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더 로드(The Lord)-47화 (47/250)

047. 잠깐의 여유 ― 2

* * *

접속을 해제 한 나는 곧장 간단하게 요기를 채우고 짧은 휴식을 취했다.

신지에서 워낙 고생을 많이 했기 때문에 요즘은 평소보다 약간 많이 휴식을 취하는 중이었다.

늘 말하는 거지만 아직 내가 해야할 일은 많았다. 극단적으로 말하면 아직 삭제 달려야 하는 거리의 10%도 달리지 않았다고 할 수 있었다. 절대 초반에 무리를 해서 후반 페이스가 무너져서는 안됐다.

* * *

“본격적으로 메인 퀘스트가 활성화되기 시작되었습니다.”

수많은 모니터가 사방을 가득 메우고 있는 거대한 공간.

그곳에는 아주 많은 숫자의 사람들이 각각의 일에 집중을 하고 있었다.

“……아직도 뚫지 못했나?”

그 거대한 공간의 중심에 있는 유리로 된 커다란 집무실에서 모든 광경을 지켜보고 있던 한 남자. 그는 굳은 표정으로 주변의 모니터를 쳐다보고 있었다.

“네…… 솔직히 지금 저희들의 능력으로는 불가능한 일이라고 말해야 할 것 같습니다. 여러 방법을 통해 우회적으로 많은 권한을 획득했지만 정작…… 제일 중요한 것들에는 절대 접근할 수가 없습니다.”

“……답답하군.”

“죄송합니다. 하지만 오히려 그 부분을 신선하게 느끼는 유저들도 있습니다.”

“신선? 그거야말로 아주 훌륭한 코미디군. 통제가 가능한 상태에서 보장해주는 한없는 자유도와 통제가 불가능한 상태에서 어쩔 수 없이 손을 놓고 지켜봐야 하는 자유도가 같다고 생각하는가? 우린 지금 엄청 위험한 장난을 치고 있는 것이야. 만약 이 사실을 다른 사람들이 안다면…….”

“그건 계속 손을 쓰고 있습니다. 사실 이 시설도 그걸 숨기기 위해 만든 것이고 지금 이 순간에도 수많은 관계자에게 각종 로비를…….”

꽝!

굳은 표정의 남자는 탁자를 강하게 내려치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걸 지금 자랑이라고 말하는 건가? 그것들은 정말 만약을 위한 호구지책이라는 걸 몰라서 그렇게 말하는 건가? 쯧쯧, 총괄팀장이라는 자네가 겨우 이렇게 말하는 것 보니…… 통제권을 되찾기는 절대 불가능해 보이는군.”

“죄송합니다.”

황급히 고개를 숙이는 총괄팀장…… 그는 무척 당황한 표정이었다.

“후우~ 어디서부터 이렇게 꼬여버린 건가? 치명적인 큰 실수가 오히려 엄청난 행운을 불러온 줄 알았건만…… 사실 그게 축복이 아닌 저주였던 건가? 정말 답답하군.”

“…….”

“어쨌든 계속해서 우리가 조금이라도 많은 권한을 가질 수 있도록 만들어보게. 그리고 절대 보안을 철저히 유지하고…… 돈은 얼마를 써도 좋으니 최악의 상황을 맞이하지 않도록 노력하게.”

“네, 알겠습니다.”

이미 돈이라면 주체하지 못할 만큼 넘쳐나기 시작했기에 남자는 어떤 짓을 해서라도 절대 ‘ONE’이 무너지지 않게 할 생각이었다.

그에게 ‘ONE’은 전부였다.

평생을 ‘ONE’을 만들기 위해 노력했고 지금 그 ‘ONE’이 상상도 할 수 없을 만큼 대단한 존재로 태어나있었다.

당연히 그에게 제일 중요한 건 ‘ONE’이 계속해서 성장해 나가는 것이었다.

그렇기에 그것을 위해 모든 노력을 쏟아붓는 중이었다.

“절대…… 절대 이 게임을 멈추게 할 수 없다.”

남자는 작게 중얼거리며 사방을 가득 채우고 있던 모니터들을 훑어보았다.

지금 이 순간에도 세계에서 가장 뛰어나다고 알려진 인재들이 각고의 노력을 쏟아부으며 이상하게 꼬여버린 ‘ONE’의 시스템을 복구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었다.

‘ONE’의 메인 인공지능 시스템인 일루젼은 이런 인간들의 노력을 가볍게 무시하고 있었지만 그래도 아예 성과가 없는 건 아니었기 때문에 남자는 포기하지 않고 있었다.

인간이 만들었지만 더 이상 인간의 간섭을 허락하지 않는 AI와 그 AI에게서 통제권을 찾아오려는 수많은 인간의 노력.

이곳엔 총성만 들리지 않을 뿐이지 그 어떤 전쟁터보다 치열한 싸움이 일어나고 있었다.

* * *

붉게 물든 분지.

마치 저녁노을이 지는 것 같은 모습이 느껴지는 이곳은 그 풍경과 아주 잘 어울리는 노을분지라는 이름을 가진 지역이었다.

이처럼 풍경은 매우 포근하고 아름다웠지만 이 지역은 사실 그 어떤 곳보다 살벌한 지역이었다.

우선 이 지역에 돌아다니는 몬스터나 동물들은 다른 지역보다 1.5배 이상 강한 능력을 지녔었다.

노을분지가 완벽한 PvP 지역이기 때문에 가지는 특징이기도 했지만 정작 이 지역에서 무서운 건 몬스터들이나 동물들이 아니었다.

같은 유저들.

그들이야말로 최악의 적이었다.

우타와에서 모든 준비를 끝낸 나는 빠르게 노을분지로 이동해왔다.

난 이곳에서 한 달 동안 PvP와 사냥을 병행하며 약간 느긋하게 게임을 즐길 생각이었다.

스으으.

노을분지의 그림자 속에 스며든 나는 조용히 그림자와 그림자 사이로 이동을 하며 최대한 내 기척을 숨겼다.

그림자 숨기 기술은 원래 도적들이나 사냥꾼들이 주로 사용하는 기술이었지만 나 역시 그들만큼이나 능숙하게 그 기술을 사용할 수 있었다.

어찌 보면 그들보다 더 능숙하게 사용할 수 있을지도 몰랐다. 이미 숙련도가 마스터를 넘어 하이 마스터를 향해 가고 있었기에…… 사실상 나의 그림자 숨기 기술은 그 어떤 도적과 사냥꾼보다 완벽했다.

PvP는 보통의 사냥과는 조금 달랐다.

유저들의 반응은 함부로 예상해서는 안 됐다. 어떤 유저들은 몬스터들보다 더 쉽게 잡을 수 있었지만 또 어떤 유저들은 상상했던 것 이상의 반응을 보여주기도 했다.

그렇기에 PvP에서 가장 중요한 건 그때그때 상황에 맞게 임기응변을 발휘 하는 것이었다.

특히나 PvP를 전문적으로 즐기는 유저들과 만날 때는 더욱 긴장할 필요가 있었다.

노을분지는 상당히 유명한 PvP필드였기에 난 그 어느 때보다 더욱 신중하게 주변을 살피며 이동을 하고 있었다.

멈칫.

그렇게 이동하던 중 멀리 세 명의 유저가 보였다.

이글아이를 활성화시켜 그들의 모습을 보다 정확히 확인하고 오감증폭 중 청각확장을 사용하여 그들의 대화를 또렷하게 엿들었다.

“하하하, 그 상황에서 그 녀석이 갑자기 제발 살려달라고 하는 거야. 정말 황당했지.”

“진짜? 멍청한 놈! PvP지역에 처음 온 놈이었나 봐? 그래서 어떻게 했는데?”

“어떻게 하긴. 너 내가 늘 말한 걸 잊은 거냐? PvP에서 자비란 사치스러운 감정일 뿐이라고 했잖아. 당연히 깔끔하게 끝내줬지.”

“캬아~ 역시 형답네요. 전 아무래도 아직은 그렇게 깔끔하게 끝내지를 못하겠던데.”

“하하하, 그러니까 네가 아직 킬 포인트가 그것밖에 되지 않는 거야. 일단 우리들도 이제 PvP 전문 길드에 가입한 이상 다른 유저들과 싸우는 걸 절대 망설이거나 후회하면 안 돼. 어차피 PvP도 게임을 즐기는 많은 방법 중 하나잖아. 그러니까 과감하고 확실하게 다른 유저를 잡아야 할 필요가 있어.”

PvP 필드에서 큰 소리로 대화하는 세 녀석.

그들의 대화 내용과는 전혀 상관없이 모두 초짜라고 할 수 있었다.

시간이 좀 더 흐르고 더 상위의 PvP 필드가 활성화되면 그곳은 정말 고요한 전쟁터가 될 것이다.

대규모로 팀을 짠 것도 아니고 단지 세 명 뭉쳐 있는걸로 저렇게 무방비로 잡담이나 하는 건 정말 초짜들이나 하는 짓이었다.

‘대충 장비들을 보니 레벨 150에서 180 사이의 유저들이겠군.’

현재 ‘ONE’에서 중상위권 정도는 되어 보이는 유저들이었다.

가장 PvP에 자신감을 보이고 있는 것 같은 유저가 들고 있는 검은 한때 PvP 전용 무기로 굉장히 유행했던 송곳돌격 망치였다.

지금 이 시기에 대장장이 기술자들 중 극소수의 유명 대장장이들만이 만들 수 있었던 그 무기는 굉장히 비싼 가격에 거래되는 명품 무기였다.

이것만 봐도 그 유저는 상당한 재력을 소유한 것처럼 보였다.

그는 송곳돌격 망치 말고도 꽤 비싸 보이는 방어구들을 많이 착용하고 있었다.

하지만 결정적으로 나에겐 그 모든 것들이 드랍아이템으로 보였다.

무엇이 떨어질지는 몰랐지만 어쨌든 세 명의 유저는 나에게 딱 좋은 목표물일 뿐이었다.

‘타이틀 교체 [최초의 영웅]’

츠릿~!

한순간에 타이틀이 교체되며 내 체력과 마력이 대폭 증가했다. 사실 굳이 타이틀을 교체할 필요까지는 없어 보였지만 그래도 제대로 타이틀 효과를 실험해 본 적이 없었기에 이번에 한 번 살펴볼 생각이었다.

‘장비 5번.’

철컥.

나는 요정들의 합성활을 꺼내 들었다.

대략 세 유저와의 거리는 700m 정도…… 이 정도라면 전혀 문제가 없었다.

스윽.

합성활에 강철화살을 건 나는 조용히 집중했다. 이글아이는 이미 활성화되어 있었기 때문에 세 명의 유저들은 모두 또렷이 내 시야에 잡혀 있었다.

스킬조합 스킬융합 저격모드 + 결점포착(缺點捕捉) + 파워샷(Power Shot)

일격필살(一擊必殺)!!

우득, 스팟!

한껏 강하게 당겨진 활시위가 허공에 튕기며 강철화살이 앞으로 쏘아져 나갔다.

촤아아악!

순식간에 허공을 갈라버린 강철화살은 곧장 세 명의 유저중 가장 막내로 보이는 유저의 심장을 정확히 꿰뚫었다.

워낙 강력한 힘이 담긴 강철화살이었고 거기에 그 막내 유저가 전혀 방비하지 않고 있었기 때문에 그 화살은 기술 이름처럼 일격필살로 명중했다.

“커어억!”

갑작스러운 공격에 정말 무기 한 번 뽑지 못하고 쓰러져버린 한 명의 유저.

하지만 이건 그들의 잘못이 더 컸다.

PvP 필드에서 한가롭게 잡담이라니…… 그건 정말 미련하고 어리석은 짓이었다.

그리고 그 미련하고 어리석은 짓의 대가가 바로 이것이었다.

쿵!

“헉!!”

“뭐, 뭐야!!”

남은 두 명의 유저는 바로 옆에서 자신들의 동생이 쓰러지자 그제야 크게 놀라며 허둥지둥 주변을 살폈다.

하지만 그들의 그런 반응 역시 아주 늦은 것이었다.

이미 나는 화살을 날림과 동시에 빠르게 그들의 향해 달려온 상태였다.

“장비 3번.”

휘리릭!

강철와이어를 꺼내든 나는 재빨리 또 한 명의 유저를 향해 와이어를 던졌다.

스킬조합 결박(結縛) + 와이어바인딩(Wire Binding)

완전제압(完全制壓)!!

촤르르륵!

“으악!”

한 명의 유저를 완벽하게 제압했다. 이 역시 제대로 방비를 하지 못했기 때문에 너무나 쉽게 해낼 수 있었다.

남은 유저는 송곳돌격 망치를 들고 있던 그 유저뿐이었다.

“장비4번!”

촤아악!

커다란 엘레멘탈블레이드가 허공에서 뽑히는 광경은 내가 생각해도 꽤 화려해 보였다.

“죽어!!”

그래도 PvP를 조금이나마 경험했기 때문일까? 송곳돌격 망치를 들고 있던 유저는 내 생각보다 빠르게 역습을 시도했다.

하지만 그 역습이 매우 위력적인 건 아니었다.

저돌적인 돌진 공격.

그는 망치를 크게 휘두르며 나를 향해 달려들었다.

송곳돌격 망치는 돌격형 공격을 했을 때 보너스 데미지를 주는 옵션을 가졌기 때문에 그가 이런 공격을 하는 건 어쩌면 당연할지 몰랐다.

하지만 적어도 나에겐 너무나 빈틈이 많이 보이는 공격이었다.

스윽.

스킬을 사용할 필요도 없었다. 그저 몸을 살짝 돌리며 옆으로 한 걸음 옮기는 것만으로도 그의 공격을 피할 수 있었다.

너무나 단순한 공격.

이런 단순무식한 공격만 봐도 역시 이 유저는 PvP 초짜가 분명했다.

휘릭!

퍼억!

나는 슬쩍 공격을 피하며 엘레멘탈블레이드의 손잡이를 이용해 남자의 등을 강하게 내려쳤다.

“커억!”

쿵!

워낙 정확한 공격이었기에 그는 제법 큰 타격을 입고 바닥에 쓰러졌다.

이제 남은 건 마무리뿐이었다.

“……사, 살려줘요!”

내가 엘레멘탈블레이드를 들어 올린 순간 남자는 나를 향해 다급하게 외쳤다.

우스웠다.

방금까지 이 남자는 자신의 입으로 직접 PvP에서 자비란 사치스러운 감정이라고 말했었다.

그런데 그는 지금 나에게 자비를 원하고 있었다.

“방금 네가 했던 말을 벌써 잊은 건가? PvP에서 자비란 사치란 말…… 너에게는 아쉽겠지만 그건 정말 정확히 맞는 말이었다.”

촤아악!

나는 엘레멘탈블레이드를 휘둘러 간단하게 남자의 체력을 0으로 만들어주었다.

“크아아악!”

털썩.

쓰러지는 남자.

그는 이제 확실히 기억할 것이다. PvP에서 자비를 바라는 게 얼마나 어리석은 짓인지를…….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