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75. 대미궁의 마지막 층
* * *
“……내가 언젠가 형한테 이미르라는 유저가 도대체 어떻게 혼자 대미궁에서 살아남았는지 궁금하다고 했었지?”
프로이드는 굉장히 흥분된 표정으로 스피카를 향해 말했다.
“그랬었지…….”
“이젠 더 이상 그게 궁금하지가 않아.”
프로이드의 말.
그 말에 스피카 역시 고개를 끄덕였다.
그들은 현재 신(이미르)의 말대로 원거리에서 신을 보조하며 데스 나이트를 상대하고 있었다.
어차피 초반에 데스 나이트에게 20명가량의 팀원이 순식간에 게임 아웃 당했기 때문에 신이 나서지 않았다면 아마 그대로 하나둘 쓰러졌을 것이다.
초반에 워낙 강력한 일격을 당해 그들은 약간 혼란에 빠졌었다. 그나마 신이 나섰기에 이 정도로 상황이 정리된 것이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남은 팀원들이 대부분 원거리 공격형 딜러와 힐 계열 유저들이라는 것이었다(근접 딜러나 탱커 계열 유저들은 최초 격돌에서 대부분 사망).
“최대한 견제 위주의 공격을 쏟아부으면서 남은 힐러들은 이미르에게 모든 스킬을 집중하세요!”
뭐가 뭔지 좀 어리둥절한 상황이었지만 이렇게 된 이상 헬 레이드 팀도 이미르에게 모든 걸 걸고 전력투구하는 수밖에 다른 방법이 없었다.
난 다시 게임을 시작하고 처음으로 동료가 있다는 게 어떤 느낌인지 알 수 있었다.
비록 숫자가 많이 줄고 많이 지쳤다지만 그래도 과연 헬 레이드 팀의 팀원들은 최상급 유저다웠다.
그들의 보조는 매우 훌륭했다.
솔직히 나 혼자였다면 아마 이 데스 나이트와 상대하는 건 무리였을 것이다.
아무리 내가 꽁꽁 숨겨놓은 모든 능력까지 모조리 사용한다고 해도 힘들어 보이는 상대였다.
하지만 난 지금 분명 이 데스 나이트와 정면으로 싸우고 있었다.
그것도 검 대 검으로 밀리지 않고 싸우고 있었다.
끊이지 않고 나에게 쏟아지는 다양한 힐 계열의 스킬들, 그리고 적재적소에 쏟아지는 견제 공격들과 나를 도와주는 다양한 버프 스킬들.
그 모든 것을 지휘하는 건 프로이드였지만 그걸 정확하게 실행에 옮기는 건 헬 레이드의 팀원들이었다.
‘싸울 맛이 나는군.’
더욱 날 즐겁게 하는 건 거의 순간순간 계속해서 상승하는 검술의 이해도였다.
모든 검술의 기본이 되는 이 이해도가 상승한다는 건 곧 내 검술의 능력이 올라간다는 뜻이었다.
이 속도는 용아병 때와도 비교가 되지 않는 굉장한 속도였다.
확실히 왜 사람들이 검술의 대가가 되고 싶으면 데스 나이트와 검 대 검의 대결을 펼치라고 했는지 이해가 되었다.
이왕 이렇게 된 거, 적어도 난 검에 관해서는 모든 것을 보여줄 생각이었다.
어차피 데스 나이트는 어영부영 상대할 수 있는 몬스터가 아니었기에 그럴 수밖에 없었다.
스킬 조합, 환상 검술, 환영검(幻影劒)+양손검술, 몰아치기.
레인보우 블레이드!
퍼퍼퍼펑!
엘레멘탈 블레이드가 일곱 색깔의 강기를 뿌리며 데스 나이트를 몰아쳤다.
하지만 데스 나이트의 반응은 매우 간결하면서도 정확했다.
단순히 검을 몇 번 움직이는 것만으로 내 공격을 모두 막아버렸다.
‘쳇, 타락하긴 했지만 그래도 한땐 검의 스승이었다고 말하는 거냐!’
과연 데스 나이트의 검술은 대단했다.
벌써 한 시간 정도 온 힘을 다해 상대했지만 제대로 타격을 준 경우는 많지 않았다.
그에 반면 난 종종 공격을 허용해 타격을 입었다. 물론 그것도 계속해서 이루어지는 견제 공격 덕분에 치명적인 타격을 피하고 있는 것이었다.
또한 타격을 입어 깎인 생명력은 계속해서 힐 계열 유저들이 채워줬기 때문에 난 아슬아슬하게 계속 데스 나이트를 상대할 수 있었다.
하지만 계속 이렇게 싸울 수는 없었다.
한계라는 게 있었다.
일단 팀원들의 마력도 분명 한계가 있었고, 내가 아무리 철인이라고 해도 이런 고도로 집중된 상태를 몇 시간이고 계속 이어갈 수는 없었다.
‘앞으로 30분, 그 안에 승부를 내야 한다!’
짧은 시간 안에 승부를 내려면 이런 식으로 싸워서는 안 됐다.
‘위험하지만 무리를 한다!’
이번에도 역시 무리수가 필요했다. 계속되는 무리수는 나를 점점 더 위험에 빠지게 하고 있었지만 어쩔 수가 없었다.
그냥 천천히 자연스럽게 쓰러지는 것보단 한 번이라도 가능성이 있는 무리한 공격을 해보고 쓰러지는 것이 좋았다.
‘영웅의 포효!!’
우워워워!
난 재빨리 나의 필살기라 할 수 있는 영웅의 포효를 활성화시킨 후 엘레멘탈 블레이드를 강하게 움켜잡았다.
[프로이드 님, 모든 딜러에게 온 힘을 다 쏟아부어 데스 나이트의 다리를 공격하게 해주세요. 그리고 힐러들은 마력을 다 써버릴 작정으로 저에게 모든 것을 쏟아부으라고 하세요.]
난 프로이드에게 간단하지만 매우 강력하고 무식한 전략을 알려주며 곧장 데스 나이트를 향해 뛰어올랐다.
영웅의 도약을 사용했기에 내 점프는 빠르고 높았다.
“으아아아아!!”
혼신의 힘을 다한 마지막 파이팅!
앞으로 30분 안에 내가 쓰러지든지 데스 나이트가 쓰러지든지 결정이 날 것이다.
* * *
주르르륵.
툭, 툭.
‘망할 게임, 너무 현실적으로 만들었어.’
내 미간 사이로 흘러내리는 반짝거리는 빛의 가루는 현실에서의 피와 같았다.
“헉…… 헉…….”
‘ONE’에는 목숨과 관련된 생명력 말고도 기본적으로 활력이라는 능력치가 있었다.
물론 이 능력치는 수치로 적혀 있는 게 아니라 눈으로 확인할 수는 없었지만 조금이라도 게임을 해본 사람이라면 이 활력을 몸으로 느낄 수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현재 난 말 그대로 만신창이었다.
생명력은 세 자리대로 떨어졌고 활력은 거의 제로(0)에 가까워진 것 같았다.
엘레멘탈 블레이드를 들고 있는 것도 힘겨울 정도였다.
처음부터 사용했으면 모를까, 마력까지 바닥난 지금은 더 이상 꺼낼 비기도 없었다.
사실 내가 모든 능력을 사용했다고 해서 지금 이상으로 잘 싸웠을 것 같지는 않았다.
검 대 검의 정면 대결이었지만 난 모든 것을 쏟아부었고,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했다.
30분간의 대 혈투.
난 30분 안에 모든 것을 결정 낼 생각이었다. 하지만 그러지 못했다.
물론 데스 나이트를 거의 끝까지 몰아붙인 건 사실이었다.
하지만 중요한 건 데스 나이트가 아직 쓰러지지 않았다는 것이다.
물론 나 역시 아직 쓰러지지는 않았다.
하지만 상황은 내가 쓰러진 것과 마찬가지였다.
남아 있는 헬 레이드의 팀원은 프로이드뿐이었다. 그마저 체력이 거의 바닥난 상태였다.
만약 그가 데스 나이트가 사용한 몇 번의 치명적인 일격을 대신 맞아주지 않았다면 난 이미 바닥에 누웠을 것이다.
“젠장!”
욕이 절로 나왔다.
데스 나이트 역시 몇 번의 공격만 제대로 성공시키면 쓰러질 수 있는 상황이었건만 이제 더 이상 공격할 힘이 없었다.
“할 수 있을 줄 알았는데…… 죄송하네요.”
이제는 아무리 나라고 해도 더 이상 방법이 없었다. 난 프로이드를 바라보며 얘기했다.
후회는 없었다.
“……우린 최선을 다했습니다.”
프로이드 역시 후회하지 않는 표정이었다.
뿌득.
난 다시 한번 마지막 힘을 쥐어짜 검을 머리 위로 들었다.
“검으로 후회 없이 싸운 이상 검을 떨어뜨리고 죽을 순 없지!”
난 내가 할 수 있는 마지막 공격까지 할 생각이었다.
“헬 레이드 팀의 마지막은 여기까지군요. 하지만 이미르 님, 이미르 님의 마지막은 아직입니다.”
프로이드는 나에게 요상한 말을 하며 들고 있던 방패를 등에 짊어 멨다.
“제가 말했었죠. 이미르 님이 99층에 갈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지금 그 약속을 지키겠습니다.”
프로이드는 살짝 미소 지으며 갑자기 데스 나이트를 향해 전사의 돌격 스킬을 사용했다.
순식간에 좁아지는 거리.
데스 나이트는 이미 우리 둘을 끝장내려는 중이었기에 프로이드가 돌진 스킬을 사용해 급속도로 거리를 좁히자 그를 향해 거대한 대검을 휘둘렀다.
바로 그때 내 머릿속을 스치고 지나가는 전능자 프로이드의 한 능력!
‘설마!!’
잊고 있었다.
프로이드를 더욱 유명하게 만든 그 기술.
처음엔 사람들이 그 기술의 정체를 모르고 단지 역시 전능자다운 대단한 모습이었다고 칭송했지만 나중에 그 기술의 정체를 알고는 경악했다.
기술의 이름은 ‘성스러운 희생.’
그 효과는 자신의 생명력을 모두 소비하여 주변 5m 안에 자신의 최대 생명력에 열 배에 이르는 광역 데미지를 주는 엄청난 기술이었다.
하지만 더 중요한 건 기술의 효과가 아니었다.
그 기술을 사용했을 때 시전자가 가지는 페널티야말로 이 기술의 핵심이었다.
레벨이 10 떨어지고 무작위로 두 개의 스킬 숙련도가 0이 되었다.
단지 한 번 사용하는 데 그 대가를 치러야 했다.
그래서 내가 알기로 프로이드는 그 기술을 딱 한 번 사용했다.
유명한 기술이었지만 워낙 쓰이지 않아 나 역시 까마득히 잊고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 지금 프로이드가 그 기술을 사용할 것 같았다.
번쩍!
데스 나이트와 거리를 좁힌 프로이드의 몸이 강하게 빛났다.
그는 뒤를 돌아보지 않았다.
하지만 나는 그의 등 뒤에서 시원하게 미소 짓는 그의 얼굴을 보았다.
꽈과광!
대폭발.
프로이드는 그렇게 성스러운 희생으로 데스 나이트와 함께 폭발했다.
“……감당하기 힘든 빚을 졌군.”
난 검을 들어 올린 그 상태로 쓴웃음을 지었다.
이것은 분명 빚이었다.
언젠간 내가 갚아야 할 그런 빚이었다.
“언젠간…… 언젠간…….”
후드드드득.
폭발의 잔재가 사방으로 떨어지는 가운데 난 계속해서 폭발이 일어났던 한 지점을 응시했다.
* * *
데스 나이트가 죽고 그 뒤로 99층으로 가는 통로가 열렸다.
나는 씁쓸한 기분으로 그 통로를 따라 내려갔다.
분명 99층에 갈 수 있다는 건 아주 큰 기쁨이었지만 그 과정에서 희생된 헬 레이드 팀과 프로이드 때문에 그다지 좋은 기분은 아니었다.
이렇기에 친해지기를 꺼렸던 건데 마지막에 정이 들어버렸다.
어쨌든 과거는 잊어야 했다.
빚이 있다면 그건 나중에 갚아주면 되는 것이었다.
중요한 건 지금이었다.
나는 다시 한번 고개를 흔들며 씁쓸한 기분을 털어버리고 조심스럽게 99층으로 발을 옮겼다.
데스 나이트를 해치운 배려일까?
99층으로 가는 길은 매우 깔끔했다.
함정도 없었고 몬스터도 없었다.
그냥 길만 있을 뿐이었다.
99층은 의외로 넓지 않았다. 평범한 통로와 그 끝에 존재하는 거대한 문.
아마도 이 거대한 문을 통과해야 본격적인 99층이라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일단 이 문을 어떻게 여는지 알아야 하나?”
평범하게 여는 문 같지는 않았다.
밀고 당겨보아도 열리지 않는 것으로 봐서는 뭔가 특수한 장치로 열릴 것 같았다.
난 내가 가진 모든 스킬을 이용해 문을 살펴보기 시작했다.
특히 마스터를 넘어 거의 하이 마스터의 경지에 오른 관찰 스킬은 이런 경우 대단한 위력을 발휘하는 게 보통이었다.
그렇게 한 20분을 넘게 살펴봤을까?
아쉽게도 그 어떤 스킬에도 특별한 점이 발견되지 않았다.
“어떻게 해서 온 99층인데…… 이대로 포기할 순 없지.”
난 절대 포기할 수 없었다.
안 되면 이 문을 때려 부숴서라도 들어갈 필요가 있었다.
“뭔가 좋은 방법이…… 아! 혹시 녀석이라면 알 수도 있겠군.”
마땅히 좋은 방법이 떠오르지 않는다면 누군가에게 조언을 구하는 게 좋았다.
그리고 난 지금 분명 조언을 구할 만한 상대가 있었다.
“소환, 라르엘!”
화르륵!
내 앞에 작은 화염이 솟아오르며 전혀 귀엽지 않은 작은 붉은 새 한 마리가 튀어나왔다.
[캑캑, 아! 이 얼마 만에 밖에 나오는 건가!! 주인님, 좀 너무하다고 생각하지 않나요?]
라르엘은 나오자마자 투덜거리기 시작했다.
이것만으로도 내가 라르엘을 평소에 왜 밖에 안 내놓는지 이유를 알 수 있을 것이다.
“자자, 일단 투정은 좀 미루고, 바쁘니까 내 말부터 들어봐.”
[흠흠, 오늘은 절대! 쉽게 역소환당하지 않을 겁니다!]
물론 아무리 라르엘이 저렇게 말해도 내가 역소환해 버리면 끝이었지만 일단은 고개를 끄덕이며 알았다고 말했다.
“그래도 명색이 전 최상급 정령이었던 너라면 이 문을 여는 법 정도는 알고 있을 것 같아서 불렀는데, 어때, 좀 알겠어?”
[흐음∼ 잠시만요. 일단 문의 재질은 화강암이고…… 가만 보자…….]
통통.
라르엘은 부리로 문을 여기저기 두들겨 보곤 이리저리 날아다니며 문을 살펴보았다.
“좀 감이 오는 것 같아?”
라르엘의 그런 모습을 보고 있다 보니 왠지 희망이 생긴 나는 황급히 물어보았다.
[잠깐만요…….]
뭔가를 심각하게 고민하는 것 같은 라르엘.
답변이 기대되는 상황이었다.
“알아낸 거야?”
[……아니, 전혀 모르겠는데.]
뻔뻔한 라르엘의 대답.
“…….”
[…….]
잠시 동안 이어진 침묵.
“죽고 싶지?”
[아니요.]
“그럼 맞고 싶은 거야?”
[그것도 아닌데요.]
“그럼 살짝 정신이 나갔지?”
[절대 그것도 아닌데요.]
“후우∼ 너를 믿은 내가 미친놈이지. 휴, 그냥 들어가라. 역소…….”
난 크게 한숨을 쉬며 라르엘을 다시 역소환시키려고 했다.
[잠, 잠깐만요!! 제가 들어가는 방법은 못 찾았는데…… 여기에 적힌 글은 읽을 수 있어요!]
역소환이 될 것 같아지자 다급하게 외치는 라르엘.
“진짜?”
[네∼ 제가 왜 거짓말을 하겠어요. 이 언어는 크로노스 대륙의 고대어에요. 정말 오랜만에 보는 언어지만…… 저의 뛰어난 기억력으로…….]
“그만! 잡설은 나중에 하고 일단 읽어봐.”
난 재빨리 라르엘의 잡설을 끊고 먼저 글귀를 읽게 만들었다.
[흠흠, 여기에 적힌 글은…….]
감당할 수 없는 모든 시련을 겪은 너는 이 글을 읽을 자격이 있다. 아마도 너는 많은 것을 잃었을 것이다. 그것이 무엇이든지 너에겐 소중한 것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너는 알아야 한다. 그대가 지금부터 걸어야 할 길은 더욱 험난한 길이라는 것을…… (중략) ……우라노스 님을 돕기 위해서 내가 선택할 수 있는 것은 이것뿐이었다. 이미 많은 시련을 겪은 너지만 아직 그 시련은 끝나지 않았다. 너는 마지막 최후의 도전을 해야 한다. 그리고 그 도전은 네가 상상하는 그 이상의 것이 될 것이다. 선택하라! 도전을 원한다면 그 염원을 담아 문을 밀어라! 도전을 원하지 않는다면 그 또한 원하지 않는 염원을 담아 문을 밀어라! 모든 것은 결정되지 않았다. 네가 원하는 염원은 곧 너를 시험할 것이다. 기억하라! 모든 것은 내가 원하는 그대로 이루어진다는 것을…….
꽤 장문의 글이었다.
하지만 확실한 건 이 문을 여는 방법이 이 글에 나와 있다는 것이었다.
“염원이라…….”
조금 애매한 말.
아무리 현실 같아도 결국 게임일 뿐인데, 어떻게 내 염원까지 알 수 있단 말인가?
문득 난 이게 진짜 게임이 맞을까 하는 생각을 했다.
하지만 게임이 맞았다.
난 늘 접속기기를 통해 접속했고, 이 게임을 만든 회사까지 존재했다.
그렇다면 도대체 이 글은 뭘까?
단순히 퀘스트용 글일 뿐일까?
내가 만약 이 글을 읽지 않고 우연히 진심으로 염원을 담아 문을 밀었다면 열렸을까?
많은 의문이 들었지만 일단 내가 확인할 수 있는 건 하나도 없었다.
“어쨌든 문을 열어보자.”
뭐가 어떻게 됐던지 일단은 문을 열어볼 필요가 있었다.
‘염원? 내가 진심으로 원하는 염원은 뭘까?’
난 내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졌다.
그리고 잠깐 동안 생각을 한 후 결론을 내렸다.
‘내가 원하는 건 [더 로드]!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다!’
내가 직업 그 자체!
그것이 내가 원하는 것이었다.
지잉!
염원을 머릿속에 새기고 문에 손을 대는 그 순간 이상한 떨림이 내 몸을 타고 전해졌다.
그리고 갑자기 문이 하얀빛에 휩싸였다.
[너의 염원은 곧 마지막 시련. 너의 염원대로…… 염원대로…….]
무너지는 세상.
갑자기 내 주변의 모든 것이 하얀빛과 함께 무너지며 전혀 새로운 세상이 나타났다.
“여, 여긴!!”
난 내 눈을 의심했다.
난 이곳이 어딘지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리고 지금 이곳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도 한 번에 파악했다.
나는 분명 대미궁 99층에서 문을 열었건만 어떻게 이곳에 내가 존재하는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설마 이게 나에게 주어진 시련인가?”
염원이 곧 시련이 된다는 소리가 이제야 이해가 되었다.
원래부터 ‘ONE’의 퀘스트 시스템이 대단한 것은 알고 있었지만 이건 정말 대단했다.
[크어어어엉!]
그 순간 나를 향해 달려드는 한 마리의 마수(魔獸).
나는 재빨리 엘레멘탈 소드를 소환하며 그 야수를 반으로 갈라 버렸다.
쩌적!
털썩.
“젠장, 마계라……. 아직 공개되지도 않은 장소로 워프되다니 이건 정말 너무하는군.”
내가 있는 곳은 마계(魔界)였다.
내가 알고 있기론 앞으로 2년(실제 시간)은 더 지나야 공개될 새로운 지역.
난 죽음과 공포의 지역이라 불리던 그 마계로 워프되었다. 그것도 그냥 마계가 아닌 온갖 무시무시한 마수와 괴수들이 즐비한 마령의 숲. 이곳은 그곳이 분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