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34. 식지 않는 불꽃의 언덕 ― 1
* * *
땅땅.
버그스톤은 작은 망치를 들고 가슴 보호구로 보이는 방어구를 두들기고 있었다.
그는 내가 가까이 갔음에도 신경도 쓰지 않고 오로지 자신의 작업에 집중했다.
“이것들 전부 파는 건가요?”
나는 일단 그가 행상에 등록해 놓은 물건들을 가리키며 그에게 말을 걸었다.
외치기를 하지 않는 것으로 봐서 아이템 강화로 돈을 벌 생각은 없는 것 같았다. 이럴 때는 일단 대화를 하며 슬쩍 의중을 떠볼 필요가 있었다.
“가격은 전부 적어놨습니다.”
땅땅.
버그스톤은 나를 쳐다보지도 않고 딱딱한 말투로 얘기했다.
“흠흠, 가격은 저도 봤습니다. 사실…… 궁금한 게 있는데 좀 여쭤 봐도 되겠습니까?”
“……지금은 바쁘니까 나중에 오세요.”
역시 친절과는 거리가 먼 버그스톤. 오로지 강화기술에만 미쳐있다는 그의 성격이 여실히 드러났다.
‘흐음 그렇게 나온단 말이지…….’
평범한 방법으로 버그스톤과 대화하긴 글러 먹었다. 그렇다면 평범하지 않은 방법을 이용해야 했다.
“복합장갑의 기술에 관한 얘기인데…… 진짜 나중에 올까요?”
복합장갑 기술은 내가 알고 있는 몇 안 되는 특수 강화 기술 중 하나였다.
물론 이걸 개발한 인물은 버그스톤이었다.
한 몇 달(실제시간)만 지나면 분명 그는 복합장갑 강화기술로 큰 명성을 얻을 것이다.
그가 본격적으로 이름을 날리기 시작한 게 그때부터였다. 그러니까 난 지금 그를 대표하는 전문 기술 하나를 가지고 그의 관심을 유도하려는 것이었다.
어떤 의미에서 이건 명백한 사기였다. 하지만 그게 무슨 상관인가? 나에게 복합장갑 기술은 훌륭한 미끼와 같았고 버그스톤 이 미끼를 물 수밖에 없었다.
아마 지금의 그라면 복합장갑 기술에 대한 생각 때문에 잠을 제대로 자지 못할 정도일 것이다.
“바, 방금 뭐라고 하셨죠?”
역시나 버그스톤은 제대로 미끼를 덥석 물었다.
“복합장갑 기술이라고 했습니다.”
나는 다시 한번 그에게 미끼를 확인시켜주었다.
점점 눈이 커지는 버그스톤, 그는 하던 일을 모두 멈추고 오로지 나와 대화를 하겠다는 열망이 가득 담긴 눈빛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그렇군요! 결국 제가 생각했던 대로 완충공간이 답이었어요.”
버그스톤은 마치 막혔던 기도가 뚫린 사람처럼 시원한 표정을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이 복합장갑 기술만 완성시키면 방어구 강화에 혁명이 일어날 겁니다.”
내 말은 거짓말이 아니었다.
이 복합장갑 기술이 나오기 전까지의 방어구 강화는 장갑을 덧대거나 이음새를 견고하게 만드는 것들이 대부분이었다.
하지만 이 기술이 제대로 완성만 되면 그때부터는 여러 가지 형태의 강화가 가능해졌다.
“대단합니다! 제가 여러 기술자들을 봐 왔지만…… 신 님과 같은 분은 처음입니다.”
버그스톤은 정말 감격이라도 한 것 같은 표정이었다.
“저야말로 버그스톤 님 같은 훌륭한 기술자는 처음 봅니다. 그리고 저는 기술자라기보다는 기술을 연구하는 학자라고 하는 게 맞을 것 같습니다.”
다른 유저들과 절대 친분을 쌓지 않았다던 버그스톤이 내 말 한마디, 한마디에 감격하며 기뻐했다.
이것이 바로 아는 자의 권리였다.
“신 님, 이건 정말 제가 혼자만 생각한 건데…… 혹시 이런 건 어떨까요? 복합장갑을 약간 변형시켜 완충공간을 더욱 극대화시킨…….”
버그스톤은 이제 약간은 비밀스러운 말까지 꺼내며 나에 대한 신뢰를 들어내고 있다. 아마도 지금 버그스톤이 얘기하는 건 복합장갑의 발전형 버전인 공간장갑 기술일 것이다.
이 기술에 대해서 아는 건 그리 많지 않았지만 적어도 장단을 맞춰 줄 정도의 지식은 가지고 있었다.
암흑의 업그레이더 버그스톤…… 그렇게 나는 그와 이런저런 대화를 나누며 점점 친분을 쌓아갔다.
“정말 이런 대화를 나눌 수 있는 상대가 있었다는 게 기쁩니다. 실례가 안 된다면 친구등록을 해도 될까요?”
“제가 먼저 부탁드리려고 했습니다.”
나는 정겹게 웃으며 같이 친구등록을 했다.
이로써 암흑의 업그레이더 버그스톤과의 친분을 확실히 만들었다.
“혹시 나중에 아이템 강화를 좀 부탁드려도 될까요?”
나는 넌지시 물어보며 버그스톤의 반응을 살폈다.
“물론이죠! 신 님이라면 언제나 환영입니다.”
확인 끝.
이제 더 이상 대화를 할 필요도 없었다.
“하하, 감사합니다. 그럼…… 지금 잠깐 할 일이 있으니 나중에 다시 얘기하도록 하죠.”
“알겠습니다. 저는 거의 이 동네에 있을 테니 언제라도 귓속말하세요.”
밝게 웃으며 즐거워하는 버그스톤.
나는 그와 완벽한 친분을 쌓았다.
버그스톤과 해어진 난 경매장에 들렸다.
그동안 팔려고 모아놨던 아이템들을 시세보다 싼 가격에 내놓았더니 아주 잘 팔려나갔다.
남아 있던 돈과 새롭게 번 돈을 합치니 꽤 많은 돈이 되었다. 난 이 돈으로 거의 모든 장비를 완전히 다 바꿀 생각이었다.
지금 레벨은 130.
앞으로 전직레벨이 될 때까지 한 가지 할 일이 있었다. 그것은 메인퀘스트와는 다른 일이었다. 그 일 때문이라도 앞으로 마을에 들려서 장비를 교체하는 건 자주 할 수 없었다.
그렇기에 전직 후에도 사용할 수 있는 좋은 장비들로 교체하는 게 좋았다.
일단 노리는 건 레어급 이상의 아이템들.
혹시나 재수가 좋아 유니크급이라도 구할 수 있다면…… 남아 있던 저택 세 채 중 한 채를 또 팔 생각도 있었다.
“호오~ 오거슬레이어.”
경매장을 살피던 나는 상당히 좋은 양손대검을 발견했다. 무려 300레벨 후반대까지 사용할 수 있는 유니크급 아이템이었다.
“이게 벌써 경매장에 올라올 때가 되었나?”
역시 우타와라는 건가? 생각보다 아이템들의 수준이 높았다.
“잠깐! 이게 경매장에 올라왔다면…….”
나는 재빨리 경매장의 검색옵션을 활성화시키고 몇 가지 단어를 검색하기 시작했다.
좌르륵.
떠오르는 목록들.
“역시!!”
있었다.
내가 찾던 물건들이…… 아직은 구할 수 없을 것이라 생각했었다. 내 기억이 잘못되었던가?
아니면…… 혹시 미래가 바뀐 것일까?
이것들은 어쨌든 언젠가 구해놔야 했던 아이템들이었다.
“일단, 즉시 구매!”
돈이 좀 부족할 것 같았다. 역시 저택 한 채를 또 빨리 팔아치워야겠다.
무한의 가방[공간확장강화].
압축물약팩.
압축시약캡슐.
압축식재료.
만능수리도구세트.
만능요리도구세트.
내가 산 물건들은 대부분 기상천외한 강화아이템들이었다. 기존의 공간을 두 배로 확장시킨 무한의 가방이나 부피와 무게를 10%로 줄인 압축시리즈 물건들…… 그리고 획기적인 활용도를 자랑하는 만능도구 시리즈.
이 모든 게 한 괴짜 유저가 만들어낸 것이었다.
맥가이버, 이것들은 괴짜 발명가 맥가이버의 제대로 된 첫 작품들이었다.
물론 지금은 초기 실험 작품들이기 때문에 그 가격이 너무 비쌌다. 덕분에 지금은 그 누구도 감히 구입할 생각을 못 하는…… 그런 물건들이었다.
하지만 나중에 그 실용성이 검증되어 소문이 나기 시작하면 없어서 못 구하는 것들이었다.
비싼 가격? 오히려 나중에 프리미엄이 붙어서 더 비싸게 거래되었다.
시간이 좀 지나면 맥가이버가 ‘순간강화 물감’이라는 괴상한 아이템을 개발하는 데 이것도 또 대박을 친다.
그것은 그냥 아이템에 바르기만 하면 일정시간동안 강화효과가 부여되는 물건이었다.
이처럼 맥가이버는 정말 괴상하면서 쓸모가 있는 많은 아이템을 계속해서 내놓을 것이다. 기회가 된다면 그와도 친분을 쌓고 싶었지만…… 아쉽게도 그는 늘 신비에 싸여 있는 유저였기에 그 얼굴을 제대로 아는 이가 한 명도 없었다.
결국 내가 할 수 있는 방법은 사람들이 아직 그를 알아주지 않을 때 물건들을 선점하는 것밖에 없었다.
나는 경매장에 한동안 붙어서 멀리 다른 마을에 있던 내 저택을 최대한 빠르게 처분하고 그 돈으로 나머지 필요한 아이템들을 구입했다.
우타와 경매장에는 예상보다 좋은 아이템이 많이 있었기 때문에 나는 차근차근 가장 적절한 아이템들을 골라서 바로바로 장비를 교체했다.
무려 5시간이 지나서야 그 작업이 끝났다.
공을 많이 들인 만큼 그 결과는 아주 마음에 들었다.
<무기>
장비 1번 : 트윈문 소드(레어 세트)
장비 2번 : 얼어붙은 검(레어) 용사의 대형방패(레어)
장비 3번 : 강철와이어(레어)
장비 4번 : 오거슬레이어(유니크)
장비 5번 : 요정들의 합성활(레어)
장비 6번 : 명사수의 트윈 건(유니크 세트)
<방어구>
머리: 순백의 플레이트헬멧(유니크)
가슴: 이중철갑가슴보호구(매직)
어깨: 이중철갑어깨보호구(매직)
팔: 이중철갑팔보호구(매직)
손: 산들바람장갑(레어)
다리: 이중철갑다리보호구(매직)
발: 이름 모를 용사의 판금장화(유니크)
<장신구>
등: 없음(레벨200에 활성화)
손가락(1): 황금반지(매직)
손가락(2): 명사수의 반지(레어)
손가락(3): 없음(레벨200에 활성화)
손가락(4): 없음(레벨400에 활성화)
목: 없음(레벨200에 활성화)
팔목: 없음(레벨400에 활성화)
문신: 없음(레벨400에 활성화)
귀걸이: 없음(레벨200에 활성화)
<기타(밖에 직접 착용하고 있는 것들)>
단검(2): 포이즌대거(레어), 문블레이드(레어)
투척용 비도(100): 강철비도(주문제작아이템)
연막탄(4): 자객용 연막탄(일반)
소형폭탄: 웹마인5개(제작아이템), 화염지뢰4개(제작아이템)
방어구 쪽이 좀 빈약했지만 그래도 아주 괜찮은 유니클 헬멧을 구했으니 상관없었다.
그리고 어차피 모두 암흑의 업그레이더 버그스톤에게 강화를 부탁할 것이기 때문에 매직아이템들도 그냥 단순한 매직아이템들이 아니게 될 예정이었다.
[버그 님, 어디 계세요?]
아이템을 다 구했으니 이제 본격적으로 강화를 할 차례였다. 강화라면 역시…… 이론에만 강한 내가 아닌 실전의 최강자였던 버그스톤을 찾아가야 했다.
꽝!
폭발했다.
“콜록, 콜록.”
공방(工房)을 가득 채운 뿌연 연기…… 정말 버그스톤의 강화기술은 상상을 초월했다.
이곳은 버그스톤의 공방이었다.
그는 내 강화 부탁을 받고는 오랜만에 제대로 강화를 해보겠다며 자신의 공방으로 나를 불렀다.
그런데 그 제대로 한다는 강화기술들은 정말 기상천외한 것들이었다.
“이런…… 완벽하게 성공은 아니네요.”
버그스톤은 살짝 실망스러운 표정으로 손에 들고 있던 두 자루의 검을 바라보았다.
“크흠, 실패인가요?”
“아니요, 실패는 아니에요. 하지만 원했던 효과의 반도 나오지 않았네요. 분명…… 이론적으로는 완벽하게 투명한 날이 되어야 했는데…….”
“투명한 날이요? 그럼 설마 방금 이 검들에 한 강화가 ‘프리즘(Prism) 효과 부여’였단 말인가요?”
“어라, 그걸 어떻게 아셨어요? 헉! 설마 신 님도 연구하고 있던 강화기술이었나요.”
‘아차!’
작은 실수였다.
잠깐 흥분해서 아는 척을 할 필요가 없는 기술의 이름을 거론해버렸다.
“아, 네…… 저도 아주 약간 관심을 가졌던 기술인지라…….”
“역시! 신 님은 대단하군요.”
다행스럽게도 버그스톤은 크게 의문을 가지지 않았다.
사실 프리즘 효과 부여 강화는 완성되려면 아직 많은 시간이 필요한 기술이었다.
난 버그스톤이 벌써 이 기술을 연구하고 있었을 줄은 정말 몰랐었다.
“그나저나 실패가 아니라면 약간의 효과는 있는 겁니까?”
“네, 뭐…… 그다지 많은 것은 아니지만 약간의 환영효과와 날카로움 증가 같은 효과는 분명 있을 겁니다.”
버그스톤은 약간의 환영효과와 날카로움 증가라고 했지만 사실상 그 정도 강화도 대단한 것이었다.
버그스톤이니까 그 정도를 약간이라 표현한 것이었지 다른 이였다면 절대 그렇게 얘기하지 않았을 것이었다.
“휴~ 그나저나 정말 제대로 강화를 해 드리고 싶었는데 정작 제대로 성공한 것은 하나도 없네요.”
버그스톤은 약간 미안한 표정을 지으며 얘기했다. 하지만 이것 역시 버스스톤의 겸손일 뿐이었다.
버그스톤은 내가 미리 준비해간 각종 재료들로 내 아이템들을 모두 강화했다.
거의 하루를 꼬박 소비한 대규모 작업.
하지만 버그스톤은 그저 나와 대화하는 것만으로도 즐겁다는 표정으로 내 모든 아이템을 강화해주었다.
특히 버그스톤은 보통의 평범한 강화가 아닌 특별한 강화기술들을 이용해 내 아이템을 손봐줬는데…… 그 결과는 모두 약간의 성공이었다.
물론 강철와이어처럼 거의 효과를 보지 못한 아이템도 몇 개 있었지만 그것들을 제외한 나머지는 전부 상당한 강화 효과를 볼 수 있었다.
방금 마지막으로 강화작업을 끝낸 트윈문 소드처럼 절반의 성공만 거두었지만 그것만으로도 분명히 이득을 얻을 수 있었다.
“다른 건 몰라도 그 복합장갑을 이중구조로 교차시킨 합성복합장갑은 분명 성공할 수 있었는데…… 겨우 강화복합장갑 정도만 만들어진 게 아쉽네요.”
확실히 현재 버그스톤이 내 아이템에 시도했던 각종 강화기술 중 합성복합장갑 기술이 가장 완성도가 높았다.
아마도…… 조만간 버그스톤은 그 기술을 완벽하게 완성시킬 것 같았다.