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68. TOP 길드 ― 1
* * *
“레벨이 240이라……. 레벨이 좀 낮은데. 그런데 완전 골수 탐험가 유저잖아? 간혹 이런 유저가 있다고 하더니 진짜였군.”
TOP 길드의 운영진 중 한 명이었던 인생한방은 고개를 가로저으며 중얼거렸다.
“겨우 모험가 계열 스킬 몇 개랑 함정 찾기, 함정 해체 기술들, 진짜 전형적인 탐험가 지망생이군. 쯧쯧, 이렇게 게임하면 재미있나? 솔직히 팀 입장에서는 환영할 만한 유저지만 개인적으론 별로군.”
인생한방은 가볍게 혀를 차며 투덜거렸다.
현재 그는 TOP 길드의 신규 멤버들에 대한 기록을 살펴보는 중이었다.
TOP 길드는 서대륙에서 이름 있는 길드 중 하나였다.
비록 아직 굉장한 타이틀을 보유한 길드는 아니었지만 그래도 꾸준히 그 영향력을 넓혀 현재는 나름대로 유명세를 유지하고 있는 길드였다.
길드원만 총 300명이 넘는 대형 길드.
물론 그 길드원 중 200명 이상은 아직 초보라고 할 수 있는 유저들이었지만 나중엔 결국 다 그들이 길드의 진정한 힘이 되는 법이었다.
TOP 길드는 원래 신입 길드원을 다양한 형태로 받았는데 이번에는 길드에 부족한 계열의 유저들을 대규모로 받아들였다.
지금 인생한방이 보고 있는 서류의 주인공도 그런 유저 중 한 명이었다.
길드에 거의 전무한 탐험가 유저. 워낙 희귀한 직업 계열이었기에 전투형 탐험가 지망생이라 할지라도 찾아보기 힘든 게 사실이었다.
덕분에 인생한방은 개인적으로는 별로 마음에 들지 않았지만 길드에 그것도 전문 길드 레이드 팀원으로 그 유저를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
“탐험가 계열로 키우길 정말 잘했다고 생각해라.”
인생한방은 들고 있던 서류를 합격 쪽으로 분류하며 중얼거렸다.
이름:이미르
직업:탐험가
레벨:240
보유 스킬:지도 해석, 함정 찾기(2등급), 함정 해체(3등급)…….
……
……
한 장의 서류.
그리고 한 사람의 길드 가입.
이것은 대미궁 이벤트가 열리기 보름(게임 시간) 전에 일어난, 아무도 신경 쓰지 않는 작은 일이었을 뿐이다.
* * *
[네, 그러니까 형은 그냥 이미르란 이름을 사용하는 탐험가 유저인 척하면 돼요. 어차피 다른 것들은 제가 완벽하게 꾸며놨으니 걸릴 걱정은 하지 않으셔도 되고요.]
난 클레타의 귓속말을 들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뭐, 네 실력이라면 확실히 처리했겠지.]
난 요즘 들어 확실히 그림자 남매의 실력을 인정했다.
마가레타와 클레타.
이 두 남매는 대단히 수완이 좋았다.
뭔가 일을 맡겨도 충분히 믿을 수 있는 두 사람이었기에 천 골드라는 거금을 대가로 지불한 것이었다.
[당연히 확실하죠! 그 이미르란 플레이어는 얼마 전까지도 실제로 존재했던 플레이어라고요∼ 물론 대략 한 달 전에 탐험가가 지겹다며 캐릭터를 삭제하고 다른 이름으로 다시 게임을 시작했지만 분명 이미르는 존재했던 플레이어였기에 형은 내가 전해준 자료만 잘 외우고 있으면 끝입니다.]
어디서 이런 정보들을 구했는지 대충 상상은 갔지만 그래도 확실히 전문 도적 유저답게 굉장히 섬세한 부분의 정보까지 모두 모아주었다.
클레타, 확실히 월암의 클레타다운 실력이었다.
[그래, 알았다. 그럼 내가 부탁한 다음 일도 확실히 처리해 주고 다음에 또 연락해라.]
[넵!! 헤헷∼ 형, 그럼 수고하세요.]
별로 좋지 않은 인연으로 만났지만 천성이 무척 밝은 클레타와 마가레타는 싫어하려 해도 싫어할 수가 없었다.
솔직히 아직은 빚을 탕감하며 내 일을 도와주게 하고 있었지만 빚을 다 갚더라도 난 그림자 남매와 좋은 관계를 계속 유지하고 싶었다.
“TOP 길드라……. 확실히 이들은 대미궁 이벤트에 참여했었지?”
난 기억을 더듬어 TOP 길드에 대해 생각해보았다.
TOP 길드는 엄청 유명한 길드는 아니었지만 적어도 TOP 길드의 길드 마스터는 내 기억 속에 어렴풋이 남아 있었다.
돌진의 강철방패라는 별칭으로 불렸던 듀블랙.
그가 바로 TOP 길드의 길드 마스터였다.
그 역시 TOP 길드와 마찬가지로 엄청 유명한 유저는 아니었지만 그래도 나름 인지도가 있는 유저였다.
희미하지만 내 기억 속에 남아 있는 사실을 토대로 듀블랙과 그의 TOP 길드를 떠올리면 분명 대미궁에 도전을 했던 길드이다.
그리고 나름대로 성과를 올리기도 한 길드 같았다.
비록 아주 상위권은 아니었지만 분명 어느 정도 성과를 거두었고, 듀블랙은 그 사실을 하이퍼 넷에 당당하게 자랑했었던 거 같았다.
당시 나는 뒤늦게 게임을 시작해 아직 초보 유저였기에 대미궁 이벤트에 참여했던 수많은 이가 부러워 그들이 매일같이 올리는 소식을 읽고 또 읽었었다.
그렇기에 희미하게나마 TOP길드와 듀블랙에 대해 알고 있을 수 있었다.
“앞으로 보름, 그때까지는 철저히 탐험가 이미르가 되어야겠군.”
어쩔 수 없었다.
보름(게임 시간) 정도는 확실히 투자를 해줘야 별 의심을 받지 않고 대미궁 이벤트에 낄 수 있을 것이다.
“뭐, 그동안 좀 등한시했던 스킬 수련을 하면서 진짜 탐험가 뭔지 보여주면 되겠지.”
이왕 이렇게 된 거 전투 계열에 비해 약간 찬밥 대접을 받았던 여러 기술을 수련할 생각이었다.
대미궁 이벤트가 발생하는 지역은 TOP 길드의 연고지에서 얼마 멀지 않은 곳이라는 점도 매우 마음에 들었다.
정확한 시간을 예측할 수는 없었지만 아마도 TOP 길드는 꽤 빨리 대미궁 이벤트에 합류할 것이다.
“기대되는군.”
물론 유저들은 앞으로 보름 정도 후에 대미궁 이벤트가 발생할 것이라는 건 전혀 모른다.
그리고 그들은 그곳이 어떤 곳인지도 역시 전혀 모른다.
물론 몇 달이 더 지난 후에는 유저들도 그곳이 어떤 곳이었는지 정확하게 알게 될 것이다.
대충 미리 몇 개월이 지난 후 유저들이 할 말을 해준다면.
“그곳은 지옥[Hell]이다.”
이 말은 유명 레이드 팀의 팀장이었던 프로이드가 직접 한 말이다. 그의 말은 곧 하이퍼 넷에 유행처럼 퍼졌고, 대미궁 이벤트를 조금이라도 경험한 이들은 프로이드의 말에 100% 동감한다고 말했다.
대미궁은 그만큼 극악의 난이도를 지닌 던전이었다.
중간 보급 따위는 존재하지 않았고, 오로지 처음 들어갔던 상태 그대로 석 달을 견뎌야 했던 던전.
중간에 포기하거나 죽을 경우 그동안 던전에서 얻었던 경험치의 80%를 잃게 되는 엄청난 패널티를 가지고 있던 던전.
그렇기에 400만이라는 유저가 들어갔지만 무려 300만에 가까운 유저들이 극 초반에 공략을 포기했던 던전.
한 번 들어가면 무조건 석 달(게임 시간) 동안은 다시 나갈 수 없는 제약이 있던 대미궁은 훗날 이벤트가 끝나고 나서는 미친 듯이 레벨을 올릴 때 딱 좋은 곳으로 명성을 날렸지만 그건 정말 시간이 많이 지나 유저들의 수준이 훨씬 올라갔을 때의 얘기였다.
“하지만 알지 못했기에 지옥이었던 것이지, 준비한 사람에게 결코 지옥이 될 수 없는 법.”
난 오래전부터 대미궁 이벤트를 준비해 왔다.
그렇기에 나에게 대미궁은 결코 지옥이 될 수 없었다.
* * *
찰칵!
“끝났습니다.”
난 전방에 설치되어 있던 모든 함정을 제거한 후 뒤를 돌아보았다.
TOP 길드는 현재 ‘마법사의 저택’이라는 한 던전을 공략 중이었다.
이곳은 내 기억에는 없는 던전이었다.
아마도 그다지 유명하지 않은 그저 그런 던전인 것 같았다.
하지만 일단 TOP 길드의 던전 헌터 중 한 명이 제일 먼저 발견한 던전이었기에 듀블랙은 길드 단위의 레이드 팀을 이끌고 빠르게 이곳을 클리어할 생각이었다.
덕분에 난 열심히 전방 정찰조에 속해 활동할 수밖에 없었다.
“전진하겠습니다.”
듀블랙은 특유의 등에 메고 있던 거대한 강철 방패를 다시 꺼내 들며 앞으로 천천히 걸어 나갔다.
‘마법사의 저택’은 그저 그런 던전답게 별로 어려운 구간이 없었기 때문에 나름 상위 그룹의 길드였던 TOP 길드의 레이드 팀에겐 잠깐의 유흥거리 정도밖에 되지 않았다.
TOP 길드의 레이드 팀원들은 대부분 300레벨 근처의 상위권 유저였다. 특히 길드 마스터 듀블랙은 388의 레벨로 공식 랭킹 사이트에서 1,000위권 안에 들어가는 최상급 플레이어였다.
‘지루하군.’
벌써 TOP 길드에서 레이드 팀원으로 활동한 지 19일(게임 시간) 정도가 흘렀다.
아직 확실히는 아니지만 그래도 어느 정도 탐험가로서의 능력을 인정받아 어딜 가도 같이 가는 정도의 위치는 확보했다.
하지만 내 기억대로라면 이미 열렸어야 할 대미궁이 아직도 열리지 않았다.
아무리 기억에 약간의 오차가 있다고 해도 지금쯤은 분명 열려야 하거늘, 왠지 나는 미래가 바뀌었을지 모른다는 불안한 생각을 할 수밖에 없었다.
‘정말 미래가 바뀌었다면…… 그에 대한 대비를 좀 더 확실하게 해야겠군.’
미래가 바뀌는 것에 대해서는 이미 많은 생각을 해둔 상태였다. 하지만 벌써 이렇게 바뀐 미래가 적용된다면 내가 생각해 둔 것들을 전면 수정할 필요가 있을 것 같았다.
“잠깐 정지!”
갑자기 앞으로 잘 나아가던 듀블랙이 특별한 함정이나 몬스터가 있는 것도 아닌데 걸음을 멈췄다.
“흐음…… 갑자기 긴급 회의를 해야 할 것 같네요. 모두 일단 안전 지대를 설정하고 휴식을 취하세요. 그리고 길드 운영진분들은 잠깐 저랑 얘기 좀 하겠습니다.”
듀블랙은 몇 명의 운영진과 함께 조용한 한쪽 구석으로 이동했다.
‘……혹시!’
왠지 좋은 예감이 들었다.
듀블랙과 운영진은 약 10분간 심각하게 얘기를 주고받았다.
뭔가 일이 생긴 건 분명했는데, 그것이 과연 내가 생각하고 있는 것인지 그게 중요했다.
대충 10분이 지나고 듀블랙은 고개를 끄덕이며 운영진과 함께 다시 팀원들이 있는 곳으로 다가왔다.
“흠흠, 던전 공략 중에 갑자기 긴급 회의를 하게 되어 죄송합니다. 워낙 중요한 일이라 그렇게 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듀블랙은 안전 지대에서 휴식을 취하고 있던 팀원들을 향해 천천히 입을 열었다.
“일단…… 자세한 건 각 클래스 담당 운영진이 또 얘기하겠지만 간단하게 얘기를 하자면, 지금 ‘One’이 열리고 최대 규모의 이벤트가 시작되었다는 정보를 받았습니다. 현재 상위권에 있는 모든 유저는 이 이벤트에 참여하기 위해 어둠의 산맥으로 모여들고 있다고 합니다. 모두 아시다시피 어둠의 산맥은 저희 길드의 본거지인 ‘이즈루’에서 가까운 곳에 있는 곳입니다. 이건 아무래도 우리 길드에게 찾아온 큰 기회 같습니다. 어둠의 산맥이라면 평소에도 많은 길드원 분들이 즐겨 찾던 곳인 만큼 그 어떤 길드보다 더 빨리 이벤트에 참여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듀블랙은 살짝 들뜬 표정으로 얘기했다. 어쩌면 TOP 길드가 그 명성에 비해 좀 더 오래 대미궁에서 버틸 수 있었던 건 그들이 어둠의 산맥이 가지는 특성을 잘 알았기 때문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대미궁의 1층에서 20층까지는 어둠의 산맥의 특징을 그대로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그 생각은 무척 신빙성이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