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73. 지옥을 헤쳐나가는 방법 ― 2
* * *
띠링, 대미궁의 정예 용아병을 쓰러뜨렸습니다.
띠링, 레벨이 3 올랐습니다.
띠링, 양손 검술(Ⅳ)의 숙련도가 0.011 올랐습니다.
띠링, 상급 검공 뇌전검의 숙련도가 0.005 올랐습니다.
띠링, 전문 검술(Ⅱ)의 숙련도가 0.032 올랐습니다.
……
……
전투 중 보류되었던 시스템 메시지가 한꺼번에 귓가에 울리며 시끄럽게 울렸다.
“후우∼ 끝났군.”
세 시간에 가까운 혈투.
덕분에 난 온몸이 안 쑤시는 곳이 없었다. 확실히 용아병과 검술 대결을 펼치며 얻은 게 많아 좋긴 했지만 다시 한번 더 하라면 왠지 피하고 싶어졌다.
힘들게 잡고 스킬 쪽에서도 분명 큰 이득을 봤지만 정작 아이템은 별로 떨어진 게 없었다.
원래 대미궁이 아이템 인심이 박하기로 소문난 곳이었지만―그 대신 경험치는 정말 좋았다―아무리 그래도 이건 박해도 너무나 박했다.
“겨우 마정석 몇 개와 매직 급 아이템 몇 개라……. 쳇, 다 마력핵 추출을 해야겠군.”
난 가볍게 아이템을 정리하며 체력과 마력을 완전히 회복한 후 천천히 81층을 향해 내려갔다.
81층부터는 진짜 긴장할 필요가 있었다.
사실 진짜 지옥은 이곳부터였지만 다른 이들은 아마도 이곳을 경험해 볼 일이 없을 것이기에 앞에 구역을 지옥이라 부를 수밖에 없었다.
* * *
81층으로 진입한 난 일단 적당한 곳에 안전 구역을 설정하고 잠시 게임에서 빠져나왔다.
어차피 강제 접속 해제 시간도 얼마 남지 않았기 때문에 좀 쉴 필요가 있었다.
접속을 해제한 난 간단하게 식사를 하며 하이퍼 넷에 접속했다.
온라인에서뿐만 아니라 오프라인에서도 꾸준히 정보를 모으는 건 당연한 일상 중 하나였다.
이런 게 사소해 보일지라도 소홀히 하면 다른 사람들과 차이가 벌어질 수 있었다.
주르륵.
사방에 설치한 대형 홀로그램 모니터들 위로 내가 미리 입력한 검색어에 최신형 인공지능 컴퓨터가 실시간으로 찾아놓은 정보들이 한꺼번에 떠올랐다.
[지금까지 모두 332,454건의 정보를 찾았습니다.]
확실히 돈이 많으면 편한 건 사실이었다.
DH 그룹의 주식을 꽤 많이 보유하고 있던 난 그 주식의 일부를 팔았다. 그리고 그 돈으로 집값이 세계에서 가장 비싸기로 유명한 서울 도심 한복판에 3층짜리 최고급 주택을 구입했다.
그리고 게임에 필요한 최고급 접속 기기부터 여러 가지 편의 시설까지 모두 최고로 구입했다.
내가 만약 이 집의 3층을 하이퍼 넷에 공개한다면 아마 게임을 사랑하는(?) 많은 유저들은 폭발적인 반응을 보일 것이다.
어찌 보면 이 집의 3층은 모든 게이머가 꿈꾸는 그런 공간일 수 있었다.
“흐음∼.”
난 가볍게 샌드위치를 먹으며 엄청난 양의 정보 중 쓸 만한 정보를 다시 가려내기 시작했다.
하이퍼 넷에는 정말 다양한 정보들이 판을 쳤다. 물론 그중 80%는 쓸모없는 쓰레기 같은 것들이었다.
하지만 나머지 20%는 충분히 이용 가치가 있는 정보들이었기에 늘 하이퍼 넷을 주시할 필요가 있었다.
“……일단 대미궁에 관한 정보를 최우선으로 빼고, 다음은 서대륙의 각종 이슈들, 그리고 동대륙은…… 음?!”
난 정보를 정리하다 문득 눈에 띄는 글을 하나 발견했다.
“죽음의 산맥을 건넌 이들이라……. 벌써 시간이 이렇게 됐나? 이제 슬슬 ‘ONE’의 본격적인 영웅시대가 시작되겠군.”
죽음의 산맥은 동대륙과 서대륙을 나누는 거대한 산맥이었다. 물론 각종 위험한 동물들과 몬스터들이 즐비하고 그 지형이 워낙 험해 어지간한 유저들은 근처에 얼씬도 못할 정도였다.
내 기억으로 그 죽음의 산맥을 최초로 통과한 건 서대륙 쪽 유저들이었다.
원래 처음 시작부터 약 1:1.7 정도로 서대륙의 유저가 더 많았기 때문에 어쩌면 당연한 결과일지 몰랐다.
여하튼 비록 그들은 죽음의 산맥을 건너긴 했지만 사실상 반쪽짜리 성공, 아니, 어쩌면 실패라고 할 수 있는 일이었다.
어차피 본격적인 왕래는 한 1년(실제 시간)은 더 있어야 될 것이다.
그렇지만 나에겐 이들이 죽음의 산맥을 건넜다는 사실이 중요한 게 아니었다. 이것은 단지 하나의 지표일 뿐이었다.
이제 영웅시대가 시작된다는 것은 동대륙에도 큰 변화가 일어난다는 뜻이었다.
어찌 보면 그동안 서대륙의 유저들에게 주도권을 빼앗겼던 동대륙의 유저들. 하지만 앞으로 한 몇 달(게임 시간)만 지나면 동대륙도 큰 변화가 일어난다.
서대륙에 드워프 종족이 생겨난 것과 유사하게 동대륙엔 사라진 전설의 문파들이 다시 나타난다.
그리고 결정적인 한 가지!
천마무총(天魔武塚)의 등장.
천마의 무학이 숨겨져 있다는 전설의 무덤이 발견되며 수많은 동대륙의 유저가 천마의 무공을 얻기 위해 그곳으로 집결될 것이다.
서대륙의 대미궁 이벤트와 유사한 그것.
그것은 그동안 레이드 콘텐츠가 서대륙에 비해 약하다고 평가받던 동대륙에 새로운 바람을 불게 한다.
아마 그때 이후로 동대륙과 서대륙의 격차는 많이 줄어들어 나중엔 1:1.2 정도의 비율을 유지하게 될 것이다.
“벌써 천마무총이 나올 때가 되었군. 천마무총이라……. 원래는 계획에 넣지 않았지만 왠지 놓치기 싫은 먹잇감인데…….”
난 살짝 고민했다.
원래의 내 계획에는 천마무총에 대한 건 전혀 없었다. 하지만 게임을 플레이하며 생각이 조금 바뀌었다.
애초에 지금 타이밍에 내가 동대륙으로 다시 넘어갈 수 있을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하지만 생각보다 일이 잘 풀려 어쩌면 죽음의 산맥을 혼자 넘어가는 것도 가능할 것 같았다.
얼마 전엔 죽음의 산맥에서 사냥하며 레벨을 올릴 생각도 했기 때문에 충분히 가능한 일이었다.
정확히 천마무총이 언제 등장할지는 몰랐다.
하지만 최소한 4개월(게임 시간) 정도의 여유 시간은 있었다.
4개월이라면 대미궁 이벤트를 끝내고 바로 죽음의 산맥을 넘는다고 하면 어찌어찌 가능한 시간이었다.
물론 다소 빡빡한 일정 때문에 휴식 시간을 조금 줄여야 할지 몰랐지만 그건 충분히 조절이 가능한 것이었다.
“일단은 대미궁에 집중하고 끝나는 걸 봐서 결정해야겠군.”
아직 대미궁의 99층이 어떤 곳인지 경험하지 못했기 때문에 확실히 뭔가를 결정하기엔 무리가 있었다.
지금은 일단 대미궁에 집중하는 게 옳았다.
잠깐 동대륙에 대해 생각했던 나는 다시 홀로그램 창을 이리저리 움직이며 대미궁에 관한 정보를 최우선적으로 출력시켰다.
대부분의 정보는 내가 알고 있는 것들이었지만 혹시 모르는 것이기에 나는 꼼꼼히 정보들을 검토했다.
“……70층 어딘가에 존재하는 비밀 통로…… 이건 필요 없고…… 지금까지 알려진 대미궁에 나타나는 몬스터들…… 이것도 필요 없고…… 헬 레이드 팀의 현재 진행 상황? 흠, 이건 한 번 볼까?”
헬 레이드 팀에 대한 정보라면 한 번쯤 봐둘 필요가 있었다. 사실상 현존하는 레이드 팀 중 가장 TOP이라 할 수 있는 팀이었기에, 그리고 대미궁 이벤트에서 가장 많은 층까지 전진한 팀이었기에 그들에 관한 정보는 충분히 가치가 있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 글에 나를 놀라게 할 정보가 있을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그들의 역량 정도는 이미 충분히 알고 있었기에 진행 상황도 어느 정도 예측하고 있는 상태였다.
하지만 난 1분도 안 돼서 그런 내 생각들이 모두 잘못되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리하여 우리는 80층을 거의 끝내갑니다?!”
헬 레이드 팀의 진행 상황을 간단히 적은 그 글은 나를 무척 놀라게 만들었다.
“어떻게 이들이 벌써 80층까지 내려간 거지?”
아직 이벤트가 끝나려면 20일이나 남았다. 이들은 절대 지금 이곳에 있을 수가 없었다.
결국 둘 중 하나였다.
이 글이 하이퍼 넷에 굴러다니는 다른 쓰레기 정보들처럼 조작된 거짓 글이거나 아니면 미래가 바뀐 것.
그런데 다시 한번 읽어보아도 왠지 거짓으로 적힌 글 같지가 않았다.
“미래가…… 바뀐 건가?”
그동안 충분히 예상했던 일이지만 막상 미래가 바뀐 것을 직접 확인하자 살짝 불안한 마음이 들었다.
“……어쩔 수 없군. 일단 미래가 바뀌었다는 걸 인정하고 앞으로는 그걸 충분히 감안하는 수밖에 없겠군.”
어차피 언젠간 이렇게 될 것이라고 예상했었다.
이미 내가 존재하는 것 자체가 미래를 바꾸는 것이었기에 절대 내가 알고 있는 미래가 그대로 반복되지는 않을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나저나 이들은 어떻게 미래를 바꾼 거지? 그다지 미래를 바꿀만한 요소는 없었던 것 같은데…….”
이 부분은 그동안 꾸준히 신경을 썼던 것이었다. 하지만 난 지금까지 특별히 미래가 바뀔만한 징조를 발견하지 못했다.
그런데 헬 레이드 팀은 분명 미래를 바꿨다.
그들이 어떻게 미래를 바꿨는지는 모르지만 확실히 헬레이드 팀이 왜 세계 최고의 레이드 팀인지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진정한 지옥에 온 것을 환영한다, 헬 레이드 팀!”
이제 곧 81층으로 진입할 것으로 예상되는 헬 레이드 팀.
난 진심으로 그들을 반겨주었다.
어쩌면 프로이드는 내가 알고 있는 그 말이 아닌 다른 말을 할지도 몰랐다.
“그곳은 이곳에 비하면 천국이었다?”
정말 이렇게 말할지도 몰랐다.
어쨌든 81층부터는 지금까지보다 더 무시무시한 진짜 지옥이 기다리고 있었다.
그리고 그 지옥은 나뿐만 아니라 헬 레이드 팀마저 손님으로 맞이할 준비를 끝낸 것 같았다.
“피카 형, 우리가 얼마나 더 내려갈 수 있을 거 같아요?”
프로이드는 잠깐 휴식을 취하는 동안에 현실에서 자신과 친한 선배이자 게임 안에서는 자신을 보필하는 마법사 유저였던 스피카에게 넌지시 물었다.
“글쎄…… 81층부터는 또 어떤 무시무시한 것들이 기다릴지 모르겠지만 솔직히 난 90층은 못 넘길 것 같다.”
스피카의 냉정한 분석.
아니, 냉정하기보다는 정확한 분석이었다.
“흐음…… 그 대미궁의 비밀이 숨겨 있다는 99층은 무리겠죠?”
“확실히 무리다. 내가 볼 때 그곳은 우리가 욕심내면 안 되는 곳 같다. 너도 잘 알잖아? 도전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쓸데없이 만용을 부리는 건 절대 안 된다는 것을. 현실적으로 생각하자.”
프로이드가 카리스마 있는 군주와 같은 스타일이라면 스피카는 냉철한 군사와 같은 스타일이었다.
실제로 프로이드는 그동안 스피카의 조언을 바탕으로 헬 레이드 팀을 여기까지 끌고 올 수 있었다.
“네, 과욕은 금물이죠. 하지만 99층은 무리라고 해도 최대한 우리가 내려갈 수 있는 곳까지는 내려가 볼 생각이에요.”
프로이드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그건 당연하지! 우리가 누구야? 헬이야! 과욕을 부리지 않으면서 최선을 다하는 것이야말로 우리의 기본 정신이지.”
스피카 역시 흔쾌히 고개를 끄덕이며 응답했다.
“자∼ 힘내보자고요. 늘 그렇듯 이번이 마지막이라는 생각으로!”
프로이드가 늘 입버릇처럼 하는 말이 ‘마지막이라는 생각으로 힘을 내자’였다.
일명 프로이드의 마지막 신공.
헬 레이드 팀원이라면 누구나 아는 그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