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55. 산처럼 쌓여가는 골드 ―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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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은 마녀와 헤어지고 노을 분지를 떠났다. 굳이 검은 마녀와 더 얽히고 싶지도 않았고, 자꾸 이상한 기분이 들어 왠지 노을 분지에는 가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대신 나는 노을 분지보다는 조금 거리도 멀고 사람들도 많지 않아서 효율이 조금 떨어지지만 그래도 나름대로 유명한 PvP 필드 중 하나였던 칼날산맥에서 다른 유저들과 대결했다.
예상했던 대로 아직은 많은 유저들이 PvP의 기본이 되어 있지 않았다. PvP에 좋은 각종 기계공학 아이템들을 사용하지 않는 것은 물론이고 아예 전투 자체를 제대로 하지 못하는 이들도 많았다.
특히 몇 가지 스킬만 반복해서 사용하는 것으로 다른 유저들을 잡을 수 있을 것이라 믿는 유저들, 흔히 발컨(발로 컨트롤한다고 해서 붙여진 치욕적인 호칭)이라 불리는 그런 유저들은 단순히 레벨과 아이템만 믿고 PvP 필드에 나온 이들이었다.
물론 그런 방법이 안 먹히는 것만은 아니었다.
워낙 그런 수준의 유저들이 많았기 때문에 그들은 높은 레벨과 좋은 아이템만으로도 많은 킬 포인트를 얻을 수 있었다.
하지만 그건 같은 수준의 유저들끼리나 통하는 것이었다.
조금이라도 PvP의 이해도가 높고 연습을 많이 한 유저라면 어지간한 레벨과 아이템 차이는 충분히 극복할 수 있었다.
어쨌든 나에겐 모두가 먹기 좋은 먹잇감일 뿐이었다.
지금 그 어떤 사람도 나보다 PvP에 대한 이해도가 높을 수 없었다.
그뿐인가? 내 직업은 어지간한 레벨과 아이템 차이는 아무렇지도 않게 극복할 수 있을 정도로 사기적인 직업이었다.
특히 PvP에선 그 효율이 더 극대화되었다.
난 차근차근 킬 포인트를 쌓아갔다. 이미 엠페러 길드 일행을 한꺼번에 잡아내며 꽤 많은 킬 포인트를 쌓았던 나는 칼날산맥에서 활동하는 거의 모든 유저가 몇 번씩 중복해서 잡아내며 감히 남들은 생각할 수 없을 만큼의 포인트를 단시간 내에 획득했다.
아직은 킬 포인트로 할 수 있는 것들이 많이 생겨나지 않았지만 이제 곧 많은 것들이 업데이트될 것이기 때문에 미리미리 많이 획득해 놓는 것이 좋았다.
그렇게 대략 한 달을 PvP에 집중하며 꾸준히 우타와에 들러 경매장을 이용해 그것을 계속 사들였다.
좀 짜증 나는 건 내가 최대한 티가 안 나게 사들였건만 벌써 몇 명의 유저가 이상함을 느끼고 그것의 가격을 올리는 바람에 최초 그것을 살 때보다 거의 배나 오른 가격으로 구매하게 되었지만 굳이 크게 상관하지는 않았다.
기껏해야 약간 이상함을 느낀 장사꾼들이 잠깐 장난을 치는 수준이었다.
절대 그들은 내가 왜 이 물건을 사들이는지 알지 못했다. 오히려 가격은 뛰었지만 그 몇 명의 장사꾼들이 그것을 적극적으로 끌어모아준 덕분에 난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많은 양을 모을 수 있었다.
원래 그렇게 쉽게 구할 수 있는 것이 아니었건만 장사꾼들은 여러 가지 교묘한 수완을 발휘해 여기저기에서 모조리 그것들을 끌어모은 것 같았다.
덕분에 창고를 추가로 네 개를 더 임대하고 돈이 조금 부족해 남아 있던 네 개의 저택 중 하나를 2만 골드에 팔아버렸다.
그렇게 해서 임대한 대형 개인 창고가 총 열 개.
그 열 개의 창고에 그것들이 꽉꽉 들어차 있었다. 무려 한 달 동안 내가 가진 전 재산을 쏟아부은 결과였다.
이제 한 달이 지났으니 내가 생각했던 일이 일어날 때가 된 것 같았다.
한 달 전, 재빨리 드워프 종족으로 환생을 한 몇 명의 유저들이 제대로 된 기술을 배우고 인정받는 드워프 장인이 될 시기가 바로 이즈음이었다.
그들이 드워프 장인으로 인정받는 그 순간, 그들은 분명 한 가지 기술을 배울 것이다.
그것이야말로 드워프 기술의 핵심이었고 드워프들이 왜 위대한 장인으로 불리게 됐는지 증명해 주는 것이었다.
일명 화심(火心)의 조작이라 불리는 그 기술.
그것은 일종의 불을 만드는 기술이었다.
오로지 드워프들만이 사용할 수 있는 불.
그 불의 이름이 화심이었다.
그 불이 있음으로 인해 드워프들은 다른 종족들보다 월등한 기술을 습득할 수 있었다.
오로지 드워프만이 다룰 수 있는 불.
화심은 신이 드워프들에게만 허락한 최고의 보물이었다.
그렇다면 그 화심이라는 것과 내가 모은 그것과 무슨 관계가 있는 걸까?
당연히 지금은 다들 모르고 있겠지만 화심과 그것은 아주 밀접한 관계가 있었다.
드워프로 환생한 이들도 화심의 조작이라 불리는 기술을 배우기 전까지는 그것이 화심과 어떤 관계가 있는지 몰랐다.
워낙 은밀한 기술이라 마지막에 한 명의 장인으로 인정을 받아야 전수받는 기술이었기에 그전까지는 철저히 모든 것을 숨겼기 때문이다.
덕분에 나는 아무런 제약도 받지 않고 그것을 차근차근 모을 수 있었다.
현재 드워프로 환생한 사람들은 무척 많았다.
많은 기술자들이 드워프로 환생을 해서 진정한 장인이 되고자 했다.
하지만 제대로 환생하고 꾸준히 기술을 익혀 장인의 칭호를 얻을 만한 이들은 대부분 대형 길드나 연합 같은 곳에서 밀어준 사람들이었다.
그들의 장점은 자금력이 아주 좋다는 것이었다.
그들은 재료를 무한정 공급받으며 아주 빠르게 기술을 습득했다.
물론 그 대가로 자신의 능력을 오로지 길드나 연합 안에서만 사용해야 했지만 어쨌든 그들의 입장에서는 나쁜 조건이 절대 아니었다.
난 이제 그런 그들에게 그것을 아주 조금씩 공급할 생각이었다.
물론 가격은 대략 내가 사들인 가격에 100배 정도를 받을 생각이었다.
내가 대략 개당 10실버에서 20실버 정도를 주고 그것들을 사들였으니 팔 때는 개당 10골드에서 20골드 사이로 팔 생각이었다.
비싸다고?
절대 아니었다.
기본적으로 그냥 놔둬도 대략 25골드까지는 가격이 올라갈 물건이었다.
물론 그렇게 되기까지는 시간이 좀 걸렸지만 어쨌든 그 정도로 가격이 폭등하는 물건이었다.
나중엔 없어서 못 파는 경우도 종종 생겼다.
현재 내가 그것을 사는 데 쓴 돈은 대략 4만 골드가 조금 넘었다.
단순히 계산해도 난 400만 골드 이상을 벌어들일 수 있었다.
400만 골드.
이건 감히 개인이 생각할 수 있는 골드의 수준이 아니었다.
아니, 개인이 아니라 길드나 연합이라고 해도 쉽게 만질 수 있는 골드의 양이 아니었다.
초대형 길드나 연합이라면 모를까 어지간한 길드나 연합들은 400만 골드는 고사하고 40만 골드도 구경하지 못하는 게 대부분이었다.
엄청난 규모를 자랑하던 그 엠페러 길드가 한 달 운영 자금으로 50만 골드 정도를 썼던 것을 보면 400만 골드가 얼마나 큰 금액인지 알 수 있었다.
그것도 개인이 400만 골드를 만진다는 건 지금이 아니라 앞으로 몇 년이 더 지나도 거의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었다.
하지만 나는 비록 아직 가지지는 못했지만 거의 확실히 가질 수 있는 길을 가고 있었다.
비록 내가 미래를 알고 있었다지만 이렇게까지 큰 액수의 골드를 만질 것이라고는 생각지도 못했다.
사실 400만 골드라면 그냥 그것을 모두 현금화시켜도 대략 40억 정도가 되는 엄청난 돈이었다.
물론 나날이 상종가를 치고 있는 DH 주식 덕분에 돈에 대해 아쉬움이 없는 나였기에 현금화하고 싶은 생각은 조금도 없었다.
오히려 현금으로 골드를 마음껏 살 수 있었다면 내가 살 수 있는 범위 안에서 골드를 구입했을 것이다. 하지만 사실상 골드 거래가 그렇게 활발하게 이루어지지 않는 ‘ONE’이었기에 아무리 돈이 있어도 그만한 액수의 골드를 구하기란 힘들었다.
워낙 인기가 있다 보니 그 누구도 쉽게 골드를 팔지 않았다. 오히려 게임 아이템과 골드의 거래를 게임 밖 현실에서 중계해 주는 경우가 많았다.
전 세계는 지금 ‘ONE’의 열풍 속으로 빠져들고 있었다. 열광하고 또 열광하고, 그 누구도 한 번 빠져들면 쉽사리 빠져나오지를 못했다.
그만큼 ‘ONE’은 대단한 게임이었다.
아니, 게임이라고 말하면 오히려 화를 내는 사람들이 많았다. 그들은 ‘ONE’을 제2의 인생이라 불렀다.
그리고 나도 충분히 그들의 의견에 동의하고 있었다.
그렇다면 그렇게 나에게 큰돈을 안겨줄 그것이 도대체 무엇이란 말인가?
그것의 이름은 흑석(黑石)이었다.
사람 주먹만 한 크기의 검은색 돌.
그것이 바로 흑석이었다.
지금 흑석은 간간이 석공들이 조각해 방어구에 장신구처럼 달거나 할 때밖에 쓰이지 않고 있었다.
한마디로 별로 쓸모가 없는 돌이었다.
당연히 상인들은 사 주지 않았고, 그 수요가 적다 보니 가끔은 땅바닥에 버리는 사람들도 종종 있을 정도였다.
그나마 석공들이 조각을 해 놓으면 꽤 아름다운 조각품이 되었기에 어느 정도 팔렸던 것이지 그것마저 없었다면 정말로 쓰레기로 구분되었을 물건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