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더 로드(The Lord)-63화 (63/250)

063. 북부 용암 지대 ― 2

* * *

여실히 나타나는 속성 친화력의 사기성.

물론 내 속성 친화력이 레벨에 맞지 않게 너무 높아서 발생한 다소 버그에 가까운 일이었지만 정말로 버그는 아니었기에 난 일루젼(메인AI)의 제재를 받지 않았다.

버그가 발생 되었을 때 일루젼은 가차 없이 그 버그를 처리한다. 당연히 버그를 이용한 플레이는 거의 불가능했고, 오히려 버그를 악용하려 했다간 손해를 볼 수도 있었다.

당연히 난 버그를 이용해 사냥할 생각은 추호도 없었다.

이건 버그가 아니라 몇 겹의 행운과 노력이 겹치며 이론 속에서나 가능했던 플레이가 현실에서 가능하게 된 것일 뿐이었다.

대략 40마리가 넘는 용암 트롤을 몰아서 최초에 내가 서 있던 곳으로 조금씩 끌고 왔다.

이쯤 되자 아무리 대부분의 데미지를 흘려보내는 나라고 해도 점점 압박으로 다가왔다.

‘좋아, 일단 이 정도로 해볼까?’

처음부터 너무 무리할 필요는 없었다.

‘일단 이것부터…….’

스킬 조합, 함정 설치, 쇼크 트렙(Shock Trap)+기관진식, 뇌전기관(雷電機關).

스턴 필드(Stun Field)!!

번쩍!

미리 준비했던 함정을 발동시켰다. 일명 스턴 필드라 불리는 이 함정은 대략 나를 중심으로 20m 반경에 존재하는 모든 적에게 전기 충격을 가해 약 90%의 확률로 적을 5초간 기절시킬 수 있었다.

물론 적의 능력치에 따라 그 확률은 높아지거나 낮아졌지만 적어도 용암 트롤들에게는 잘 먹힐 만한 고급 함정 스킬이었다.

빠지직!

키에엑!

나를 향해 공격을 퍼붓던 트롤들이 단체로 감전되어 5초간 기절 상태에 빠져 버렸다.

하지만 내가 준비한 건 이게 끝이 아니었다.

스킬 융합, 함정 설치, 아이스 트렙(Ice Trap)+기관진식, 빙하진(氷河陣)+상급 주술 설풍(雪風)!

가상입동(假想立冬)!!

스턴 필드에 교묘하게 조합시킬 최고급 융합 스킬. 나도 최근에나 가능해진 이 융합 스킬은 약 1분 동안 내가 지정한 지름 20m 안의 공간을 내가 원하는 환경으로 바꿔 버린다.

새롭게 만든 스킬이라 숙련도가 좀 낮았다. 덕분에 쓸데없이 낭비되는 마나가 많았지만 그래도 그 효과는 매우 탁월했다.

지금 내가 만든 환경은 겨울.

제한된 짧은 시간이었지만, 분명 이 순간만큼은 이곳에 겨울이 찾아왔다.

용암 트롤들은 전형적인 화(火) 속성의 몬스터였다. 그렇기에 내가 가상으로 만든 이 겨울의 환경에서는 모든 능력치가 크게 떨어지게 되어 있었다.

휘이잉!

5초간 기절 상태와 갑자기 변해 버린 환경까지, 이 모든 건 순식간에 내가 만들어낸 미리 준비한 수들이었다.

그리고 마무리는 당연히 나의 강력한 광역 공격이었다.

“장비 9번.”

장비를 마법총서로 바꿨다.

최고의 광역 공격은 역시 마법이었다.

특히나 내가 인위적으로 만든 겨울이라는 환경, 그리고 화 속성의 몬스터.

이 상황에서 최고의 마법은 바로 냉기 계열 마법이었다.

스읏!

난 재빨리 가방 속에서 다량의 시약을 챙기며 조용히 시동어를 읊조렸다.

치릿!

내 주변에 죽은 얼음의 결정들이 모여들기 시작했다.

내가 준비한 마법은 아이스 스톰(Ice Storm)이었다.

냉기 마법의 궁극기 중 하나였던 황천의 얼음 폭풍 마법과 유사하지만 그 효과나 범위가 작은 얼음 폭풍 마법(아이스 스톰).

하지만 그래도 화 속성의 몬스터에겐 +30% 추가 데미지가 있는 광역 마법이고 내가 조성한 겨울의 환경으로 인한 보너스 데미지까지 더해진다면 원래 그 자체의 위력도 상당한 마법이라 약해질 대로 약해진 용암 트롤은 깔끔하게 정리할 수 있는 마법이었다.

물론 캐스팅 딜레이나 무지막지하게 소모되는 마나량을 따진다면 상당히 비효율적인 마법일지 몰랐지만 적어도 지금만큼은 그 효율이 100%, 아니, 120% 이상이 될 수 있었다.

시동어가 완성되고 마나 서클도 충분히 회전시켰다. 이제 남은 건 활성화시키는 것뿐이었다.

트롤들이 스턴 효과에서 벗어나며 다시 나를 향해 미친 듯이 달려들려고 하는 그 순간,

나는 몸 안에서 회전하는 마나 서클을 일순간에 밖으로 밀어냈다.

스킬 발동, 상급 냉기 마법, 아이스 스톰(Ice Storm)!!

쩌저저저정!

사방에 몰아치는 얼음의 알갱이들.

내가 인위적으로 겨울로 만들어 버린 공간은 순식간에 하얀 얼음 조각으로 가득 찼다.

퍼퍼퍽!

몇몇 용암 트롤이 내던진 공격이 몸에 꽂혔다. 마법을 완성시키는 중이라 방어 행동이 불가능했기에 꽤 큰 데미지가 되어 꽂혔지만 그래도 높은 속성 친화력과 체력 덕분에 큰 위협이 되지는 않았다.

오히려 중요한 건 30초간 지속되는 아이스 스톰의 효과를 계속 유지시키는 것이었다.

행여나 충격에 캐스팅이 취소되면 아이스 스톰은 그 위력의 절반도 발휘하지 못할 수 있었기 때문에 주의가 필요했다.

내 몸 안에서 회전하던 마나 서클이 만들어놓은 마력의 통로를 따라 내 마나가 계속해서 빠져나가며 아이스 스톰을 유지시켰다.

끄륵!

크아아아!

잠깐의 시간이 지났지만 벌써 용암 트롤이 쓰러지기 시작했다.

확실히 내 예상대로 용암 트롤은 스턴 필드, 가상 입동, 그리고 아이스 스톰으로 이어지는 이 콤보를 버티지 못했다.

털썩!

털썩!

쓰러지는 용암 트롤들.

30초간 지속되는 아이스 스톰 속에서 제일 오래 버틴 용암 트롤이 27초를 버틴 주술사 계열의 용암 트롤이었다.

띠링, 용암 트롤을 다수 쓰러뜨렸습니다.

띠링, 레벨이 올랐습니다.

띠링, 함정 스킬, 쇼크 트랩의 숙련도가 0.002 올랐습니다.

띠링, 상급 마법, 아이스 스톰의 숙련도가 0.004 올랐습니다.

……

……

단 한 번의 전투로 레벨이 올랐다.

확실히 나보다 레벨이 높은 몬스터를 무려 40마리나 몰아서 잡은 효과는 대단했다.

“휴우∼”

하지만 좋은 소식만 있는 건 아니었다.

예상했던 것보다 마나나 체력 소비가 무척 컸다. 거의 20%밖에 남지 않은 마나와 40% 정도 남은 체력. 조금 쉬면 다시 차겠지만 그래도 한 번 사냥한 것치고는 꽤 큰 소비였다. 거기에 사용한 함정을 다시 복구하는 것도 시간이 걸릴 것 같았다.

그냥 함정도 아닌 새롭게 개발한 특수한 함정이라 시간은 더욱 오래 걸렸다.

“대략 한 시간에 한 번 정도이려나?”

분명 몰이 사냥의 결과는 좋았지만 이대로 만족할 수는 없었다.

“그렇다면 결국 더 많이 몰아서 잡아야겠군.”

시간을 단축할 수 없다면 한 번 잡을 때 더 많이 잡는 수밖에 없었다.

“일단 조금씩 늘려가도록 해보자.”

첫술에 배부를 순 없었다. 사냥은 지금부터 시작이었고, 아직 시간은 많이 남아 있었다.

난 일단 용암 트롤들이 떨어뜨린 물건들을 주워 담으며 천천히 고갈된 마나와 체력부터 채우기 시작했다.

천천히.

하지만 확실하게.

난 두 달이라는 시간 동안 북부 용암 지대를 완벽하게 정복할 생각이었다.

* * *

“자네라면 충분히 가능할 것일세.”

띠링, 촌장의 마지막 부탁을 받았습니다.

띠링, 본 퀘스트는 북부 용암 지대 199 연계 퀘스트을 잇는 마지막 퀘스트입니다. 지금까지 당신이 해결한 199가지의 퀘스트는 모두 이 퀘스트의 선행 퀘스트였습니다.

띠링, 본 퀘스트는 2등급 스페셜 퀘스트입니다. 오로지 99가지의 퀘스트를 클리어한 당신만이 받을 수 있는 특별 퀘스트입니다. 단, 실패 가능성이 무척 큰 퀘스트이기도 합니다. 실패할 경우 특별한 불이익은 없지만 두 번 다시 이 퀘스트를 받으실 수 없습니다.

띠링, 원하시는 경우 촌장에게 시간을 더 달라고 할 수도 있습니다. 그 경우 퀘스트의 보상 등급이 내려갈 수 있습니다. ‘용암지 대의 근원’ 퀘스트를 받으시겠습니까?(Y/N), 또는 촌장에게 시간을 더 요청하시겠습니까?(Y/N)

드디어 이 지긋지긋한 연계 퀘스트의 마지막 퀘스트를 받았다.

처음 시작은 가벼웠다. 개척민 몇 명의 가벼운 부탁.

하지만 시간이 지나고 몇 가지 부탁을 들어주면 줄수록 개척민들의 요구는 더 어렵고 위험하고 복잡해졌다.

처음엔 그저 이러다 대충 끝날 것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고 내가 이어받은 퀘스트가 100개를 넘었을 때 이게 보통 퀘스트가 아니라는 것을 알았다.

내가 알고 있는 ‘One’에서 가장 긴 퀘스트는 일명 절망의 연계 퀘스트라 불리는 ‘흑기사’ 퀘스트였다. 그 퀘스트가 대략 300개의 퀘스트로 이루어진 아주 긴 퀘스트라고 들었다.

하지만 그건 거의 메인 퀘스트에 근접한 퀘스트였기에 아무리 길어도 꼭 완료하려는 유저들이 수없이 많았다.

그에 반해 내가 이곳에서 받은 퀘스트는 보상은 쥐꼬리만 하고 난이도는 무지막지하게 높았다. 거기에 솔직히 엄청 귀찮은 일도 많았다.

예를 들어 용암 쥐꼬리 천 개 모아 오기나 유황 200㎏ 캐오기. 이런 건 정말 단순 반복의 극을 달리는 귀찮은 퀘스트들이었다.

처음엔 그래서 그냥 퀘스트를 포기하려 했다.

하지만 어영부영 연속해서 해결한 퀘스트의 숫자가 50개를 넘어버리자 가까워지자 오기가 생겼다.

그래서 계속했다.

그 결과 199개의 퀘스트를 연달아 해결했다.

퀘스트도 해결하고 몰이 사냥도 하고, 정말 바쁘게 보낸 시간이었다.

벌써 내가 북부 용암 지대에 온 지 55일(게임 시간)이 흘렀다.

아주 열심히 게임에 집중한 결과 레벨도 애초의 목표를 넘어 304가 되어 있었고 많은 스킬의 숙련도도 올렸다.

그리고 스킬 조합도 많이 다듬었다.

목표는 모두 달성했다.

하지만 아직 끝나지 않은 게 하나 있었다.

바로 이 지긋지긋한 연계 퀘스트의 끝.

그래서 난 계속 이곳에 남아 있었다. 어차피 두 달을 예상하고 온 곳이었기에 아직 시간의 여유도 있었고 이왕 이렇게 된 거, 이 연계 퀘스트의 끝은 꼭 보고 싶었다.

그 결과 오늘 드디어 마지막 퀘스트를 받았다.

“걱정 마십시오. 촌장님과 이곳에 계신 모든 분의 걱정거리를 제가 해결해 드리겠습니다.”

난 자신 있는 목소리로 대답하며 ‘퀘스트를 받으시겠습니까?’ 부분의 ‘Y’ 자를 강하게 두들겼다.

띠링, ‘용암지대의 근원’ 퀘스트를 받으셨습니다.

띠링, 당신은 이제 개척민들의 근심을 해결해야 합니다. 개척민들은 계속해서 온도가 상승하는 원인을 궁금해합니다. 원인을 알게 되면 촌장의 마지막 부탁을 해결하게 됩니다.

띠링, 본 퀘스트에는 숨겨진 추가 퀘스트가 있습니다. 촌장을 비롯한 개척민들은 계속되는 온도 상승을 막고 싶어합니다. 만약 당신이 개척민들의 근심을 해결한다면 당신은 개척민들이 이곳에 처음 와서 우연히 구한 한 개의 물건을 추가 보상으로 받을 수 있을 것입니다.

띠링, 이 두 가지 조건을 모두 해결했을 경우 보상으로 당신에게 ‘개척민의 용사’라는 호칭이 주어지게 됩니다.

퀘스트를 받았다.

이제 남은 건 이걸 해결하는 것뿐이었다.

‘붉은 용암 동굴의 가장 깊은 곳이라…….’

일단 촌장이 알려준 퀘스트 해결의 실마리는 붉은 용암 동굴에 있었다.

붉은 용암 동굴은 나도 사냥하며 종종 갔던 곳이다. 하지만 가장 깊은 곳까지는 들어가지 않았다.

그곳엔 몬스터는 없고 오로지 용암 지대만 가득 있었기 때문이다.

‘일단 가봐야겠지?’

마지막 퀘스트까지 받은 이상 여기서 만족하고 떠날 수는 없었다.

특히 2등급의 스페셜 퀘스트 보상을 포기할 수는 없었다.

거기에 추가로 타이틀까지 보상으로 준다고 하지 않는가? 비록 내가 사기적인 타이틀을 두 개나 가지고 있었지만 그렇다고 다른 타이틀이 전혀 필요 없는 건 아니었다.

다양한 타이틀을 스왑하는 건 상위 랭커들에겐 당연한 컨트롤이었다.

다다익선.

많아서 나쁠 건 없었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보상을 떠나서 199개나 해결한 연계 퀘스트를 마지막 한 개를 남기고 포기한다는 건 있을 수 없는 일이잖아?”

상식적으로 당연한 것이었다.

포기할 것이었으면 애초에 초반에 포기하고 말았지 내가 왜 지금에 와서 포기하겠는가?

당연히 이 퀘스트는 유종의 미를 거두기 위해서라도 해결할 필요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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