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53. 난 내가 한 약속은 꼭 지킨다. ― 1
* * *
“장비 2번.”
촤륵! 챙! 철컥!
거대한 엘레멘탈 블레이드가 사라지며 검과 방패가 나타났다. 난 검과 방패를 빠르게 착용하고 방패를 곧장 머리 위로 올리며 잔뜩 몸을 웅크렸다.
스킬 조합, 쉴드 디펜스(Shield Defense)+방패 강화
방패의 벽!!
스킬 조합, 방패 숨기+결점방어(缺點防禦)
철갑 두르기!!
두 가지 스킬 조합을 빠르게 활성화시키며 충격에 대비했다.
꽝!
“큭!!”
최초 한 방, 확실히 느꼈던 대로 매우 강력한 기운이었다. 하지만 이게 끝이 아니었다.
꽈과광!!
“크으…….”
이어지는 몇 번의 충격.
방패로 완벽하게 방어했지만 그래도 생명력이 10% 이상 깎인 것 같았다.
화르륵!
그나마 내가 화염 속성 친화력이 엄청 높았기 때문에 이 정도로 끝난 것이었지, 만약 다른 속성의 마법 공격이었다면 적어도 네 배 정도의 타격을 입었을 것 같았다.
정말 생각지도 못한 불의의 일격.
난 지금 이 순간에도 계속해서 내 주변으로 퍼져 나가고 있는 불기운을 보며 내가 방금 맞은 기술이 뭔지 정확히 알 수 있었다.
“플레임 스트라이크(Flame Strike)!”
화염 계열 마법 중 대인용 마법으로는 최상급으로 통하는 플레임 스트라이크였다.
이 마법은 상당히 습득하기가 까다로운 것이었기에 아무나 사용할 수 없는 것이었다.
그리고 지금은 아직 게임 초반이라 할 수 있었기 때문에 더욱 이 마법을 사용할 수 있는 유저는 적었다.
난 그 순간 한 사람의 이름을 떠올릴 수 있었다.
라트마의 오른팔이자 라트마의 배우자라고 불리던 한 여인.
‘대군주의 마법사, 엘렌.’
왜 그 생각을 하지 못했을까?
라트마가 엠페러 길드를 만들 때부터 라트마의 옆을 지켰던 아주 강력한 마법사가 있다는 것을 잠시 잊고 있었다.
늘 마법사 유저 중 열 손가락 안에 꼽혔던 엘렌은 분명 대단한 마법사였다.
난 그런 엘렌의 존재를 잠시 망각했기에 이런 불의의 일격을 당한 것이었다.
그나마 엘렌이 화염 계열의 마법을 주로 사용하는 유저였기에 다행이었다.
대략 40m밖에 서 있던 라트마, 그리고 그 옆에서 다시 뭔가 캐스팅하고 있는 엘렌.
아이언 쉴드라고도 불렸던 라트마는 최강의 공격력을 자랑했던 엘렌을 보호하는 것만으로 자신의 역할을 다하는 것이었다.
사실 라트마의 공격력은 무시해도 좋을 정도였다.
그는 대단한 군주인 것만은 사실이었지만 1:1 능력이 매우 강력한 것은 아니었다.
물론 워낙 튼튼한 방어 집중형 직업을 지닌 라트마였기에 마음만 먹으면 그 누구도 쉽게 라트마를 쓰러뜨릴 수는 없었다.
그 얘긴 반대로 라트마가 마음만 먹으면 엘렌을 공격하는 건 쉽지 않다는 뜻도 되었다.
즉, 라트마와 엘렌의 조합은 무시하지 못하는 강력한 조합이라는 소리였다.
덕분에 난 계획을 수정할 수밖에 없었다.
원래는 먼저 다른 유저들을 대충 정리하고 라트마에게 절망을 안겨줄 생각이었지만 이제는 그렇게 할 수가 없었다.
엘렌의 존재를 확인한 이상 엘렌을 먼저 제압할 필요가 있었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내가 다른 유저들을 무시해도 되는 이유가 하나 있었다.
검은 마녀.
그녀는 확실히 강했다.
내가 작은 균열을 계속 자극하는 동안에 그녀 역시 또 다른 균열을 만들고 그것을 키워나가고 있었다.
이미 몇 명의 유저를 게임 아웃시켜 버린 그녀.
시간이 흐를수록 그녀의 존재감은 더욱 커져가고 있었다.
그녀가 이렇게 더욱 확실히 다른 유저들을 압박해 준다면 난 지금 가장 큰 위협이 되고있는 엘렌을 상대하는 것이 맞았다.
‘빠르게 제압한다!’
엘렌의 공격력은 대단했다.
그리고 라트마의 수비력 역시 대단했다.
둘의 강력한 조합. 그 조합을 그대로 놔두었다간 정말 위험할 수 있었다.
그렇기에 최대한 빠르게 제압할 필요가 있었다.
특수 스킬, 영웅의 포효!!
번쩍!
심장으로부터 뭔가 뜨겁고 강력한 기운이 마구 뻗어 나와 순식간에 온몸으로 퍼졌다.
온몸에 힘이 넘쳐났다.
모든 능력치가 50% 상승하면서 나는 10분간 말도 안 되는 능력을 소유한 유저가 되었다.
난 재빨리 압축 마나 물약 팩 하나를 입에 털어 넣으며 앞으로 튕겨 나가듯 나아갔다.
파팟!
고속 이동 스킬을 사용했는데 마치 초고속 이동 스킬을 사용한 것처럼 느껴졌다.
10분이라는 제한 시간이 있었지만 그 시간이면 충분했다.
“장비 4번.”
스르릉!
다시 한번 내 손에 들린 엘레멘탈 블레이드.
나는 40m라는 거리를 순식간에 좁히며 엘레멘탈 블레이드를 휘둘렀다.
라트마는 엘렌의 캐스팅이 끊기는 걸 막기 위해 엘렌의 앞을 가로막으며 내 공격을 방어하려 했다.
육중한 중갑을 입고 있던 그는 거대한 타워 쉴드를 이용해 내 공격을 막았다.
라트마의 움직임은 한눈에 봐도 완벽한 가딩(Guarding)이었다.
하지만 그는 완벽했을지 모르겠지만 적어도 나는 완벽함을 뛰어넘고 있었다.
스킬 발동, 오행신검, 천지참(天地斬)!!
하늘과 땅도 갈라 버릴 만큼의 강력한 베기 공격. 엘레멘탈 블레이드에 가득 맺힌 오러는 모든 것을 찢어버릴 것처럼 느껴졌다.
오행신검의 기술 중에서도 가장 파괴적인 기술.
영웅의 포효로 인해 사기적인 능력치를 지니게 된 내가 이 기술을 사용하니 그 위력은 정말로 완벽함을 뛰어넘었다.
꽈광!
쩌저저저적!
갈라지는 방패.
분명 유니크 급은 될 것 같은 방패였지만 천지참의 충격을 견디지 못하고 갈라지기 시작했다.
물론 이렇게 갈라진다고 아이템이 사라지는 건 아니었다. 순간적으로 감당하지 못한 충격을 입고 내구도가 0이 되는 것이었기에 나중에 수리를 해서 다시 사용하면 되었다.
하지만 지금 당장은 분명 방패를 사용할 수 없게 되는 것이 맞았다.
“커헉!”
라트마는 말도 안 된다는 표정으로 재빨리 왼손에 들고 있던 검을 방패 뒤로 밀어 넣었다.
확실히 최상급 유저답게 반응은 빨랐다.
하지만 아직도 천지참 기운은 광포하게 날뛰고 있었다.
쩌정!!
방패처럼 완전히 부서지지는 않았지만 살짝 금이 가는 게 눈에 보일 정도로 큰 충격을 입은 라트마의 검.
그 검 역시 상당히 고급 아이템이었지만 별로 소용이 없었다. 당연히 라트마는 검과 방패에 자신의 기운을 불어넣었지만 아무런 소용이 없었다.
이건 단순한 힘의 차이에서 오는 결과일 뿐이었다.
어쨌든 막긴 막았다.
하지만 그 결과는 너무나 참혹했다.
아주 짧은 순간 라트마는 나를 바라보며 눈을 크게 떴다.
마치 ‘넌 누구냐?’라고 말하는 것 같았다.
하지만 난 그것의 대답을 굳이 말로 해주지 않았다.
스킬 조합, 검기난무(劍氣亂舞)+회전검결(回轉劍訣).
비산검(飛散劒)!
퍼펑!
난 라트마 앞에서 멈췄던 엘레멘탈 블레이드를 회전시키며 사방으로 검기를 뿌렸다.
쩌저적! 쨍!
“커억!”
결국 깨져 버리는 라트마의 검.
그리고 라트마는 그 충격으로 뒤로 몇 걸음을 물러났다.
비록 강력한 방어력을 지닌 중갑을 입고 있어서 치명적인 타격은 입히지 못했지만 가지고 있던 무기들은 모두 파괴되었고 입고 있던 갑옷마저도 충격을 입었다.
단 두 번의 공격에 라트마를 뒤로 물러나게 했다는 건 굉장한 것이었다.
영웅의 포효가 가져온 효과는 내가 상상한 것 이상이었다.
“오빠!”
엘렌은 다급한 마음에 길게 준비하고 있던 강력한 마법을 취소하고 즉시 시전이 가능한 마법을 나에게 뿌리며 라트마를 보호했다.
하지만 그녀가 뿌린 몇 줄기의 불덩어리 정도는 아예 무시해도 좋을 정도였다.
화염 속성 친화력이 남들과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높았던 나다. 거기에 영웅의 포효 효과가 더해져 이런 불덩어리 정도는 그냥 몸으로 맞아도 될 정도였다.
물론 엘레멘텔 블레이드를 가볍게 휘둘러 불덩어리들을 흩어버린 건 그저 습관 같은 행동일 뿐이었다.
‘속전속결(速戰速決)’
여기서 괜히 여유를 부릴 필요는 없었다. 여유는 모든 것을 끝낸 후에 부려도 충분했다.
스킬 융합, 정령 빙의, 셀리맨더(Salamander)+정령 빙의, 운디네(Undine)+정령 빙의, 실프+정령 빙의, 노움
엘레멘탈 블레이드에 네 가지 정령의 기운을 모두 빙의시켰다.
트윈 문 소드를 이용해 한 검에 각각 두 가지 정령을 빙의시키는 것보다 이렇게 한 검에 네 가지 정령을 빙의시키는 것이 더욱 큰 위력을 발휘했다.
특히 이 기술은 오행신검보다도 더 엘레멘탈 블레이드와 잘 맞았다.
아무래도 정령의 검인 만큼 정령의 기운을 어떤 검보다 더 잘 받아들이는 것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