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40. 일인(一人) 레이드(下) ― 1
* * *
휘이잉!
데빌사우루스는 마구 날뛰며 나를 떨어뜨리려고 했지만 그럴수록 난 더욱 와이어를 강하게 당기며 버텨냈다.
내가 이렇게 데빌사우루스의 몸통에 올라탈 수 있었던 건 행운이었다.
원래라면 절대 불가능한 일.
하지만 아주 좋은 타이밍에 빈틈을 발견했고 그 결과 이런 위치를 잡을 수 있었다.
이 정도의 근접거리라면 큰 타격을 줄 수 있었다.
대신, 여기서 계속 오랫동안 타격을 줄 수는 없었다. 벌써 팔이 저려왔다.
확실히 데빌사우루스의 힘은 무시무시했다.
아직 용마수의 힘이 남아 있는 나였건만 몇 분을 버티는 게 고작일 것 같았다.
‘하지만 몇 분이라면…… 확실한 한 방을 준비할 수 있지!’
몇 분이라면 충분했다.
스킬융합 파워업(Power Up) + 디바인포스 + 블레싱
아드레날린 파워(Adrenalin Power)!!
일단 간단한 강화기술을 이용해 힘을 극대화시킨 나는 양손으로 잡고 있던 와이어를 한 손으로 고쳐 잡았다.
우득!
“크윽!”
곧바로 와이어를 쥐고 있는 손에 충격이 느껴졌다. 하지만 아직 버틸 수는 있었다.
‘화염초, 마정석가루, 적수정, 태양석, 청수정…….’
남은 한 손으로 필요한 시약들을 챙기기 시작했다.
한 달(게임시간) 전쯤 화염마법과 빙계마법의 숙련도가 모두 마스터의 경지에 오르며 나는 아주 대단히 유명한 스킬조합과 비슷한 스킬조합 하나를 만들어 낼 수 있었다.
천무칠성의 일원이며, 모든 마법사의 우상이었던 대마법사 가웨인(Gaweins).
이것은 그 가웨인이 자주 사용했던 대표적인 특수스킬조합과 유사한 것이었다. 물론 가웨인은 방송 같은 것에 출현도 하지 않았고 다른 어떤 방법으로도 그것에 대한 정확한 비밀을 밝힌 적이 없었다. 하지만 그것은 워낙 유명한 스킬이라 대략적인 단순한 원리 같은 건 많은 유저들이 연구에 연구를 거듭해 밝혀낼 수 있었다.
난 그 단순한 원리만 가지고 그것과 유사한 스킬을 만들어내기 위해 노력했다. 당연히 수많은 시행착오를 겪었다. 무척 위험한 순간도 있었다. 하지만 결국 나는 그 모든 고생을 이겨내고 그가 사용했던 그 대표적인 스킬조합과 거의 유사한 스킬조합을 만들어 낼 수 있었다.
‘불과 얼음.’
그 스킬조합의 기본은 음양의 합일이었다.
음기와 양기가 하나로 합쳐지며 그 반발력에서 생겨나는 에너지를 자신의 의도대로 가공하는 것.
그것이 바로 내가 알고 있는 단순한 원리의 모든 것이었다.
‘타오르는 뜨거운 기운…… 파이어볼!’
화륵!
내 손바닥 위로 작은 구슬만한 파이어볼이 생성되었다. 그 크기는 작았지만 파이어볼을 아주 단단히 압축시킨 것이었다.
‘그리고 사방을 냉각시키는 차가운 기운…… 아이스볼!’
치이익!
파이어볼 옆에 똑같은 크기의 아이스볼이 생성되었다. 이것 역시 아이스볼을 아주 단단히 압축시킨 것이었다.
서로 다른 성질의 작은 구슬 두 개.
나는 이 두 개의 구슬을 천천히 회전시켰다.
크아아아앙!
그 와중에도 데빌사우루스는 크게 요동치며 나를 떨어뜨리려고 했지만 아직까진 내 한 손이 버틸만한 정도였다.
지금 내가 활성화시키려는 이 마법은 나도 아직 완전히 익숙한 것이 아니었기 때문에 최대한 집중을 해도 시간이 오래 걸릴 수밖에 없었다.
화르륵! 치이익!
서로 전혀 다른 성질의 기운을 뿜어내며 빠르게 회전하기 시작하는 두 개의 구슬.
난 회전하는 두 개의 구슬을 보며 천천히 마력을 끌어올렸다.
이럴 땐 확실히 분심공과 지존신공은 나의 보배였다.
그 두 무공이 없었다면 아마 나는 지금 만든 스킬조합이나 연계스킬들의 30%도 완성하지 못했을 것이다.
어찌 보면 지금까지 내가 얻은 수많은 행운 중 그 두 가지를 얻은 행운이 가장 컸을지도 모른다.
‘됐다!’
어쨌든 분심공과 지존신공 덕분에 난 타이밍을 더 정확하게 잡을 수 있었다.
특수스킬조합 파이어볼(압축) + 아이스볼(압축)
음양구(陰陽球)!
키잉! 츠츠츳!
두 개의 구슬이 하나로 합쳐져 하나의 구슬이 되었다. 내 손바닥 위에 생겨난 그 구슬은 굉장히 불안정한 모습으로 마구 요동치고 있었다.
대마법사 가웨인이 사용하는 일월구(日月球)와는 조금 다른 느낌이었지만 비슷한 원리로 만들어진 유사한 스킬조합이라는 건 틀림없었다.
우드득!
“크윽!”
더 이상 데빌사우루스의 힘을 버티기가 힘들었다. 이제는 그만 내려가야할 때였다.
“이건 선물이다!”
퍼퍽!
손바닥 위에서 무섭게 요동치고 있던 음양구를 데빌사우루스의 몸통에 꽂아 넣었다.
그리곤 곧장 강철와이어를 아공간으로 돌려보내고 데빌사우루스의 몸통에서 뛰어내렸다.
파팟!
크어어엉!
데빌사우루스는 목에 감겨 있던 와이어가 풀리자 곧장 몸을 돌려 나를 향해 화염의 숨결을 뿜어냈다.
화르륵!
스킬융합 오버스피드(OverSpeed) + 환영보 + 쉐도우스텝(Shadow Step) + 일월건곤보(日月乾坤步)
긴급회피(緊急回避)!!
난 다시 한번 긴급회피를 이용해 화염의 숨결을 피했다.
꽝!
이번에도 역시 엉뚱한 곳에 처박혔다.
“큭!”
약간의 고통을 느낀 나는 재빨리 일어나 2차 공격에 대비했다.
하지만 2차 공격은 없었다.
데빌사우루스가 갑자기 이상한 몸부림을 치기 시작했기 때문이었다.
커어어어엉!
‘터진다!’
몸부림의 원인은 볼 것도 없이 내가 직접 몸속에 꽂아 넣은 음양구 때문이었다.
펑! 퍼퍼퍼퍼펑!
음양구가 터졌다.
기본적으로 음양구의 위력은 상당히 강력했다. 그런데 그 강력한 음양구가 몸속에서 터졌으니 그 위력은 몇 배로 증가될 수밖에 없었다.
크아아아아아아앙!
크게 울부짖는 데빌사우루스.
놀랍게도 데빌사우루스의 어깨부근에는 큰 구멍이 생겼다. 그리고 그 구멍에서는 반짝이는 빛의 가루들이 흘러나와 허공에 흩어졌다.
‘됐다! 이제 놈의 체력이 바닥을 보이기 시작했다!’
큰 상처가 남았다는 건 체력이 거의 바닥을 보이기 시작한다는 뜻이었다.
체력이 많이 남아 있었다면 절대 저런 큰 상처가 생길 수 없었다.
체력은 바닥을 보이기 시작했지만 덕분에 데빌사우루스는 더욱 난폭해질 게 분명했다.
대부분의 몬스터들은 체력이 일정 수준 아래로 내려가면 공격력이 상승하고 방어력이 내려간다. 그리고 아주 난폭해진다.
특히 보스 몬스터들은 그런 경향이 더욱 강했다.
쾅! 콰광!
데빌사우루스는 벌써 날뛰기 시작했다.
‘그래, 조금만 참아라. 내가 깔끔하게 마무리 해주마!’
“장비9번.”
수정지팡이를 꺼내든 나는 재빨리 시약을 챙기며 간단한 마법을 활성화시켰다.
스킬 하급환영마법 일루젼더미(Illusion Dummy)
일루전더미를 이용해 데빌사우루스를 한곳으로 유도했다. 원래라면 절대 일루젼더미에 속지 않았을 데빌사우루스였지만 이미 너무 난폭해져 제대로 된 판단을 내리지 못하는 상태였기에 너무나 쉽게 속아주었다.
크어엉!
내 모습을 그대로 복사한 일루젼더미를 향해 돌진하는 데빌사우루스.
나는 그 데빌사우루스의 발밑에 간단한 마법하나를 더 추가시켰다.
그리스(Grease), 워낙 덩치가 크고 힘이 좋은 데빌사우루스라 그리스마법으로 넘어뜨리는 건 불가능했지만 적어도 약간 균형을 잃게 만드는 건 가능했다.
특히, 이렇게 흥분한 상태라면 더욱 그 가능성이 높았다.
크엉!
흔들~!
역시 예상대로 흥분할 대로 흥분한 데빌사우루스는 살짝 균형을 잃었다.
‘지금!’
스킬조합 기관진식 천라지망(天羅之網) + 마법진 홀드트리(Hold Tree)
천망회회소이불실(天網恢恢疏而不失)
번쩍!
촤르르르륵!
땅속에서 솟아오르는 나무줄기와 허공을 뒤덮는 거대한 강철그물.
살짝 중심을 잃은 데빌사우루스는 내가 가장 정성을 들여 준비한 회심의 함정에 걸려들었다.
이 함정을 만들기 위해 그동안 모아놨던 많은 아이템들이 한 줌의 쇳조각으로 변해버렸다. 돈으로나, 시간으로나 많은 투자가 들어간 최고의 함정이었다.
그 어떤 것도 가두어버린다는 하늘의 그물이 데빌사우루스의 온몸을 꽁꽁 묶었다.
크어어엉!
아무리 데빌사우루스의 힘이 강해도 이건 쉽게 빠져나오지 못할 것이다.
특히, 이렇게 큰 상처를 입은 상태에서는 더욱 힘들었다.
“후후, 발버둥 치지 마. 내가 마지막 마무리를 해 준다고 했잖아.”
“장비 1번.”
츠리릿! 챙!
트윈문 소드가 내 손에 잡혔다.
“뮤직 체인지(Music Change). 실행 데이터이름 절정(絶頂).”
노랫소리가 바뀌었다. 이미 몇 번이고 바꾼 노래였지만 이번 노래는 좀 특별한 의미를 지니고 있었다.
모든 일의 마무리, 정리, 끝.
이것이 이 노래가 가진 의미였다.
나는 이 노래를 끝으로 일인 레이드를 마무리 지을 생각이었다.
절정으로 치닫는 노랫소리와 함께 내 안에 남아 있던 모든 마력도 마지막 일격을 위해 서서히 요동치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