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더 로드(The Lord)-67화 (67/250)

067. 라르엘 ― 2

* * *

그리고 다시 정적이 찾아왔다.

“흠?”

변한 건 없었다. 조각상도 그대로이고 거대한 소환수의 알도 그대로였다.

“뭐지? 어떻게…….”

변한 게 없어서 고개를 갸웃거리며 중얼거리던 그 순간 갑자기 변화가 일어났다.

빠직!

빠지직!

거대한 소환수의 알에 균열이 생기며 뭔가가 그 안에서 튀어나오려는 것 같았다.

‘나오는 건가? 그래도 명색이 최상급 화염 정령이었는데…… 뭐가 나오려나?’

난 살짝 기대를 가지고 깨져나가는 거대한 소환수의 알을 바라보았다.

화륵!

약간의 시간이 흐르고 알이 완전히 깨지며 뭔가가 날아올랐다.

피어오르는 화염!

역시 최상급 화염 정령다운…… 이라고 말하고 싶었지만 현실은 절대 그게 아니었다.

파닥파닥!

화르르륵!

마치 촛불과도 같은 화염을 내뿜는 한 마리의 새. 온통 붉은색 깃털로 무장한 작은 새 한 마리가 튀어나와 힘겹게 날갯짓을 하고 있었다.

“…….”

난 한동안 멍하니 그 작은 새를 바라보았다.

비둘기? 딱 그 정도 크기밖에 되지 않는 작은 붉은색 깃털의 새.

입에서 화염을 내뿜는 건 신기했지만 그래 봤자 촛불보다 살짝 큰 정도의 작은 화염일 뿐이었다.

날갯짓은 또 얼마나 서툰지 알에서 깨어나 내 어깨 위에 올라오기까지의 과정이 꽤 힘들어 보였다.

[휴우∼ 힘들다.]

그래도 꼴에 소환수에다 인공지능까지 지니고 있다고 나와 영혼의 대화를 나눌 수는 있는 것 같았다.

“라르엘이…… 너냐?”

[맞습니다. 제가 당신의 종 라르엘입니다!]

자신있게 대답하는 라르엘.

“……그래도 명색이 최상급 화염 정령이었는데…… 겨우 불 뿜는 작은 묘기를 지닌 새로 다시 태어난 거야?”

[흠흠, 실망이 크신 거 같은데…… 이미 거의 대부분의 힘을 다 소비한 상태에서 영혼을 옮기는 것만으로도 저에겐 큰 무리였습니다. 뭐, 앞으로 차차 힘을 다시 모아서…….]

“휴우∼ 기대를 한 내가 잘못이지.”

라르엘은 뭔가 억울하다는 말투로 계속 대답했지만 난 애써 그 말들을 귀담아듣지는 않았다.

“알았어. 그러니까 이제부터 넌 내 기운을 받고 조금씩 성장한다는 거 아니야?”

[네, 맞습니다.]

‘결국 경험치를 억지로라도 나누어 주어야 하는 건가?’

내가 왜 전문 소환술사의 기술을 익히지 않았는가? 전문 소환술사나 정령술사의 기술을 익힐 경우 소환수나 정령들에게 경험치를 나누어 주어야 했다.

일명 소환수 시스템인데, 소환술사나 정령술사들은 경험치를 소환수나 정령들에게 나누어 줘 그것들을 성장시킨다. 결국 소환술사와 소환수가 같이 커간다는 것이었다.

랭커 중에 소환 계열 직업을 가진 이들이 별로 없는 건 이 시스템 때문이었다.

소환 계열 직업은 레벨을 올리기가 정말 힘들다.

물론 레벨만 올린다면 동급의 어떤 유저보다 강력해질 수 있었지만 그건 일단 레벨을 올리고 얘기해야 하는 것이었다.

그래서 나는 철저히 전문 소환 계열 기술 습득을 배제하고 있었다.

아주 나중에 필요해지면 소환수를 가질 수도 있겠지만 절대 지금은 그럴 생각이 없었다.

그런데 생각지도 않은 곳에서 전혀 원하지 않았던 소환수를 얻었다.

난 처음에 최상급 화염 정령이 영혼의 종속을 원한다고 했을 때는 그래도 최상급 화염 정령이기에 굉장히 든든하고 뛰어난 소환수를 얻을 것이라고 예상했다.

그렇기에 전문 소환 계열 기술의 안 좋은 점도 감수하려고 했다.

하지만 현실은 쓸데없는 묘기만 부릴 줄 아는 작은 새.

예상이 빗나가도 너무 크게 빗나간 순간이었다.

이름:라르엘

레벨:1

종류:특수 소환수

속성:화(火).

능력:알 수 없음

특이사항:정령도 소환수도 아닌 특수한 존재. 지금까지 존재하지 않았던 특수한 존재이기에 그 능력은 모든 것이 비밀. 모든 것은 성장을 시켜가며 직접 알아갈 수밖에 없다.

충성도:무한(영혼의 종속. 절대 배신하지 않는다).

“후우∼ 충성도 하나는 마음에 드네.”

난 라르엘의 상태창을 확인하며 한숨을 내쉬었다. 그나마 뭔가 비밀이 있을 것 같은 특수 소환수라는 말을 위안으로 삼았지만 그래도 레벨 1의 소환수를 계속 성장시켜야 한다는 사실은 좀 답답했다.

가뜩이나 내 직업 특성상 수많은 스킬의 숙련도를 레벨과 맞춰가며 올려야 했기에 레벨 업 속도가 남보다 느리면 느렸지 빠르지는 못했다(물론 여러 가지 획기적인 방법으로 무지막지하게 빠르게 올리기도 했지만 기본적인 레벨 업 속도는 느렸다).

그런데 거기에 상당한 양의 경험치까지 나누어 주며―영혼의 종속 계약으로 나누어 주는 경험치의 양이 30%로 고정되었다. 보통 다른 소환술사들은 최대 30%에서 최소 10%까지 자신이 설정할 수 있었다―레벨을 올리게 되었으니 좀 답답한 것은 어쩔 수 없었다.

하지만 어쩌겠는가?

이미 물은 엎질러졌고 그 물을 주워 담을 수는 없었다. 그렇기에 최대한 그 엎지른 물을 이용해 좋은 방향으로 일을 해결해야 했다.

“이왕 이렇게 된 거, 라르엘, 잘해보자.”

[네, 열심히 하겠습니다!!]

최상급 정령일 때와는 전혀 다른 느낌이 나는 라르엘. 덕분에 난 재미있는 부하를 얻은 기분을 느낄 수 있었다.

* * *

“오오! 당신은 정말 우리의 영웅입니다.”

촌장의 말투부터 달라졌다.

이걸로 드디어 난 200개의 연계 퀘스트의 마침표를 찍을 수 있었다.

띠링, 레벨이 4 올랐습니다.

띠링, 개척민들의 당신을 영웅으로 떠받듭니다. 개척민들과의 우호도가 아주 많이 올랐습니다.

띠링, ‘개척민들의 용사’ 호칭을 받았습니다.

띠링, 촌장이 당신에게 오래전부터 내려온 마을의 보물을 건네줍니다.

띠링, 당신은 북부 용암 지대의 모든 존재에게 감사받는 존재가 되었습니다. 그 결과 이제부터 당신은 북부 용암 지대에서 사냥할 경우 +5% 보너스 경험치를 받게 됩니다.

보상이 참 훈훈했다.

“감사합니다, 용사님!”

촌장은 나에게 한 개의 작은 주머니를 주며 연신 고개를 숙였다.

확실히 200개의 연계 퀘스트를 한 보람이 한 번에 느껴지는 순간이었다.

어쨌든 이번 퀘스트로 나는 여러 가지를 얻었다.

물론 그 과정에서 얻고 싶지 않았던 것도 얻긴 했지만 어쩌겠는가?

그게 내 운명이라면 순순히 받아들이는 수밖에.

[오오! 주인님, 이 알찬 기운은 뭔가요? 아아! 정말 행복하네요.]

‘뭐긴 뭐냐, 내 피 같은 경험치지.’

난 속으로 살짝 투덜거렸지만 굳이 그걸 표현하지는 않았다. 어차피 줘야 할 수밖에 없는 경험치, 그냥 기분 좋게 줄 생각이었다.

“그래, 잘 받아먹고 쑥쑥 커라. 잘 키운 소환수 하나가 열 마스터 스킬 부럽지 않다는 소환술사들의 명언처럼 나도 나중에 네 도움 좀 받아보자.”

[걱정마세요! 이래 봬도 왕년에 정령왕 후보까지 거론되었던 저입니다. 하하하하! 믿어보시라니까요.]

라르엘의 호언장담.

왠지 믿기는 힘들었지만 어쨌든 그냥 그러려니 하고 고개를 끄덕였다.

“그나저나 여기엔 뭐가 들어있는 거지? 분명 보상의 등급이 올라간다고 했는데…… 어떤 좋은 물건이 들어있으려나?”

개척민들의 낡은 주머니

:무척 낡은 가죽 주머니. 하지만 주머니 안에서는 무척이나 신비로운 기운이 느껴진다.

난 일단 마을에서 가장 조용한 곳을 찾아간 후 조심스럽게 주머니를 개봉해 보았다.

무엇이 들어있는지, 이렇게 힘든 200개의 연계 퀘스트를, 그것도 숨겨져 있던 스페셜 퀘스트까지 클리어한 후 받은 보상이었기에 평범한 것은 아닐 것이라고 믿었다.

번쩍!

단순히 주머니 하나를 여는 건데 강한 빛이 새어 나왔다.

확실히 이번엔 라르엘과 다르게 그럴듯한 보상품이 나올 것 같았다.

띠링, 고대의 석판을 얻었습니다.

띠링, 추가 보상으로 특급 화염의 정수를 얻었습니다.

주머니 속에는 한 개의 작은 석판과 한 개의 붉은 구슬이 들어있었다.

고대의 석판은 일단 뭔지 모르는 것이니까 제외하더라도 특급 화염의 정수라면 최상급 화염의 정수를 열 개 모아야, 또는 상급 화염의 정수 천 개를 모아야 만들 수 있는 대단한 물건이었다.

지금 당장은 필요한 물건이 아니었기 때문에 시세라는 걸 측정할 수 없겠지만 나중에 생산 계열 유저들이 더 뛰어난 능력을 얻으면 필요하게 될 물건이었다.

그때가 된다면 대략 골드로 일만 골드 정도는 충분히 받을 수 있는 물건이었다.

“역시 날 실망시키지 않는…….”

난 고개를 끄덕이며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었다. 그런데 문득 이상한 느낌이 들었다.

뭔가 굉장히 탐욕스러운 기운?

그런 게 느껴졌다.

뚝. 뚝.

뭔가가 떨어지는 소리. 그건 침이었다.

[쓰읍…….]

내 어깨 위에 앉아 있던 라르엘은 미친 듯이 침을 흘리며 특급 화염의 정수를 바라보고 있었다.

“…….”

나는 그런 라르엘을 조용히 쳐다보았다.

“너…… 설마 이걸 먹고 싶은 건 아니지?”

[……먹고 싶은데요.]

“……이건 물건을 만들 때나 쓰이는 재료인데?”

[……원래 제 먹이가 이런 기운의 정수인데요.]

“……그럼 앞으로도 계속 이런 걸 먹어야 한다는 거야?”

[……자주는 안 먹어요. 특히 지금 이걸 먹으면 아마 당분간은 아주 오랫동안 아무것도 못 먹을 겁니다.]

“이게 얼마짜리인 줄은 알아?”

[……모르죠.]

“혹시 이걸 먹으면 좀 강해지냐?”

[……소화를 충분히 시켜서 정수의 기운을 모두 제 것으로 만들면 약간은 강해지죠.]

“약간? 많이는 아니고?”

[네. 제 성장의 주는 결국 주인님이 나누어 주는 기운이고, 이런 정수들은 그냥 먹이 정도밖에 되지 않죠.]

“흠, 내가 나중에 하급 화염의 정수 몇 개 사 주면 안 돼?”

[……상관은 없습니다만…… 쓰읍…… 정말 상관은 없습…… 쓰읍.]

이제는 폭포수처럼 쏟아지는 침.

난 차마 그 모습을 계속 보고 있을 수가 없었다.

“……후우, 먹어라.”

난 정말 어쩔 수 없이 특급 화염의 정수를 라르엘에게 넘겨주었다.

[허억!! 감사합니다, 주인님!!]

파닥파닥!

미친 듯이 날개를 퍼덕이며 좋아하는 라르엘. 정말 이걸 주지 않았다면 엄청나게 실망했을 것 같았다.

‘하아, 결국 내가 얻은 건 이 천덕꾸러기랑 정체를 알 수 없는 석판뿐인가?’

200개의 연계 퀘스트를 깨고 얻은 것치고는 참 소박한 보상 같아 보였다.

‘이 석판은 도대체 뭐지?’

일단 특급 화염의 정수도 라르엘의 뱃속으로 들어가 버렸으니 이제 남은 건 석판뿐이었다.

그래도 명색이 메인 보상 물품이었으니 평범하지는 않을 것 같았다.

고대의 석판

:알 수 없는 문자들이 빽빽하게 적혀 있다. 이 문자를 해석하기 위해서는 전문 지식이 필요할 것 같다.

특이사항:석판에서 따뜻한 온기가 올라와 석판을 가지고 있는 이에게 신비로운 기운을 불어넣어 준다(석판을 가지고 있는 것만으로도 마력 +4% 올라간다.)

“흐음 고대의 석판이라…….”

일단 마력이 4% 상승하는 것만으로 소유하고 있을 가치가 충분해 보였지만 왠지 이 석판은 뭔가 굉장한 비밀을 가지고 있을 것 같았다.

하이 마스터의 경지에 오른 관찰 스킬에도 특별한 점이 발견되지는 않았지만 분명 아직 내가 알지 못하는 비밀이 있을 것 같았다.

물론 이건 순전히 감일 뿐이었지만 보통 이런 감은 잘 맞곤 했다.

“이건 천천히 비밀을 풀어봐야겠군.”

급하게 생각할 필요는 없었다. 어차피 할 일은 많았고 그 일들을 하며 이 석판도 천천히 비밀을 풀어보면 되었다.

“그나저나…… 이제 슬슬 이곳을 떠나야겠군.”

나를 이곳에 붙잡아두었던 200개의 연계 퀘스트가 끝난 이상 이곳에 더 이상 있을 필요는 없었다.

물론 이곳에서 사냥하면 +5%의 경험치 보너스를 받을 수 있었지만 지금 급한 건 레벨 업이 아니었다.

이제 한 달(게임 시간) 정도 후에 대미궁 이벤트가 일어난다. 난 그 이벤트에 참여할 생각이었다.

단순히 즐기기 위한 것이 아닌 ‘그것’을 얻기 위해 난 꼭 그 이벤트에 참여해야 했다.

“일단 묻어갈 수 있을 만한 팀을 찾는 게 먼저겠지?”

그냥 나 혼자만의 능력만 믿고 이벤트에 참여해서는 내가 ‘그것’을 얻을 확률이 매우 떨어졌다.

이용할 수 있는 건 철저히 이용할 필요가 있었다.

당연히 난 성공 확률을 높이기 위해 일단 처음에는 다른 팀에 끼어서 묻어갈 생각이었다.

묻어갈 만한 팀을 찾는 건 이미 맡겨둔 곳이 있었다.

나의 귀여운(?) 동생들, 클레타와 마가레타가 무려 천 골드의 빚을 한 번에 탕감하기 위해 열심히 내가 묻어갈 만한 팀을 찾아놨을 것이다.

난 그저 그 둘이 찾아놓은 방법으로 조용히 그 팀에 합류하면 끝이었다.

“자∼ 가보자!”

두 달간의 사냥. 레벨도 올릴 만큼 올렸고, 비록 마음에 들지는 않지만 보상도 받을 만큼 받았다.

이제 남은 건 이곳을 떠나는 것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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