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79. 군림의 길 ― 2
* * *
[신이라…… 이름이 있군. 혹시 알고 있나? 난 이름이 없다.]
당연히 몬스터가 이름을 가지고 있을 리는 없다. 근데 칠흑의 마수는 마치 이름을 가지지 못한 게 마음에 안 든다는 것처럼 얘기하고 있었다.
[그래서, 너를 쓰러뜨리고 그 이름을 내가 가지려 한다.]
정말 이상한 대화.
칠흑의 마수는 마치 버그라도 생긴 것처럼 이상한 말을 쏟아내었다.
“그래? 뭐, 그러면 되겠군. 하지만…….”
난 살짝 웃으며 칠흑의 마수를 쳐다보았다.
“과연 그럴 수 있을까?”
버그가 있든 없든 그것은 중요하지 않았다. 진짜 중요한 건 쓰러지는 대상이 내가 아닌 놈이라는 것이었다.
마수소환 박(搏)!!(마수[魔獸] 가이너: 커다란 뱀처럼 생긴 중급마수. 몸길이가 5m 정도고 주로 땅속에 산다.)
드드득!
선공은 내가 먼저였다. 난 재빨리 박(가이너)을 소환하여 칠흑의 야수를 휘감도록 명령했다.
미리 머릿속에 생각하고 있었기 때문에 박은 아주 빠른 속도로 소환이 되어 칠흑의 야수가 밟고 있던 땅을 뚫고 튀어나왔다.
하지만 그다음은 내 예상과는 조금 달랐다.
[크어엉!]
놈은 간단한 단 한 번의 몸짓으로 자신을 휘감은 박을 떨쳐버렸다.
콰앙!
땅바닥에 처박히는 박.
박은 큰 충격을 입고 곧장 역소환되었다.
칠흑의 마수는 중급마수 박의 공격을 너무나 쉽게 무력화시켰다.
“쳇!”
어느 정도 예상은 했지만 놈은 생각했던 것 이상으로 강해 보였다.
“장비 5번.”
츠릿!
난 재빨리 대미궁의 98층에서 데스나이트를 해치우고 얻은 최고급 활을 꺼내 들었다.
데스보우(Death Bow).
사용 시 추가로 암흑 데미지를 주고 일정확률로 대상의 생명력을 흡수해 사용자에게 전해주는 능력이 있는 아주 좋은 유니크 등급의 활이었다.
파파팟!
난 데스보우에 마나를 주입해 세 발의 연환시를 쏘아내며 뒤로 물러났다.
데빌사우루스와 싸울 때도 그랬지만 보스몬스터를 혼자 잡기 위해서는 무조건 전투를 장기전으로 끌고 가야 했다.
아무리 내가 사기적인 직업을 가졌다고 해도 기본적으로 40명에 가까운 유저들이 모여서 잡는 보스몬스터의 체력은 당연히 어마어마했다.
그렇기에 난 시간을 내 편으로 만들 필요가 있었다.
“자, 놀아보자고!”
힘겨운 일인 레이드의 시작.
하지만 이 전투는 나에게도, 그리고 놈에게도 중요한 일전이었다.
* * *
마수소환 철벽(鐵壁)!!(마수 레윰: 1m 정도의 커다란 딱정벌레처럼 생긴 상급마수. 공격력은 전혀 없지만 그 등판은 어지간한 공격은 모두 반사해 버리는 능력을 지녔음.)
꽝!
“크윽!”
결을 오른팔에 소환해 간신히 놈의 ‘죽음의 숨결’을 막아냈다. 어지간한 공격은 모두 반사해 버리는 철벽을 이용해도 단순히 막는 게 전부였다.
‘죽음의 숨결’은 놈이 주기적으로 사용하는 일종의 필살기였다.
검은 안개와 같은 브레스 형 공격인 그것을 제대로 맞으면 당연히 즉사였다.
물론 피할 수는 있었지만 워낙 놈이 교묘한 타이밍에 사용했기 때문에 피하는 것도 쉽지만은 않았다.
방금 같은 경우는 아예 피하는 게 불가능했기에 무리해서 철벽을 소환해 막았다.
아주 간신히 상급마수인 철벽의 능력을 이용해 막긴 했지만 덕분에 철벽은 큰 타격을 입고 역소환되었고 그 여파로 나도 어느 정도의 타격을 입었다.
벌써 2시간(게임 시간)이 지났지만 아직도 승부는 결정 나지 않았다.
난 마수들을 적극 활용하며 최대한 마력을 아끼고 전투를 장기전으로 끌고 왔다.
하지만 아직도 상황은 나에게 그리 좋아 보이지 않았다.
놈은 마치 무한의 체력과 무한의 마력을 지닌 것처럼 처음부터 지금까지 일정하게 나를 몰아붙였다.
덕분에 나는 주로 방어를 하며 간간이 반격하기만 하는, 주도권을 빼앗긴 전투를 2시간 동안 계속해 왔다.
‘괴물…….’
칠흑의 마수는 정말 괴물이었다.
언제나 무조건 이길 수 있다는 생각하는 나였지만 이번 경우는 정말 가슴속 깊은 곳에서 패배라는 글자가 스멀스멀 기어 나오려 하고 있었다.
휘잉!
놈의 덩치가 무지막지하게 큰 건 아니었지만 그래도 나보다 약 3배 정도는 컸기 때문에 놈이 휘두른 앞발의 크기는 충분히 위협적이었다.
꽝!
앞발을 이용한 단순한 평타 공격이었지만 이것 역시 제대로 맞으면 거의 빈사 상태에 빠질 수 있었다.
백스텝을 이용해 간신히 놈의 공격을 피한 난 다시 한번 역공을 시도했다.
마수소환 섬전(閃電)!!(마수 레기우스: 40㎝ 정도의 작은 크기지만 몸 전체가 굉장한 에너지 덩어리로 되어 있는 특수한 최상급마수. 마치 전자기로 이루어진 것같이 강하게 빛나며 어지간한 모든 물체를 꿰뚫어 버릴 정도의 힘을 지니고 있다)
번쩍!!
내 오른손 등이 강하게 빛나며 내가 가장 어렵게 계약을 맺은 네 마리의 최상급마수 중 하나인 섬전이 전방으로 쏘아져 나갔다.
“장비 4번!”
스릉! 철컥!
섬전을 쏘아내며 동시에 엘레멘탈 블레이드를 꺼내 들었다.
“용마수(龍魔手)!!”
치이익!
더 이상 끌려다닐 순 없었기에 그동안 아껴왔던 것들을 마음껏 사용할 생각이었다.
내 양팔은 붉게 빛나며 변형되었다.
나의 특수능력인 용마수였다. 용마수를 사용하자 내 근력과 민첩이 크게 상승하며 온몸에 힘이 넘쳐나기 시작했다.
스킬조합 환상검술 환영검(幻影劒)+양손검술 몰아치기
레인보우블레이드!
엘레멘탈 블레이드에서 일곱 빛깔의 검기가 쏟아져 나오며 섬전의 뒤를 바짝 쫓았다.
하지만 내 공격은 여기서 끝이 아니었다.
스킬조합, 하급화염주술 화염의 인(刃)+하급화염마법 파이어붐(Fire Boom)
화염폭풍(火焰爆風)!!
이제는 한 손으로도 가볍게 발동시킬 수 있는, 아주 익숙하면서 간단한 주술과 마법의 조화 스킬인 화염폭풍을 왼손을 이용해 빠르게 발현시켰다.
연속해서 이어지는 세 가지의 연합공격.
콰광!
꽈과과광!
아무리 칠흑의 마수라고 해도 이 세 가지 공격을 모두 피하거나 막아낼 수는 없었다.
하지만 이건 단지 시작일 뿐이었다.
이 연속 공격은 내가 진짜 공격을 하기 위해 시간을 버는 일종의 준비 공격이었다.
이렇게 해서 내가 얻은 시간은 단 10초 정도밖에 되지 않았다. 하지만 그 정도 시간이라면 충분했다.
캐스팅이 매우 긴 스킬이라 전투 중에 함부로 사용할 수는 없었지만 10초라면 충분했다.
스킬융합 마수소환 랑(狼)(마수 데온: 늑대인간처럼 생긴 마수. 단독 생활을 하는 마수로서 마령의 숲에서 가장 강력한 마수로 손꼽히는 최상급마수. 날카로운 이빨과 강력한 발톱 가진 데온의 공격력은 마수들 중 단연 발군이다)+중급흑마법 다크아머(Dark Armor)+암흑술법 그림자망토.
흑랑(黑狼) 소환!!
랑을 소환했다. 그것도 그냥 소환한 게 아니라 연구에 연구를 거듭해 성공시킨 강화형 랑, 일명 흑랑을 소환했다.
마수 데온을 다크아머로 무장시키고 그림자망토를 통해 암흑에너지를 증폭시켰다.
그 결과 랑은 내가 가진 마수 중 가장 강력한 마수가 될 수 있었다.
[크어어어어엉!]
다소 긴 캐스팅이 끝나고 내가 만들어낸 암흑의 문에서 흑랑이 튀어나왔다.
그리고 곧장 칠흑의 마수를 향해 뛰쳐나갔다.
흑랑을 소환하며 마력의 10%를 한 번에 써버린 나는 솔직히 조금 지친 상태였다. 이제 남은 마력은 20% 정도밖에 되지 않았다.
이제 믿을 건 흑랑뿐이었다.
[크르르!]
폭발의 효과가 사라지며 놈이 다시 모습을 드러냈다.
역시나 내 삼 연속 공격은 칠흑의 마수에게 큰 피해를 주지는 못했었다.
약간의 체력을 빼놓고 시간을 번 정도? 그게 전부였다.
꽝!
흑랑과 놈이 충돌했다.
놈은 원래부터 마수의 왕이었고 흑랑은 내가 만들어낸 인위적인 특별한 마수였다.
그러한 강력한 두 마수의 격돌.
하지만 현실적으로 흑랑이 놈에게 밀리는 건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었기에 난 놀고만 있을 수는 없었다.
“장비 5번.”
츠릿!
다시 데스보우를 꺼내 든 나는 재빨리 놈의 뒤로 몸을 움직였다. 이럴 땐 패스트워크와 초상비(草上飛) 보법을 조합해 만들어낸 섬전행(閃電行) 보법이 최고였다.
파파팟!
순식간에 놈의 뒤를 잡은 나는 재빨리 데스보우에 마나를 주입시켰다.
스킬조합 스킬융합 저격모드+결점포착(缺點捕捉)+파워샷(Power Shot)
일격필살(一擊必殺)!!
피잉!
단 한 발이었지만 그 위력은 상당했다.
퍼억!
[크어어어엉!]
내가 날린 마나에로우가 놈의 등에 정확히 꽂혔다.
2시간이 넘는 전투시간 동안 가장 제대로 들어간 공격이었다.
하지만 이 한 방으로 지금까지 불리했던 상황이 갑자기 유리해지지는 않았다.
스킬조합 스킬융합 저격모드+결점포착(缺點捕捉)+파워샷(Power Shot)
일격필살(一擊必殺)!!
피잉!
다시 한번 공격.
하지만 놈은 역시 만만한 상대가 아니었다.
퍼퍼퍼펑!
놈은 본능적으로 투기를 유형화시키며 강력한 마력의 파동을 만들어냈다.
“큭!”
꽈광!
놈과 꽤 멀리 떨어져 있던 나였지만 그 마력의 파동은 순식간에 나를 덮쳤고 난 용마수를 교차하며 그 파동의 여파를 견뎌냈다.
주르르륵.
그나마 거리가 좀 있어서 큰 피해를 입지는 않았지만 내가 날린 마나에로우는 그 파동에 완전히 소멸해 버렸다.
내가 소환한 흑랑 역시 뒤로 밀려났다. 하지만 흑랑도 나와 마찬가지로 큰 타격을 입지는 않았는지 다시금 놈을 향해 돌진했다.
‘지지 않아!’
비록 놈이 지금까지의 어떤 몬스터보다 강력한 건 사실이었지만 난 절대 패배를 생각하지 않았다.
무슨 수를 써서라도 이긴다.
이것의 나의 의지였다.
“장비 3번!”
촤르륵!
난 빠르게 강철와이어를 꺼내 들었다. 놈의 움직임만 제한할 수 있다면 흑랑의 공격력은 더욱 극대화될 수 있었다.
스킬융합 결박(結縛)+와이어바인딩(Wire Binding)+오행술법 오행강화(五行强化) 금(金)!!
무한결계(無限結界)!!
내 손을 떠난 강철와이어가 허공에서 마구 얽히며 놈의 네 다리를 휘감았다.
내가 알고 있는 와이어스킬 중 가장 난이도가 높은 기술이었다.
한 번 걸리면 2분 동안 이동속도가 90% 이상 감소하고 스킬 시전 속도도 절반으로 떨어뜨리는 효과가 있는 대단한 기술…… 하지만 아쉽게도 놈에겐 대단한 기술이 아닌 평범한 기술이 되어버렸다.
드드득!
놈은 자신을 휘감는 와이어들을 강제로 뜯어내 버렸다.
오로지 힘만으로…… 정말 말 그대로 괴력(怪力)이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아예 효과가 없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이었다. 무한결계는 그 특성상 일정시간 동안 계속 재생되는데 덕분에 놈은 아주 잠깐 와이어들을 뜯어내는데 힘을 사용했다.
‘파상공격!’
잠깐이라도 움직임을 봉쇄했으니 남은 건 하나, 바로 온 힘을 다해 공격하는 것이었다.
먼저 흑랑이 달려들었다.
소환수스킬 울프 피어(Wolf Fear)!!
[아우우우우!!]
흑랑은 가진 힘을 모두 총동원해 미친 듯이 놈을 공격했다. 흑랑의 발톱은 더욱 강하고 빠르게 놈의 급소를 파고들었고 그 발톱엔 날카로운 마나의 기운이 맺혀 있었다.
하지만 파상공격의 진정한 주체는 흑랑이 아닌 나였다.
어차피 이번 공격이 실패한다면 난 놈을 이길 수 없다. 그렇기에 난 더욱 이 공격에 모든 신경을 집중시킬 수밖에 없었다.
“장비 4번!”
스르릉! 철컥!
내가 이번에 마계에 와서 얻은 건 수많은 마수뿐만이 아니었다.
영웅들이라 불리던 물건들이 드디어 성장했다.
정확히 말하자면 내가 가장 많이 사용한 엘레멘탈 블레이드만 성장한 것이지만 철벽방패와 마법총서도 성장수치를 거의 꽉 채운 상태라 조금만 더 사용하면 성장할 것 같았다.
어쨌든 엘레멘탈 블레이드는 유니크 아이템에서 엘리트 아이템으로 성장했다.
엘리트 아이템!
레벨이 400도 넘지 못한 유저가 엘리트 아이템을 구하다니! 이건 파격을 넘어선 충격이었다.
내 기억 속에 존재하는 엘리트 아이템들 중 가장 레벨제한이 낮은 것이 500이었다.
그런데 난 벌써 엘리트 아이템을 얻었다.
그리고 그 성능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