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58. 클레타와 마가레타 ― 1
* * *
스윽.
흠칫!
‘음?’
누군가 내 옆을 부대끼며 지나가던 그 순간 본능적으로 뭔가 이상한 위화감이 느껴졌다.
헌터 계열 스킬과 로그 계열 스킬을 익히고 다른 유저들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을 만큼 정밀한 감각을 지니고 있던 나에게도 아주 미세한 위화감이었다.
하지만 난 그 미세한 위화감을 놓칠 사람이 아니었다.
‘……시프(Thief)?’
내 경험상 이 감각은 전문적으로 훔치기 스킬을 익힌 시프의 손길이 분명해 보였다.
난 그 감각을 느낀 순간 재빨리 주변을 살폈다.
그리고 방금 내 옆을 지나 사람들 사이로 사라진 붉은 머리의 유저를 발견할 수 있었다.
놀랍게도 아주 잠깐의 순간 동안 벌써 내 시야를 아슬아슬하게 벗어나려고 있었다.
‘호오! 감히 날 털어?’
난 상당히 색다른 느낌이 들었다.
어지간한 시프들은 절대 내 주머니에 손도 대지 못한다. 이미 내 감각은 보통 유저들이 가질 수 있는 범위를 넘어선 지 오래였기에 어설픈 시프들이 나에게 손을 뻗었다면 내 주머니에 손을 넣기 전에 이미 나에게 잡혔을 것이다.
실제로 몇 명의 시프를 그렇게 잡아서 역으로 털어먹은 적도 많았다.
그렇기에 이번 시프는 무척 신선해 보였다.
‘하지만 신선하다고 이대로 놓아줄 수는 없지!’
난 재빨리 사냥꾼의 징표 스킬을 활성화시켜 붉은 머리의 유저를 머릿속에 똑똑히 각인시켰다.
사냥꾼의 징표 스킬이 발동된 이상 붉은 머리의 유저는 쉽게 나에게서 벗어날 수 없을 것이다.
‘어디까지 도망갈 수 있는지 보자고.’
흐릿.
나 역시 로그 스킬을 익힌 몸이었다.
도적의 움직임은 도적의 움직임으로 잡으면 그만이었다.
난 그렇게 녀석을 추적하며 녀석이 나에게서 무엇을 훔쳐 갔는지 살펴보았다.
“이런, 하필 그것인가?”
놈이 훔쳐 간 건 약간(?)의 골드와 한 개의 물건이었다. 골드는 대략 500골드 정도? 보통 유저들에겐 엄청 큰 금액이었지만 나에겐 그다지 큰돈은 아니었다.
문제는 골드와 함께 슬쩍 집어간 물건이었다.
그것은 내 개인 창고의 비밀 열쇠였다. 물론 그 열쇠 하나만으로 개인 창고를 열 수 있는 건 아니었지만 만약 그 열쇠가 없으면 나 역시 창고를 열 수 없었다.
하필 재수가 없게도 시프는 골드와 함께 그 열쇠를 집어갔다. 아마도 무작위로 가져간 것이겠지만 내 입장에서는 좀 짜증이 나는 상황이었다.
이렇게 된 이상 난 그 시프를 반드시 잡아야 했다. 만약 그 열쇠가 없어진다면 난 큰 손해를 입을 수밖에 없었다.
다양한 방법을 강구한다면 어떻게 창고를 열 수는 있겠지만 그렇게 해도 결국 그 창고는 더 이상 사용할 수 없게 된다. 그뿐인가? 창고를 훼손한 책임을 물어 위약금까지 물어야 했다.
당연히 여러모로 나에게 큰 손해였다.
파팟!
그 시프는 생각보다 빨랐다.
아니, 빠르기보단 은밀하다는 표현이 맞을 것 같았다.
놀랍게도 사냥꾼의 징표가 정확하게 활성화된 상태에서도 그 시프의 흔적을 발견하는 게 여간 힘든 것이 아니었다.
‘……이거 보통 시프가 아닌 거 같은데?’
확실히 내 물건을 아무렇지도 않게 훔쳤다는 것부터 범상치 않은 시프였다.
하지만 그렇다고 쉽게 놓쳐 줄 내가 아니었다.
나는 오감 증폭 스킬까지 사용하고 사냥꾼의 눈, 로그의 흔적 찾기 스킬까지 사용해 그 시프의 뒤를 쫓았다.
그렇게 몇 개의 골목을 돌고 돌았을까?
아슬아슬하게 흔적을 뒤따라가던 나는 드디어 그 시프를 발견할 수 있었다.
작은 체구에 붉은색 머리의 한 유저.
그 유저는 꽤 으슥한 골목에 멈춰 서 있었다.
사실 정확하게 따지자면 난 이 시프 유저를 놓친 것이었다.
몇 골목만 더 돌았다면 사냥꾼의 징표고 뭐고 난 흔적을 더 이상 찾을 수 없었을 것이다.
그만큼 이 시프 유저의 움직임은 은밀했다.
그렇다면 난 어떻게 이 시프 유저를 따라잡을 수 있었을까?
따라잡은 게 아니었다.
이 시프 유저가 본의 아닌 상황 때문에 더 이상 도망가지를 못한 것이었다.
“클클, 역시 네놈이 자주 다니는 길목에서 잠복한 보람이 있었어. 오늘은 절대 도망 못 간다.”
다른 유저들이 있었다.
으슥한 골목길에서 일곱 명의 유저가 그 시프 유저를 포위하고 있었다.
“…….”
“그동안 우리 구역에서 멋대로 활개 치고 다니면서 신났었지? 하지만 그것도 이젠 끝이다.”
난 일단 묘한 상황에 빠진 그 시프를 지켜보기로 결정했다. 일이 어떻게 된 건지는 몰라도 상황이 웃기게 돌아가고 있었다.
‘……도둑 길드 유저들인가?’
‘One’의 세상에는 양지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었다. 이곳은 실제 세상과 똑같이 양지와 음지가 공존했다.
지금 저 시프 유저를 포위하고 있는 유저들은 전형적인 음지의 유저들 같았다.
대충 겉모습만으로도 그들은 도둑 길드 소속의 유저들인 것 같았다.
이 경우는 뻔했다.
저 시프 유저는 도둑 길드에 소속되지 않은 상태로 이 지역에서 마음대로 영업(?)을 했고, 그 결과 이 지역의 도둑 유저들이 모여 만든 길드에서는 저 시프 유저를 잡으려고 오래전부터 따라다닌 것 같았다.
무슨 도둑질하는데 길드의 허락이 필요하냐고?
그건 정말 아무것도 모르는 초보들이나 하는 질문이었다.
좋은 사냥터를 강한 길드들이 선점해 버리는 것과 똑같은 이치로 좋은 영업장은 세력이 가장 강한 도둑 길드가 선점하는 게 당연했다.
유저들이 선점하지 않는다고 해서 무주공산으로 있는 지역은 거의 없었다.
유저들이 선점하기 이전에 이미 도둑 계열 NPC들이 길드를 만들어 선점하고 있는 게 기정사실이었다.
아마도 이 지역 역시 그 NPC들을 유저들 연합이 몰아내고 유저들이 차지한 게 분명할 것이다.
그것이 기본 법칙이었다.
대형 도시의 NPC 도둑 길드를 몰아낼 정도라면 유저들이 만든 길드는 꽤 강한 것이 틀림없었다.
그렇기에 저 시프 유저는 어떻게 보면 큰 실수를 저지른 것이었다.
이 경우 ‘One’의 시스템상 저 유저들이 시프 유저를 PK해도 전혀 문제가 되지 않았다.
이미 저 시프 유저는 이곳에서 영업한 그 순간부터 이곳을 장악한 도둑 길드와 길드 전쟁 상태로 돌입한 것이었기 때문에 시스템상 아무런 보호를 받지 못했다.
‘그나저나…… 이러면 내 돈과 열쇠는 어떻게 돌려받지?’
난 갑자기 이상하게 변한 상황 때문에 잠깐 고민할 수밖에 없었다.
“상도의라는 게 장사하는 장사꾼들에게만 있는 게 아니잖아? 이쪽 세계에서도 상도의라는 게 있는 것이고…… 네 실력이 아무리 좋아도 결국 이 지역에서 영업하려면 우리 길드에 들어오든지 아니면 일정 비율의 상납금을 바치는 게 당연한 것 아니겠어? 넌 그 규칙을 어겼기 때문에 척살령이 내려진 것이고…… 그러니 우리가 너무 야속하다고 생각하지는 말아라.”
어쩌면 도둑 길드의 저런 반응은 당연한 것일지 몰랐다. 그들도 괜히 아무 이유 없이 큰돈을 써가며 길드를 유지하는 게 아니었다.
다 그만큼의 이득을 위해 뭉친 것이었다.
그런데 저 시프 유저처럼 자기 실력만 믿고 혼자 일하는 유저들이 그 이득을 가로챈다면 당연히 저런 반응을 보일 수밖에 없다.
당연히 개인은 단체에 비해 약할 수밖에 없다.
물론 나는 그 절대 원칙을 깨기 위해 부단히 노력 중이지만 안타깝게도 저 시프는 그런 노력을 하는 것처럼 보이지는 않았다.
“……거 조잘조잘 말 되게 많네.”
지금까지 조용히 있던 시프가 입을 열었다.
명백한 도발.
딱 보기에도 전투 능력은 별로 없어 보이는 시프가 한 말치고는 꽤나 도발적이었다.
당연히 그 시프를 포위하고 있던 일곱 명의 유저들 얼굴은 급속도로 일그러졌다.
“이 새…….”
순식간에 금방이라도 시프를 게임 아웃시킬 것 같은 분위기가 조성되었다.
하지만 바로 그 순간 아주 큰 변화가 일어났다.
파팟!
“헉!!”
갑자기 골목길의 어둠 속으로 뛰어든 그림자.
긴 머리카락을 휘날리며 양손에 짧은 단검을 들고 있는 그 그림자는 아주 놀라운 속도로 시프를 포위하고 있던 일곱 명의 유저들 사이를 파고들었다.
스팟!
그리고 이어진 몇 번의 섬광.
그것은 달빛이 날카로운 단검의 검날에 반사되어 반짝인 것이었다.
“커억!”
한 명의 유저가 목을 부여잡고 쓰러졌다.
‘호오!’
다른 이들은 몰라도 나는 그 장면을 똑똑히 볼 수 있었다. 이미 모든 감각이 최고조로 활성화되었고 로그만의 특수 스킬인 어둠의 시야까지 사용했기에 그 유저의 움직임은 나에게 확실히 보였다.
“……달빛의 학살자!”
무슨 사연이라도 있었던 것인가? 도둑 길드의 유저들은 그림자의 정체를 한눈에 알아보았다.
‘달빛의 학살자?’
그들의 외침은 왠지 나에게도 상당히 익숙했다.
“막아!”
쓰러진 유저를 제외한 여섯 명의 유저들은 재빨리 난입한 유저를 상대하려고 했다.
하지만 내가 보기에 그들은 그 난입한 유저를 이길 수 없었다.
한눈에 보아도 전투력의 차이는 명백하게 보였다.
휘릭!
그림자는 빨랐다.
마치 모든 것을 계산에 넣고 있었던 것처럼 한 치의 흐트러짐도 없이 나머지 여섯 명의 유저들을 학살하기 시작했다.
그 모습이 정말 달빛의 학살자라는 말이 잘 어울리는 것 같았다.
‘달빛의 학살자…… 달빛의 학살자…….’
난 계속 아주 익숙하게 느껴지는 그 호칭을 되뇌며 머릿속의 기억을 검색하고 있었다.
뭔가 분명 내가 알고 있는 호칭 같았는데 기억이 희미했다.
치익!
“큭!!”
털썩.
아주 짧은 시간이었지만 그 그림자는 깔끔하게 일곱 명의 유저들을 모두 정리했다.
아무리 그들이 전투 계열 직업을 지니지 않은 도둑 계열의 유저들이었다지만 그래도 이렇게 깔끔하게 다수의 유저를 정리하는 건 쉬운 일이 아니었다.
‘움직임이 아주 좋은데…… 아!!’
난 마지막 일곱 번째 유저가 쓰러지던 그 순간 드디어 내 기억 속 한구석에서 달빛의 학살자라는 호칭을 찾아냈다.
‘그림자 남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