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더 로드(The Lord)-76화 (76/250)

076. 마계 ― 1

* * *

[……이렇게 이상 고온 현상이 계속되고 있는 현재 세계의 기상 전문가들은 이 원인을 찾기 위해 노력하는…… 원인을 알 수 없는 돌연변이 생물들의 출현 역시 이 이상 고온 현상과 더불어 많은 학자들의 연구가…….]

잠깐 잠이 들었던 건가? 조금만 쉬려고 했는데 생각보다 피곤했었던 것 같다.

띠릭.

난 시끄럽게 떠들고 있는 홀로그램 TV를 끄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덥군.”

뉴스에서 떠들던 것처럼 요즘 날씨는 너무 더웠다. 그나마 냉방시스템이 최고급으로 갖춰졌기에 그다지 더위를 못 느꼈었는데 잠깐 창문을 열어놓고 냉방시스템을 꺼놓은 사이 방은 찜통처럼 변해 있었다.

삐리리~

난 창문을 닫고 냉방시스템을 다시 작동시켰다.

요즘 확실히 피곤함을 많이 느끼고 있었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같은 게임을 해도 지금까지와는 다른 긴장감 속에서 할 수밖에 없었기 때문에 난 늘 게임에서 빠져나오면 큰 피로를 느끼고 있었다.

“빌어먹을 마계.”

정말 빌어먹을 마계였다.

난 솔직히 내가 왜 이곳에서 이렇게 고생을 해야 하는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아니, 정확히는 이곳을 어떻게 빠져나가는지 알지 못했다.

대미궁 99층에서 갑자기 마계로 워프된 지 벌써 6일(게임 시간)이 지났건만 난 아직도 마계에서 개고생하고 있었다.

물론 고생한 만큼 얻은 건 있었다.

예를 들어 많은 경험치나 몬스터를 잡고 얻은 쏠쏠한 아이템들, 그리고 쑥쑥 오르고 있는 스킬 숙련도는 분명 좋은 소식이었다.

만약 내가 정확하게 이 마계를 빠져나가는 방법을 알았다면 조금 어렵고 고생스럽더라도 마계의 생활을 나름대로 즐겼을 것이다.

하지만 모든 것이 확실하지 않고 불안한 상태에선 이 마계 생활을 결코 즐길 수 없었다.

내가 알고 있는 사실은 오로지 하나.

마계에 도착했을 때 내 눈앞에 뜬 메시지뿐이었다.

너의 그 염원…… 그것은 군림의 꿈.

이곳에서 그 염원의 진실함을 증명하라!

이게 끝이었다.

어떻게 증명하는지는 나도 몰랐다. 사실 이곳에선 무엇을 증명하기보다 살아남는 게 더 문제였다.

이곳은 마계에서도 악명이 높은 곳 중 하나인 마령의 숲.

마령의 숲은 마계에서 가장 유명한 4곳의 지역 중 한 군데였다.

여기서 살아남는 건 어지간한 상급의 퀘스트를 해결하는 것보다 더 어려웠다.

그냥 매일매일…… 매 시간마다 외줄을 타는 심정이었다. 당연히 그 외줄에서 떨어지면 죽음이 기다리고 있었다.

“도대체 무엇을 증명하라는 것일까?”

난 이것이 일종의 특별 퀘스트라고 생각하고 그것을 해결하기 위해 다방면으로 정보를 모아보았다.

하지만 답을 찾지는 못했다.

그렇기에 내가 할 수 있는 건 그저 마령의 숲에서 생존을 하는 것뿐이었다.

내가 알고 있는 마계에서 빠져나가는 방법은 마계의 수도인 카디악에서 워프 포탈을 타는 것이었다.

하지만 지금 시점에선 마계가 업데이트도 되지 않았기 때문에 카디악에 워프 포탈을 있을 것이라는 보장이 없었다.

아니, 아예 카디악이 존재하지 않을지도 몰랐다.

그리고 더 중요한 건 기껏 대미궁 99층에서 뭔가 특별한 퀘스트를 받았는데 그걸 그냥 날려 버릴 수 없다는 사실이었다.

마지막으로 모든 것을 다 좋은 쪽으로 생각하더라도 가장 난감한 건, 내 실력으론 마령의 숲을 벗어나 카디악을 찾아가기가 거의 불가능하다는 것이었다.

결국 이곳에서 뭔가를 증명하라고 했는지 죽이 되든 밥이 되든 이곳에서 그 뭔가를 찾아야 했다.

“그나저나 모든 사람이 대미궁 이벤트가 끝났다고 믿고 있건만…… 나만 아직도 대미궁에 묶여 있군.”

사실상 나를 제외한 모든 ‘ONE’의 플레이어는 대미궁 이벤트가 종료된 것으로 알고 있다.

이제 대미궁은 다른 던전들처럼 늘 공개된 그런 장소가 되었다. 물론 그 마지막 층은 98층이 되어 있을 것이다.

99층은 사라졌다.

하지만 난 아직도 99층에 묶여 마계에서 마지막 퀘스트를 수행하고 있었다.

“아직 일주일밖에 지나지 않았다. 계속 견디며 노력한다면 분명 해결할 수 있겠지.”

조급한 마음은 금물이었다.

이제부터 필요한 건 끈기였다.

* * *

처음 마계가 공개되었을 때 유저들은 굉장히 좋아했다. 마계는 당시 새로운 지역에 목말라 있던 유저들에게 좋은 컨텐츠가 될 것이라고 예상되었다.

특히나 동대륙과 서대륙 유저들 모두 동등하게 입장할 수 있다는 점에서 높은 점수를 받았었다.

하지만 막상 마계가 제대로 열리고 나서의 반응은 그다지 좋지 않았다.

일단 마계의 유일한 마을(?)이라 할 수 있었던 카디악은 말 그대로 그저 포탈 하나만 달랑 있는 썰렁한 지역이었고, 유저들을 배려할 만한 NPC나 상점 같은 건 전혀 없었다.

거기에 마계의 사냥터들은 하나같이 사냥하기가 무척 불편했다. 마계에 존재하는 몬스터들은 거의 대부분이 암흑속성을 지닌 마수(魔獸) 계열이었다.

그런데 짜증나는 건 이 마수 계열의 몬스터들의 인식 범위가 아주 넓다는 것이었다. 거기에 사냥터는 대부분 마계 특유의 복잡한 밀림 지형이었기에 툭하면 몬스터들이 반응을 했다.

파티 사냥을 하면서 가장 주의해야 할 것이 풀링(사냥하고자하는 몬스터를 끌고 오는 행위)이었는데 마계에선 이 풀링이 너무 힘들었다.

자칫하면 다른 마수들이 반응을 해버리니, 어지간한 이들은 마계에서 사냥하는 걸 포기할 정도였다.

물론 경험치나 드랍 아이템은 괜찮은 편이었지만 그 정도의 사냥터는 동대륙과 서대륙에도 많이 존재했었다.

그렇기에 사람들은 마계에서의 사냥을 꺼릴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정작 마계에서 제일 짜증 나는 건 이런 문제들이 아니었다.

많은 이들이 정말 마계에서 사냥을 하지 않게 했던 가장 큰 이유는 마계의 유일한 도시인 카디악에서 다시 동대륙이나 서대륙으로 돌아가는 포탈을 이용할 때 ‘악마의 룬’이라는 소모성 아이템이 하나 필요하다는 점이었다.

이 룬은 마계의 전 지역에서 아주 드물게 드랍되었는데 혹시라도 구하지 못하면 꼼짝없이 이 지겨운 마계에 계속 있어야 했다.

특히 경매장도 은행 서비스도 이용할 수 없는, 거기에 소모성 아이템을 구입할 상점도 없고 개인상점도 열 수 없는 오로지 유저들 간의 직거래만 가능했던 마계였기에 그 인기는 순식간에 사라져 버렸다.

난 그런 마계에 무려 2년이나 일찍 와버렸다.

덕분에 난 마계의 무시무시한 마수와 괴수들을 한 마리씩 힘겹게 상대하며 때 이른 개고생을 하고 있었다.

무려 2년을 앞당긴 경험이다.

당연히 레벨도 스킬 숙련도도 한참 부족했다. 그나마 내 직업특성과 마계에서 사냥을 했었던 경험을 살려 그럭저럭 살아남고 있었지만 정말 하루하루가 지옥 같았다.

“헉헉.”

단지 마수뿐인 헬하운드 몇 마리를 잡기 위해 난 마치 1인 레이드라도 다시 한 것처럼 노력했다.

레벨의 차이…… 그것을 극복하기 위해 난 평소에 잘 쓰지 않던 모든 능력을 다 끌어내 사용했다.

덕분에 스킬 숙련도는 아주 미친 듯이 올라갔지만 피로도는 그에 비례해서 급상승했다.

그나마 다행인 건 내가 알고 있던 마령의 숲보단 몬스터들의 레벨 수준이 높지 않다는 사실이었다. 내가 알고 있기론 이곳에 몬스터들은 대략 650~700 수준의 레벨을 가지고 있었어야 했는데 그냥 느끼기에는 400~450 정도의 레벨밖에 되지 않는 것 같았다.

물론 그 정도만 되어도 벌써 나랑 평균 50이 넘는 레벨 차이였기에 무척 힘들었지만 그래도 아예 공략이 불가능한 정도의 수준은 아니었다.

“젠장, 벌써 10일(게임 시간)이 다 되어 가는데…… 도대체 뭘 증명하라는 건지 감도 잡지 못했네…….”

난 헬하운드의 가죽을 벗기며 작게 투덜거렸다.

가죽을 벗기면서도 난 오감증폭 스킬을 계속해서 유지하고 있었다.

한순간이라도 방심하면 안 되는 곳이 이곳 마계였다.

늘 은신계열 스킬을 유지해야 했고 언제나 감각은 잘 벼려놓은 칼날처럼 날카롭게 유지해야 했다.

슥슥.

헬하운드의 가죽은 가죽장인들에겐 고급 재료로 취급되었다. 당연히 비쌌기에 버리고 갈 수 없었다.

마계에서 가죽을 많이 벗겨서일까? 생산 스킬 중 하나인 무두질 스킬이 많이 올랐다. 덕분에 이젠 헬하운드 가죽을 모두 벗기는 데 필요한 시간이 매우 짧아져 있었다.

대미궁에 들어오면 준비했던 수많은 것은 대부분 다 써버렸다.

덕분에 가방은 빈자리가 많아 마계에서 얻은 쏠쏠한 아이템들이 그 빈자리에 차곡차곡 쌓이고 있었다.

이건 분명 기분 좋은 일이었다.

하지만 마냥 좋아할 수는 없었다.

아이템들이 쌓이면 쌓일수록 답답함 역시 같이 쌓여갔다.

흠칫!

헬하운드의 가죽을 거의 다 벗겼을 때 또다시 나의 감각에 이상 신호가 잡혔다.

‘쳇…… 쉴 틈을 안 주는군.’

마계에서의 휴식은 꿈도 꾸지 못했다. 안전지대? 그걸 설정할 시간마저 없었다.

정말 재수가 좋을 때 가끔 성공할 뿐이었다.

덕분에 난 꼼짝없이 나를 극한으로 몰아가며 사냥에 집중할 수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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