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더 로드(The Lord)-66화 (66/250)

066. 라르엘 ― 1

* * *

[팀 에볼루션 그림자 동굴 공략 성공.]

[GT길드 악마의 황무지 공략 성공.]

[헬레이드 팀 킹 샤벨타이거 킬.]

…….

…….

여기저기에서 들려오는 소식들.

바야흐로 ‘One’의 황금 시대가 왔다. 수많은 유저가 자신들만의 능력을 뽐냈고, 그 결과를 다른 많은 사람에게 공개했다.

그리고 당연히 그것을 본 사람들은 열광하고 또 열광했다.

많은 사람들은 비록 자신들이 직접 이루지는 못했지만 누군가가 차근차근 선구자 역할을 하는 것만으로도 만족했다.

누군가는 언젠가 자신도 앞서가는 탑 플레이어들처럼 되기를 원했고, 또 누군가는 그런 탑 플레이어들의 플레이를 보는 것만으로도 만족했다.

뭐가 어떻건 중요한 것은 ‘ONE’에는 아직도 너무나 많은 할 일이 존재한다는 것이었다.

지금 이 순간에도 수많은 모험가나 탐험가가 새로운 던전이나 지역을 찾아냈다.

그뿐인가?

유명 몬스터 헌터들은 늘 새로운 몬스터들을 찾아 여러 사람에게 그 존재를 알렸다.

아직도 ‘ONE’은 미지의 공간이었다.

수많은 유저가 불멸자가 되어 계속해서 모험을 했지만 아직 숨겨진 비밀들은 감히 상상할 수 없을 만큼 많았다.

그렇기 때문일까?

동시 접속자는 계속해서 늘어났고 ‘ONE’을 즐기는 총 유저 수 역시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늘어만 갔다.

이제 더 이상 ‘ONE’은 단순한 게임이 아니었다.

또 하나의 세상이자 또 하나의 인생이었다.

현실과 가상현실, 그 둘은 분명 전혀 다른 것이었지만 언제부터인가 그 경계가 조금씩 허물어졌다.

마치 거울 밖에 나와 거울 안의 내가 구분이 안 되게 되어버린 것처럼 그렇게.

* * *

고오오오!

화르르륵!

동굴 전체에 화염이 가득 찼다가 사라졌다.

아주 잠깐이었지만 동굴 전체를 감쌌던 그 화염의 힘은 대단했다. 심지어 그 뜨겁던 용암마저 그 화염에 의해 소멸되었다.

이것은 말 그대로 겁화였다.

동굴 안에 존재하는 모든 것을 지워 버린 화염. 하지만 정확히 말해서 모든 것은 아니었다.

내가 살아남았기 때문이다.

“헉헉…….”

퐁!

꿀꺽꿀꺽.

재빨리 압축 물약 팩을 꺼내 마시며 바닥에 바닥까지 내려갔던 생명력을 보충했다.

난 살아남았다. 기적이라면 기적이었고 내 능력이라면 능력이었다.

생명력 44. 내가 지금껏 보았던 수치 중 가장 낮은 수치를 기록하며 난 살아남았다.

“휴우∼ 꼼짝없이 세 번의 목숨 중 하나를 여기서 쓸 뻔했군.”

난 가슴을 쓸어내리며 고개를 가로저었다.

동굴 안은 처참하게 변해 있었다. 강렬한 화염이 휩쓸고 간 동굴은 사방이 녹아내려 전과는 완전 달라져 있었다.

용암은 아예 흔적도 없이 사라졌고 군데군데 있던 바위들도 그 존재를 찾을 수 없게 되었다.

깨끗하게 변해 버린 동굴.

그곳에 남아 있는 건 나와 커다란 붉은 조각상 하나였다.

“……1초만 늦었어도 이곳에 존재하는 건 저 붉은 조각상 하나뿐이었겠군.”

정말 1초, 아니, 정확히는 0.5초 정도의 차이인 것 같았다.

난 피할 수 없는 엄청난 위험을 감지한 그 순간 본능적으로 내가 할 있는 최선의 방법을 선택했다.

재빨리 난 타이틀을 꺼지지 않는 불꽃의 영웅으로 교체한 후 그 타이틀의 고유 스킬이었던 화염 보호 스킬을 사용했다.

4초 동안 모든 화염의 기운을 90% 흡수하는 AA급 스킬. 덕분에 나는 그 엄청난 화염을 가까스로 견딜 수 있었다.

물론 90%를 흡수했음에도 나머지 10%에 거의 사망 직전까지 갔었지만 재수가 좋은 건지 정말 아슬아슬하게 살아남을 수 있었다.

어쨌든 그렇게 난 살았다.

도저히 불가능해 보이던 상황에서 살아남았다. 이것은 나의 운이자 나의 능력이었다.

결국 운도 노력하지 않는 이에겐 찾아오지 않는 법. 난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하고 하늘의 뜻을 기다렸기에 이렇게 불가능을 가능으로 바꿀 수 있었다.

“그럼 이걸로 퀘스트를 해결한 건가?”

마지막 폭발(?)과 함께 미쳐 버린 최상급 화염 정령이 사라지고 붉은 조각상만 남았다. 그렇단 얘기는 결국 저 조각상이 퀘스트의 열쇠라는 뜻이었다.

난 조심스럽게 붉은 조각상을 향해 걸어갔다.

붉은 조각상은 마치 지금 당장에라도 살아 움직일 것 같은 생생한 화염 정령의 모습을 담고 있었다.

“최상급 화염 정령이라…….”

비록 내가 정령 계열 스킬을 익힌 건 사실이었지만 그래 봤자 아직 난 하급 정령을 소환하는 게 전부였다. 그것도 제대로 사용하기보단 주로 강화용으로 사용했기에 사실상 내가 가진 정령 친화도는 그리 높지 않았다.

물론 언젠간 나도 정령 친화도를 높여 중급 이상의 정령을 부릴 생각이었지만 지금 당장은 다른 기술들의 숙련도를 올리는 게 먼저였다.

스윽.

난 다시 한번 조각상에 손을 가져갔다.

먼저는 좀 안 좋은 상황으로 흘렀지만 이번에는 그렇지 않을 것 같았다.

띠링, 숨겨진 비밀 퀘스트를 모두 완료했습니다.

띠링, 레벨이 2 올랐습니다.

띠링, 미쳐 버린 최상급 화염 정령은 광기와 함께 대부분의 힘을 소진해 버려 이제는 더 이상 열기를 내뿜지 않습니다.

띠링, 미쳐 버린 최상급 화염 정령의 힘 때문에 제대로 활동하지 못하던 다른 화염 정령들이 당신의 업적을 칭송하며 축복을 내려줍니다. 당신의 화염 속성 친화력이 영구히 +5가 됩니다.

띠링, 북부 용암 지대의 열기가 조금씩 내려가기 시작했습니다. 이대로라면 개척민들이 조금 더 활발하게 영역을 넓힐 수 있게 될 것입니다.

띠링, 당신은 개척민들에게 영웅과도 같은 존재가 되었습니다. 앞으로 개척민들은 당신에 대한 소문을 다른 개척민들에게 전할 것입니다.

띠링, 촌장에게 돌아가 이 기쁜 소식을 알리세요. 촌장은 당신에게 큰 선물을 줄 것입니다.

띠링, 최상급 화염 정령이 당신과 대화하기를 원합니다. 대화하시겠습니까? [Y/N]

“당연히…… YES!”

난 ‘Y’를 누르며 고개를 끄덕였다.

스으으으∼

대화하기를 선택하자 갑자기 붉은 조각상이 은은하게 빛나기 시작했다.

그리고 마치 다른 유저에게 귓속말을 받을 때처럼 은은한 목소리가 내 귓가에 울려 퍼졌다.

[일단 고맙다고 말해야겠군. 내 스스로는 광기를 떨쳐 버리는 게 불가능해 괴로웠는데 너의 도움 덕분으로 이제 완전히 내 마음속에 깃들어 있던 흐트러진 기운을 소멸시킬 수 있었다. 그에 나 라르칸시엘은 너에게 큰 빚을 지었다.]

‘호오∼ 최상급 화염 정령들에겐 이름도 있는 건가?’

이건 몰랐던 사실이다. 하지만 어쨌든 광기를 벗어던진 최상급 화염 정령은 무척 뛰어난 인공지능을 지닌 것 같았다.

“할 일을 했을 뿐이다.”

아무리 제가 최상급 화염 정령이라고 해도 일단 지금 상황에선 내가 꿀릴 것이 하나도 없었다. 그렇기에 난 당당하게 얘기했다.

[……그런가? 아, 그렇군. 어쩌면 이건 운명이겠군.]

당당하게 대답한 나를 조용히 바라보던 최상급 화염 정령은 나에게서 뭔가를 발견한 듯 고개를 끄덕이며 중얼거렸다.

[너와 나는 똑같은 크로노스 대륙의 남겨진 조각들, 그리고 너는 그 조각들을 모아야 할 숙명을 짊어진 자. 원래대로라면 나 역시 나의 형제들과 같이 소멸되었어야 하지만 그 빌어먹을 창조신의 권능은 나를 이곳으로 옮겨 살아남게 했다. 덕분에 난 그 후유증으로 마음의 병이 생겼고, 그 결과 마음속에서 자라난 광기가 나를 지배하게 되었다.]

라르칸시엘은 성화의 자아가 했던 얘기와 비슷한 얘기를 해주었다.

[나는 이곳 레아 대륙에 존재하는 화염 정령들과는 다르다. 그렇기에 사실 나는 이곳에서 제대로 내 권능을 발휘할 수가 없다. 어쩌면 내 마음속의 광기는 이곳에 존재하는 또 다른 화염의 기운이 내 몸속으로 흡수되며 생긴 것일지도 모르지.]

“네가 원하는 건 뭐지?”

[내가 원하는 것이라……. 난 아마 이대로 소멸될 것이다. 하지만 이것은 내가 원하는 최후가 아니다. 차라리 내 형제들과 같이 소멸되었다면 모를까, 이렇게 다른 대륙에서 점점 힘을 잃어가며 소멸하고 싶지는 않다.]

“그렇다면 넌 소멸되지 않을 방법을 알고 있나?”

[있다. 하지만…… 혼자 힘으로는 불가능하다.]

“그건 결국 나에게 도움을 원한다는 뜻인가?”

[그렇다. 너는 이미 나를 한 번 크게 도와주었다. 그리고 난 또 한 번 너에게 도움을 바라고 있다. 나 라르칸시엘은 너에게 두 번의 도움을 받는 대가로 영혼의 종속을 내놓을 생각이다. 네가 원한다면…… 난 영원히 너의 소유가 된다.]

갑작스러운 최상급 정령의 제안.

물론 그 힘을 대부분 잃은 최상급 정령이었지만 이 정도로 뛰어난 인공지능을 지닌 정령이라면 나중에 어떤 큰 도움을 줄지 모르는 일이었다.

“흐음…… 내가 어떻게 도와주면 되는 것이지?”

[간단하다. 내가 이대로 소멸되지 않으려면 새로운 몸이 필요하다. 지금은 이 조각상이 내 몸이지만…… 결국 이 조각상은 점점 그 기운을 잃을 것이고 그러면 난 소멸되는 것이다. 그렇기에 나는 새로운 존재에 내 영혼을 옮겨야 한다.]

“새로운 존재? 흐음…… 그런 존재를 어디서 구하지?”

[구할 필요가 없다. 넌 이미 가지고 있다. 어떻게 구한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내 품 안에 아주 큰 영혼의 공백을 가진 존재가 있다.]

“영혼의 공백을 가진 존재?”

라르칸시엘의 말에 나는 고개를 갸웃거리며 내 가방 속에 들어있는 물건들을 하나하나 살펴보았다.

“그런 물건이 나한테 있을…… 아!”

난 가방 구석에서 먼지만 쌓였을 법한 한 가지 물건을 발견한 순간 자동으로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그렇다. 그것이다. 그것이라면 충분히 내 새로운 몸이 될 수 있다. 나 라르칸시엘은 그렇게 다시 태어날 것이고, 그 순간 너에게 영원히 영혼의 종속을 약속할 것이다.]

“그럼 난 어떻게 하면 되는 거지?”

[그 물건을 꺼내 이 조각상 위에 올려놓아라. 그리고 고대의 율법에 따라 계약을 맺을 준비하라!]

“고대의 율법?”

[간단하다. 정령의 기운을 품고 있는 너라면 그저 새로운 정령과 계약을 맺는다고 생각하면 끝이다. 그 물건을 조각상 위에 올려놓고 너의 기운을 그 안으로 흘려보내라. 그러면 계약이 실행될 것이다.]

난 라르칸시엘의 말대로 가방 속에서 그 물건을 꺼내 들었다.

라르칸시엘이 말한 영혼의 공백을 가진 존재는 바로 내가 전에 얻었던 거대한 소환수의 알이었다.

난 내 머리보다 훨씬 더 큰 커다란 알을 조각상 위에 올려놓았다.

그리고 조용히 손을 올려놓은 후 내 기운을 천천히 흘려보냈다.

약간의 시간이 흘렀을까?

알을 통해 흘러 들어가던 내 기운이 조각상까지 전해진 그 순간 강력한 빛이 뿜어져 나왔다.

번쩍!

[태곳적부터 내려온 고대의 율법에 따라 나 라르칸시엘은 당신의 종이 되고자 합니다. 당신의 뜻에 따라 당신이 원하시는 이곳에 깃들어 영원히 당신을 위해 움직이는 존재, 당신이 부르길 원하는 이름을 정해 주신다면 전 이대로 영원히 당신에게 종속된 영혼이 될 것입니다.]

띠링, 기억 속에서 사라진 고대의 의식을 실행합니다.

띠링, 최상급 화염 정령 라르칸시엘은 본인의 의지로 당신에게 영혼이 종속되기를 원합니다. 당신도 그렇게 되기를 원하신다면 라르칸시엘의 새로운 이름을 정해주십시오. 만약 원하지 않는다면 기운을 거두어주시면 됩니다.

띠링, 라르칸시엘은 이제 최상급 화염 정령이라는 굴레를 벗어나 새로운 존재로 다시 태어나려고 합니다. 이는 정령계에 유례를 찾아볼 수 없는 새로운 일. 만약 당신이 라르칸시엘을 받아들인다면 당신의 이름은 당장 정령계에 널리 퍼질 것입니다.

띠링, 라르칸시엘의 영혼을 종속시킬 경우 모든 정령 친화력이 크게 상승합니다.

이런 얘기를 듣지 않아도 종속시키려 했다. 하지만 이 얘기를 듣고 나니 더 확실히 종속시키고 싶어졌다.

“너의 이름은…… 라르엘! 이제부터 너는 라르엘이다.”

[라르엘, 당신이 주신 그 이름으로 새로운 생을 시작합니다.]

번쩍!

다시 한번 빛이 강하게 빛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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