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51. 혈전 ― 1
* * *
위이잉.
커다란 회의실 문이 열리며 깔끔하게 양복을 차려입은 몇 명의 사람이 안으로 들어왔다.
회의실에는 이미 그들을 기다리고 있던 몇 사람이 있었다.
정말 다양한 분위기를 풍기는 이들.
하나같이 매우 독특해 보이는 사람들이었다.
“오래 기다리셨습니다.”
지금 방금 들어온 사람들 중 대표로 보이는 남자가 웃는 얼굴로 회의실에서 기다리고 있는 사람들을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
특별히 남자의 말에 대답하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
그저 제자리에서 고개를 돌려 남자를 바라보는 게 전부였다.
“뭐, 이미 여기 왜 왔는지 다 아실 테고…… 또 이쪽에서 유명한 분들만 모셨으니 쓸데없이 장황한 설명은 모두 생략하도록 하겠습니다.”
남자가 말을 시작하자 남자와 함께 들어온 직원들은 가지고 있던 몇 가지 서류를 회의실에 앉아 있는 각양각색의 사람들에게 나누어 주기 시작했다.
“여러분도 이미 알고 계시겠지만 저희 SG그룹이 운영하고 있는 프로게임단은 꽤 많습니다. 하지만 제가 확실히 말씀드릴 수 있는 것은…… 이번 프로젝트는 기존의 그것들과는 비교할 수가 없을 것입니다.”
남자는 자신 있게 얘기하며 준비해 온 홀로그램 장치를 켰다.
홀로그램 장치가 켜지며 각종 화면이 재생되기 시작했다. 이곳 회의실에 모인 이들에겐 아주 익숙한 장면들. 그것은 요즘 엄청난 인기몰이를 하는 한 게임의 플레이 화면이었다.
“모두 이 화면들이 어떤 화면인지 잘 알고 있을 겁니다. 네, 이것은 요즘 정말 큰 화제가 되고 있는 가상현실 게임 ‘The One’의 게임 플레이 동영상입니다.”
남자의 말에 모두가 고개를 끄덕였다.
“지금 각종 하이퍼 넷 게시판에는 이런 동영상이 홍수처럼 범람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더욱 놀라운 건…… 별것 아닌 동영상들도 엄청난 인기를 끌고 있다는 것이죠.”
이것 역시 이곳에 있는 이들은 모두 알고 있는 사실이었다.
“여러분은 특별한 분들이기에 이 자리에 오신 것입니다. 그건 모두 알고 계시겠죠?”
남자는 홀로그램 장치를 조용히 끄며 주위를 둘러보았다.
“여러분은 특별하면서 한 가지 공통점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것 역시 무엇인지 모두 알고 계시겠죠?”
이번에도 역시 회의실의 사람들은 대답하지 않았다. 하지만 무언은 곧 긍정이었다.
그들은 지금 이곳에 모인 이들이 대충 어떤 이들인지 이미 예상하고 있었다.
“솔직히 우리는 약간의 판단 착오 때문에 조금 늦게 이번 프로젝트를 계획하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그렇게 늦은 만큼 확실하게 진행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여러분을 모시게 된 것이죠. 물론 저희가 모시고자 했던 모든 분들이 이 자리에 오신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그 정도는 충분히 예상했습니다.”
남자는 주위를 둘러보며 계속해서 말을 이어나갔다.
“지금까지의 프로게임단은 팀 단위로 운영되었지만 이번만큼은 그렇게 할 생각이 없습니다. 물론 아무래도 한 식구가 된다면 서로 친하게 지낼 필요성은 있겠지만…… 굳이 억지로 팀을 결성하라고 강요하지는 않을 것입니다. 여러분은 지금부터 저희 그룹 전속 프로게이머가 되어 눈부신 활약을 보여주기만 하면 됩니다. 자세한 내용은 나누어 드린 계약서에 전부 나와 있겠지만…… 결국 계약서의 내용은 간단합니다.”
남자는 사람들에게 나누어진 서류 뭉치를 들어 올리며 얘기했다.
“최고가 되기 위해 노력할 것! 그리고 그 과정을 우리에게 독점으로 공급할 것! 그것을 제외한 나머지는 저희가 알아서 처리할 것입니다.”
남자의 말은 간단했다.
즉, 이곳에 모인 이들에게 프로게이머가 될 것을 제안하는 것이었다.
사실 이곳에 모인 이들 중 대부분이 이미 다른 게임에서 프로게이머로 활동한 전적이 있는 이들이다.
그렇기에 지금 이 남자의 상당히 파격적인 제안을 듣고 다들 놀라는 눈치였다.
보통 프로게이머라면 팀에 소속되어 팀의 이익을 위해 힘을 합쳐서 길드 단위의 활동하는 게 대부분이었다.
하지만 이번 제안은 그런 길드 단위의 활동을 제안하지 않았다.
오히려 각자의 개성을 최대한 존중해 주며 모든 것을 자율 의사에 맡겼다.
이렇게 되자 막상 그냥 무슨 말을 하는지 들어나 보자는 심정으로 이곳을 찾은 많은 이들은 고민에 휩싸일 수밖에 없었다.
“고민하실 것 없습니다. 계약에 응하시게 되면 당연히 저희 그룹의 이니셜을 딴 길드를 만들어 지원해 드리게 될 것입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 길드에 가입해야 하는 건 아닙니다. 가입 여부는 전적으로 여러분의 자율 의사입니다. 당연히 가입하시지 않아도 지원은 동등하게 될 겁니다.”
남자의 제안은 너무나 달콤해 그만큼 유혹도 강렬했다.
솔직히 이곳에 모인 대부분의 사람들은 얘기만 들어보고 제안을 거절할 생각을 하고 이곳에 찾아왔다.
그 이유는 간단했다.
‘The One’이 너무나 대단했다.
프로게이머의 생활을 잠시 쉬더라도 ‘One’을 플레이할 때는 그 어떤 방해도 받고 싶지 않은 것이 사실이었다.
그들은 프로게이머이기 이전에 게임을 좋아하는 유저들이었다. 물론 프로로서의 자존심이나 규칙 같은 건 있었지만 ‘ONE’은 그것들을 잠시 잊게 할 정도로 대단한 게임이었다.
그렇기에 그들은 팀으로 이루어지는 프로게이머 생활을 잠시 하지 않을 생각이었다.
그런 그들의 생각을 미리 읽은 것일까?
확실히 국내 최고, 아니, 세계에서도 손꼽히는 그룹 중 하나인 SG그룹은 접근 방식 자체가 달랐다.
그 누구도 쉽게 대답하지 못했다.
모두가 잔뜩 고민스러운 표정으로 서류 뭉치를 들춰보고 있었다.
그런 그들의 모습을 보며 계속해서 말하던 남자는 슬쩍 미소 지었다.
‘전부…… 계약하겠군.’
그는 이런 방면에서는 프로였다.
이미 그는 계약 서류를 살펴보기 시작한 사람들의 표정만 보아도 계약 성공 여부를 예상할 수 있었다.
SG그룹 홍보팀 산하 특별기획팀 팀장 정희성.
그는 자신이 계획한 ‘팀(Team) SG’의 창단을 자신있게 확신했다.
하지만 그런 그도 모르는 몇 가지가 있었다.
바로 그와 비슷한 생각을 가진 사람들이 꽤 많이 존재한다는 것과 그리고 그들도 자신과 비슷한 계획을 진행 중이라는 사실이었다.
같은 미래를 꿈꾸는 사람들.
한 가지 확실한 건 그들의 꿈이 무척이나 매력적이라는 사실이었다.
* * *
“웃을 때가 아닐 텐데…… 분위기 파악을 참 못하는 쥐새끼였군.”
라트마는 나를 한심한 듯이 바라보았다.
하지만 그는 알까?
지금 그의 말 한마디 때문에 나에게 아주 조금 남아 있던 마지막 자비마저 사라지게 되었다는 것을…….
아마 모를 것이다.
“쥐새끼라…….”
나는 조용히 중얼거리며 슬쩍 웃었다.
“걸어오는 싸움을 피하는 건 예의가 아니겠지?”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맞다.
상대가 싸움을 걸어왔다면 철저히 응징해 주는 것, 그것이 내 방식이었다.
“장비 1번.”
스르릉!
두 자루의 트윈 문 소드가 아공간에서 튀어나와 내 양손에 쥐어졌다.
“쯧쯧, 어리석은 쥐새끼였군.”
라트마는 가볍게 혀를 차며 고개를 가로저었다.
분명 지금의 상황에서는 그런 그의 행동이 어울릴지 몰랐다. 하지만 조금 기다려 볼 필요가 있었다.
내가 직접 그의 저런 행동이 얼마나 오만하고 어리석은 행동이었는지를 확인시켜 줄 생각이었다.
“자, 누가 어리석었는지는 조금 뒤에 확인해보자고!”
파팟!
나는 고속 이동(高速移動) 스킬을 사용해 곧장 앞으로 달려나갔다.
사전에 검은 마녀에게 무슨 신호를 주거나 귓속말을 보내 뭔가를 계획하지는 않았다.
하지만 확실히 검은 마녀는 센스가 좋았다.
내가 치고 나가는 것과 동시에 검은 마녀도 나와 다른 방향을 향해 빠르게 돌진했다.
“아주 발악을 하는군! 빠르게 제압해라!”
라트마는 아직까지도 자신이 훨씬 유리한 상황이라고 생각하는 것 같았다.
하지만 그건 그의 착각일 뿐이었다.
물론 누가 봐도 이 상황에서는 라트마 일행이 유리하다고 생각할 것이다.
그러나 그건 그저 확인되지 않은 예상일 뿐이다.
늘 하는 말이지만 난 쓸데없는 시비는 걸지 않는다. 하지만 누군가 시비를 건다면 그걸 피하지도 않는다.
수적 유리?
그깟 머릿수에 겁먹을 내가 아니었다.
난 나를 믿었다.
내가 가진 능력을 믿었고 내 경험을 믿었다.
라트마가 아무리 대단한 길드의 마스터라고 해도 변하는 건 없다. 난 그에게 나를 건드린 것이 얼마나 큰 실수인지를 알게 해줄 생각이었다.
스킬 조합, 정령 빙의(精靈憑依), 실프(Silf)+정령 빙의 노움(Gnome).
엘레멘탈 파워(Elemental Power)!
바람의 정령과 대지의 정령의 기운이 몸에 퍼져 나가며 기본 능력치가 상승했다.
바람의 정령이 보태준 기운은 내 민첩성을 올려주었고, 대지의 정령이 보태준 기운은 내 체력을 올려주었다.
하지만 이것만으로는 부족했다. 여기서 내 모든 힘을 보여줄 필요는 없겠지만, 그래도 한 가지 셀프 버프 정도는 더 사용하는 게 좋을 것 같았다.
스킬 융합, 파워 업(Power Up)+디바인포스+블레싱.
아드레날린 파워(Adrenalin Powe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