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59. 클레타와 마가레타 ―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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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ne’은 정말 많은 유저들이 하는 게임답게 유명한 유저도 아주 많았다.
앞서 몇 번 말했던 천무칠성(세븐스타)이라든지 대륙 사은자나 W4 같은 이들은 말 그대로 톱(Top) 클래스의 유저들이었다.
하지만 톱클래스의 유저들은 이들만 있는 것이 아니었다.
워낙 많은 이가 하는 게임이었기에 톱클래스의 유저도 정말 다양하게 많았다.
그 톱클래스 중에서도 최고를 꼽은 게 천무칠성이었지만 그 아래에 존재하는 톱클래스 유저들이 천무칠성에 비해 엄청 떨어지는 수준인 건 절대 아니었다.
그림자 남매도 당연히 톱클래스 유저 중 하나였다.
그들은 실력도 실력이지만 워낙 독특한 이들이라 많은 유명세를 탔다.
‘월광(月光)의 마가레타와 월암(月暗)의 클레타.’
일명 그림자 남매.
정말 재미있는 것은 두 남매 모두 도적 계열의 직업을 지녔지만 그 성향은 완전히 다르다는 것이었다.
월광의 마가레타는 달빛의 학살자라는 호칭을 얻을 만큼 아주 강력한 전투력을 지닌, 아마도 도적 계열의 직업을 지닌 유저들 중에서는 사은자 중 한 명으로 분류된 흑무(黑霧)를 제외하고는―정면 대결만 따지면 흑무보다 훨씬 강했다―가장 강한 유저로 손꼽히는 유저였다.
절대 흔하지 않은 전투 도적, 그것도 은밀한 전투가 아닌 정면 대결에 특화된 아주 특이한 전투 도적.
대신 도적이 기본적으로 가져야 할 은밀함이나 재빠른 손재주 같은 건 전혀 가지지 못한 기형적인 도적.
더 재미있는 건 마가레타가 여성 유저라는 사실이었다. 그녀의 관한 재미있는 일화가 하나 있었는데, 그녀가 한때 도적 길드에 가입하기 위해 가입 시험을 봤는데 그 시험이 어느 경비가 삼엄한 NPC의 집에서 한 가지 물건을 가지고 나오는 것이었다.
경비가 삼엄하다지만 결국 NPC의 집이었고, 보통의 평범한 도적 계열 유저들은 손쉽게 잠입하여 물건을 훔쳐 올 수 있었다.
그런데 마가레타는 그 시험을 전혀 다른 방법으로 해결했다.
정면 돌파.
NPC의 집에 존재하는 모든 경비병을 때려눕히고 당당히 정문으로 걸어 들어가 그 물건을 가지고 나왔다.
당연히 그녀는 원했던 길드 가입을 할 수 없었다.
분명 도적 계열의 유저였지만 그녀의 능력은 도적이라 부르기엔 힘들었다.
그렇다면 월암의 클레타는 무엇으로 유명한가?
그는 마가레타의 남동생이었다.
그리고 그는 마가레타와는 완전 정반대로 진정한 도적이었다.
잠입, 은신, 손재주, 훔치기 등등.
그의 능력은 보통의 도적들은 상상도 할 수 없을 만큼 뛰어났다.
오죽했으면 그가 마음만 먹으면 그 어떤 길드의 창고도 털 수 있을 것이라는 말이 나왔겠는가?
하지만 그런 쪽으로 그렇게나 뛰어났던 그는 정작 자신의 누나가 가진 전투 능력의 십 분의 일, 아니, 만분의 일도 가지지 못했다.
전투 능력 전무.
심지어 동네 양아치 NPC도 못 이길 정도로 약했다. 물론 도망가는 건 잘했다. 하지만 한 번 잡히면 끝이었다.
전투력은 그냥 제로(0)라고 보는 게 좋았다.
전투에만 특화된 마가레타와 그와 정반대인 클레타.
사람들은 이 둘을 그림자 남매라 불렀다.
물론 인지도 면에선 천무칠성이나 다른 톱클래스들에 비해 떨어지는 건 사실이었다.
하지만 분명한 건 그들은 분명 톱클래스의 유저였고, 나름의 명성을 얻을 것이라는 것이었다.
물론 나는 전생에서 이들을 직접 본 적은 없었다.
그냥 소문으로만 들었을 뿐이다. 그래서 내가 기억해내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린 것이었다.
탁탁.
가볍게(?) 클레타를 포위하고 있던 유저들을 정리한 마가레타는 손을 털었다.
교묘하게 달빛의 그림자에 숨어서 전투를 치렀던 그녀는 천천히 달빛 아래로 나오며 입을 열었다.
긴 붉은색 머리카락에 상당히 귀여워 보이는 인상의 여인. 클레타와 묘하게 닮았지만 무척 어려 보이는 모습이었다.
“……너, 내가 혼자 다니지 말라고 했지?”
“그, 그게 누나…….”
클레타는 무척 당황한 표정을 지었다. 방금 일곱 명의 유저에게 포위당했을 때도 당당하게 도발하던 모습과는 무척 달라 보였다.
마치 고양이 앞에 쥐처럼 잔뜩 움츠러든 클레타. 보기 안쓰러울 정도였다.
“우타와 애들이 너 노리고 있다고 말했지? 그걸 까먹은 거야?”
“아, 아니…… 난 정말 그냥 야시장 구경만 나온 건데…….”
“구경? 구경만 나온 애가 왜 영업을 하는 건데? 그 탓에 우타와 애들이 너를 찾아낼 수 있었잖아. 몰라? 그 지역에서 함부로 영업하면 놈들에게 자동으로 위치가 노출되고 전투가 걸린다는 거?”
“당연히 알지. 근데 워낙 월척이 있어서.”
“흐음, 아직 정신 못 차렸네. 오늘 이 누나랑 상담 좀 길게 해야겠는데?”
“누, 누나! 오백 골드! 한 번에 오백 골드를 훔쳤어! 이 정도면 내가 욕심낼 만하잖아.”
클레타는 품 안에 있던 오백 골드를 꺼내 마가레타에게 보여주며 말했다.
“호오∼ 오백 골드? 어떤 사람인지 몰라도 엄청 부자였나 보네?”
“응! 대박이었어. 사실 여유만 있었다면 더 털고 싶었는데 왠지 위험한 오라를 풀풀 풍기는 유저라 최대한 가볍게 털어온 건데 이 정도야.”
“그래? 우리 레타, 잘했네…… 라고 말해줄지 알았어? 오백 골드건 오천 골드건 더 중요한 게 뭔지 잊은 거야? 안 되겠다. 일단 돌아가서 오늘 다시 교육 좀 다시 받자.”
빠득.
팔짱을 끼고 있던 마가레타는 무척 화가 난 표정으로 클레타를 쳐다보았다.
그런데 내가 월척이었나? 어느새 한 마리의 씨알 굵은 물고기가 된 나는 더 이상 지켜보고만 있을 수는 없었다.
일단 돌려받을 게 있는 이상 그건 확실히 돌려받아야 했다.
“근데 어쩌죠? 월척은 월척인데…… 아직 확실히 잡지는 못했군요.”
스윽.
나는 어둠 속에 동화되어 있던 은신을 풀고 달빛 아래로 천천히 걸어 나갔다.
“……!!”
“……!!”
동시에 놀라는 마가레타와 클레타.
하지만 둘의 반응은 정반대였다. 클레타는 재빨리 뒤로 물러났고 마가레타는 허리춤에 꽂고 있던 단검을 다시 뽑았다.
챙!
“누구냐!!”
“말했잖아요. 저기 당신 동생이 잡은 월척이라고. 물론 아직 완전히 잡힌 월척은 아니지만요.”
난 가볍게 웃었다.
예전에 마가레타와 클레타, 이 두 그림자 남매의 소문을 들었을 때 무척 재미있는 남매라고 생각했었다.
그렇기에 왠지 이 두 사람이 반가웠다.
물론 반가운 건 반가운 것이고 돌려받을 건 돌려받을 것이다.
내 돈 500골드와 약간의 수고비(?) 정도는 돌려받을 필요가 있었다. 마가레타의 전투력이 약간 귀찮게 느껴졌지만 그렇다고 내 돈을 포기할 수는 없었다.
“누나, 저 사람이에요. 제가 오백 골드를 훔친 유저가.”
클레타는 나를 정확하게 기억했다.
여전히 후드 망토를 깊숙이 눌러쓰고 있었지만 그 모습이 흔한 건 아니었기에 클레타가 기억하는 건 당연할지 몰랐다.
“호오∼ 내 동생이 약간 실례를 범한 분이군요. 하지만…… 그건 이미 지나간 일. 그리고 원래 돈이란 건 돌고 도는 것이니 너무 아쉬워하지 마세요.”
그림자 남매는 내가 찾는 게 돈뿐이라고 생각하는 것 같았다. 정작 나에게 중요한 건 돈보다 열쇠였지만 굳이 이들에게 그것을 말해줄 필요는 없었다.
“물론이죠. 돈이란 돌고 도니까. 이제 그 돌고 도는 돈을 되돌려 받을 생각입니다.”
“호호, 지금 저와 제 동생에게 돈을 돌려달라는 것인가요? 하지만 아쉽게도 우리 남매는 누군가에게 뭔가를 빼앗아본 적은 많아도 우리 것을 빼앗겨 본 적은 없는데. 그냥 여기서 물러나신다면 더 이상 저희도 당신의 물건을 건드리지 않겠습니다. 어떠세요?”
마가레타는 마치 마음만 먹으면 또 내 물건을 훔칠 수 있다는 것처럼 얘기했다.
“하하하, 대단한 자신감이군요?”
“자신감이라니요. 그저 저와 제 동생의 실력을 믿을 뿐이죠.”
달빛의 학살자라는 호칭은 괜히 붙은 게 아니었다. 확실히 마가레타의 전신에서 느껴지는 투기는 지금까지 만났던 그 어떤 유저보다도 강렬했다.
마치 검은 마녀에게서 느꼈던 그것과 흡사했다.
“때론 자신의 실력을 너무 과신했다가 낭패를 보곤 하죠.”
검은 마녀와의 싸움은 피했지만 마가레타와의 싸움은 피할 생각이 없었다.
검은 마녀와는 얽히는 것도 싫었고 아무런 이해관계가 없었기 때문에 당연히 무의미한 싸움을 피했던 것이고, 마가레타와는 분명 이해관계가 얽혔기 때문에 필요에 의해 싸우는 것이었다.
“호호, 굳이 벌주를 마시시겠다면 저도 어쩔 수 없군요.”
스윽.
마가레타는 두 자루의 단검을 가슴 앞으로 바짝 당기며 웃었다.
“글쎄요…… 누가 벌주를 마실지는 조금 있다가 보도록 하죠.”
나도 웃었다.
마을 안에서의 PvP는 불가능했지만 이미 클레타가 내 물건을 훔친 그 순간부터 클레타의 일행과 나는 전투가 가능해진 상태였다. 당연히 나는 마가레타와 클레타를 공격할 수 있었다. 이것이 ‘One’의 범죄자 시스템이었다.
이렇게 된 이상 마가레타를 확실하게 제압한 후 열쇠와 돈을 되찾는 수밖에 없었다.
“장비 8번.”
챙!!
나 역시 두 자루의 단검을 꺼내 들었다.
포이즌 대거와 문 블레이드.
이 두 자루의 단검은 달빛 아래에서 영롱한 빛을 내며 내 양손에 잡혔다.
흐릿!
최고의 전투 도적이라 불리는 마가레타답게 선공 역시 빨랐다.
빠르게 흩어지는 마가레타의 신형.
그것은 전형적인 도적의 보법이었다.
쨍!!
옆구리를 파고드는 두 자루의 단검. 마가레타는 어느새 내 옆으로 이동해 나를 공격했다.
하지만 나는 이미 마가레타의 움직임을 읽은 후였다.
침착하게 두 자루의 단검을 세워 마가레타의 공격을 막은 나는 곧장 반격을 시도했다.
스킬 조합, 포이즌 블레이드(Poison Blade)+질풍 찌르기
질풍독검(疾風毒劒)!!
파파팟!
두 자루의 단검이 요동치며 마가레타의 전신을 찔렀다.
빠른 반격.
하지만 마가레타는 과연 최고의 전투 도적다운 움직임을 보여주었다.
촤악!
현란한 백 스텝(Back Step).
그녀는 단순한 백 스텝 하나만으로 내 공격을 완벽하게 피했다.
‘호오!’
확실히 이 움직임 하나만으로도 전투 센스가 상당해 보였다.
그러나 놀라는 건 놀라는 것이고 전투는 전투였다. 난 백 스텝을 밟아 공격을 피한 마가레타를 향해 곧장 몇 개의 비도를 던졌다.
가벼운 견제 공격이자 다음 공격을 위한 준비 작업.
당연히 마가레타는 또다시 재빠른 몸놀림으로 그 몇 개의 비도를 어렵지 않게 피했다.
지금까지의 그녀의 몸놀림은 가벼워 보였다.
아무런 문제도 없어 보였고, 충분히 나를 이길 수 있다는 자신감마저 보였다.
하지만 그녀가 모르는 것이 하나 있었다.
그것은 바로 진짜 공격은 지금부터 시작된다는 것이었다. 그녀를 상대로 나는 로그 계열이나 헌터 계열, 또는 어쌔신 계열의 스킬만 사용할 생각이었다.
물론 그 계열의 스킬들은 지금부터 폭풍처럼 그녀를 향해 몰아칠 것이다.
그것을 그녀가 막을 수 있을지는 지켜봐야 할 것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