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더 로드(The Lord)-46화 (46/250)

046. 잠깐의 여유 ― 1

* * *

모든 것들을 정리한 난 재빨리 신지를 빠져나왔다. 들어갈 때는 힘겨웠지만 빠져나오는 건 별로 힘겹지 않았다. 이미 신지에 있던 성화의 봉인 풀리며 신지에 있던 몬스터들이 다 사라졌기 때문이었다.

정작 난리는 신지가 아닌 바깥세상에서 나 있었다.

밖에 나와 보니 평상시에 공지라곤 거의 하지 않는, 사실상 왜 존재하는지 모르겠다는 평가를 듣던 ‘ONE’의 개발팀에서 놀라운 소식을 공지사항에 추가시켜 놓은 상태였다.

[=새로운 종족 ‘드워프’ 추가되었습니다. 서대륙에서 활동하는 다른 종족 유저들은 퀘스트를 통해 드워프로 환생할 수 있고 서대륙에서 새로 시작하는 유저들은 드워프 종족을 선택할 있습니다.]=

간단한 공지였지만 그 공지의 파급력은 대단했다.

많은 사람이 놀라고, 많은 사람이 궁금해했다. 도대체 왜 갑자기 새로운 종족이 나타난 것인가?

물론 나는 전혀 놀라지도 궁금하지도 않았다.

왜냐하면 ‘드워프’라는 종족을 나타나게 한 것이 나였기 때문이었다.

난 당연히 공지에는 전혀 신경 쓰지 않고 그 길로 곧장 우타와로 움직였다.

워낙 긴 여정이었고 이것저것 정리할 것이 많았기 때문에 최대한 빨리 우타와로 돌아올 필요가 있었다.

서둘렀기 때문일까? 나는 단 이틀 만에 우타와로 복귀할 수 있었다. 그렇게 빠르게 우타와로 복귀한 나는 일단 은행을 먼저 찾았다.

정리할 것이 많았기 때문이었다.

역시나 새로운 종족이 나타났다는 사실은 대단히 화제가 될 만한 일이었던 건가? 조금이라도 사람들이 모여 있는 곳이라면 전부 새로 나타난 드워프 종족에 대해서 얘기했다.

“그러니까 이건 어떤 길드나 팀이 유저들이 잘 알지 못하는 뭔가 중요한 퀘스트를 해결했기 때문에 나온 게 거의 확실하다고. 지금 나름 전문가라고 할 수 있는 사람들이 모두 그렇게 얘기하고 있는 것만 봐도 알 수 있잖아.”

나름 고레벨의 유저로 보이는 두 남자는 우타와 은행 앞에 의자에 앉아 자신들의 의견을 서로 얘기하고 있었다.

“하지만 도대체 어떤 놈들이 이렇게 다른 사람들을 훌쩍 따돌린 거죠? 요즘 한창 명성을 떨치는 ‘헬 레이드팀’? 아니면 점점 덩치가 불어나고 있는 ‘엠페러’? 그것도 아니라면 천룡성검이 이끄는 천룡맹? 도대체 어디지?”

“적어도 천룡맹은 아닐 거야. 그들은 동대륙에서 활동하는 길드잖아. 드워프 종족은 서대륙에서만 선택이 가능한 종족인 것으로 봐서는 서대륙의 탑(TOP)팀 중 하나가 해결했을 게 분명해.”

“젠장, 우리는 아직 그런 퀘스트를 어떻게 시작하는지도 모르는데…… 이대로 칼날형만 믿고 있다간 다른 유저들하고 계속 차이만 벌어지는 거 아니에요?”

“흐음, 하지만 방법이 없다. 그리고 사실 우리 팀은 퀘스트나 레이드 쪽의 PvE 보단 유저들끼리의 PvP 전투에 집중하는 팀이었잖아. 그러니 이런 부분에서는 어쩔 수 없이 우리가 뒤처질 수밖에 없겠지.”

“쳇, 마음 같아서는 양쪽 모두 최고가 되고 싶은데…….”

“그건 좀 과한 욕심이지. 너 지금 ‘ONE’이 어떤 게임이라고 평가받고 있는지 잊은 거야? 지금 이 순간에도 엄청난 속도로 그 덩치가 불어나고 있는 ‘ONE’이다. 이런 곳에서 두 마리 토끼를 모두 잡으려 했다간 순식간에 둘 다 놓칠 수가 있어.”

“네, 그건 알아요. 하지만 사람 욕심이란 게 좀 그렇잖아요.”

“그러니까 더욱 절제할 줄 알아야지. 지금 우리는 그런 것보다 노을분지를 완벽하게 우리의 것으로 만드는 걸 더 신경 써야 한다. 노을분지만 장악하면 그깟 퀘스트쯤은 안 부러워해도 된다.”

두 남자는 최대한 조용조용 얘기했지만 이미 난 감각확장 스킬을 통해 청각을 최대한으로 증폭시킨 후였다.

그렇기에 그들의 대화를 어렵지 않게 엿들을 수 있었다.

‘노을분지…….’

처음엔 그냥 은행에 몇 가지 아이템을 넣으며 정리를 하다 심심해서 들은 것이었는데 나중에는 정말 좋은 정보를 하나 얻었다.

‘내가 노을분지를 깜박 잊었었군.’

노을분지는 전형적인 PvP 지역이었다.

별로 크지 않은 지역이었지만 나름대로 상당히 유명했던 곳이었다.

특히 노을분지 한가운데 존재하는 비틀어진 차원의 틈이라는 요상한 지역에서는 각종 희귀한 네임드 몬스터와 환수(幻獸)들이 출몰해 많은 유저들이 행복한 비명을 지르는 곳이었다.

특히 워낙 희귀하고 아름다운 환수들이 많이 등장하는 곳이라 재수가 좋아 그런 환수 한 마리만 포획할 수 있다면 굉장히 비싼 가격으로 팔 수도 있었다.

그뿐인가? 종종 등장하는 희귀 네임드 몬스터는 짭짤한 경험치와 함께 쓸 만한 아이템들도 떨어뜨렸다.

여러 가지로 아주 알찬 사냥터라고 할 수 있었다.

하지만 그만큼 위험 부담도 컸다.

아무런 제약이 없는 PvP 지역이었기에 언제 어디서 다른 유저의 습격이 있을지 몰랐고 가뜩이나 환수나 네임드 몬스터들도 약하지 않았기 때문에 자칫 잘못하다가는 큰 이익이 아닌 큰 손해를 볼 수 있었다.

‘어차피 당분간은 조용히 사냥이나 할 생각이었으니 노을분지를 찾아가 보는 것도 나쁘지 않겠군. 사실 그동안 너무 PvP에 소홀했던 것도 사실이고.’

저 남자가 그랬던가?

두 마리 토끼를 잡으려고 했다간 둘 다 놓칠 수 있다고…… 하지만 난 두 마리 토끼를 다 잡을 생각이었다. 그리고 이미 두 마리 토끼를 한 방향으로 다 몰아 놓았다.

놓친다고?

그럴 일은 절대 없다.

이미 나에겐 두 마리 토끼는 한 마리처럼 보이기 시작했다.

은행에서 정리를 끝낸 나는 곧장 경매장으로 향했다.

데빌사우루스를 잡고 얻은 ‘매우 두꺼운 강철방패’와 ‘영롱한 붉은 수정의 지팡이’을 경매장에 올려놓았다. 당연히 즉시구입 가격은 없었다.

이 두 아이템은 지금 시점에서는 매우 뛰어난 아이템들이었기에 아마 수많은 입찰자가 달려들 것이다. 그렇다면 가격은 더욱 뛸 것이고…… 난 꽤 큰돈을 만질 수 있을 게 분명했다.

두 아이템 말고도 그동안 사냥을 통해 얻은 나머지 매직이나, 레어 등급의 아이템들도 적당한 가격을 책정해 모두 경매장에 올렸다.

한 달 동안 그 누구보다 열심히 사냥했기 때문일까? 경매장에 올릴 물건들은 무척 많았다.

차례대로 팔 물건들을 전부 등록시킨 나는 일단 경매장을 뒤지며 혹시라도 쓸 만한 물건이 있는지 살펴보았다.

특히 이번 사냥을 하며 재료아이템들과 소비아이템들을 거의 모두 소진했기 때문에 경매장을 통해 재정비할 필요가 있었다.

“쳇, 역시 또 올랐군.”

역시 맥가이버의 물품들은 계속해서 가격이 오르고 있었다. 그나마 나는 예전에 물건들이 좀 쌀 때 많이 사두었기 때문에 아직 여유가 있었지만 그래도 결국엔 나도 언젠간 다 사용할 것이기 때문에 다시 비싼 돈을 주고 사야 했다.

“일단 지금도 비싼 건 아니니까 전부 사버리고…….”

이번 사냥을 통해 내가 얻은 것들 중 하나가 바로 많은 골드였다.

이것 역시 우연한 행운으로 얻은 것이지만 어쨌든 지금 나의 자금력은 상당히 좋았다.

사실 최후의 보루로 생각하고 있는 알짜배기 저택 몇 개를 팔면 정말 대단한 액수의 돈을 벌어드릴 수 있었지만 그건 정말 최후의 보루 같은 것이었다.

특히, 나중에 건물이 임대가 가능해지면 임대료를 받을 작정으로 남겨둔 것이었기 때문에 지금 그것들을 처분할 수는 없었다.

맥가이버가 만든 물건들을 거의 모조리 구입한 나는 그밖에도 자주 사용하는 여러 마법시약이나 기술을 사용할 때 필요한 재료들을 구입했다.

“모야~ 갑자기 철광석 가루 가격이 왜 이렇게 뛰었지?”

철광석 가루는 기관진식, 또는 함정설치 스킬을 사용할 때 필요한 재료 중 하나였다.

원래는 이렇게 가격이 비싼 것이 아니었다. 대략 지금의 가격에 절반 정도가 원래 가격이었다. 그런데 갑자기 그게 두 배의 가격에 팔리고 있었다.

“갑자기 무슨 일이…… 아!! 드워프 종족의 추가 때문인가?”

확실히 유저들은 눈치가 빨랐다. 철의 종족이라 불리는 드워프가 출현했으니 당연히 그에 관련된 재료들의 가격이 상승할 것이라고 예상하고 다들 거래를 중지하거나 오히려 재료를 매입하다보니 재료들의 가격이 계속 올라갈 수밖에 없었다.

“맞아, 예전에도 드워프 종족이 추가되면서 재료 아이템들 가격이 많이 상승했었…… 으흠!!!!”

고개를 끄덕이며 옛날(미래) 생각을 하던 나는 갑자기 머리를 망치로 한 대 맞은 느낌을 받았다.

“바보같이…… 내가 왜 그걸 잊고 있었지!!”

역시 사람의 기억력은 한계가 있는 게 분명했다. 나는 그동안 내가 정말 생각보다 자세히 미래를 기억하고 있다고 생각했었다.

하지만 그건 섣부른 판단이었다.

정작 엄청난 기회가 될 수 있는 이런 것조차 기억하지 못하고 있었으니…… 만약 내가 지금이라도 떠올리지 못했다면 크게 후회할 뻔했다.

난 재빨리 경매장의 검색기능을 활성화시킨 후 한 가지 물건을 검색해보았다.

주르르륵.

예상대로 경매장에는 그 물건이 넘쳐나도록 많이 있었다. 그리고 아직 내가 기억하고 있던 그대로의 가치로 평가되고 있었다.

드워프 종족이 나왔지만 그 누구도 이것이 그 종족과 상관이 있을 것이라고는 예상하지 못하는 것 같았다.

어쩌면 그게 당연했다.

아무리 드워프 종족의 출현으로 그들과 관련이 있을 것 같은 재료 아이템의 가치가 상승할 것이라고 예상했던 유저들이라고 해도 이것만큼은 절대 예상할 수 없었다.

이건 적어도 드워프 종족의 장인들이 모습을 드러내기 전까지는 절대 드워프 종족과 관련이 있는 물건이라는 것을 알 수 없었다.

그렇기에 이건 확실히 기회였다.

얼마나 이득을 남길 수 있을지는 몰랐다. 다만 제대로 성공만 하면 아마 나는 투자한 돈의 수십 배를 챙길 수 있을 것이다.

망설일 필요가 없었다.

난 그 즉시 모든 여유자금을 이용해 경매장에 있는 그것들을 모두 사들였다.

분명 그것은 지금도 쓰이는 곳은 있었다. 하지만 지금 쓰이는 용도는 너무나 하찮은 그런 용도였다.

사실상 없어도, 아니 대체할 수 있는 것들도 많았다. 그렇기에 그것은 당연히 천대를 받았다.

유저들은 상점에도 팔리지 않는 그것을 당연히 쓸모없는 하찮은 아이템 정도로만 생각했다.

그러나…… 이제 드워프 종족이 나왔다.

그들에게 이것은 전혀 다른 용도로 쓰이는 물건이었다.

나에게 여유자금은 많았다.

그리고 경매장에 올라온 그 물건들도 많았다. 물론 천대받는 물건임 만큼 아주 저렴한 가격대를 형성하고 있었다.

덕분에 나는 은행과 경매장을 몇 번이고 오고갔다.

앞으로 매입할 그것의 양을 생각해 꽤 큰돈을 주고 은행에 대형 개인 창고를 만들기까지 했다.

지금의 그것은 딱 미운오리 새끼 같은 존재였다. 하지만 조금만 지나면 그것은 어느새 백조가 되어 하늘 높이 비상할 것이다.

대략…… 한 달?

그 정도면 충분했다.

나는 한 달 동안 최대한 그것을 사드릴 생각이었다. 내 여유자금을 모두 쏟아 부어서 곧 백조가 될 미운오리새끼를 전부 내 것으로 만들 계획이었다.

일단 눈에 보이는 것들은 모두 사들인 나는 창고를 꼼꼼히 점검하고 잠시 휴식을 위해 로그아웃을 준비했다.

한 달 동안은 별로 멀리 갈 생각이 없었다. 어차피 노을분지는 이곳 우타와에서 멀지 않은 곳에 있었기 때문에 노을분지를 중심으로 사냥을 하며 우타와에서 한 달을 보낼 생각이었다.

우타와야 말로 서대륙 최고의 상업도시였기에 그것을 매입하기에는 딱 좋은 곳이었다.

그렇기에 적어도 한 달 동안은 이곳에 있을 필요가 있었다.

스으으~

내 몸은 아마 조금씩 흐려지며 반짝이는 빛가루가 되어 허공에 흩날릴 것이다. 접속할 때만큼이나 화려한 모습이었지만 정작 내가 내 모습을 볼 수는 없었다.

‘일단 휴식, 그리고 노을분지로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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