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더 로드(The Lord)-72화 (72/250)

072. 지옥을 헤쳐나가는 방법 ― 1

* * *

아마도 그들은 절대 내가 살아 있을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못할 것이다.

나름대로 깔끔하게 처리했기에 의심이 될 만한 것은 전혀 남기지 않았다.

어쨌든 난 그렇게 TOP 길드와의 짧은 인연을 끝냈다.

나중에 기회가 된다면 다시 만날 일도 있겠지만 적어도 탐험가 이미르로 다시 만날 일은 별로 없을 것 같았다.

TOP 길드에게 마지막 선물을 안겨주고 나 역시 비밀 통로를 이용해 빠르게 지옥의 구역이라 불리는 51층으로 내려왔다.

여기서부터는 정말 조심하고 또 조심해야 했다.

난 팀도 아니고 혼자였기에 특히 조심할 필요가 있었다.

하지만 혼자라고 해서 무조건 나쁜 건 아니었다.

이 구역부터는 몬스터의 숫자가 현저히 줄어든다. 물론 대신 출현하는 몬스터 한 마리 한 마리가 매우 강력했지만 적어도 혼자 다니는 나는 여럿이 같이 다니는 팀보단 그 몬스터들을 더 잘 피할 수 있었다.

특히 이 구역을 위해 오래전부터 몇 가지 특수한 스킬을 집중 수련했기 때문에 크게 어려운 점을 없을 것 같았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이 구역의 지리는 거의 완벽하게 기억하고 있었기 때문에 그 어떤 팀보다 빠르게 이 구역을 벗어날 자신이 있었다.

“그나저나 이곳은 정말 반갑군.”

난 주변을 한 번 둘러보며 쓴웃음을 지었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전생에서 난 이곳에서 정말 오랫동안 폐관 수련(?) 비슷한 것을 했다.

몇 명의 유저들과 미친 듯이 돌아다니며 닥치는 대로 몬스터를 잡고 레벨을 올리던 그 시절.

덕분에 난 누구보다 이곳의 지리를 잘 알고 있었다.

51층부터 80층까지, 물론 그 아래 지역도 웬만큼 가봤지만 내가 주로 활동한 건 이 지옥의 구역이었다.

물론 내가 활동할 때는 지옥의 구역이 아닌 수련의 구역이라 불릴 정도로 레벨을 올리기 딱 좋은 곳이었지만 그렇게 되려면 아직 1년(현실 시간)은 더 지나야 할 것이다.

51층으로 내려온 나는 내가 알고 있는 최적의 코스를 이용하기 위해 조심스럽게 움직였다.

스으으으.

난 미리 마스터 경지까지 수련해 놓은 전문 도적 스킬인 스텔스(Stealth)에 은(隱)의 술법 중 하나인 암영(暗影)의 술을 가미하고 또 보조 마법 중 하나인 고스트 아머(Ghost Armor)를 조합해 만든 융합 스킬 무혼(無魂)을 활성화시켰다.

무혼은 말 그대로 내 혼마저 없애 버려 나의 흔적 자체를 지워 버리는 스킬이었다.

그 어떤 은신 스킬보다 뛰어난 성능을 자랑하는 스킬. 내가 만들었지만―사실 몇 명의 상위권 도적들이 공개했던 스킬들을 참고해 꽤 여러 번의 시행착오를 겪으며 만들었다―정말 대단한 스킬이었다.

물론 전투 중에는 사용할 수 없고 전투가 시작되면 은신이 풀리고 활성화 시 이동 속도가 평범한 걸음의 절반밖에 되지 않는다는 단점이 있었지만 전투만 하지 않는다면 어지간해서는 나를 발견할 수 없었다.

51층부터 나타나는 대미궁의 네임드 급 몬스터들이라면 근거리에서는 분명 나를 발견하고 공격할 것이다. 하지만 난 대충 이곳에 나타나는 몬스터들의 종류와 성향, 그리고 특성을 안다.

그렇기에 난 교묘하게 그 몬스터들을 피해서 움직일 생각이었다.

물론 피치 못 할 경우 전투가 일어날 수도 있다.

하지만 그 경우는 피하지 않고 정면으로 싸우면 그만이었다. 시간은 조금 걸리겠지만 그렇다고 못 잡을 몬스터들은 아니었다.

이미 난 데빌사우루스라는 강적을 상대로 1인 레이드를 경험했었다.

상황이 조금 달라 데빌사우루스 때보단 좀 더 어려울 수 있었지만 그래도 충분히 이겨낼 수 있었다.

결정적으로 난 이곳의 가장 무서운 점 중 하나인 구속된 영혼의 저주에서 자유로웠다. 그것은 의외로 굉장히 큰 장점이었다.

어쨌든 그렇게 난 최소한의 전투로 최대한 빠르게 아래층으로 내려갈 생각이었다.

99층!

그 목표를 향해서!!

* * *

“캬∼ 이런 방법이 있을 줄은 몰랐네.”

골디는 감탄 어린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북미 쪽 애들이 기발한 발상을 종종 하곤 하는데…… 이건 정말 대단한 발상이었네.”

스피카 역시 인정한다는 표정으로 얘기했다.

“광기 들린 검은 오우거를 이용해 볼 생각을 한 적은 있지만 이렇게 체계적으로 방법을 만들 생각은 못했다. 어쨌든 이번 층은 레드삭스 팀 덕분에 쉽게 넘겼군.”

프로이드는 사방에 흩어진 몬스터들의 시체를 둘러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대미궁 이벤트가 시작된 지도 벌써 65일(게임 시간)이 지났다.

정말 대부분의 레이드 팀은 일찌감치 포기하고 대미궁 밖으로 쫓겨났다.

하지만 아직 포기를 하지 않은 팀도 꽤 있었다.

헬 레이드 팀도 그중 하나였다.

그들은 포기를 하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생각보다 많은 층을 내려와 있었다.

현재 그들이 있는 곳은 78층. 그들은 현재 79층으로 내려가는 입구를 뚫어놓은 상태였다.

재미있는 건 그들뿐만 아니라 그들과 게임 밖 연합을 약속했던 나머지 20개 팀도 대부분 75층을 넘어 지옥의 구역 마지막 층인 80층에 가까워져 있었다.

신이 알고 있는 미래에서라면 아직도 75층을 넘지 못하고 고전을 해야 할 이들이 거의 80층에 가까이 오게 된 까닭은 미래에는 있지 않은 게임 밖 연합 덕분이었다.

실제로 지금의 경우만 해도 헬 레이드 팀은 79층으로 가는 입구를 발견했지만 그 앞에 존재하던 약 60마리의 정예 고블린 무리를 제거할 방법을 찾지 못해 꽤 고민했었다.

물론 힘으로 뚫으려면 뚫을 수 있었지만 그럴 경우 피해가 너무 커질 것 같아 다른 좋은 공략 방법을 고민한 것이었다.

그러던 와중에 북미의 유명 레이드 팀 중 하나였던 레드삭스―게임 밖 연합을 약속한 팀 중 하나―팀은 자신들이 76층에서 발견한 좋은 노하우를 공개했다.

그것은 바로 여러 층에서 종종 목격되는 검은 오우거를 이용하는 방법이었다.

그 방법은 무척 체계적이고 나름 복잡했는데, 간단하게 결론을 말하면 검은 오우거는 체력이 30% 밑으로 내려가면 광기(狂氣)라는 버프를 스스로에게 걸었다.

물론 이 버프는 상급 마법 중 하나인 디스펠로 지울 수 있었기 때문에 보통의 레이드 팀들은 검은 오우거를 그다지 어렵지 않게 잡을 수 있었다.

만약 이 버프를 지우지 못하면 검은 오우거는 광기 어린 검은 오우거가 되어 공격 속도와 공격력이 50% 상승하고 미친 듯이 날뛰게 되어 있었다.

레드삭스 팀은 이 점을 이용해 이 검은 오우거를 강제로 광기 어린 검은 오우거로 만든 후 상대하기 껄끄러운 무리형 정예 몬스터들과 싸움을 붙였다.

물론 이 과정에서 여러 가지 조건들이 복잡해 아무 때나 사용이 가능한 팁은 아니었지만 마침 헬 레이드 팀에게 행운이 따르는지 79층으로 내려가는 입구 근처에 배회하고 있던 검은 오우거가 한 마리 있어 이 팁을 아주 유용하게 써먹었다.

그렇게 게임 밖에서 연합한 대부분의 팀이 이런 식으로 작거나 큰 팁을 이용해 자신들의 능력 이상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었다.

“이제 두 층만 더 정복하면 소문으로만 들리던 81층을 갈 수 있다. 조금만 더 힘내자.”

프로이드는 이제는 총 67명으로 줄어 있는 팀원들을 독려하며 79층으로 내려가는 입구를 바라보았다.

대미궁에 관한 소문은 무수히 많았다.

대부분 NPC들이 흘리는 소문들이었다. 물론 그중에는 어처구니없는 거짓 정보도 많았지만 꽤 신빙성 있는 고급 정보도 많았다.

당연히 헬 정도 되는 레이드 팀은 그 소문을 모두 분석했고 나름대로의 정보를 이용해 정리까지 했다.

지옥의 구역이 80층이면 끝난다는 소문은 충분히 믿을 만한 정보였다. 그렇기에 프로이드도 더욱 힘을 내 이 지긋지긋한 지옥의 구역을 벗어나려고 노력하는 중이었다.

물론 이 구역이 끝나고 새로운 구역이 시작되면 더 어려우면 어려웠지 쉽진 않을 것이다.

하지만 그건 또 하나의 도전이었고, 프로이드는 그 도전을 늘 즐겼다.

또르르르.

툭.

등줄기로 땀이 흘러내리다 멈춘다.

내 옆구리로 파고드는 검은색 칼날, 그리고 용아병의 머리를 꿰뚫으려는 내 엘레멘탈 블레이드.

이 두 개의 검은 서로 마지막 승부를 결정 내려 하고 있었다.

분명 시간은 정지되지 않았지만 내 눈엔 거의 정지된 것처럼 느껴진다.

한두 시간? 아니, 세 시간에 가까울까?

어쨌든 길었던 승부의 끝은 이 한 방으로 결정될 것 같았다.

최대한 피한다고 피했는데 지금까지 몬스터들과 네 번을 싸웠다.

역시나 힘들었던 네 번의 전투.

하지만 모두 이겼다.

덕분에 난 15일(게임 시간)이 조금 안 되는 시간을 소비해 지옥의 구역이라는 51층에서 80층까지의 던전을 통과할 수 있었다.

이제 마지막 남은 81층으로 가는 입구.

거기서 난 대미궁에 들어와 최고의 위기를 맞았다.

상대는 대미궁 몬스터들 중에서도 가장 상대하기 까다롭다고 소문난 정예 용아병(龍兒兵).

마치 이곳에서만큼은 데스 나이트만큼이나 강력한 위력을 발휘하는 대미궁의 용아병은 나를 상당히 괴롭혔다.

물론 그렇다고 내가 쉽사리 무너질 사람은 아니었다.

세 시간에 가까운 시간 동안 이루어진 치열한 공방전. 난 깔끔하게 방어를 포기하고 내가 가진 모든 검술을 이용해 이 건방진 용아병과 힘 대 힘의 대결을 펼쳤다.

용호상박(龍虎相搏)?

그 말이 어울릴까? 확실히 대미궁의 용아병은 보통의 용아병과는 달랐다.

환상적인 검술.

그리고 무지막지한 체력.

이 두 가지 능력만으로도 용아병은 그 어떤 네임드 몬스터보다 강력한 힘을 발휘했다.

그렇게 이어진 공방은 이제 슬슬 마무리 단계로 접어들었다.

분명 이 한 번의 공수 교환으로 누군가는 쓰러질 것이다. 그것이 생명력이 1,000 정도밖에 남지 않은 내가 될지 아니면 거의 1% 정도의 체력이 남은 용아병이 될 것인지 그건 몰랐다.

하지만 분명한 건 내가 이번 전투를 통해 검술 부분에서 많은 깨달음을 얻었다는 것이다.

사실 난 이 깨달음을 위해서 힘 대 힘의 대결을 계속 유지했다. 더 쉽게 용아병을 상대할 수 있었지만 그렇게 하지 않은 건 이것을 위해서였다.

다른 스킬도 마찬가지였지만 특히 검술과 같은 스킬은 혼자 수련하는 것보다 상대를 놓고 수련하는 게 더 좋았다.

특히나 지금 이 대미궁의 용아병은 검술이 매우 뛰어나다고 소문이 났던 몬스터이다.

그렇기에 애초에 용아병을 만날 경우 이렇게 힘 대 힘으로 싸울 생각을 하고 있었다.

그런데 생각했던 것보다 더 힘든 건 사실이었다.

각설하고, 어쨌든 그 치열했던 공방이 막바지에 다다르며 이제 한 번의 충돌만 남은 상황.

용아병의 검은색 검이 허공을 가르며 내 몸을 양분할 것처럼 쇄도했다.

멈췄던 시간이 다시 흐르는 것처럼 느껴졌다.

순간 난 정신을 집중했다.

‘미안하지만…….’

우득!

“내가 빨랐다!!”

스킬 조합, 양손검술 고급 기술, 참격(斬擊)+상급 검공, 뇌전검(雷電劍).

전광석화(電光石火)!!

펑!

빠직!!

엘레멘탈 블레이드가 마치 섬전처럼 허공을 직선으로 가르며 용아병의 머리를 날려 버렸다.

체력이 1%밖에 남지 않은 용아병이라 이번 한 번의 공격으로 완전히 쓰러뜨릴 수 있었다.

드드득.

힘없이 허물어지는 용아병의 몸체. 그토록 강하게 맞서던 용아병은 한 무더기의 뼛조각이 되어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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