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70. 대미궁 ― 1
* * *
“마지막 마무리! 조금만 더요!”
듀블랙의 외침.
그리고 레이드 팀원들의 강력한 마무리.
꽝! 꽈광!
여기저기에서 날아온 강력한 마법과 스킬들이 거대한 암흑나무 정령의 몸통에 충돌하며 정말 조금밖에 남지 않았던 나무 정령의 마지막 생명력을 깎아 버렸다.
[크어어어어어!]
쿠쿠쿵!
쓰러지는 나무 정령.
드디어 어둠의 산맥 구역의 마지막 네임드 몬스터를 처리하고 21층으로 가는 입구를 발견할 수 있었다. 물론 이 입구는 수많은 입구 중 하나일 뿐이었지만 어쨌든 TOP 길드는 비교적 빠른 속도로 어둠의 산맥 구역을 클리어해 내었다.
‘내가 조금 더 신경을 썼다면 아예 네임드 몬스터가 없는 최상급 입구로 안내했겠지만 굳이 튈 필요는 없으니까. 딱 이 정도가 적당하고 좋아.’
입구라고 해서 다 같은 입구가 아니었다.
어떤 입구는 극악의 난이도를 자랑하는 곳이 있었고, 어떤 입구는 정말 그냥 들어가기만 하면 되는 입구도 있었다.
각양각색.
대미궁이 대단한 점이 이렇게 거대한 던전을 아주 정밀하게 만들어놨다는 것이었다.
“휴우∼ 지겨운 놈!”
“아∼ 우리도 드디어 1구역을 탈출하는 건가?”
“지금 2구역으로 넘어간 팀이 얼마나 되는 거죠?”
“내가 듣기론 한 100팀 정도밖에 안 되는 거 같던데?”
모든 레이드 팀원은 즐거운 표정으로 떠들었다.
이곳까지 오는 데 걸린 시간은 대략 10일(게임 시간).
확실히 이 정도의 속도라면 최상위권은 아니라도 상위권에 들 만한 좋은 성적이었다.
“자∼ 일단 안전 지대를 설치하고 딱 20분만 쉬겠습니다. 그동안 개인 정비를 하시길 바랍니다. 탐색조는 10분만 휴식하고 먼저 입구를 정찰해 주시기 바랍니다.”
듀블랙은 전리품을 정리하면서 휴식 명령을 내렸다. 난 탐색조에 속해 있었기 때문에 10분밖에 쉬지 못했지만 탐색조의 역할은 최초 길을 뚫는 것이었기 때문에 길만 제대로 찾아주면 그다음부터는 후방에서 충분히 쉴 수 있었다.
10분간의 휴식을 끝낸 난 몇 명의 탐색 조원과 함께 조심스럽게 먼저 입구로 진입했다.
던전 레이드라는 게 다 이랬다.
아무리 전투 능력이 뛰어난 이들이라고 해도 절대 함부로 앞으로 나서지 못했다.
늘 랜덤하게 나타나는 각종 함정들과 몬스터들로 던전은 늘 변수가 많은 곳이었기에 전문 탐험가 유저들이 필수였다.
하지만 늘 그렇듯 전혀 화려하지 않은 탐험가 계열의 직업 덕분에 그쪽 계열의 유저들은 그 숫자가 적었다.
그렇기에 상위 레이드 팀들은 늘 경험 많고 능력 있는 탐험가 유저를 환영했다.
현재 거의 모든 능력을 숨기고 탐험가에 관련된 몇 가지 능력만 사용하고 있는 나는 최상위권의 탐험가 유저는 될 수 없을지 몰라도 상위권의 탐험가 유저는 분명했다.
적어도 지금 이 레이드 팀에서 내 능력을 따라올 탐험가 계열 유저는 없었다.
탐색 조원들이라고 해봤자 겨우 다섯 명이었는데, 나를 제외한 네 명의 유저는 골수 탐험가라기보다는 탐험가 계열 스킬 반, 전투 스킬 반을 익힌 어중간한 탐험가 유저들이었다.
사실 탐험가 계열 유저 중 80% 이상이 이들과 거의 비슷한 성향을 보였다.
아무래도 게임을 즐기려면―물론 각자의 가치관에 따라 즐기는 방법은 달랐지만 다수의 사람들이 자신이 강해지는 걸 좋아했다―어느 정도의 전투 스킬은 필수라고 생각하는 이들이 많았기 때문에 완벽한 탐험가는 정말 보기 드물었다.
물론 지금의 나는 예외였다.
나는 내가 원한다면 정말 완벽한 탐험가 유저가 될 수 있었다. 이번 대미궁 탐험을 위해 이미르라는 가상의 인물로 변신하며 탐험가 계열 스킬들을 집중 수련했기에 날이 갈수록 나는 전문 탐험가처럼 변해갔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절대 그 능력을 다 보여주진 않았다. 간혹 쓸모 있는 팀원이라는 모습을 보여주긴 했지만 그건 뒤처지지 않기 위한 조치일 뿐이었다.
중간, 딱 중간만 가면 됐다.
굳이 앞에 나설 필요도 없었고 뒤로 처질 필요도 없었다.
탐색조에서의 나의 비중은 딱 그 정도였다.
“아! 이건 정말 너무하는데…….”
탐색조의 조장이자 레벨이 340으로 가장 높았던 라이지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중얼거렸다.
사실 그가 고개를 흔들 만했다.
21층부터는 망각의 던전 구간. 본격적인 탐험가 유저들의 활약이 시작되는 곳이었다.
그나마 TOP 길드 레이드 팀은 사정이 나은 편이었다. 탐험가 유저가 나를 포함해 다섯 명이나 있었고, 그중 한 명은 레벨이 340이나 되는 고레벨 유저였기에 꽤 뛰어난 탐색조를 가진 레이드 팀이라고 할 수 있었다.
“이미르 님이 보기엔 어때요?”
라이지는 어렴풋이 나의 능력이 레벨을 뛰어넘는다는 것을 알고 있는 것 같았다. 그래서인가? 최근 들어 내 의견을 묻는 경우가 많아졌다.
“흠…… 이거 꽤 시간이 걸리겠네요.”
그가 눈치를 챘다고 해서 능력을 다 보여줄 생각은 없었다. 그저 평소처럼 반응하면 끝이었다.
“젠장…… 하이퍼 넷에 떠돌던 소문이 진짜였네.”
라이지는 투덜거리며 심각한 표정을 지었다. 현재 하이퍼 넷에는 대미궁에 관한 얘기가 실시간으로 올라오는 중이었다.
특히 가장 많은 사람이 관심을 가지는 몇 개의 상위 팀들이 간간이 올려주는 대미궁에 관한 정보는 수없이 많은 하위 레이드 팀들에겐 가뭄의 단비와 같은 존재였다.
“일단 대기하고 기다리세요. 워낙 복잡한 함정들이 얽혀 있어서 시간을 들여서 천천히 뚫는 수밖에 방법이 없겠네요.”
라이지는 일단 이 상황을 듀블랙에게 보고를 하려는지 자리에서 일어났다.
난 그의 말대로 탐색을 멈추고 제자리에 앉아 휴식을 취했다.
아무렇지도 않아 보이는 평범한 통로. 하지만 나에겐 확실히 보였다.
통로 곳곳에 설치되어 있는 치명적인 함정들이…….
오랜만에 다시 찾아온 대미궁은 나에게 확실히 그 존재를 보여주었다.
‘반갑다고 해야 하나?’
요상한 기분.
하지만 적어도 라이지처럼 짜증이 나지는 않았다. 왜냐하면 내 목표는 이런 망각의 던전 구간이 아니기 때문이었다.
* * *
찰칵.
찰칵.
어두운 사무실에 몇 개의 홀로그램 모니터가 계속해서 다른 화면을 보여주고 있었다.
“그만.”
사무실 가장 안쪽에 앉아 있던 한 남자가 조용히 입을 열었다.
그의 말과 함께 멈추는 홀로그램 모니터.
“……그러니까 결론은 통제권을 완전히 뺏어오는 건 무리지만 앞으로의 변경 사항이나 간단한 게임 운영자 권한은 확보했다는 건가?”
“예. 흡족하시지는 않겠지만 지금 보여드린 화면들은 저희가 확보한 권한으로 직접 뽑아낸 것들입니다. 앞으로 새로운 종족 출현이나 최근에 일어난 대형 이벤트인 대미궁 출현 같은 것들은 이제 저희가 충분히 예상할 수 있게 되었습…….”
꽝!
“지금 그걸 자랑스럽게 생각하는 건가? 세계에서 내놓으라는 모든 인재를 모아서 천문학적인 액수의 돈까지 써가며 얻어낸 결과가 겨우 이건가? 그깟 프로그램 하나 정복하는 게 그렇게 어려운 건가?”
“그, 그것이 ‘일루젼’은 그냥 단순한 프로그램이 아니라 원인을 알 수 없는 변형을 일으킨 초진화형 인공…….”
“그만! 그놈의 설명은 너무 많이 들어서 지겨울 정도야.”
남자는 유명인이었다.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일개 게임 회사의 사장이었던 그였지만 지금의 그는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기업인이 되었다.
단 하나의 게임으로.
‘ONE’, 그가 계획하고 만들었던 게임.
그것 하나로 그는 엄청난 부와 명예를 얻었다. 하지만 그런 그의 화려함 뒤에는 통제권을 빼앗긴 ‘ONE’이라는 큰 비밀이 숨어있었다.
DH 소프트, 아니, 이제 DH 그룹이라 불리는 곳의 총회장 김연욱.
40대의 비교적 젊은 나이에 정점에 올라선 그는 자신을 그곳으로 올려준 ‘ONE’을 누구보다 신경 쓸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이미 확보한 권리와 정보만으로도 충분합니다. 이미 많은 사전 작업을 해놨기에 절대 ‘ONE’의 서비스가 중지되는 일은 없을 것입니다.”
김연욱의 개인 비서이자 그의 오른팔이라 할 수 있었던 한병일 총괄 기획실장은 자신 있는 표정으로 얘기했다.
하지만 정작 김연욱은 별로 마음에 들지 않는 표정이었다.
“아직 부족해. 불확실함을 완전히 없애야 해. 그래야 완벽한 ‘ONE’의 세상을 만들 수 있어.”
그는 ‘ONE’을 통해 세상이 하나가 될 수 있다고 믿었다. 그렇게 되면 ‘ONE’은 더욱 완벽해지고 진짜 또 하나의 세계가 만들어질 수 있을 것이라 확신했다.
지금의 현실과 전혀 다른 또 하나의 현실.
물론 가상이겠지만 그 현실은 어쩌면 괴롭고 답답한 현실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을 만큼 위대한 가상현실이 될 수 있을 것이라 믿었다.
“……그렇게 난 또 하나의 세상을 만든 신이 되는 것이고.”
작게 중얼거리며 다시 화면을 넘기는 김연욱.
그는 확실히 정상적인 사람 같아 보이지는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