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더 로드(The Lord)-61화 (61/250)

061. 악연도 인연이다 ― 2

* * *

“쳇, 치사한 아저씨, 걱정 말아요! 어디서 다시 빚을 내서라도 갚을 테니!”

“세상에서 제일 치사한 아저씨!”

두 남매는 잔뜩 골이 난 표정으로 투덜거렸다.

묘하게 닮은 두 남매의 그 표정을 보고 있자니 왠지 모르게 귀여워 보였다.

“그…… 아저씨라는 호칭 대신 오빠나 형으로 불러준다면 한 오백 골드 정도는 바로 감면해 줄 수 있겠는데…….”

내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들려오는…….

“오빠!”

“형!”

매우 단순한 남매.

“하하하하, 그래, 이제 남은 빚은 9,500골드!”

비록 500골드는 꽤 큰돈이었지만 왠지 전혀 아깝지가 않았다.

“우와∼ 생각보다 통이 큰 오빠였네요?”

“이야∼ 형, 화끈하네요?”

두 남매는 내가 기분 좋게 웃자 더욱 친근한 목소리로 말했다. 급작스럽게 아부 모드로 변해 버린 두 사람.

확실히 단순하고 귀여운 남매였다.

난 왠지 그 단순함이 마음에 들었다.

악연으로 시작된 인연. 하지만 절대 기분 나쁘지 않은 인연이었다.

* * *

“와아아아아!!”

강남의 종합 무역 센터 어울림의 대 전시장에 마련된 특별 무대 주변에 모여 있던 수많은 사람이 탄성을 내지르며 환호했다.

비록 게임계의 주류는 이미 가상현실게임 ‘The One’으로 넘어간 상태였지만 그동안 꾸준히 큰 인기를 누려온 시리즈 게임이었던 스타 워(Star War)도 아직은 인기가 있는 게임이라고 할 수 있었다.

오늘 이곳에서는 스타 워의 최강자 중 최강자를 가리는 올스타 세계대회 결승전이 치러지고 있었다.

무려 오 년이 넘는 세월 동안 스타 워 시리즈의 최강자로 군림해온 별의 제왕, 이강민.

그리고 그를 제왕의 자리에서 끌어내리려고 하는 혁명의 사무라이, 이이다 쿄야.

아주 오래전부터 라이벌 의식이 강력한 한국과 일본의 대결이라서 그런지 결승전의 열기는 더욱 뜨거웠다.

결승전은 일곱 번을 대결해 네 번을 먼저 이기는 쪽이 우승이었다.

별의 제왕 이강민은 현재 공식 게임 50연승이라는 무시무시한 대기록을 이어가는 중이었고, 결승전에서도 이미 3승을 먼저 거두어 이이다 쿄야를 압도하고 있었다.

반면 이이다 쿄야는 별의 제왕 이강민의 화려한 전략과 컨트롤에 속수무책으로 계속 당하는 중이었다.

결승전치고는 다소 싱거운 일방적인 경기.

하지만 이곳은 대한민국이었고, 이강민은 대한민국에서 가장 유명한 프로게이머였다.

당연히 관중들은 크게 환호하였고, 이강민의 화려한 플레이에 감탄을 아끼지 않았다.

현재 결승전은 네 번째 게임이 진행 중이었다.

앞서 세 번의 경기에서 제대로 반항도 못 해보고 일방적으로 져버린 이이다 쿄야는 이번 경기를 반격의 시발점으로 삼기 위해 필살의 노력을 기울였다.

세계 랭킹 2위의 혁명의 사무라이 이이다 쿄야가 모든 힘을 쏟아부으며 정신을 집중하자 네 번째 경기는 확실히 앞서 치러진 세 번의 경기와 다르게 진행되었다.

밀고 당기는 공방전.

전략상 가장 중요한 행성인 타투안 행성을 두고 벌어진 두 선수의 몇 번의 교전은 스타워 역사에 길이 남을 명 전투였다.

점점 더 뜨거워지는 열기.

이이다 쿄야는 조금만 더 노력하면 자신이 이 경기를 잡을 수 있을 것이라고 확신했다.

그는 약간의 수비 병력을 제외한 모든 병력을 타투안 행성 근처로 집결시켰다.

이미 수없이 정찰해본 결과 이강민 측도 타투안의 마지막 결전을 준비하며 거의 모든 병력을 타투안 근처로 집결시킨 상태였다.

이이다 쿄야는 마지막 결전에 모든 것을 걸 생각이었다.

사실 마지막으로 준비한 한 수도 있었다.

정말 자원력을 최대한 쥐어짜서 아주 은밀하게 만들어낸 기습 특공 함대.

이 기습 특공 함대를 이미 타투안의 네 번째 위성 뒤에 숨겨 놓은 상태였다.

타이밍만 잘 맞춰서 이강민의 본진 뒤를 칠 수만 있다면 무조건 자신의 승리라고 믿었다.

정찰 결과 이강민은 전략보단 어마어마한 양을 모아 한 방에 자신을 몰아치려고 했기에 이 전략이 잘만 먹힌다면 이강민의 콧대를 납작하게 해줄 수 있을 것 같았다.

‘넌 꼭 결정적인 순간에는 상대방을 압도하려고 하지! 그 사소한 습관이 너에게 날카로운 비수가 되어 꽂힐 것이다!’

이이다 쿄야는 자신에게 승리의 기운이 기운다고 느꼈다.

마지막 결전. 그는 이 한 번의 결전을 이겨내고 결국 이번 결승전 역시 멋지게 역전승할 생각이었다.

“아!! 이건!! 함, 함정입니다! 이 엄청난 규모의 함대는 알맹이가 빠진 껍데기일 뿐이었습니다!”

사회자의 경악 어린 외침.

“그게 끝이 아닙니다! 이, 이건!! 전술핵입니다!”

해설자 역시 경악 어린 표정을 지으며 외쳤다.

“쿄야 선수, 완벽하게 함정에 걸렸습니다. 아!! 전술핵이 곧 터집니다!”

또 한 명의 해설자가 매우 흥분한 목소리로 크게 외치는 순간 이강민이 미리 준비해 둔 몇 개의 전술핵이 동시에 터졌다.

타투안 행성마저 집어삼킬 만큼 거대한 폭발이 일어났다.

스타 워 역사상 유래를 찾아보기 힘든 엄청난 규모의 함대가 단 한 번의 폭발로 전멸했다.

이강민의 공성지계(空城之計).

이이다 쿄야가 자신의 습관을 이용할 것이라는 것조차 역으로 이용해 버린 이강민의 전략.

그것은 아주 멋지게 성공했다.

비록 이강민도 자신이 가진 거의 모든 함대를 잃었지만 가장 중요한 전력은 그대로 남아 있었다.

어차피 껍데기만 버린 것이었다.

중요한 알맹이는 그대로 남은 상태.

당연히 남은 전투는 볼 필요도 없었다. 일방적인 학살.

그렇게 이이다 쿄야는 타투안 전투에서의 충격 때문에 제대로 저항도 하지 못하고 그대로 게임을 내주고 말았다.

결국 이번 경기 역시 이이다 쿄야는 이강민에게 압도당했다.

이강민은 과연 별의 제왕이라 불릴 만했다.

스타 워의 절대 강자 이강민. 하지만 결승전에서 승리한 그의 얼굴엔 그다지 큰 기쁨이 보이지 않았다. 오히려 마치 뭔가 아쉬운 것 같은 표정으로 자신이 들어갔던 가상현실 접속 캡슐을 바라보았다.

“네, 맞습니다. 다시 한번 말씀드리죠. 전 오늘 이 시간부로 스타 워 프로게이머의 생활을 끝내겠습니다.”

이강민은 단호한 표정으로 다시 한번 자신의 굳은 의지를 말로 표현했다.

모든 이가 놀랐다.

기자 회견장에 있던 기자들도 놀라고 근처에서 구경하던 많은 팬들도 놀랐다.

아무도 예상하지 못한 이강민의 폭탄 발언.

“갑자기 그런 결단을 내리게 된 이유라도 있습니까?”

한 기자의 질문.

“갑자기 내린 결단이 아닙니다. 이미 일 년 전부터 생각해 온 일이었습니다.”

“혹시…… 최근에 스타 워의 인기가 계속 하락하고 있는 것 때문은 아닌가요?”

“그것 역시 아닙니다. 흐음…… 이왕 이렇게 된 거, 솔직하게 말씀드리죠. 전 스타 워의 프로게이머를 그만두지만 그렇다고 게임을 그만두지는 않을 겁니다.”

“그건 무슨 뜻인가요? 혹시 다른 게임에 도전하시겠다는 뜻인가요?”

“맞습니다. 전 다른 게임에 도전할 생각입니다. 아니, 이미 도전 중이라고 해야 맞겠군요.”

이강민은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그렇다면…… 혹시 그 게임이 ‘The One’인가요?”

또 다른 기자의 날카로운 질문.

“역시, 모두 예상하시고 계시는군요. 맞습니다. 저는 이미 오래전부터 ‘The One’을 플레이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제부터는 오로지 그 게임에 집중할 생각입니다.”

웅성웅성

많은 이들이 놀랐다.

아무리 ‘The One’이 최고의 인기를 누리고 있다지만 스타 워도 어느 정도 인기가 있는 게임이었고, 결정적으로 서로 분야가 조금 다른 게임이었기에 스타 워의 절대자 이강민이 ‘The One’에 진출하겠다고 선언하리라고는 아무도 예상하지 못한 것이었다.

“그럼 ‘The One’에서도 프로게이머로 활동하실 생각입니까?”

“흐음, 그 부분은 확답을 드릴 수가 없겠군요. 굳이 프로게이머의 생활을 청산할 생각은 없습니다. 하지만 프로게이머의 제약이 ‘The One’을 플레이하는 데 걸림돌이 된다면 당분간 프로게이머 생활을 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이강민의 말은 곧 ‘The One’이 우선이고 프로게이머는 차선이라는 얘기였다.

“팬들이 많이 실망할 것이라고는 생각해 보시지 않으셨습니까?”

“글쎄요. 전 팬 여러분에게 늘 도전하는 모습을 보여드리고 싶습니다. 스타 워에서는 더 이상 그런 모습을 보여드릴 수가 없습니다. 하지만 ‘The One’이라면 가능합니다. 이건 저에게 도전입니다. 팬 여러분이 절 진정 아끼신다면 저의 도전을 계속 지켜봐 주실 것이라고 믿습니다.”

이강민의 확고한 태도.

이미 그는 마음을 굳힌 것 같았다.

“그렇다면 혹시 ‘The One’에서 사용하시는 캐릭터 이름을 공개하실 수 있으신가요?”

“아니요. 지금은 공개할 수 없습니다. 하지만 언젠가 때가 되면 제 스스로 공개하겠습니다.”

별의 제왕 이강민의 스타 워 프로게이머 은퇴와 ‘The One’으로의 진출 선언.

그것은 상당한 화제가 되었다.

하지만 그것이 끝이 아니었다.

여러 곳에서 들려오는 유명 프로게이머들의 ‘The One’ 진출 선언.

아니, 단순히 프로게이머들뿐만 아니라 게임으로 유명해진 수많은 그룹이나 팀, 그리고 길드가 ‘The One’으로 진출한다고 선언했다.

정확하게 말해서는 이미 진출한 상태였다.

누구보다 게임을 잘 알던 그들이기에 이미 ‘The One’에서 자리를 잡은 상태가 대부분이었다.

단지 확실한 진출 선언만 나중에 했을 뿐이다.

몰려들고 있었다.

수많은 에이스가 ‘The One’으로 몰려들고 있었다.

그동안 서로 다른 게임에서 활동하며 부딪치지 않던 수많은 에이스.

그들이 ‘The One’이라는 한 게임에서 모두 충돌하려 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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