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더 로드(The Lord)-64화 (64/250)

064. 미쳐 버린 최상급 화염 정령 ― 1

* * *

용암 동굴 입구에 있던 용암돌 정령과 플레임 아나콘다를 가볍게 처리한 나는 천천히 동굴 안으로 들어갔다.

사방에 흐르는 용암에서 느껴지는 열기.

물론 나에겐 그다지 크게 느껴지지 않는 열기였지만 아마 다른 사람들이었다면 체력이 주기적으로 계속 깎일 정도로 대단한 열기였을 것이다.

나에게 따뜻하다는 느낌이 들 정도의 열기였으니 아마도 보통 사람한테는 더워서 죽을 것 같다는 느낌의 열기일 것이다.

속성 친화력이 만들어낸 당연한 결과.

어쩌면 현재 이 퀘스트를 해결할 수 있는 건 오로지 나뿐일지도 몰랐다.

난 용암을 피해 조심스럽게 계속 동굴 안으로 들어갔다. 아무리 나라고 해도 오랜 시간 동안 용암에 직접 접촉하고 있는 건 위험했다. 속성 친화력이 좀 더 높아져 100을 넘으면 모를까 지금은 당장 체력이 한 번에 확 깎여 나가지 않을지는 몰라도 체력이 조금씩 꾸준히 깎여 나갈 수 있었다.

그렇기에 최대한 용암과 접촉하는 건 피하면서 동굴 안으로 들어갔다.

물론 피치 못하게 가끔 용암과 접촉할 때는 있었지만 잠깐이라면 큰 문제는 없었다.

동굴 안으로 들어갈수록 열기는 더욱 강해졌다.

얼마나 들어온 것일까? 이제는 나에게도 살짝 덥다는 느낌이 들 정도의 열기가 느껴졌다.

이 정도의 열기라면 보통 사람은 그냥 서 있는 것만으로도 체력이 급속도로 깎일 수 있을 것 같았다.

“과연 백구십구 개의 연계 퀘스트를 잇는 이백 번째 퀘스트라는 건가?

화륵!

화염 저항력이 잔뜩 붙은 방어구를 착용하고 있는데도 방어구가 붉게 달아오를 정도의 열기라면 절대 평범하지 않은 것이었다.

“거의 끝까지 온 거 같은데…….”

촌장의 말에 따르면 이 동굴 끝에 북부 용암 지대가 생성된 근원이 있었다. 내 임무는 그 근원을 살펴보고 왜 북부 용암 지대가 점점 더 뜨거워지고 있는지 알아보는 것이었다.

거기에 보너스로 그 현상을 막는다면 난 호칭과 정체를 알 수 없는 한 가지의 물건을 더 받게 된다.

일단 보상은 많으면 많을수록 좋은 법이었기에 난 당연히 숨겨진 퀘스트까지 모두 해결할 생각이었다.

주륵.

이젠 나도 살짝 땀이 날 정도의 열기가 느껴졌다.

동굴은 끝나 있었다. 거대한 용암의 호수. 그것을 끝으로 동굴은 더 이상 이어지지 않았다.

“이곳이 끝인가?”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그저 커다란 용암으로 이루어진 호수만 보일 뿐이었다.

“……촌장의 말이 틀릴 리는 없는데…….”

일단 촌장의 말이 틀렸을 가능성은 거의 없었기 때문에 나는 이곳에 뭔가 특이점이 없는지 살펴보기 시작했다.

사실 특별하게 생긴 돌멩이 하나 보이지 않는 곳이었기에 살펴보는 건 그다지 어렵지 않았다.

하지만 아무리 구석구석 살펴보아도 주변에 특별한 건 아무것도 없었다.

“설마……?”

살펴보지 않은 곳은 딱 한 군데, 바로 용암 호수 안뿐이었다.

“흐음…… 방법은 하나인가?”

사실 이 방법까지 쓰게 될지는 몰랐다. 과연 2등급 스페셜 퀘스트라는 것일까? 그 난이도가 상상 이상으로 높았다.

“어쩔 수 없군.”

스윽.

난 조용히 용암 호수 앞으로 걸어갔다.

“지금 이 상태로 그냥 들어가면 위험하겠지만…….”

특수 스킬, 영웅의 포효!!

번쩍!

내 몸이 강력한 빛에 휩싸이며 모든 능력치가 50% 상승했다.

모든 능력치에는 당연히 속성 친화력과 화염 저항력도 포함되어 있었다.

순식간에 100이 넘어버린 속성 친화력과 30%가 넘는 화염 저항력.

물론 10분이라는 한정된 시간 동안만 유지되는 것이었지만 이 정도라면 용암 호수 안을 탐색하는 데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았다.

풍덩!

영웅의 포효를 활성화시킨 나는 곧장 용암 호수로 뛰어들었다.

부글부글.

용암 호수 안의 열기는 상상을 초월했다.

능력치를 증폭시켰음에도 온몸이 화끈거릴 정도로 뜨거운 기운이 느껴졌다.

다행히 체력은 정말 천천히 조금씩 깎여 나갔다.

이 정도라면 거의 안 깎인다고 봐도 좋을 정도였다.

‘최대한 빨리 찾자.’

10분은 어떻게 보면 긴 시간이었지만 또 어떻게 보면 짧은 시간일 수도 있었다.

난 최대한 주변을 살피며 뭔가가 있을 가능성이 가장 높은 호수 중앙 밑바닥으로 헤엄쳐 들어갔다.

그렇게 몇 분을 헤엄쳐 들어갔을까? 드디어 호수 중앙 밑바닥이 보이기 시작했다.

그리고 내 예상대로 뭔가 특별한 물건이 보이기 시작했다.

그것은 하나의 석상이었다.

마치 화염이 불타오르는 것 같은 모습의 석상. 신기한 것은 그 석상은 이 뜨거운 용암의 열기 속에서도 전혀 뜨겁지 않은, 오히려 서늘한 기운을 풍기며 바닥에 쓰러져 있었다.

‘분명 이게 퀘스트의 단서이겠군.’

난 재빨리 석상 가까이 접근했다.

석상은 내 몸의 대략 다섯 배 이상은 될 정도로 굉장히 컸다. 난 조심스럽게 그 석상에 손을 가져갔다.

이 석상이 단서인 것은 알았지만 어떻게 해야 퀘스트를 이어갈지는 좀 더 살펴봐야 할 것 같았다.

그런데 내가 석상을 만진 그 순간,

갑자기 내가 만진 부분부터 균열이 일어나기 시작했다.

“헛!”

화륵!

석상이 갑자기 깨져나가며 석상 안쪽에서 아주 강력한 열기의 폭풍이 몰아쳤다.

퍼퍼펑!

“컥!”

상당한 화염 저항력과 화속성 친화력을 가지고 있던 나였지만 순간 강대한 열기에 충격을 입고 체력의 20%가 깎여 버렸다.

그리고 그 열기의 폭풍은 날 용암 호수 밖으로 날려 버렸다.

꽝!

“크윽!”

갑자기 일어난 일.

영웅의 포효로 능력치를 증폭시키지 않았다면 아마 나는 그대로 사망했을 것이다.

“뭐지?”

내가 갑자기 일어난 일에 의문을 갖는 그 순간 절묘한 타이밍에 퀘스트 알림 메시지가 들여왔다.

띠링, 북부 용암 지대가 생성된 근원을 알아냈습니다.

띠링, 촌장의 마지막 부탁을 해결했습니다.

띠링, 하지만 당신이 지니고 있던 뜨거운 화염의 기운은 미쳐 버린 최상급 화염 정령을 아슬아슬하게 봉인하고 있던 결빙석(結氷石)을 깨버렸습니다. 그 결과 정령이 봉인에서 깨어나게 되었습니다. 이것은 당신의 실수입니다. 당신은 당신의 실수를 책임질 필요가 있습니다.

띠링, 숨겨진 나머지 퀘스트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미쳐 버린 최상급 화염 정령의 광기를 제압해야 합니다. 숨겨진 퀘스트를 포기할 경우 북부 용암 지대의 온도는 지금의 두 배 이상 상승해 더 이상 사람이 살 수 없는 곳이 됩니다. 그 경우 당신은 개척민들에게 큰 미움을 사 더 이상 개척민들과 대화할 수 없는 관계가 됩니다.

띠링, 미쳐 버린 최상급 화염 정령의 광기를 없애기 위해서는 일단 정령을 제압할 필요가 있습니다.

“젠장! 숨겨진 퀘스트엔 불이익이 없는 줄 알았는데!”

갑자기 들려온 퀘스트 알림 메시지는 나에게 미쳐 버린 화염 정령이란 놈을 제압하라고 협박했다.

개척민들은 ‘One’에서 중요한 역할을 차지하고 있는 이들이다. 그들의 미움을 받으면 여러 가지 부분에서 큰 차질이 생길 수 있었다.

그렇기에 나는 울며 겨자 먹기로 숨겨진 퀘스트를 해결해야 했다.

“미쳐 버린 최상급 화염 정령? 근데 그놈은 어디에…….”

[크아아아아!]

화르르륵!

난 재빨리 압축 치료 물약을 마시며 능숙한 솜씨로 압박붕대를 이용해 체력을 회복했다. 그리고 그 와중에 내가 제압해야 한다는 그 정령을 찾았는데, 그 정령은 아주 강렬한 인상을 안겨주며 용암 호수에서 튀어나왔다.

[더…… 뜨거운 열기를…… 더 뜨거운 열기를…….]

내가 알기론 최상급 정령들은 꽤 뛰어난 인공지능을 지니고 있었는데, 확실히 미쳐 버린 정령이라 그런지 횡성수설하며 계속 주변을 향해 강력한 열기를 뿜어냈다.

최상급 정령은 정령왕을 제외하곤 가장 강령한 정령이었다.

사실 정령왕은 거의 데미갓(Demigod:반신) 급의 존재였기에 함부로 힘을 비교하는 건 어리석은 짓이었다.

내가 알기로 최상급 정령은 대략 700레벨에서 900레벨까지 다양한 레벨을 지니고 있었다.

당연히 네임드 몬스터들과 같은 등급의 존재였다.

사실상 정령 소환사들의 궁극기가 최상급 정령을 소환하는 것인 것만 보아도 최상급 정령이 얼마나 강력한 존재인지 알 수 있었다.

그런 최상급 정령을 제압하라고 한다.

지금 내 레벨은 겨우 300이 갓 넘은 상태.

아무리 내가 사기 캐릭터라지만, 그리고 영웅의 포효 효과가 남아 있는 대략 7분 정도는 레벨을 무시하는 강한 힘을 지니고 있다지만 그래도 갑자기 최상급 정령을 제압하라니, 이건 정말 힘겨운, 아니, 어쩌면 해결이 불가능한 임무였다.

띠링, 힘들어하지 말라! 비록 그대의 능력으로 최상급 정령을 상대하기엔 무리가 있지만 그대 주변에 흩어진 결빙석을 잘 이용한다면 어쩌면 아주 드문 확률이지만 제압할 수도 있을 것이다.

띠링, 퀘스트의 난이도가 1등급 스페셜 퀘스트로 재조종됩니다. 그에 따라 완료 보상의 질도 높아집니다.

빠득.

아예 시스템이 염장을 지른다.

그런데 염장은 염장이고 중요한 것을 알려주었다.

조각나 흩어진 결빙석을 이용하라!

이건 나에게 아주 중요한 단서가 되었다. 비록 힘의 차이는 극명하겠지만 결빙석을 이용하면 제압할 가능성이 있다는 얘기. 염장을 지르는 건 살짝 열 받았지만 일단 조금이나마 가능성이 생겼다는 것은 만족스러웠다.

“가능성이 있다면 포기할 수 없지!”

파팟!

속전속결이 필요했다. 영웅의 포효 효과가 남아 있는 7분의 시간을 최대한 활용해 그 시간 안에 승부를 봐야 했다.

그렇게 하지 못한다면 아마 나는 여기서 첫 번째 죽음을 맞이할지도 몰랐다.

“이렇게 허무하게 죽을 순 없다고!”

난 일단 가장 가까이에 보이는 결빙석 조각 하나를 집어 들었다.

그리곤 곧장 그것을 유엽비도 스킬을 이용해 화염 정령을 향해 집어 던졌다.

피핏!

[으아아아아!]

스르륵!

하지만 소용없었다. 화염 정령 근처에 가기도 전에 이미 녹아서 사라져 버렸다.

[넌 누구냐! 넌 누구냐!]

오히려 화염 정령의 화만 돋우는 결과가 되었다.

[크아아아아!]

화르륵!

미쳐 버린 최상급 화염 정령은 한팔을 휘둘러 나에게 거대한 불덩어리를 쏘아냈다.

“젠장!”

워낙 거대한 불덩어리였기에 애초에 피하는 것 자체가 불가능해 보였다.

피할 수 없다면 막아야 했다.

하지만 막는 것도 그다지 쉬워 보이지는 않았다.

‘그냥 막으면 안 된다. 그렇다면 결빙석을!!’

난 재빨리 바닥을 구르며 또 한 조각의 결빙석 조각을 손에 움켜쥐었다.

“장비 1번.”

그리곤 곧장 방패와 검을 소환했다.

스킬 조합, 쉴드 디펜스(Shield Defense)+방패 강화.

방패의 벽!!

번쩍!

난 방패의 벽을 활성화시키며 손에 쥐고 있던 결빙석의 기운을 그 기술에 주입했다.

콰광!

치이이익!

이건 일종의 모험이었다. 처음에 결빙석을 쥐었을 때 순간적으로 느꼈던 차가운 기운을 스킬을 조합하며 억지로 내 마나에 섞는다면 뭔가 새로운 효과가 나타나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 감행한 모험이었다.

그리고 재수가 좋게도 그 모험은 성공했다.

스으으∼

화염 정령의 강력한 불덩어리 공격을 완벽하게 막아냈다. 방패를 타고 피어오르는 수증기는 결빙석의 힘이 작용했다는 걸 극명하게 증명해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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