 건 죽어도 그냥 보지 못하는 심보를 지닌 사람들이 존재했다.
천룡맹의 마지막 조건은 조금만 생각하면 충분히 양보할 수도 있는 것이었지만 역시나 여기저기에서 어리석은 반발이 튀어나왔다.
“천룡맹은 지금 혼자 보물을 독차지하겠다는 겁니까?”
“이거…… 천룡맹의 행태가 소문하고 다르군요.”
“쳇, 소규모 파티는 낄 자리도 없겠구먼.”
여기저기에서 터져 나오는 불만.
하지만 천룡성검은 이미 이런 불만들을 예상이라도 한 듯 아무런 표정 변화도 없이 곧장 다시 입을 열었다.
“불만이 있으신 분들은 따로 입장을 하셔도 상관없습니다. 지금 즉시 오른쪽으로 빠지셔서 단독행동을 하시면 됩니다. 하지만!! 절대…… 안전은 책임져 드리지 않습니다.”
‘뭔가 믿는 구석이 있군.’
애초에 천마무총에 대한 일을 동대륙 전체로 크게 확대시킬 때부터 천룡맹은 뭔가 이유가 있을 수밖에 없었다.
어느 누가 어렵게 발견한 중요한 던전을 다른 사람들과 공유하려고 하겠는가?
천룡맹은 분명 뭔가의 속셈을 가지고 고의적으로 동대륙 전체에 천마무총에 대한 소문을 낸 것이 틀림없었다.
“당신들이 입장하고 나서 따라 들어가도 상관하지 않겠다는 것이오?”
“네, 상관없습니다. 하지만 다시 한번 강조해서 말씀드리겠습니다. 저희를 뒤따라 들어오시는 건 얼마든지 좋지만…… 본인의 안전은 스스로 챙기셔야 할 것입니다.”
천룡성검은 안전이란 단어를 강조하며 말했다.
“…….”
“…….”
갑자기 찾아온 정적.
대부분의 사람들이 천룡성검의 말속에 숨은 의미를 알아차렸다.
“자! 다시 한번 말하겠습니다. 저희가 말한 세 가지 조건을 인정하지 못하시는 분들은 지금 즉시 오른쪽으로 빠져주십시오.”
웅성웅성.
천룡성검의 말이 끝나자 군중은 다시 소란스러워졌다.
“아무래도 천룡맹에서 분명 뭔가 아직 말하지 않은 게 있는 거 같아요. 우린 그냥 천룡맹의 조건을 받아들이는 걸로 하죠.”
꼰정은 굳은 표정으로 파티원들에게 의견을 말했다.
“그래, 그렇게 하자.”
폴우는 고개를 끄덕이며 꼰정의 의견에 찬성했다. 그 뒤를 이어서 나를 포함한 다섯 명의 파티원이 모두 꼰정의 말에 동의했다. 적어도 이 파티엔 어리석은 유저가 없어 보였다.
하지만 이 파티에는 없어도 여기 모여 있는 수천 명의 유저 중에는 분명 어리석은 유저들이 존재했다.
오른쪽으로 슬쩍 빠지는 유저들.
얼핏 보기에 1,000명이 조금 안 될 거 같은 유저들이 오른쪽으로 빠졌다.
내가 볼 때 아마도 그들은 절대 천마무총에 들어가지 못할 것이다. 그렇기에 그들은 어리석은 유저들인 것이다.
“자, 끝났나요? 더 이상 저희 조건을 못 받아들이시는 분들은 안 계시겠죠? 좋습니다. 그럼…… 이제부터 정식으로 천마무총의 입구를 열겠습니다.”
천룡성검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아! 입구를 열기에 앞서 여러분이 잠깐 들으셔야 할 얘기가 있습니다. 길지는 않으니 잠깐만 주목해 주십시오.”
입구를 열기 전에 쓸데없는 얘기를 할 천룡성검이 아니었다. 이건 분명 천마무총에 들어가는 방법과 연관이 있는 이야기일 것이다.
“사실 저희가 이 천마무총의 장보도를 얻은 건 세간에 알려진 것보다 훨씬 전이었습니다. 1년(게임 시간) 전…… 우연히 상급의 던전을 발견해 맹차원에서 공략하던 중 어렵게 던전의 최종 보스를 잡고 구한 낡은 지도가 하나 있었습니다. 처음엔 고대문자와 어려운 암호들이 그려져 있는 이 지도가 어떤 가치를 지녔는지 전혀 몰랐습니다. 대략…… 뭔가 큰 비밀이 숨겨져 있는 건 눈치챘지만 당시에는 장보도를 해독할 수가 없어서 어떤 지도인지도 확인하지 못했었죠.”
천룡성검은 담담하게 장보도에 얽힌 비밀을 얘기하기 시작했다.
“시간이 흘렀습니다. 전 몇 명의 길드원들을 선발해 맹차원에서 고대 문자에 관련된 스킬과 지도 해독에 관련된 스킬을 익힐 수 있게 많은 지원을 해주었습니다. 그리고 그 결과! 약 6개월(게임 시간) 전에 전반적인 장보도의 윤곽이 드러났습니다. 놀랍게도 지도는 천마무총! 위대한 마인의 전설인 천마의 무덤!! 그곳의 위치를 표시한 장보도였습니다.”
천룡맹은 예상했던 것보다 많은 시간을 이 장보도에 투자한 것 같았다.
“그때부터 저희들은 이 장보도의 비중을 크게 높이고 상당한! 정성을 쏟아부었습니다.”
천룡성검은 강조를 하듯 얘기했지만 그렇게 강조를 하지 않아도 어느 정도의 정성을 드렸는지는 충분히 예상이 가능했다.
“그리고 다시 몇 개월의 시간이 지난 후 거의 장보도의 90% 정도를 해독할 수 있었습니다.”
대충의 기본 설명은 끝난 것 같았다. 아마도 이다음부터 나올 얘기가 천마무총에 들어가는 방법과 크게 연관이 있을 것 같았다.
“……사실대로 얘기하겠습니다. 솔직히 저희 천룡맹의 힘만으로는 천마무총의 입구를 열 수 없습니다.”
천룡성검은 순순히 인정하듯 얘기했다.
웅성웅성.
크게 술렁이는 군중들…… 확실히 천룡섬의 말은 군중을 술렁이게 할 만했다.
“도움이 필요합니다. 천마무총의 입구를 가로막고 있는 이 거대하고 위험한 진법의 이름은 환환천살대진(幻幻天殺大陣)! 이 진법은 외부에서는 파진(破陣)이 불가능한 천고의 진법입니다. 장보도에는 이 진법을 파괴하려면 천마무총의 내부에 들어가 그곳의 비밀을 풀어야 한다고 나와 있습니다.”
“파진이 불가능한데 도대체 어떻게 천마무총에 들어갑니까?”
한 성급한 성격의 유저가 천룡성검에게 큰 목소리로 물었다.
“그래서 여러분의 도움이 필요하다고 한 것입니다. 파진은 불가능하지만 입장하는 방법은 있습니다. 장보도에는 환환천살대진을 뚫을 수 있는 유일한 방법으로…… 하나의 진이 그려져 있었습니다. 그 진의 이름은 환환일로진(幻幻一路陣)!! 무려…… 최소 4만 명 이상의 사람들이 있어야 펼칠 수 있는 엄청난 규모의 진법입니다. 그것도 그냥 유저들이 아닌 절정(익스퍼트 급: 200~400)급이 넘는 유저 4만 명 이상이 필요합니다.”
‘역시!!’
“맙소사!”
“이럴 수가!!”
모든 사람이 놀랐다.
최소 4만 명이라니! 그것도 그냥 4만 명이 아닌 익스퍼트 급 4만 명이었다. 이제야 왜 천룡맹이 천마무총의 정보를 고의로 유출했는지 이해가 되었다.
아직까지 단일 세력으로 익스퍼트 급 이상의 유저 4만 명을 동원할 수 있는 세력은 없었다.
“이곳에 모인 분들은 어림잡아 7만에 육박합니다. 정확하지는 않겠지만 아마도 대부분의 분들이 절정 급에는 이르셨을 겁니다.”
천룡성검의 말처럼 이곳에 있는 7만 가량의 사람들은 대부분 절정을 넘긴 이들이었다. 절정 급에서도 초절정(마스터 급: 400~500레벨)급에 가까운 유저들이 대부분이었다.
“환환일로진법의 발동은 그리 복잡하지 않습니다. 제가 진법을 발동시키면 여러분은 그저 동의만 해주시면 됩니다. 물론 제 조건을 인정하지 못하신 분들에게는 진법의 영향이 미치지 않을 겁니다.”
이로써 천룡성검이 왜 그렇게 자신감 있게 세 가지 조건을 내세웠는지 확인되었다.
오른쪽으로 빠진 천여 명의 유저는 내 예상대로 천마무총에 들어갈 수 없게 되었다.
그들은 곧장 강하게 반발했지만 이미 대세는 그들에게서 떠났다.
이미 천룡성검은 그들에게 기회를 주었고 그들은 그 기회를 차버렸다.
무력충돌?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그들의 숫자는 기껏해야 천 명이 조금 넘는 수준. 이미 7만여 명의 다른 유저가 그들의 반발을 인정하지 않았다.
그들에게 남은 건 쓸쓸히 물러나는 일뿐이었다.
감히 그들은 7만여 명의 다른 유저에게 칼을 뽑아 들지는 못했다.
“그럼 이제부터 환환일로진을 발동시키겠습니다!”
스윽.
천룡성검은 품속에서 미리 준비해 온 작은 동경(銅鏡)을 꺼내 들었다.
동경을 꺼내 든 천룡성검은 눈을 감고 마치 최상급 주술을 발동시키는 것처럼 긴 법문(法文)을 읽기 시작했다.
“……천지도문 환환일로!!”
대략 1분 정도 법문을 읽던 천룡성검이 감았던 눈을 뜨며 동경을 머리 위로 들어 올렸다.
번쩍!!!
강하게 빛나는 동경!
동경에서 뿜어져 나온 빛은 이곳에 모여 있는 7만여 명의 유저에게 폭사되었다.
띠링, 천고의 대진 환환일로진의 발동에 참여하시겠습니까?(Y/N)
천서에 뭔가가 기록되며 진의 활성화 여부를 묻는 메시지가 떴다.
“당연히!!”
무척 신기하고 재미있는 환환일로진의 발동.
난 당연히 ‘Y’를 누르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자 동경에서 뿜어져 나온 빛이 내 몸을 휘감으며 귓속으로 작은 속삭임이 들려왔다.
[이곳은 태양과 달의 대지…… 당신의 앞길에 행운이 있길.]
속삭임과 함께 계곡을 뒤덮고 있던 운무에 길이 생겼다. 뚜렷한 한 개의 길.
이것이 바로 일로(一路)인 것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