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더 로드(The Lord)-87화 (87/250)

087. 천마무총 ― 1

* * *

천마무총은 말 그대로 천마(天魔)의 무덤이다.

천마가 누구인가?

사람들은 막연히 천마는 전대의 대단한 고수일 것이라고 생각하겠지만 난 정확히 천마가 누군지 알고 있었다.

천마는 신비 8대 문파 중 하나인 일월신교를 만든 이였다. 일월신교의 1대 교주.

즉, 천마무총은 동대륙의 메인 퀘스트인 문파 퀘스트를 해결하는 열쇠일 가능성이 매우 높다는 뜻이었다.

사람들은 막연히 천마무총에 들면 천마의 무공이나 천마가 남긴 보물을 얻을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하겠지만 난 그런 사소(?)한 것보다 메인퀘스트가 더 중요했다.

이미 서대륙에서 두 번의 메인퀘스트를 완료하고 엄청난 보상을 받아보았던 나였기에 난 무조건 메인퀘스트 위주의 탐험을 할 생각이었다.

원래 맛있는 음식도 한 번 먹어본 놈이 잘 먹는 법. 난 다른 것들은 다 포기하더라도 일월신교의 부활은 꼭 내 손으로 이루어낼 생각이었다.

“망할 천룡맹 놈들 설마 무슨 수작을 부리진 않았겠지.”

현재 나는 폴리모프 망토를 사용해 모습을 변형시키고 조용히 다른 유저들 사이에 껴 있었다.

유저들은 삼삼오오 친분이 있는 이들끼리 모여 천마무총에 대해 얘기를 나누었는데, 대부분의 사람들은 동대륙 최고 세력 중 하나인 천룡맹이 아무런 조건 없이 천마무총을 공개했을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사람들은 뭔가 숨겨진 수작이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물론 그 수작이 뭔지는 아무도 예측하지 못했지만 다들 숨겨진 한 수에 대한 나름의 준비를 끝내놓고 있었다.

“뭔 수작을 부리든 우리는 우리의 방식대로 해결하면 되는 거야. 악산사호(嶽山四虎)가 만만한 상대가 아니라는 걸 보여주자고.”

아마도 저들 네 명의 별호가 악산사호인 것 같았다.

서대륙이 다양한 길드들이 발전했다면 동대륙은 다양한 소규모 그룹들이 매우 발전되어 있었다.

특히 이 소규모 그룹들이 여러 이해관계로 얽히며 만들어진 여러 종류의 연합은 서대륙의 길드만큼이나 위력적인 모습을 보여주었다.

‘그나저나 어디에 묻어갈까…….’

난 주변을 둘러보며 내가 묻어갈 만한 그룹을 찾아보았다. 대미궁 때도 이용한 방법이었지만 적당한 단계까지는 다른 사람들과 함께 어울려 들어가는 것이 제일 좋았다.

너무 크지도 않고 작지도 않은, 그리고 너무 강하지도 않고 약하지도 않은 정말 중간 정도의 무리를 찾아야 했다.

난 이미 SO의 정보를 토대로 대천산에 모인 이들 중 내가 낄 만한 가장 적당한 무리 네 개를 찾아놓았다.

그리고 그중 세 개의 무리를 이미 살펴보았다.

하지만 아쉽게도 세 개의 무리 모두 내가 끼기에는 적합하지 않았다.

현재 난 적당한 기관진식의 지식을 지닌 진법가로 위장했는데 세 개의 무리 모두 진법가를 데리고 있었다.

기존의 진법가가 있다면 내가 끼어들기에는 무리가 있었다. 그렇다고 진법가가 아닌 다른 직업 유저로 위장을 할 수도 없었다.

진법가가 아닌 다른 직업은 절대 이런 중요한 곳에서 쉽게 파티에 끼워줄 리가 없었다.

평소에는 별 필요가 없지만 천마무총 같은 던전탐험에는 꼭 필요한 직업. 그것이 진법가였다.

당연히 진법가는 희귀한 직업이었고 상당수의 파티가 현재 진법가를 구하지 못한 상태였다.

그래서 난 손쉽게 파티에 참여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었다. 그런데 막상 와보니 그게 아니었다.

‘이제 남은 건 한 개뿐인가?’

남은 한 파티마저 진법가가 있다면 선별한 파티를 포기하고 이곳에서 직접 다른 파티를 구할 수밖에 없었다.

난 은밀하게 이곳저곳을 기웃거리며 내가 미리 선별해 놓은 네 개의 파티 중 마지막 파티를 찾았다.

그들은 다섯 명의 유저로 이루어진 작은 파티였는데 그룹의 평균 레벨이 350이 넘는 수준 높은 상급의 파티였다.

그들은 대형 연합에는 속하지 않았으면서 상당히 높은 평균 레벨을 유지하는 몇 안 되는 파티였다.

“오빠, 하지만 이대로는 안 돼요. 우리도 두 명의 유저를 더 받아서 풀 파티를 만들어야 해요.”

한 여인의 목소리.

검은색 무복에 한 자루의 거대한 도를 등에 메고 있는 여인. 여인의 모습치고는 매우 특이해 보였다.

‘찾았군.’

난 한눈에 그녀를 알아볼 수 있었다. 미리 SO에 정보의뢰를 해 내가 고른 네 개의 파티 중 가장 특색있는 사람의 인상착의나 특징을 알아둔 후였다.

도화(刀花)라 불리는 그녀.

굉장히 특색있는 그녀는 바로 내가 찾고 있던 파티의 일원이었다.

“꼰정아, 그건 아는데 그렇다고 당장 믿을 만하고 능력있는 파티원을 찾는 건 쉽지 않잖아. 조금만 더 일찍 대천산에 도착했어도 파티원을 구했을 텐데…… 워낙 먼 곳에 있어서 이렇게 된 걸 어쩌겠냐.”

“그래도, 노력을 해봐야죠. 일단 진법가를 찾아야 해요. 오빠들 중에 기관진식에 ‘기’ 자라도 아는 사람 있어요? 이대로 들어가면 저흰 그냥 초반에 게임 아웃이에요.”

그녀의 분석은 정확했다.

그리고 그 분석은 나에게 상당히 반가운 소식이었다.

“하지만 어디서 진법가를…….”

이때가 기회였다.

“실례합니다.”

난 슬쩍 그들의 대화에 끼어들었다.

“엿들으려고 한 건 아닌데…… 본의 아니게 듣게 됐네요. 혹시 진법가를 찾으십니까? 사실 저도 천마무총의 소식을 듣고 황급히 이곳으로 왔는데 시간이 너무 늦어 파티를 아직 구하지 못했습니다. 정말 실례가 안 된다면 혹시 파티에 낄 수 있을까요?”

나와 같은 유저들은 생각보다 많았다. 지금도 여기저기에서 파티를 찾는다고 외치는 사람들만 봐도 파티를 구하지 못한 유저가 얼마나 많은지는 알 수 있었다.

물론 진법가들은 이미 미리 전부 자리를 잡아 오히려 기존의 파티를 구성한 사람들이 진법가를 찾아 외치고 있었지만 어쨌든 내 이런 행동은 전혀 이상한 것이 아니었다.

“음…….”

하지만 아무리 이상하지 않다고 해도 일단 같이 파티를 그것도 매우 중요한 던전에 동행할 사람을 선택하는 것이라 다섯 명의 파티원은 모두 살짝 고민되는 표정을 지으며 나를 찬찬히 살펴보았다.

“레벨이 어떻게 되세요?”

먼저 입을 연 건 도화라 불리는 꼰정이었다.

“302입니다. 간신히 300은 넘었습니다.”

천룡맹이 제한한 300레벨은 간신히 넘은 상황. 물론 폴리모프 망토를 이용해 모든 것을 변형시킨 후였기 때문에 이들이 내 진짜 모습과 레벨을 알아볼 일은 절대 없었다.

“오빠, 이분 받죠.”

꼰정의 성격은 되게 시원시원했다.

“흠, 하지만…….”

파티의 리더로 보이는 덩치 큰 남자는 약간은 망설이는 표정이었다.

“뭘 그렇게 어렵게 고민해요. 이분 정도 되는 진법가는 정말 구하기 힘들어요. 여기저기에서 말 들어보니까 어떤 파티들은 200레벨 대의 진법가를 구해서 데리고 간대요. 심지어 천룡맹에서도 진법가에 한해서는 레벨 제한을 하지 않겠다고 말했다는 소문도 있어요.”

꼰정의 말은 사실이었다.

워낙 희귀한 직업이 진법가이다 보니 실력있는 이들은 고사하고 적정 레벨이 되는 진법가를 구하는 것도 힘들었다.

사실 난 별거 아니라는 듯 말했지만 300레벨을 넘는 진법가는 그다지 많지 않은 현실이었다.

“알았다. 그렇게 하자.”

덩치 큰 남자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반갑습니다. 아시다시피 가야할 곳이 평범한 곳이 아니라 잠깐 고민을 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저는 이 파티의 리더린 폴우라고 합니다.

폴우는 악수를 청함으로써 나에게 파티 가입을 신청했다.

“네, 반갑습니다. 전 제갈신이라고 합니다.”

내가 그의 악수를 받아들이자 난 자동으로 파티에 들어왔다.

띠링, 폴우와 친구들 파티에 합류했습니다.

“호오~ 제갈 성을 쓰신 거 보이 캐릭터를 생성하실 때부터 진법가를 마음에 두고 계셨군요.”

약간은 마른 체형의 남자가 싱긋 웃으며 말을 걸었다.

“네, 어릴 때부터 동양의 신비학문에 관심이 많아서…….”

난 대충 둘러대며 대답했다.

그냥 아무 생각 없이 지은 가명이었지만 듣고 보니 그렇게 해석하는 것도 가능할 것 같았다.

“어쨌든 반갑습니다. 전 ‘붉은장미’라고 합니다.”

남자 이름치고는 좀 특이했지만 찾아보면 훨씬 특이한 아이디들도 많았다.

“반가워요~ 전 ‘붉은하늘’이에요.”

약간은 왜소한 체형의 남자도 이름을 밝히며 밝게 인사했다.

“반갑습니다. 전 페티입니다.”

동대륙에서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영어 이름 대신 한자나 한글 이름을 좋아했지만 그렇다고 영어 이름이 희귀한 건 아니었다.

이렇게 다섯 명의 유저와 모두 인사를 나누었다.

“오빠, 술사 계열 유저 한 명만 더 받아서 풀 파티를 채울까요?”

도화는 주변을 둘러보며 폴우에게 말했다.

“흠, 굳이 풀 파티를 만들어야 할까?”

“당연하죠. 일단 할 수 있는 준비는 최대한 해야 해요.”

폴우는 살짝 망설이는 모습이었지만 꼰정이 강하게 의견을 밀어붙였다.

내가 봐도 이 상황은 살짝 고민되는 상황이었다.

객관적으로 본다면 당연히 한 명을 더 받아 풀 파티를 만드는 게 좋겠지만 사실 자칫 한 명의 파티원을 잘못 받으면 오히려 전력에 마이너스(-) 요소가 될 수도 있었다.

지금은 시간이 부족했고 충분히 도움이 되는 파티원인지를 판단하기가 어려웠기에 당연히 고민이 될 수밖에 없었다.

“어떤 난관이 기다리고 있는지 모르잖아. 그리고 괜찮은 술법사만 구할 수 있다면 우리의 화력은 더욱 강해진다고.”

사실 지금 파티의 구성은 상당히 좋은 편이었다.

일단 리더인 폴우는 커다란 양손 도끼를 들고 있었는데 딱 보기에도 체력이 매우 높은 방어형 무사였다.

그리고 도화라 불리는 꼰정은 아마도 오로지 공격력만을 극대화시킨 공격 특화형 무사 같았고 붉은하늘은 커다란 활을 들고 있는 것이 전형적인 궁사의 모습이었다.

붉은장미는 정확한 직업을 예측할 수는 없었지만 왠지 치료계열의 직업일 것 같았고 페티는 여러 가지 장비를 착용하고 있는 모습을 보아도 전천후로 활약할 수 있는 유저인 것 같았다.

좋은 구성이었다.

여기에 내가 추가되었으니 더욱 좋은 구성이 되었고…… 꼰정의 말처럼 실력 있는 술법사만 들어온다면 최고의 구성이라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으음.”

폴우도 그것을 알기에 고민하는 것 같았다.

무엇을 선택할 것인가?

바로 그때 폴우의 결정을 도와줄 만한 인물이 말을 걸어왔다.

“저, 죄송한데 혹시 술법사 자리가 좀 있나요?”

나와 같은 의도를 가지고 접근한 유저. 척 보기에도 ‘전 술법사입니다’라고 말하는 것 같은 인상이 참 좋아 보이는 남성 유저였다.

마침 딱 알맞게도 술법 계열의 유저가 나타났다. 타이밍이 정말 기가 막혔다.

“레벨이 어떻게 되세요?”

꼰정은 나에게 했던 질문과 같은 질문을 했다. 물론 레벨이 모든 능력을 말해주는 건 아니었지만 별로 시간이 없는 지금은 결국 레벨과 겉모습만으로 그 유저의 실력을 가늠해야 했다.

“384입니다.”

술법사의 레벨은 파티원들의 예상을 훨씬 뛰어넘었다. 아주 높은 레벨…… 지금 파티의 최고 레벨이 꼰정이었는데 그녀의 레벨보다도 10이 높았다.

꼰정은 슬쩍 폴우의 옆구리를 찌르며 빨리 받으라는 눈치를 줬다.

확실히 384의 술법사는 파티에 상당한 도움이 될 것 같았다.

“반갑습니다. 요요술사라고 합니다.”

남자는 미소를 지으며 인사를 했다.

난 슬쩍 남자의 모습을 살펴보며 그 인사를 받아주었다.

‘384의 고레벨 술법사라…… 충분히 다른 파티에도 낄 수 있었을 텐데…….’

안 좋은 습관인지 몰라도 난 사람을 잘 믿지 않았다. 그래서일까? 사람 좋게 생긴 요요술사의 모습에도 왠지 난 그가 믿음직스럽지 않았다.

차라리 무식하게 생긴 폴우나 삭막하게 생긴 붉은장미가 더 믿음이 갔다.

왜 그런지는 나도 몰랐다.

어쨌든 난 이렇게 은근슬쩍 끼어들기에 성공했다.

“많이 기다리셨습니다.”

한눈에 봐도 고급스러운 복장을 한 남자가 수천 명의 유저 앞으로 걸어 나왔다.

‘천룡성검.’

난 한눈에 그를 알아보았다.

클로즈 베타 때와 똑같은 생김새였다.

“천룡맹의 맹주, 천룡성검입니다.”

정중한 인사.

군자검(君子劍)이라 불리는 그의 별호와 딱 어울리는 언행이었다.

“많이 기다리셨을 테니 쓸데없는 말은 모두 생략하고 본론부터 바로 말하겠습니다.”

천룡성검은 빠르게 자신의 말을 이어나갔다.

“역시 많은 분들이 모여 주셨군요. 일단 이곳에 오신 분들은 나름대로 정보망을 이용하셨을 것입니다. 그렇기에 여러분은 어설픈 초보 유저는 아니시라고 생각합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