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더 로드(The Lord)-35화 (35/250)

035. 식지 않는 불꽃의 언덕 ― 2

* * *

“아닙니다. 이 정도의 강화로도 저는 충분히 만족합니다. 아니, 사실 버그스톤 님의 강화기술에 저는 정말 감탄했습니다.”

이건 사실이었다.

소문으로만 들었던 버그스톤의 강화기술은 정말 환상 그 자체였다.

특히나 그 상상을 불허하는 번뜩이는 아이디어나 아무나 따라할 수 없는 교묘한 손기술을 보면 왜 버그스톤이 암흑의 업그레이더라고 불렸는지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하하! 저도 늘 신 님의 방대한 지식에 감탄하곤 합니다. 그리고 이번 강화로 저도 배운 게 많습니다. 앞으로도 종종 강화하러 오세요. 그래야 저도 더 많은 신 님의 지식을 훔칠 수 있을 테니까요.”

버그스톤도 기분 좋게 웃으며 얘기했다.

친해지기가 어려워서 그렇지 계속 얘기를 하다 보니 버그스톤도 꽤 괜찮은 사람이었다.

확실히 약간 외골수적인 요소가 좀 있어서 쉽게 편견을 가질 수 있었지만 그 편견만 벗어나면 분명 좋은 사람이었다.

어쨌든 이렇게 강화는 끝났다.

이제 남은 건 ‘식지 않는 불꽃의 언덕’에 대해서 조사하는 것이었다.

‘음, 그러고 보니 버그 님이라면 이곳에 오래 있었으니까…… 혹시 알고 있는 정보 같은 게 있지 않을까?’

나는 어지러워진 공방을 정리하고 있는 버그스톤을 바라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 * *

“이놈의 현자는 어디에 있는 거야?”

크랄 산맥을 헤매고 다닌 지 벌써 4일이 지났다.

‘식지 않는 불꽃의 언덕’에 대한 힌트는 의외로 NPC가 아닌 유저에게 얻었다.

버그스톤, 그냥 기대도 하지 않고 물어본 것이었는데 그는 분명 그 지명을 들어본 적이 있다고 했다. 버그스톤은 자신을 ‘강화전문기술자’라는 직업으로 전직시켜 준 크랄 산맥 깊숙한 곳에 있다는 괴짜 현자가 그와 비슷한 지명을 말한 적이 있다고 말했다.

뜻밖의 정보를 입수한 나는 준비를 모두 끝내고 곧장 크랄 산맥 안쪽으로 달려왔다.

버그스톤이 괴짜 현자를 만날 수 있는 대략적인 위치를 알려줬지만 안타깝게도 그 괴짜 현자께서는 한곳에 가만히 있지를 못하셨다.

덕분에 난 사냥의 명당이라 불리는 크랄 산맥에서 열심히 사냥할 수 있게 되었다.

물론, 그다지 반갑지 않은 사냥이란 게 문제였지만…….

“괜히 괴짜라고 불리는 게 아니겠지만…… 정말 짜증 나는 NPC네.”

회색오크 두 마리를 가볍게 처리한 나는 주변을 둘러보며 투덜거렸다.

이틀 전에 이 근처에서 그 괴짜 현자의 집으로 보이는 건물을 발견했지만 아쉽게도 괴짜 현자는 집에 없었다.

결국 어설프게 돌아다니기보단 이 집을 거점으로 삼고 근처에서 사냥하며 기다리는 게 낫겠다는 생각이 들어 이틀 전부터 계속 이곳에서 사냥만 했다.

보통 일반적인 NPC들의 생활패턴이라면 집에 돌아왔어야 할 시간이 훨씬 지났건만 괴짜 현자는 돌아올 생각을 하지 않았다.

“어디 멀리 갔나?”

그럴 가능성도 많았다.

보통 NPC들은 다양한 성향을 지녔었다. 어떤 NPC들은 유저와 함께 모험하며 세상을 떠도는 이들도 있었다.

괴짜 현자가 어떤 성향의 NPC인지 확실히는 몰랐지만 적어도 평범하게 제 자리를 지키는 NPC는 아닌 것 같았다.

“딱 삼 일만 더 기다려보자.”

그 이상 투자하는 건 무리였다. 메인퀘스트가 아무리 중요해도 무리를 해서 계획을 바꿀 수는 없었다.

이걸 재수가 좋았다고 해야 하나? 아니면 재수가 없었다고 해야 하나?

나는 괴짜 현자를 만났다.

그는 무려…… 자신의 집 지하에 있었다.

그의 집 지하는 일종의 광산이었다. 그는 그 광산에서 각종 광물을 채취해 뭔가 연구를 하고 있었다.

내가 그를 발견한 건 우연이었다.

그의 집 근처에서 사냥을 하다 아주 우연히 땅속에서 들려오는 이상한 소리를 들을 수 있었고 그 소리를 집중해서 듣다 보니 그곳에 괴짜 현자가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게 딱 삼 일만 기다려보자고 마음먹은 다음 날이었다.

난 지금까지 괴짜 현자를 코앞에 두고 모르고 있었던 것이었다.

어쨌든 찾긴 찾았으니 재수가 좋았다고 해야 할 것 같았으나 어쩐지 좀 개운하지 않은 느낌인 건 어쩔 수 없었다.

“미안하네. 내가 요즘 이 지역의 광물들에 대한 연구에 좀 심취를 해서 집에 손님이 찾아왔는지도 모르고 있었네.”

괴짜라고 불리는 이유는 분명히 있었다.

아무리 연구에 심취해도…… 땅속에서 몇 달을 지내다니…… 확실히 괴짜 현자다운 모습이었다.

“아닙니다. 오히려 카이스트 님의 끊임없이 지식을 탐구하시는 모습을 보고 있자니 진정한 현자가 무엇인지 깨달을 수 있어서 좋았습니다.”

일단 퀘스트를 위해 마음에도 없는 말을 마구 남발했다.

어쩌겠는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여기서 따지는 건 어리석은 짓인 것을…….

“허허, 자네가 뭘 좀 아는군.”

카이스트는 기분 좋은 웃음을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자네는 무엇이 궁금해서 날 찾아왔는가?”

카이스트는 어수룩한 NPC가 아니었다. 그는 달콤한 내 말 속에서 내가 자신에게 묻고 싶은 게 있다는 걸 단번에 알아차렸다.

“큭, 눈치채셨군요.”

이럴 땐 그저 솔직한 게 제일이었다.

“내가 좀 바빠서…… 길게 대화할 시간이 없어서 그러네.”

“그렇군요. 그럼 저도 단도직입적으로 여쭤보겠습니다. 혹시 카이스트 님은 ‘식지 않는 불꽃의 언덕’이 어디인 줄 아십니까?”

“호오! 정말 반가운 지명이군.”

카이스트는 확실히 그곳이 어디인지 알고 있는 눈치였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답답한 지명이기도하고…….”

“그게 무슨 뜻인가요?”

이상한 카이스트의 태도에 나는 고개를 갸웃거리며 물었다.

“나는 분명 그곳을 알고 있다네. 나보다 그곳에 대한 정보를 많이 알고 있는 이는 없을 걸세. 그곳은 가이아께서 이 세상에 불이란 것을 처음으로 만들었던 장소일세. 그곳에서 만들어진 불은 순식간에 온 세상에 퍼져 나갔고 결국 세상에는 불이란 것이 존재하게 되었다네. 그때부터 그곳은 ‘식지 않는 불꽃의 언덕’이라 불리게 되었고 실제로 지금까지도 계속 불타오르고 있다고 전해지네.”

카이스트는 자신이 알고 있던 것들을 차근차근 설명해 주었다. 하지만 한 가지 이해가 되지 않는 것이…… 지금까지도 계속 불타오르고 있다면, 분명 내가 알고 있어야 정상이었다.

하지만 내가 알기로 그와 비슷한 성격을 지닌 지형은 이 근처에 존재하지 않았다.

‘혹시 중부용암지대? 아니야…… 그곳은 크랄산맥에서 너무 멀리 떨어져 있어.’

나는 이런저런 의문을 가졌지만 아직도 그 지역이 어디인지는 알 수 없었다.

“그렇게 태초부터 존재했다는 그 언덕은 아주 오랜 세월이 지나며 점차 사람들의 기억 속에서 잊혀 갔지. 잊힌다는 것이 어떤 것인지 아는가? 그건 정말로 사라진다는 것일세. ‘식지 않는 불꽃의 언덕’은 신이 직접 강림한 신의 땅(神地)이었지만 사람들의 기억 속에서 잊힌 그 순간 찾을 수 없는 신비의 땅이 되어버렸다네. 사실…… 나도 그곳을 찾고 있다네. 그곳에 존재한다는 신의 불꽃(神火)을 보는 것이 나의 소원일세.”

이제야 카이스트가 왜 이상한 태도를 보였는지 이해가 되었다.

“그럼, 그곳은 찾을 수 없는 곳입니까?”

절대 그럴 리가 없었다.

그곳을 찾을 수 없다면 다른 방향으로라도 퀘스트가 진행될 것이 분명했기에 나는 다시 한번 물어보았다.

“흐음, 그건 아닐세. 그곳을 찾는 방법은 분명 존재하네.”

역시, 여기서 끝이 아니었다.

“그 방법이 무엇인가요?”

“그 방법은…… 자네 혼자 해결하기에는 아주 힘들 걸세. 혹시 주변에 자네를 도와줄 만한 동료들이 있는가?”

‘젠장, 파티퀘스트인가?’

카이스트가 이렇게 얘기한다는 건 다음 퀘스트가 혼자서는 수행하기가 힘든 파티단위의 퀘스트라는 얘기였다.

“동료들은 있습니다.”

일단 동료들이 있다고 거짓말을 했다. 어차피 퀘스트는 공유할 수 있기에 이렇게 얘기해도 거의 대부분의 NPC들이 퀘스트를 주었다.

“그런가? 그렇다면 다행이군. 자네는 혹시 크리스탈 미궁이란 곳을 아는가? 그곳은 저 멀리 바람의 호수에 존재한다고 알려진 신비의 미궁이지.”

‘바람의 호수 미궁.’

크리스탈미궁은 나도 알고 있는 곳이었다. 퍼스트헌터 이나가 최초로 발견한 규모가 굉장히 큰 미궁.

그곳은 총 20층으로 이루어진 대형 던전이었다.

“자네와 자네의 동료들은 그 미궁으로 가야 하네. 그리고 그 미궁 제일 깊숙한 곳에 숨겨져 있는 물건 중 하나를 가져와야 하네. 그것은 아주 오래전 사람들이 ‘식지 않는 불꽃의 언덕’을 기억하고 있을 때 제작했던 물건 중 마지막으로 남은 것이지. 아마 길면서 어렵고도 힘든 여행이 될 걸세. 그 미궁이 존재한다는 건 알고 있지만 정확히 어디에 있는지도 모르고 또 그 미궁은 고대의 마물들을 가둔 장소이기 때문에 무척 위험하기도 하지. 자네는 이 모든 것을 감내하고 그 물건을 나에게 가져다 줄 수 있겠는가?”

띠링, ‘신지(神地)의 이정표를 찾아서.’ 퀘스트를 받으시겠습니까? (Y/N)

띠링, 경고합니다. 본 퀘스트의 난이도[2등급(파티)의 연계퀘스트]는 무척 높습니다. 또한 완료시간에 따라 보상이 달라지며 중도에 포기하실 경우 약간의 불이익을 당하실 수도 있습니다.

띠링, 본 퀘스트는 메인퀘스트의 한 조각으로 오로지 단 한 명에게 한 번만 주어지는 퀘스트입니다. 만약 퀘스트를 포기하실 경우 더 이상 이 퀘스트는 발생하지 않습니다.

‘컥, 2등급(파티)의 연계 퀘스트??’

거기에 중도 포기할 경우 패널티까지 존재하는 특별퀘스트였다. 가장 재미있는 건 완료 시간에 따른 차별보상이었다.

이건 어지간한 퀘스트에서는 구경도 할 수 없는 것이었다. 아주 특별한 퀘스트들에만 존재하는 것, 사실 전 생애에서의 나도 이 완료 시간에 따른 차별보상 퀘스트는 말로만 들었지 직접 해본 적은 없었다.

그것은 한 마디로 빨리 해결하면 할수록 큰 이익이 있을 것이라는 소리였다.

‘과연 메인퀘스트라는 건가? 대단하군.’

정말 대단했지만 덕분에 나는 고민할 수밖에 없었다.

이 퀘스트를 수락하면 원래 계획했던 것들을 대부분 포기해야 했다.

하지만 그렇게 되면 나중에 대미궁에 도전할 때 문제가 생길 수 있었다.

“크흠…….”

고민이 될 수밖에 없었다.

“포기해도 괜찮네. 어차피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은 아니었다네.”

가뜩이나 고민되는데 카이스트가 왠지 모르게 성질을 긁었다.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라고? 쳇, 내가 해주지! 내가 그 누구보다 빠른 시간 안에 이 퀘스트를 해결해주겠다고!’

카이스트의 말 한마디에 고민이 끝나버렸다.

난 강하게 ‘Y’자를 후려쳤다.

메인퀘스트가 얼마나 대단한지는 모르겠지만 확실히 나의 능력을 보여줄 생각이었다.

“오오! 자네는 정말 용기가 있군.”

감탄하는 카이스트 영감, 왠지 이 영감은 알게 모르게 사람 성질을 긁는 재주가 있는 것 같았다.

띠링, ‘신지의 이정표를 찾아서’ 퀘스트를 받아들이셨습니다.

띠링, 퀘스트 목록이 갱신되었습니다. 퀘스트 창을 확인해 주세요.

“자네가 크리스탈미궁에서 찾아야 할 물건은 하나의 이정표라네. 그것은 우리들이 잃어버린 신지로 가는 길을 안내해줄 물건이지.”

카이스트의 말은 차근차근 퀘스트 팁에 기록되기 시작했다.

“그것의 이름은…….”

카이스트는 천천히 그 이정표의 정확한 이름을 말해주었다. 그리고 그 순간 누군가 내 머리를 망치로 내리치는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

“지, 지금 뭐라고 하셨죠?”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카이스트를 향해 소리쳤다.

전혀 예상하지 못한, 무척이나 당황스러운 일이 지금 이곳에서 벌어지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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